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91자)

녹음 끝났습니다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문들레

화요일 오전 열 시⁠, 서재에 의자가 다섯 개 더 들어왔다⁠. 부엌 아주머니가 식당 의자를 하나씩 들고 올라오며 계단참마다 허리를 두드렸다⁠. 의자들은 회장 의자를 가운데 두고 반달 모양으로 놓였다⁠. 무리가 가장 높은 가지를 둘러싸고 앉는 모양이었다⁠.

변호사는 검은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는 소리가 유난했다⁠. 한 장을 꺼낼 때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혔고⁠, 종이 가장자리를 탁탁 두 번 쳐서 맞췄다⁠. 새들은 아침마다 깃을 한 가닥씩 부리로 훑어 가지런히 한다⁠. 변호사는 종이를 그렇게 다루었다⁠.

그리고 변호사가 회장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큰아들은 창가에 서 있었고⁠, 막내딸은 문 옆 의자에 앉아 있었고⁠, 기철은 책장 앞에 서서 손목시계를 소매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레 만에 세 번째 새가 가장 높은 가지에 앉았다⁠. 처음 보는 새가 남의 무리에 와서 우두머리 자리에 앉으면 무리의 새들이 쫓아낸다⁠. 무리의 새들은 가만히 있었다⁠. 내가 쫓았다⁠.

등받이로 건너가 변호사의 넥타이핀을 물었다⁠. 금빛이었고 차가웠다⁠. 변호사가 “⁠어⁠, 어⁠, 어⁠” 하며 고개를 젖히자 넥타이가 따라 올라왔다⁠.

“⁠앵두야⁠, 놔⁠.⁠”

막내딸이 일어섰다⁠. 큰아들은 웃음을 참느라 창밖을 봤다⁠. 넥타이핀이 내 부리에서 빠지며 카펫에 떨어졌다⁠. 변호사는 넥타이를 추스르며 일어나 옆의 식당 의자로 옮겨 앉았다⁠. 회장 의자가 비었다⁠. 나는 등받이에 남았다⁠.

“⁠…회장님 새가 회장님 자리를 지키네요⁠. 시작하겠습니다⁠.⁠”

*

변호사가 종이를 읽었다⁠. 여섯 해 전 공증 사무소에서 회장이 불러 주고 공증인이 받아 적었다는 유언이었다⁠.

“⁠「⁠유언자가 가진 그룹 지주회사 주식은 장남에게 유증한다⁠. 서울 성북동 주택과 대지는 장녀에게 유증한다⁠. 그 밖의 예금과 부동산은 장남과 장녀가 똑같이 나눈다⁠.⁠」 장녀는 막내따님이시고요⁠. 따님이 한 분이시니까⁠.⁠”

막내딸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얼굴에 피가 천천히 돌아왔다⁠. 큰아들은 라이터 뚜껑을 딸깍 열었다⁠.

“⁠변호사님⁠, 그거 여섯 해 전 거잖아요⁠.⁠”

“⁠예⁠. 날짜로 보면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마지막에 말을 바꿨어요⁠. 막내한테 주지 말라고요⁠. 이 새가 들었어요⁠.⁠”

큰아들이 나를 가리켰다⁠. 변호사가 나를 봤다⁠. 나는 변호사의 넥타이핀이 떨어진 자리를 봤다⁠.

“⁠부회장님⁠, 앵무새가 한 말은 유언이 아닙니다⁠. 유언은 법이 정한 방식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공증을 받거나⁠, 손으로 전부 써서 도장을 찍거나⁠, 녹음을 하거나⁠…⁠.⁠”

“⁠아버지 목소리 그대로라니까요⁠.⁠”

“⁠목소리가 그대로여도⁠…⁠.⁠”

“⁠됐다⁠, 그만 읽어⁠.⁠”

회장의 목소리였다⁠. 회장은 보고서가 길어지면 손바닥으로 책상을 한 번 치고 이 소리를 냈다⁠. 회의를 끝내는 소리였다⁠. 나는 손바닥 대신 등받이를 부리로 한 번 쳤다⁠.

