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59자)

아홉 시의 이동장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문들레

아침 일곱 시에는 아래층 현관에서 시계 태엽 감는 소리가 난다⁠. 기철은 출근하면 구두를 벗기 전에 손목시계 태엽부터 감는다⁠. 스물여덟 해 동안 회장보다 먼저 이 집에 들어와 회장보다 늦게 나갔다⁠. 오늘 아침에는 태엽 소리 뒤에 낯선 발소리가 둘 따라 들어왔다⁠. 운동화였다⁠. 바닥에 고무가 쩍쩍 붙었다⁠.

덮개가 걷혔다⁠. 기철이 서 있었고⁠, 뒤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와 커다란 가죽 장갑을 낀 남자가 있었다⁠. 가운에서 소독약과 다른 새들의 깃 가루 냄새가 났다⁠. 나는 새장 문고리를 부리로 들어 올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날았다⁠.

“⁠아⁠, 문을 혼자 여네요⁠.⁠”

“⁠서른 해를 이 방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창틀 위 커튼봉에 앉았다⁠. 서재에서 가장 높은 자리다⁠. 장갑 낀 남자가 의자를 끌어다 올라섰다⁠. 나는 회장 책상 위 검은 전화기 소리를 냈다⁠. 다이얼을 돌리는 옛 전화기라 벨이 따르릉 하고 두 번 울린 다음 한 번 쉰다⁠.

기철이 몸을 돌려 수화기를 들었다⁠.

“⁠네⁠, 회장님 서재입니다⁠.⁠”

수화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철은 수화기를 든 채 굳었다⁠. 의자 위의 남자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고⁠, 의자가 흔들렸다⁠. 나는 이번에는 초인종 소리를 냈다⁠. 아래층에서 부엌 아주머니가 “⁠네⁠, 나가요⁠!⁠” 하고 슬리퍼를 끌며 현관으로 뛰었다⁠. 대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소리쳤다⁠.

“⁠누가 장난을 쳐⁠? 대낮에⁠?⁠”

수의사가 웃다가 기침을 했다⁠.

“⁠말 잘하네요⁠. 집 안 소리를 다 갖고 있어요⁠.⁠”

“⁠그래서 보내는 겁니다⁠. 회장님 말씀을 아무 데서나 합니다⁠.⁠”

계단에서 맨발 소리가 뛰어 올라왔다⁠. 쩍⁠, 쩍⁠, 쩍⁠. 막내딸이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서재 문을 밀었다⁠. 머리가 반쯤 눌려 있었다⁠.

“⁠실장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가씨⁠, 어젯밤에 말씀드린 대로⁠…⁠.⁠”

“⁠저는 들은 적 없어요⁠. 오빠한테 하셨겠죠⁠.⁠”

“⁠부회장님은 보내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제가 보내자고 했습니다⁠.⁠”

“⁠실장님이 왜 정해요⁠? 앵두는 아빠 새예요⁠.⁠”

“⁠회장님 새라서 그렇습니다⁠. 앵두가 어제 무슨 말을 했는지 아가씨도 들으셨지요⁠.⁠”

막내딸의 얼굴이 한 번 붉어졌다⁠.

“⁠들었어요⁠. 막내한테 주지 말라고요⁠. 그래서요⁠? 그 말이 무서워서 보내요⁠? 앵두가 아픈 게 걱정이에요⁠, 앵두가 떠드는 게 걱정이에요⁠?⁠”

“⁠둘 다입니다⁠.⁠”

기철은 거짓말을 할 때 끝을 낮춘다⁠. 이번에는 끝이 낮아지지 않았다⁠.

“⁠밖에서 기자들이 대문에 붙어 삽니다⁠. 회장님 목소리로 저 말이 창밖으로 한 번만 나가면⁠, 아가씨 이름이 신문에 납니다⁠. 회장님이 막내딸한테 아무것도 주지 말라 하셨다고요⁠. 그게 아가씨한테 좋습니까⁠?⁠”

막내딸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커튼봉 위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같은 가지를 두고 다투는 새들은 서로 똑바로 보지 않는다⁠. 옆으로 서서 한쪽 눈으로만 본다⁠. 막내딸과 기철은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 가지를 두고 다투는 새들이 아니었다⁠. 둘 다 나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

수의사가 막내딸에게 물었다⁠.

