8화(5,336자)

다른 무리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문들레

보호소 새들은 저마다 한 사람씩 데리고 왔다⁠. 몸은 두고 소리만⁠.

철망 방이 길게 이어진 건물이었다⁠. 방마다 새가 한 마리나 두 마리 있었고⁠, 방 앞에 작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아침마다 직원이 열쇠 꾸러미를 흔들며 방을 하나씩 돌았다⁠. 열쇠가 찰랑거리는 소리 뒤에 “⁠밥이다⁠!⁠” 하는 목소리가 따라왔다⁠. 그러면 건물 전체가 한꺼번에 시끄러워졌다⁠.

내 옆방에는 초록색 모란앵무 한 쌍이 살았다⁠. 둘은 늘 붙어 앉아 서로의 머리깃을 골라 주었고⁠,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소리를 냈다⁠.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엄마 금방 올게⁠.⁠”

둘이 번갈아 했다⁠. 한 마리가 하면 다른 한 마리가 받아서 했다⁠. 직원이 지나가다 말했다⁠.

“⁠얘네 엄마는 이사 가면서 두고 갔어요⁠. 금방 온다고 하고⁠.⁠”

나는 모란앵무 소리를 귀에 넣지 않았다⁠. 넣지 않아도 들어왔다⁠. 막내딸의 금방과 같은 길이였다⁠.

맞은편 방에는 크고 하얀 새가 살았다⁠. 머리에 노란 깃이 볏처럼 솟은 유황앵무였다⁠. 유황앵무는 아침마다 볏을 세우고 굵은 남자 목소리로 외쳤다⁠.

“⁠사랑해⁠! 사랑해⁠!⁠”

외칠 때마다 철망을 부리로 두드렸다⁠. 직원은 유황앵무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대장은 놀이방 가장 높은 횃대의 주인이었다⁠. 놀이방은 철망 방들 끝에 있는 큰 방이었다⁠. 오후에 한 시간씩 새들을 풀어 놓았다⁠.

복도 맨 끝 방에는 늙은 회색앵무 수컷이 있었다⁠. 나와 같은 잿빛이었고 꽁지가 나처럼 붉었는데⁠, 붉은색이 바래 있었다⁠. 늙은 회색앵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에 몇 번 기침만 했다⁠. 늙은 남자의 기침이었다⁠. 가래가 끓다가 길게 끝났다⁠.

나는 닷새 동안 먹지 않았다⁠. 직원이 방 앞에 쪼그려 앉아 말린 사과를 철망 사이로 흔들었다⁠.

“⁠먹어야 산다⁠, 회색아⁠. 너 신문에 나온 애지⁠? 회장님 새⁠.⁠”

나는 직원의 열쇠 꾸러미를 봤다⁠. 열쇠가 열한 개였다⁠.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열한 가지였다⁠.

*

이레째 오후⁠, 직원이 내 방 문을 열고 나를 놀이방으로 옮겼다⁠. 놀이방 바닥에는 나무가 박혀 있었다⁠. 진짜 나무는 아니었다⁠. 굵은 나뭇가지를 잘라 바닥에 박아 세워 놓았다⁠. 가지마다 새가 앉아 있었다⁠. 모란앵무 한 쌍은 아래 가지에⁠, 왕관 같은 볏을 단 작은 앵무들은 가운데 가지에⁠, 대장은 꼭대기에⁠.

꼭대기 가지는 창에서 가장 가까웠다⁠. 창밖으로 산이 보였고 하늘이 보였다⁠. 나는 꼭대기 가지를 봤다⁠. 대장이 볏을 세웠다⁠.