변호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큰아들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부엌 아주머니가 문밖에서 입을 막았고⁠, 막내딸도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기철만 웃지 않았다⁠. 기철은 회장이 이 소리를 낼 때마다 서류를 덮고 일어났다⁠. 기철의 손이 저도 모르게 책장 위의 서류철을 덮었다⁠.

“⁠…회장님 보고 자리가 다 이런 식이었습니까⁠?⁠”

“⁠예⁠. 이런 식이었습니다⁠.⁠”

기철이 처음으로 웃는 소리를 냈다⁠. 반음도 안 되는 웃음이었다⁠.

*

웃음이 가라앉자 큰아들이 막내딸 앞으로 걸어갔다⁠.

“⁠집은 네 거 됐네⁠. 축하한다⁠. 그럼 집 몫 상속세는 네가 내는 거야⁠. 알지⁠?⁠”

“⁠알아⁠.⁠”

“⁠얼만지 알아⁠?⁠”

막내딸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 집이 이 동네에서 제일 큰 땅이야⁠. 대사관에서 사겠다는 값을 들으면 너 놀란다⁠. 세금이 그 절반 가까이야⁠. 넌 그 돈 없어⁠. 나도 지분 몫 세금 내느라 한 푼도 못 보태⁠. 그러니까 팔자⁠. 판 돈에서 네 몫 세금 내고⁠, 남는 건 네가 다 가져⁠.⁠”

“⁠안 팔아⁠.⁠”

“⁠왜⁠?⁠”

“⁠여기서 컸어⁠. 엄마 돌아가시고 아빠랑 둘이⁠, 앵두랑 셋이 살았어⁠. 오빠는 결혼하고 나가서 명절에만 왔잖아⁠.⁠”

“⁠그래서 세금을 뭘로 내냐고⁠.⁠”

“⁠어떻게든 내⁠.⁠”

“⁠어떻게든이 뭔데⁠?⁠”

큰아들의 목소리가 서재를 채웠다⁠. 감나무 까치가 짧게 두 번 끊어 울었다⁠. 막내딸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고 큰아들을 올려다봤다⁠. 높은 새를 올려다보는 낮은 새의 자세였다⁠. 낮은 새가 물러서지 않을 때 무리는 시끄러워진다⁠.

“⁠아빠가 나한테 준 거야⁠. 공증까지 해서⁠.⁠”

“⁠아버지가 너한테 주지 말라고 한 것도 아버지 목소리야⁠.⁠”

“⁠그건 아빠가 아플 때 한 말이고⁠.⁠”

막내딸이 기철을 봤다⁠.

“⁠실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칠월부터는 판단을 못 하셨다고⁠. 소견서도 있다고⁠.⁠”

기철이 고개를 숙였다⁠. 큰아들이 기철을 돌아봤다⁠.

“⁠실장님 소견서가 막내 편이네요⁠.⁠”

“⁠소견서는 누구 편도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이면⁠, 아버지가 아프기 전에 한 말은요⁠? 칠월 전에⁠. 실장님은 아버지 옆에 서른 해 붙어 있었잖아요⁠.⁠”

“⁠스물여덟 해입니다⁠.⁠”

기철이 바로잡았다⁠. 큰아들이 라이터를 탁 닫았다⁠.

*

변호사가 종이를 가방에 넣으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실장님⁠, 회장님께서 이 공증 유언 뒤에 따로 남기신 것은 없습니까⁠? 자필이나⁠, 녹음이나⁠. 있으면 지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서재에 있는 얼굴이 전부 기철에게 갔다⁠. 기철은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봤다⁠.

“⁠없습니다⁠.⁠”

이번에는 끝이 낮아졌다⁠. 나는 등받이 위에서 날개를 한 번 털었다⁠. 해가 가장 길던 여름⁠, 이 서재에서 세 번 들은 소리가 목 안에서 올라왔다⁠. 짧고 높은 기계음 앞에 기철의 목소리가 붙어 있는 소리였다⁠.

“⁠네⁠, 회장님⁠. 녹음 끝났습니다⁠.⁠”

삐⁠.