“⁠평소에 손에 올라와요⁠?⁠”

“⁠제 손에는요⁠.⁠”

막내딸이 카디건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바스락 소리에 내 몸이 먼저 내려갔다⁠. 막내딸의 손목에 앉아 씨를 집는 사이 수의사가 내 몸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이 따뜻하고 단단했다⁠. 수의사는 내 가슴뼈를 손가락으로 쓸고⁠, 날개를 한쪽씩 펴 보고⁠, 꽁지깃을 들춰 보고⁠, 눈가의 흰 맨살을 엄지로 살짝 밀어 봤다⁠.

“⁠깃은 깨끗하네요⁠. 눈도 맑고요⁠. 그런데 몸무게가⁠…⁠.⁠”

수의사가 막내딸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봤다⁠.

“⁠해바라기씨 주시죠⁠? 많이⁠.⁠”

“⁠아니요⁠, 가끔⁠…⁠.⁠”

“⁠쉿⁠, 아빠한테는 비밀⁠.⁠”

막내딸의 목소리였다⁠. 서른 해 동안 밤마다 들은 소리를 나는 한 음도 틀리지 않고 냈다⁠. 장갑 낀 남자가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수의사도 웃었다⁠. 기철의 입꼬리가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막내딸은 얼굴이 귀까지 붉어졌다⁠.

“⁠…가끔이 서른 해였네요⁠.⁠”

수의사는 나를 막내딸 손에 돌려주고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병은 아니에요⁠. 구급차 소리를 낸다고 하셨죠⁠. 마지막으로 크게 놀란 장면을 되풀이하는 거예요⁠. 회색앵무는 무리에서 한 사람을 골라 짝처럼 지내요⁠. 짝이 사라지면 웁니다⁠. 밥도 덜 먹고요⁠.⁠”

“⁠그러니까 다른 데로 옮겨서⁠…⁠.⁠”

“⁠지금 옮기면 더 나빠집니다⁠, 실장님⁠. 익숙한 방⁠, 익숙한 목소리가 있어야 버텨요⁠.⁠”

기철이 셔츠 소매를 잡아당겼다⁠. 손목시계가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말은요⁠. 저 말은 뜻이 있습니까⁠?⁠”

“⁠앵무새 말에 사람 같은 뜻은 없어요⁠. 많이 들은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냈을 때 사람들이 크게 반응한 소리를 골라서 냅니다⁠. 얼굴이 바뀌는 걸 봐요⁠. 그게 재미있거든요⁠.⁠”

수의사가 막내딸을 봤다⁠.

“⁠지금처럼요⁠.⁠”

막내딸이 붉은 얼굴로 웃었다⁠. 기철은 웃지 않았다⁠. 셔츠 소매를 한 번 더 내렸다⁠.

“⁠사십구재까지 두겠습니다⁠. 사십구재 지나면 보냅니다⁠.⁠”

“⁠실장님⁠.⁠”

“⁠아가씨⁠, 그때까지 앵두가 저 말을 안 하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철은 보호소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이동장은 서재 문 옆에 그대로 두고 갔다⁠. 철망 문이 열린 채였다⁠.

*

점심때 부엌 아주머니가 쟁반을 들고 올라왔다⁠. 쟁반에는 삶은 옥수수 한 자루와 사과 반쪽이 있었다⁠. 회장이 살아 있을 때 내 점심은 회장 밥상에서 덜어 온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서재에 들어오면 먼저 허리를 두드린다⁠.

“⁠아이고⁠, 내 허리⁠.⁠”

내가 먼저 했다⁠. 아주머니가 쟁반을 든 채 허리를 펴다 말고 나를 흘겨봤다⁠.

