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25자)

금방 데리러 갈게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문들레

검은 덮개 밑에는 밤만 있었다⁠. 회색 덮개의 밤에는 천 올 사이로 빛이 점점이 박혀 있었는데⁠, 검은 덮개의 밤에는 점이 하나도 없었다⁠. 눈을 떠도 감아도 같았다⁠. 나는 처음 하루를 눈을 뜨고 보냈고⁠, 이튿날부터는 감았다⁠.

날을 세는 것은 소리였다⁠. 아침 일곱 시면 현관의 태엽 소리를 기다려 귀를 세웠다가 내렸다⁠. 기철은 이제 이 집에 출근하지 않았다⁠. 일곱 시 반에 부엌 아주머니가 압력밥솥을 올렸다⁠. 열 시에 우편함이 덜컹거렸다⁠. 열한 시에 감나무 까치가 먹이를 찾으러 나갔고⁠, 해 질 녘에 돌아와 길게 울었다⁠. 내 나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모이 그릇은 덮개를 반 뼘 들추고 막내딸이 채워 주었다⁠. 펠릿과 말린 사과와 옥수수 알⁠. 나는 손대지 않았다⁠. 앵무새는 밤에 먹지 않는다⁠. 덮개 밑은 늘 밤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나는 덮개를 철망 사이로 부리로 당겨 물었다⁠. 천이 두꺼워 뚫리지 않았다⁠. 물고 당기고 놓으면 천이 철망에 부딪쳐 툭 소리가 났다⁠. 툭⁠, 툭⁠.

툭 소리 말고는 내가 낼 소리가 없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누구 얼굴을 바꾸겠는가⁠? 나는 어둠 속에서 회장의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앵두야⁠, 이리 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

나흘째 아침⁠, 우편함이 덜컹거린 뒤 막내딸이 서재로 올라와 새장 앞에서 봉투를 뜯었다⁠. 종이 펴는 소리가 났다⁠. 막내딸은 덮개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나에게 들려주려고 읽는 소리가 아니었다⁠. 혼자서는 읽을 수 없는 종이였다⁠.

“⁠「⁠유언 녹음 검인 기일 통지⁠. 일시 11월 9일 오전 열 시⁠. 장소 가정법원 3층 심문실⁠.⁠」⁠”

막내딸이 다음 장을 넘겼다⁠.

“⁠「⁠신청인 장남이 낸 앵무새 청취 신청은 검인 기일에 함께 본다⁠. 다만 앵무새의 소리는 유언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오빠 진짜 별걸 다 했네⁠. 판사님이 앵두 말을 들어 보겠대⁠.⁠”

막내딸이 웃는 소리를 냈다⁠. 한 번 내고 멈췄다⁠. 기철이 녹음기를 법원에 냈다는 소리였다⁠. 열흘 동안 지우라는 말을 들은 녹음기가 이제 법원 금고에 있었다⁠.

열한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길게 세 번⁠. 부엌 아주머니가 현관으로 나갔다⁠. 대문 너머에서 남자 목소리 둘이 아주머니와 다퉜다⁠. 쉰 목소리가 있었다⁠. 막내딸의 전화기 속에서 듣던 소리였다⁠.

“⁠아가씨 계시잖아요⁠. 차 있는 거 봤어요⁠.⁠”

“⁠안 계셔요⁠. 가세요⁠. 기자들 다 보는데 창피하지도 않아요⁠?⁠”

“⁠창피는 돈 안 갚는 사람이 해야죠⁠.⁠”

막내딸은 서재 문 뒤에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숨을 죽인 사람의 숨은 더 크게 들린다⁠. 남자들이 돌아간 뒤 나는 덮개 밑에서 초인종 소리를 냈다⁠. 길게 세 번⁠. 아래층에서 아주머니의 슬리퍼가 다시 현관으로 뛰었다가 멈췄다⁠.

“⁠…너까지 왜 이래⁠, 진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울먹였다⁠. 나는 초인종을 다시 누르지 않았다⁠.