변호사의 손이 가방 지퍼 위에서 멈췄다⁠. 큰아들의 라이터가 열린 채 멈췄다⁠. 막내딸의 얼굴이 하얘졌고⁠, 큰아들의 얼굴은 붉어졌고⁠, 기철의 얼굴은 아무 색도 아니었다⁠. 피가 어디로도 가지 않고 멈춰 있었다⁠. 한 방에서 얼굴 넷이 한꺼번에 바뀐 것은 서른 해 동안 처음이었다⁠.

“⁠…실장님 목소리네요⁠.⁠”

큰아들이 천천히 말했다⁠. 기철이 목을 가다듬었다⁠. 흠⁠.

“⁠회의 녹음입니다⁠. 회장님은 보고를 받으실 때 녹음을 해 두셨습니다⁠. 귀가 어두워지신 뒤로는요⁠.⁠”

“⁠무슨 회의를 이 서재에서 해요⁠?⁠”

“⁠보고는 늘 서재에서 받으셨습니다⁠.⁠”

변호사가 가방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실장님⁠,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 녹음으로 남긴 유언은 녹음을 가진 사람이 지체 없이 가정법원에 내야 합니다⁠. 법원이 녹음을 틀어 보고 있는 그대로 남겨 두는 절차를 검인이라고 하는데⁠, 검인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틀어서도 안 되고 고쳐서도 안 됩니다⁠. 혹시 유언 녹음을 갖고 계시면서 내지 않으시면⁠…⁠.⁠”

“⁠없습니다⁠.⁠”

기철은 세 번째로 같은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끝을 낮추지 않으려고 목에 힘을 줬다⁠. 힘을 준 소리는 더 높아졌다⁠. 높아진 소리도 나는 귀에 넣어 두었다⁠.

큰아들이 기철 앞에 섰다⁠.

“⁠실장님⁠, 오늘 비서실 금고 열어 보여 주세요⁠.⁠”

“⁠회장님 금고는 회장님 것입니다⁠.⁠”

“⁠아버지 거면 이제 우리 거죠⁠.⁠”

“⁠검인 전에는 누구 것도 아니라고 변호사님이 방금 말씀하셨습니다⁠.⁠”

“⁠녹음이 없다면서요⁠. 없는 녹음에 무슨 검인이에요⁠?⁠”

기철이 입을 다물었다⁠. 대문 밖에서 사진기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찰칵⁠, 찰칵⁠, 찰칵⁠. 까마귀 떼가 같은 가지에 내려앉으며 부리를 부딪치는 소리와 닮았다⁠. 기자들이 변호사의 차를 찍고 있었다⁠. 기철의 전화기가 울렸다⁠. 기철은 서재 밖으로 나가 받았다⁠. 복도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베트남⁠, 증설⁠, 칠월⁠, 결재⁠, 다시 보자고⁠. 기철은 전화를 끊고 들어오지 않았다⁠. 굽 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

해가 기울 무렵 막내딸이 나를 어깨에 올리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회장이 살아 있을 때는 날이 좋으면 회장 어깨에 앉아 감나무 밑을 한 바퀴 돌았다⁠. 이레 넘게 서재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바깥 공기가 깃 사이로 차게 스몄다⁠. 막내딸의 어깨는 회장 어깨보다 좁고 낮았고⁠, 걸을 때마다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막내딸은 감나무 밑 평상에 앉아 나를 손등으로 옮겼다⁠. 얼굴을 내 얼굴 앞에 바짝 댔다⁠.

“⁠앵두야⁠. 녹음⁠.⁠”

나는 막내딸의 콧등을 봤다⁠.

“⁠녹음⁠. 녹음 끝났습니다⁠. 해 봐⁠. 아빠가 뭘 녹음했어⁠? 응⁠?⁠”

막내딸이 기철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낮게 깔려고 턱을 당겼는데 끝이 자꾸 올라갔다⁠. 흉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막내딸에게 막내딸의 소리를 돌려주었다⁠.

“⁠쉿⁠, 아빠한테는 비밀⁠.⁠”

“⁠아니⁠, 그거 말고⁠.⁠”

막내딸이 웃다가 한숨을 쉬었다⁠. 담장 너머에서 벌 떼 같은 소리가 올라왔다⁠. 작은 날개 넷이 한꺼번에 도는 소리였고⁠, 소리 밑에 까만 몸통이 매달려 있었다⁠. 기자들이 띄우고 드론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드론은 담장을 넘어 감나무 꼭대기 위에 멈춰 떠 있었다⁠. 매가 먹이를 노리고 하늘에 떠 있을 때 저렇게 제자리에서 몸을 흔든다⁠.