“⁠그건 따라 하지 말랬지⁠. 남들이 들으면 내가 맨날 앓는 소리만 하는 줄 알아⁠.⁠”

아주머니는 옥수수를 횃대 받침에 꽂아 주고 이동장 앞에 쪼그려 앉았다⁠. 철망 문을 손가락으로 툭 쳐서 닫았다⁠.

“⁠스무 해를 이 집 부엌에서 밥을 했는데⁠, 집이 팔리면 나도 너랑 같이 보따리 싸는 거다⁠. 너는 보호소⁠, 나는 아들네⁠.⁠”

아주머니가 사과 반쪽을 칼로 잘게 썰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회장 방 소리는 이 집에서 아주머니 귀가 제일 밝았다⁠.

“⁠칠월부터는 회장님이 밤마다 이 방에서 안 주무셨어⁠. 의자에 앉아서 너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지⁠. 실장님이 퇴근을 안 하고 복도 의자에서 잤다니까⁠. 한번은 회장님이 실장님 소매를 붙들고 밤새 뭐라고 하시는데⁠, 실장님이 네⁠, 네⁠, 하다가 나중엔 대답을 못 하더라⁠.⁠”

창틀에서 깍깍 소리가 났다⁠. 감나무 까치 한 마리가 창밖 난간에 내려앉아 고개를 기울였다⁠. 사과 냄새를 맡은 것이 아니었다⁠. 까치는 단 것을 보면 목 안에서 낮게 굴리는 소리를 낸다⁠. 지금 까치는 짧게 두 번 끊었다⁠. 조심하라는 소리였다⁠. 대문 밖으로 낯선 차가 두 대 멈췄다가 떠났다는 소리였다⁠.

나는 까치 소리로 길게 한 번 끌었다⁠. 내 나무다⁠. 까치가 날개를 털고 감나무로 돌아갔다⁠. 아주머니가 칼질을 멈췄다⁠.

“⁠너 까치하고도 얘기하니⁠?⁠”

나는 옥수수 알을 하나 뜯었다⁠. 아주머니는 사과를 다 썰고도 한참 이동장을 내려다봤다⁠.

“⁠사십구재까지라니까⁠, 그때까지 그 말은 하지 마⁠. 응⁠? 우리 둘 다 살자⁠.⁠”

*

오후에는 큰아들이 낯선 남자 둘을 데리고 왔다⁠. 한 남자는 말끝마다 “⁠평당⁠”이라는 소리를 붙였고⁠, 다른 남자는 허리에 찬 줄자를 쉬익 뽑았다가 촥 감았다⁠. 줄자가 서재 벽을 따라 기어갔다⁠.

“⁠이 서재가 남향이라 대사관에서 제일 좋아하실 겁니다⁠. 옆 골목 대사관저가 담을 넓히고 싶어 했거든요⁠. 외국 정부가 사면 돈이 깨끗하게 들어옵니다⁠. 상속세 기한 안에 넉넉히⁠.⁠”

“⁠기한이 언제까지라고요⁠?⁠”

“⁠돌아가신 달 말일부터 여섯 달입니다⁠. 내년 삼월 말⁠.⁠”

나는 줄자 소리를 냈다⁠. 쉬익⁠, 촥⁠. 줄자를 든 남자가 자기 허리를 내려다봤다⁠. 줄자는 감겨 있었다⁠. 남자가 다시 뽑았다⁠. 내가 다시 감았다⁠. 쉬익⁠, 촥⁠. 남자는 세 번째에 나를 봤다⁠.

“⁠…부회장님⁠, 저 새도 같이 넘어갑니까⁠?⁠”

큰아들이 웃지 않고 대답했다⁠.

“⁠새는 안 넘어가요⁠. 새가 하는 말은 내가 가져가요⁠.⁠”

계단에서 맨발 소리가 빠르게 올라왔다⁠. 막내딸이 서재 문턱에 섰다⁠.