“⁠사랑해⁠!⁠”

사랑해는 위협이었다⁠. 대장의 사랑해에는 부리가 붙어 있었다⁠. 대장이 날개를 반쯤 펴고 꼭대기 가지 위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오지 말라는 몸짓이었다⁠. 새끼리는 몸으로도 말한다⁠. 깃을 세우면 크게 보이려는 것이고⁠, 몸을 흔들면 다가오면 친다는 것이다⁠. 사람은 춤을 춘다고 웃는다⁠. 놀이방 유리창 밖에서 봉사하러 온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꼭대기로 날아오르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가 걸었다⁠. 놀이방 문 앞까지 걸어가서 열쇠 꾸러미 소리를 냈다⁠. 열한 가지 소리를 차례로⁠, 찰랑찰랑⁠. 그리고 직원의 목소리⁠.

“⁠밥이다⁠!⁠”

가지 위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 내려왔다⁠. 모이 그릇이 있는 구석으로⁠. 대장도 내려왔다⁠. 대장은 밥 앞에서 늘 가장 먼저였다⁠. 구석에 모인 새들이 빈 그릇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새들이 갸웃거리는 동안 나는 꼭대기 가지에 올라앉았다⁠. 창밖 산이 보였다⁠.

대장이 돌아왔다⁠. 볏을 끝까지 세우고 꼭대기 바로 아래 가지에 내려앉았다⁠. 몸을 흔들었다⁠. 부리를 벌렸다⁠. 나는 꼭대기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대장이 한 가지 더 올라왔다⁠. 우리 둘의 부리 사이가 한 뼘이었다⁠. 대장이 숨을 들이쉬었다⁠. 사랑해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나는 가지를 부리로 한 번 쳤다⁠. 회장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칠 때의 소리였다⁠.

“⁠됐다⁠, 그만 읽어⁠.⁠”

대장의 볏이 내려갔다⁠. 대장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늙은 남자 목소리가 왜 새의 부리에서 나오는지 대장은 몰랐다⁠. 대장이 한 가지 내려갔다⁠. 다시 한 가지⁠. 아래 가지에 앉아 볏을 반쯤 세운 채 나를 올려다봤다⁠. 유리창 밖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직원이 놀이방 문을 열고 들어와 빈 모이 그릇을 들여다보다가 나를 올려다봤다⁠.

“⁠…회색아⁠, 너 지금 밥으로 사기 쳤냐⁠?⁠”

저녁에는 직원 사무실의 작은 텔레비전 소리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직원은 밥을 먹으며 뉴스를 틀어 놓는다⁠. 아나운서가 회장 집안 이야기를 했다⁠. 며칠 뒤 가정법원에서 회장의 녹음 유언을 검인한다는 소리⁠, 외국계 펀드가 다음 달 임시 주주총회를 열자고 했다는 소리⁠, 베트남 공장 공사가 멈췄다는 소리⁠. 공사장 사람들이 손을 놓고 앉아 있다는 소리도 있었다⁠.

직원의 전화가 울렸다⁠. 직원이 숟가락을 놓고 받았다⁠.

“⁠아니요⁠, 원장님⁠. 기자는 아직 안 왔어요⁠. …네⁠, 회색이 여기 있는 거 새면 산까지 올라오겠죠⁠. 검인 날 아침에 데려간대요⁠. …밥이요⁠? 오늘 놀이방에서 대장 밀어내고 꼭대기 차지했어요⁠. 밥으로 사기 쳐서요⁠. 네⁠, 진짜로요⁠.⁠”

직원이 웃었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웃음소리가 났다⁠. 웃음소리 둘이 사무실 안에서 겹쳤다⁠. 나는 직원의 웃음을 귀에 넣었다⁠. 회장이 떠난 뒤 처음으로 모은⁠, 얼굴을 바꾸지 않는 소리였다⁠. 바꿀 얼굴이 처음부터 웃고 있었다⁠. 직원은 전화를 끊고 복도 끝 방으로 가서 늙은 회색앵무에게 사과 한 조각을 내밀었다⁠. 늙은 회색앵무는 사과를 받지 않고 기침을 했다⁠. 직원은 사과를 철망 사이에 꽂아 두고 돌아왔다⁠.