나는 까치 소리로 짧게 두 번 끊었다⁠. 조심해⁠. 감나무에서 까치 둘이 튀어 올랐다⁠. 이어서 옆집 담장의 까치들까지 날아와 드론을 둘러쌌다⁠. 까치들은 매를 쫓을 때처럼 위아래에서 번갈아 덤볐다⁠. 드론이 비틀거리며 담장 밖으로 물러났다⁠. 대문 밖에서 사람들이 “⁠어⁠, 어⁠, 떨어진다⁠!⁠” 하고 소리쳤다⁠. 쿵 소리는 나지 않았다⁠. 드론은 간신히 길 건너로 넘어갔다⁠.

막내딸이 입을 벌리고 나를 봤다⁠.

“⁠…네가 시켰어⁠?⁠”

나는 막내딸의 귀걸이를 물었다⁠. 막내딸이 웃었다⁠. 오늘 처음으로 끝이 떨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대문 밖에서 누군가 확성기 없이 외쳤다⁠.

“⁠따님⁠! 유언 내용이 뭡니까⁠? 앵무새가 유언을 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막내딸이 웃음을 멈추고 나를 가슴에 안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뛰는 소리가 깃 너머로 다 전해졌다⁠. 막내딸은 대답하지 않고 나를 안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히자 사진기 소리가 문에 부딪쳐 흩어졌다⁠.

*

밤 열두 시가 넘어 서재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소리 없이 열려도 경첩은 반음 낮게 운다⁠. 전화기 불빛이 하나 들어왔다⁠. 라이터 뚜껑이 딸깍 열렸다가 서둘러 닫혔다⁠. 큰아들이었다⁠. 큰아들은 책상 서랍을 맨 아래부터 열었다⁠. 박하사탕 봉지가 바스락거렸고⁠, 돋보기가 굴렀다⁠. 책장 앞에 쪼그려 앉아 책 사이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다시 경첩이 울었다⁠. 이번에는 불빛이 없었다⁠. 맨발이 카펫에 붙었다 떨어졌다⁠. 막내딸은 문 옆 수납장을 열었다⁠. 수납장 안에는 회장의 오래된 라디오와 내 발톱깎이와 비상 손전등이 있었다⁠. 손전등이 켜졌다⁠.

불빛 둘이 서재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큰아들이 책장 앞에서⁠, 막내딸이 수납장 앞에서 서로를 비췄다⁠. 둘 다 눈을 찡그렸다⁠.

“⁠…녹음기 찾는 거지⁠?⁠”

“⁠오빠도⁠?⁠”

둘이 동시에 불빛을 내렸다⁠. 서재가 다시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숨소리 둘이 서로를 재고 있었다⁠. 큰아들의 숨은 길었고 막내딸의 숨은 짧았다⁠. 나는 횃대 위에서 둘 사이의 어둠에 소리를 하나 떨어뜨렸다⁠.

삐⁠.

손전등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전화기 불빛이 천장으로 튀었다⁠. 큰아들이 “⁠으악⁠” 하고⁠, 막내딸이 “⁠엄마⁠” 했다⁠. 두 소리가 같은 높이였다⁠. 어릴 때 이 집에서 같이 놀라던 남매의 소리였다⁠.

손전등 불빛이 카펫 위를 돌다가 회장 의자의 바퀴 앞에서 멈췄다⁠. 바퀴 네 개가 홈에 박혀 있었다⁠. 둘 다 의자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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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10.31· 3화

    녹음 끝났습니다를 기철 목소리로 낼 때 저도 같이 얼었어요. 앵두는 뜻을 알고 말하는 거예요?

    • 문들레작가2026.10.31

      앵두는 그 말이 나오면 방 안이 조용해진다는 걸 알아요. 뜻보다 사람들 얼굴을 먼저 읽습니다.

녹음 끝났습니다 ·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