나흘째 밤 열한 시에도 맨발 소리가 올라왔다⁠. 쩍⁠, 쩍⁠. 막내딸은 덮개 앞에 앉아 덮개 자락을 손바닥 하나만큼 들췄다⁠. 서재 불은 꺼져 있었고 창밖 가로등 빛이 들춘 틈으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막내딸의 손바닥이 틈 앞에 있었다⁠. 씨가 여섯 알이었다⁠.

“⁠앵두야⁠. 하나만 먹어⁠.⁠”

나는 씨를 보지 않고 막내딸의 손가락을 봤다⁠. 손톱 끝이 다 물어뜯겨 있었다⁠. 서른 해 동안 막내딸의 손톱은 늘 동그랗고 매끈했다⁠.

“⁠오늘 그 사람들 만났어⁠. 전남편이 진 돈을 산 사람들⁠. 빚도 사고판대⁠. 집 받으면 다 갚겠다고 했더니⁠, 집 받기 전에 오빠한테 가겠대⁠. 오빠가 막내 빚 대신 갚아 주면 조용히 있겠대⁠. 오빠는 그럼 집을 팔겠지⁠. 대사관에서 벌써 편지가 왔어⁠. 값 다 적어서⁠.⁠”

막내딸이 씨를 하나 집어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씨가 횃대 밑으로 떨어졌다⁠.

“⁠아빠는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을까⁠. 다 알면서⁠. 실장님한테만⁠. 내가 창피할까 봐⁠? 아니면 내가 창피해서⁠?⁠”

막내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소리가 없었다⁠. 막내딸이 넣어 달라고 하지 않은 소리를 나는 넣지 않는다⁠. 막내딸은 덮개 자락을 내리기 전에 손가락 하나를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내 발등에 닿았다⁠. 따뜻했다⁠. 나는 손가락을 물지 않았다⁠. 손가락 위로 한 발을 올렸다⁠. 막내딸이 숨을 멈췄다⁠. 한참 뒤에 손가락이 빠져나갔고 덮개가 내려왔다⁠.

덮개 밖에서 막내딸이 한참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일어나는 소리 끝에 전화기 화면을 미는 소리가 났다⁠. 막내딸이 혼자 소리 내어 읽었다⁠.

“⁠「⁠외국계 펀드⁠, 지분 구 퍼센트⁠… 다음 달 임시 주주총회 요구할 듯⁠」⁠”

막내딸은 전화기를 끄고 나갔다⁠. 발소리가 계단 중간에서 한 번 멈췄다⁠. 회장도 마지막 석 달 동안 계단 중간에서 자주 멈췄다⁠. 숨이 차서 멈췄다⁠. 막내딸은 숨이 차지 않았다⁠.

*

닷새째 오후⁠, 큰아들이 왔다⁠. 계단을 오르는 발이 무거웠고 빨랐다⁠. 서재 문 앞에서 맨발이 막아섰다⁠.

“⁠비켜⁠.⁠”

“⁠오빠가 왜 데려가⁠?⁠”

“⁠검인 날 법원에 데려가야 돼⁠. 판사가 들어 보겠다잖아⁠. 너 혼자 끼고 있게 둘 수 없어⁠.⁠”

“⁠내가 뭘 할까 봐⁠?⁠”

“⁠덮어 놨잖아⁠. 소리 못 내게⁠.⁠”

“⁠법원 가기 전에 기자들이 앵두 소리 듣게 할 순 없잖아⁠. 창밖으로 하나만 나가도 신문이야⁠.⁠”

“⁠그래서 안 먹는 새를 시커먼 천에 싸서 가둬 둬⁠? 아줌마가 그러더라⁠. 닷새째 안 먹는대⁠.⁠”

막내딸이 대답하지 않았다⁠. 큰아들이 한 발 들어섰다⁠. 맨발이 카펫 위로 밀려났다⁠.