*

놀이방 시간이 끝나 갈 무렵⁠, 복도 끝에서 늙은 회색앵무의 기침이 들려왔다⁠. 놀이방에 나오지 않는 새였다⁠. 나는 꼭대기 가지에서 귀를 세웠다⁠. 봉사하러 온 여자가 직원에게 물었다⁠.

“⁠저 회색 할아버지는 왜 안 나와요⁠?⁠”

“⁠안 나오려고 해요⁠. 주인분이 돌아가셔서 왔거든요⁠. 혼자 사시던 할아버지였는데⁠, 돌아가시고 한참 있다가 발견됐대요⁠. 얘가 옆에 있었고요⁠. 여덟 해째 저 기침만 해요⁠. 주인분 기침이요⁠.⁠”

“⁠기다리나 봐요⁠.⁠”

“⁠기다려요⁠. 돌아가신 분은 안 오는데⁠.⁠”

돌아가셨다는 소리가 놀이방 안에서 났다⁠. 직원이 냈다⁠. 앞소리와 끝소리가 같고 가운데 한 소리만 다른 소리⁠. 나는 가운데 소리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서재에서 이레 동안⁠, 보호소에서 이레 동안⁠.

돌아가신 분은 안 오는데⁠.

늙은 회색앵무가 또 기침을 했다⁠. 여덟 해째⁠. 기침 끝에 소리가 하나 더 붙었다⁠. 짧고 맑은 휘파람이었다⁠. 사람 소리가 아니었다⁠. 회색앵무가 숲에서 무리를 부를 때 내는 소리다⁠. 여기 있다⁠, 너는 어디 있니⁠? 나는 서른 해 동안 무리 부르는 소리를 내 본 적이 없었다⁠. 회장 어깨 위에서는 부를 무리가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법은 몸이 알았다⁠. 목 안에서 소리가 올라오다가 멈췄다⁠. 휘파람에 대답하면 나도 복도 끝 방에 앉게 된다⁠. 여덟 해를 한 사람의 기침으로 사는 방이다⁠.

*

열흘째 되는 날 왼쪽 굽이 복도에 들어왔다⁠. 보호소 바닥은 미끄러운 타일이었고⁠, 삐걱 소리가 타일 위에서 길게 미끄러졌다⁠. 기철은 내 방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철에게 작았다⁠. 무릎이 철망에 닿았다⁠.

기철이 양복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바스락⁠. 해바라기씨였다⁠.

“⁠아가씨가 주라고 하셨다⁠. 하루에 열 알만⁠. 수의사 선생님 몰래⁠.⁠”

기철이 씨를 손바닥에 놓고 철망 사이로 내밀었다⁠. 손바닥이 넓고 손금이 깊었다⁠. 나는 열흘 만에 먹었다⁠. 하나를 까서 먹고⁠, 하나를 더 집었다⁠. 기철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 방 앞 종이에는 「⁠회색앵무 · 암컷 · 31세 · 보호자 사정으로 임시 보호⁠」라고 적혀 있다고 직원이 말한 적이 있다⁠. 기철은 종이를 한참 들여다봤다⁠.

“⁠보호자 사정⁠. 내 사정이다⁠.⁠”

기철이 씨를 하나 더 내밀며 말했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회장에게 보고할 때의 목소리였다⁠. 낮고 고르고⁠, 끝을 낮추지 않았다⁠.

“⁠유월 열아흐레⁠, 회장님이 처음 녹음을 하셨다⁠. 중간에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셨다⁠. 지웠다⁠. 스무날에는 기침이 멈추지 않으셨다⁠. 또 지웠다⁠. 스무하루⁠, 해가 제일 긴 날에 끝까지 하셨다⁠. 또박또박⁠. 날짜도 이름도⁠. 나는 증인으로 내 이름을 말했다⁠.⁠”

기철이 손바닥을 털었다⁠. 껍질이 바닥에 떨어졌다⁠.