“⁠오빠⁠, 이 집 내놨어⁠?⁠”

“⁠보러 온 거야⁠. 내놓은 건 아니고⁠.⁠”

“⁠줄자로 아빠 방을 재는 게 보러 온 거야⁠?⁠”

“⁠상속세가 얼만지 알아⁠? 너 그거 낼 돈 있어⁠? 지분 팔면 회사가 외국으로 넘어가⁠. 회사에 사람이 만이천 명이야⁠. 이 집 하나 팔아서 회사를 지키자는 거야⁠.⁠”

“⁠이 집에 앵두가 살아⁠.⁠”

“⁠앵두는 내가 데려가면 되잖아⁠.⁠”

“⁠오빠 집에서 새 키우면 언니가 나간다며⁠.⁠”

큰아들이 라이터 뚜껑을 딸깍 열었다⁠. 딸깍 닫지 않았다⁠. 부동산 남자들이 서로 눈짓하며 복도로 물러났다⁠. 부엌 아주머니의 라디오가 아래층에서 뉴스를 틀고 있었다⁠. 국회에서 상속세 최고 세율을 두고 사흘째 싸운다는 소리였다⁠. 아나운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소리를 두 번 했다⁠. 나는 아나운서 목소리를 귀에 넣지 않았다⁠. 아무의 얼굴도 바꾸지 못하는 소리였다⁠.

*

밤 열한 시⁠, 막내딸이 왔다⁠. 씨 봉지 소리가 났고⁠, 이번에는 막내딸이 의자 다리에 기대지 않았다⁠. 의자를 홈에서 끌어내지도 않고⁠, 바퀴가 홈에 박힌 채로 천천히 앉았다⁠. 가죽이 짧게 울었다⁠. 회장 때보다 가벼운 소리였다⁠.

이레 만에 두 번째 새가 가장 높은 가지에 앉았다⁠. 앉음새가 큰아들과 달랐다⁠. 가지를 차지하려는 새는 날개를 펴고 앉는다⁠. 막내딸은 날개를 접고 앉았다⁠. 다친 새가 높은 데로 피해 올라갈 때 그렇게 앉는다⁠.

나는 등받이로 건너갔다⁠. 막내딸의 귀 옆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소리를 넣었다⁠.

“⁠앵두야⁠, 이리 와⁠.⁠”

회장이 저녁마다 의자에 앉으며 하던 소리다⁠. 막내딸의 얼굴이 무너졌다⁠. 붉어지지도 하얘지지도 않고 한꺼번에 젖었다⁠. 막내딸은 소리를 내지 않고 울었다⁠. 어깨만 떨렸다⁠. 나는 막내딸의 머리카락을 부리로 한 가닥씩 골라 주었다⁠. 회장의 흰 머리를 고를 때처럼⁠.

전화기가 울렸다⁠. 막내딸이 화면을 보고 한참 받지 않았다⁠. 다섯 번째 울림에 받았다⁠. 전화기 속 남자 목소리는 크고 쉬어 있었고⁠, 귀에 대지 않아도 들렸다⁠.

“⁠아가씨⁠, 장례 끝났다면서요⁠. 이번 달 이자만 해도⁠…⁠.⁠”

“⁠다음 주에 다시 전화 주세요⁠.⁠”

“⁠다음 주가 몇 번째 다음 주예요⁠?⁠”

막내딸이 전화를 끊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우는 붉음이 아니었다⁠. 목에서부터 올라오는⁠, 큰아들이 의자에서 튕겨 나갈 때와 같은 붉음이었다⁠. 나는 전화기 속 남자의 쉰 소리를 귀에 넣어 두었다⁠. 얼굴색을 바꾸는 소리였다⁠.

막내딸이 새장에 덮개를 씌우고 나갔다⁠.

자정이 지나 왼쪽 굽 소리가 올라왔다⁠. 기철이 서재 불을 켜지 않고 들어와 덮개 앞에 섰다⁠. 나는 덮개 안에서 작은 소리를 하나 냈다⁠. 짧고 높은 기계음이었다⁠.

삐⁠.

석 달 전보다 더 전⁠, 해가 가장 길던 여름에 이 서재에서 세 번 들은 소리였다⁠. 덮개 너머에서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기철의 손이 안주머니로 가는 소리였다⁠. 단단한 것이 손바닥에 쥐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디서 그걸 배웠니⁠.⁠”

기철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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