“⁠앵두가 아버지 말을 하는 게 무섭지⁠? 막내한테 주지 마라⁠.⁠”

“⁠앵두가 내 빚을 떠드는 게 무서워⁠. 오빠는 앵두가 오빠 편 말만 하니까 좋은 거고⁠. 집 가져가는 말만 하니까⁠.⁠”

“⁠아버지 말이니까 듣자는 거야⁠.⁠”

“⁠아빠가 아플 때 한 말이야⁠.⁠”

“⁠실장님이 말 안 해 주면 그건 모르는 거지⁠. 유월이었으면 아픈 게 아니고⁠.⁠”

“⁠유월에도 형님이라고 불렀다며⁠.⁠”

“⁠한 번⁠.⁠”

“⁠한 번이면 충분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덮개를 사이에 두고 오갔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같은 가지를 두고 다투는 새들은 결국 깃을 세우고 상대 머리 위로 날아오르려 한다⁠. 큰아들이 먼저 날아올랐다⁠. 덮개를 손으로 잡아 걷었다⁠.

빛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닷새 만의 낮이 눈꺼풀 위에서 하얗게 타올랐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횃대에서 비틀거렸다⁠. 발톱을 다시 세웠다⁠. 눈을 반만 떴다⁠. 두 얼굴이 새장 앞에 있었다⁠. 하나는 붉었고 하나는 하얬다⁠. 큰아들이 모이 그릇을 봤다⁠. 펠릿이 수북했다⁠.

“⁠봐⁠. 이거 봐⁠.⁠”

막내딸이 그릇을 봤다⁠. 막내딸의 얼굴에서 하얀 것이 더 하얘졌다⁠.

나는 두 사람에게 차례로 소리를 넣었다⁠. 먼저 큰아들의 라이터 소리⁠. 딸깍⁠. 큰아들이 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음은 막내딸의 소리⁠.

“⁠쉿⁠, 아빠한테는 비밀⁠.⁠”

막내딸이 입을 막았다⁠. 다시 라이터⁠. 딸깍⁠. 다시 쉿⁠. 딸깍⁠, 쉿⁠, 딸깍⁠, 쉿⁠. 큰아들의 손이 주머니에서 나오지 못했고⁠, 막내딸의 손이 입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두 사람이 그대로 서서 서로를 봤다⁠. 큰아들이 먼저 웃음 비슷한 숨을 내뱉었다⁠. 막내딸은 웃지 못하고 울었다⁠.

“⁠…얘가 우리 둘을 가지고 노네⁠.⁠”

*

계단에서 왼쪽 굽이 올라왔다⁠. 엿새 만이었다⁠. 기철은 두 손에 이동장을 들고 서재 문턱에 섰다⁠. 기철의 양복 어깨에는 내 발톱에 찢긴 자리가 기워져 있었다⁠.

“⁠부회장님⁠, 아가씨⁠.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장님은 또 왜요⁠?⁠”

“⁠검인 날까지 앵두를 보호소에 맡기겠습니다⁠. 부회장님도 아가씨도 못 데려가게요⁠. 법원 가는 날 아침에 제가 보호소에서 데려가겠습니다⁠.⁠”

“⁠실장님이 무슨 자격으로요⁠?⁠”

“⁠자격은 없습니다⁠. 증인입니다⁠. 두 분 다 앵두가 필요하시니 두 분 다 앵두를 가지시면 안 됩니다⁠. 앵두는 엿새째 굶었습니다⁠. 이 방에 있으면 두 분이 앵두를 두고 계속 싸우실 겁니다⁠. 보호소에서는 아무도 앵두한테 말을 시키지 않습니다⁠. 밥도 먹습니다⁠.⁠”

“⁠보호소는 버려진 새들 가는 데잖아요⁠.⁠”

막내딸이 말했다⁠. 기철이 막내딸을 봤다⁠.