“⁠칠월부터 회장님은 지우라고 하셨다⁠. 밤마다⁠. 나는 무엇을 지우라는 말씀인지 묻지 못했다⁠. 물으면 대답을 못 하실 것을 알았으니까⁠. 구월에 주치의를 찾아가 소견서를 써 달라고 했다⁠. 칠월부터가 병환이면⁠, 지우라는 말씀은 안 들어도 되니까⁠. 소견서가 나왔다⁠. 칠월부터 병환이었다⁠. 그런데 유월에도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셨다⁠.⁠”

기철이 웃었다⁠. 웃음 끝이 낮아졌다⁠.

“⁠회장님이 두 분이었다⁠. 유월의 회장님⁠, 칠월의 회장님⁠. 스물여덟 해 동안 회장님 말씀이 두 갈래인 적은 없었다⁠. 앵두야⁠, 너는 둘 다 들었지⁠. 둘 다 갖고 있지⁠.⁠”

나는 씨를 깠다⁠. 기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철망에서 떨어지며 철망이 출렁였다⁠.

“⁠내일 법원에서 다 말하겠다⁠. 형님이라고 부르신 날도⁠. 다 들은 사람이 다 말해야지⁠. 너를 여기 둔 것도 내가 잘못했다⁠.⁠”

*

복도 입구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어왔다⁠. 라이터 뚜껑이 딸깍 열렸다⁠. 기철이 돌아섰다⁠. 큰아들이 직원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큰아들 손에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실장님이 여기 왜 있어요⁠?⁠”

“⁠검인이 내일입니다⁠. 보러 왔습니다⁠.⁠”

“⁠내일 아침에 실장님이 데려간다면서요⁠. 나 못 믿어서 오늘 왔어요⁠. 실장님을⁠.⁠”

큰아들이 종이를 들어 보였다⁠.

“⁠법원에서 보낸 거예요⁠. 앵무새 들어 보는 거⁠, 신청인이 데려오래요⁠. 신청인이 나예요⁠.⁠”

“⁠부회장님⁠.⁠”

“⁠막내랑 무슨 얘기 했어요⁠? 주차장에서⁠. 막내 차가 거기 한 시간 서 있었다던데⁠. 법정에서 형님 얘기 하기로 했죠⁠?⁠”

“⁠본 대로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본 대로면⁠, 유월 이십일일에 아버지가 멀쩡했다는 것도 말해요⁠.⁠”

기철이 큰아들을 똑바로 봤다⁠.

“⁠멀쩡하셨습니다⁠. 그날은⁠.⁠”

큰아들의 어깨가 내려갔다⁠. 라이터 뚜껑이 닫혔다⁠. 큰아들이 기철에게서 눈을 떼고 철망 앞에 쪼그려 앉았다⁠. 큰아들의 얼굴이 내 얼굴 높이로 내려왔다⁠. 큰아들은 내 얼굴 앞까지 내려온 적이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앵두야⁠. 내일 판사님 앞에서 한 번만 해⁠. 그 말⁠. 아버지 말⁠.⁠”

넣어 달라는 소리에는 얼굴이 미리 준비돼 있다⁠. 큰아들의 얼굴은 붉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넣지 않았다⁠.

직원이 큰아들이 내민 서류에 이름을 받고 내 방 문을 열었다⁠. 큰아들이 가져온 이동장은 새것이었다⁠. 걸쇠가 쇠였다⁠. 큰아들은 걸쇠를 끼우고 손가락으로 두 번 확인했다⁠. 기철은 복도에 서서 보기만 했다⁠.

이동장이 들려 복도를 지나갔다⁠. 옆방 모란앵무가 엄마 금방 올게를 했다⁠. 맞은편 대장이 볏을 반만 세우고 사랑해를 했다⁠. 복도 끝 방을 지날 때 늙은 회색앵무가 기침을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 있다⁠, 너는 어디 있니⁠?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동장 철망에 부리를 대고⁠, 늙은 회색앵무의 방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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