“⁠예⁠. 그래서 거기 사람들이 새를 잘 압니다⁠.⁠”

큰아들이 라이터를 꺼냈다가 열지 않고 도로 넣었다⁠. 법원 서류를 떠올리는 얼굴이었다⁠. 검인 날 판사 앞에 앵두를 데려가야 하는 사람은 큰아들이었고⁠, 검인 날 전까지 앵두가 막내딸 손에 있으면 큰아들은 불안했다⁠. 앵두가 보호소에 있으면 막내딸 손에도 없었다⁠.

“⁠…검인 날 아침에 꼭 데려와요⁠. 나도 보호소 같이 가요⁠.⁠”

“⁠예⁠.⁠”

막내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막내딸은 새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래 꿇고 있었다⁠. 사이에 낀 새는 결국 어느 가지로 옮겨 앉을지 고른다⁠. 머물던 가지에서는 버틸 수 없어서 고른다⁠. 막내딸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넣을게요⁠.⁠”

막내딸이 손으로 문고리의 플라스틱 띠를 끊었다⁠. 가위가 아니라 이빨로 끊었다⁠. 문이 열렸다⁠. 막내딸이 손을 넣었다⁠. 나는 막내딸의 손목에 올라앉았다⁠. 다른 손에서 해바라기씨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막내딸은 씨를 주지 않고 나를 이동장 문 앞으로 데려갔다⁠. 이동장 안은 플라스틱 냄새가 났다⁠. 나는 막내딸의 손목에서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톱을 세웠다⁠. 막내딸이 발톱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떼어 냈다⁠. 하나 떼면 다른 하나를 세웠다⁠. 막내딸이 떼었다⁠. 마지막 발톱까지⁠.

이동장 문이 닫혔다⁠. 걸쇠가 위아래로 끼워졌다⁠. 기철이 걸쇠 위에 테이프를 붙였다⁠. 막내딸이 철망 앞에 얼굴을 댔다⁠. 씨 하나를 철망 사이로 밀어 넣었다⁠. 씨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미안해⁠. 금방 데리러 갈게⁠.⁠”

막내딸의 목소리를 나는 귀에 넣었다⁠. 끝이 떨렸고⁠, 금방이라는 소리가 길었다⁠. 막내딸이 검은 덮개를 이동장 위에 씌웠다⁠.

*

덮개 밑에서 집이 멀어졌다⁠. 서재 문 경첩이 반음 낮게 울었다⁠. 계단이 기철의 굽 소리로 한 칸씩 내려갔다⁠. 대리석⁠. 현관문⁠. 대문 밖 사진기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누군가 외쳤다⁠.

“⁠실장님⁠! 앵무새 어디로 갑니까⁠? 유언 앵무새 보내는 겁니까⁠?⁠”

기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 문이 열렸다⁠. 닫혔다⁠. 손바닥으로 한 번 더 밀렸다⁠. 시동이 켜졌다⁠. 감나무에서 까치가 길게 울었다⁠.

내 나무다⁠.

나는 이번에는 대답했다⁠. 덮개 밑에서⁠, 까치 소리로⁠, 목이 갈라질 때까지 길게⁠. 내 나무다⁠. 내 나무다⁠. 차가 움직였다⁠. 대답이 감나무에 닿기 전에 언덕을 내려갔다⁠. 기사 아저씨의 차가 숨을 고르던 대문 앞을 지나⁠, 회장의 차가 올라오던 길을 거꾸로⁠. 이동장 바닥에서 막내딸이 밀어 넣은 씨 하나가 차가 꺾일 때마다 이리저리 굴렀다⁠. 나는 씨를 먹지 않고 구르는 소리만 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달렸다⁠. 길이 울퉁불퉁해지고 엔진이 산을 오르는 소리를 냈다⁠. 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수십 마리 새의 소리였다⁠. 휘파람⁠, 비명⁠, 아기 우는 소리⁠, 전화벨⁠, 누군가의 웃음⁠. 웃음소리 하나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웃음과도 닮지 않았다⁠. 덮개가 걷혔다⁠. 철망 너머에서 눈 수십 개가 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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