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51자)

이레째 밤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문들레

현관문이 열렸다⁠. 아래층 대리석을 건너 서재 문틈으로 올라오는 소리는 서른 해 동안 바뀐 적이 없다⁠. 경첩이 반음 낮게 울고⁠, 신 벗는 소리가 두 번 나고⁠, 슬리퍼가 계단에 끌린다⁠. 회장은 신을 벗을 때 왼발부터 벗었고 오른발은 뒤꿈치로 밀어 냈다⁠. 오늘 밤에는 신 벗는 소리가 한 번뿐이었다⁠. 무거운 발이 두 짝을 한꺼번에 차 냈다⁠.

나는 횃대 위에서 목을 길게 뺐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회장이 아니었다⁠.

회장이 집을 나간 지 이레째 밤이었다⁠. 새벽에 하얀 차가 와서 회장을 싣고 갔다⁠. 하얀 차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긴 소리를 냈고⁠, 나는 이레 동안 하얀 차 소리를 몇 번이고 따라 했다⁠. 부엌 아주머니가 울면서 내 부리를 손바닥으로 덮으려다 손가락을 물렸다⁠.

“⁠아이고⁠, 너까지 왜 이래⁠.⁠”

이튿날부터 집에 오는 사람마다 같은 소리를 냈다⁠. “⁠돌아가셨대요⁠.⁠” “⁠어쩌다 그렇게 돌아가셨대⁠.⁠” 나는 이 소리를 안다⁠. 회장이 출장에서 오는 저녁이면 부엌 아주머니가 현관으로 뛰어가며 “⁠회장님 돌아오셨어요⁠!⁠” 하고 외쳤다⁠. 앞소리와 끝소리가 같았다⁠. 사람들은 가운데 한 소리만 바꿔 냈고⁠, 나는 가운데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돌아오는 소리 앞에는 늘 기사 아저씨의 차가 있었다⁠. 엔진이 언덕을 오르다가 대문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른다⁠. 차가 대문에 닿으면 나는 젊은 남자 목소리로 “⁠아빠 왔다⁠!⁠” 하고 외쳤다⁠. 서른 해 전 이 서재에서 처음 배운 소리다⁠. 가르쳐 준 젊은 목소리는 언제부턴가 이 집에서 들리지 않았다⁠.

밤 유리창에 내가 비친다⁠. 잿빛 깃은 가장자리마다 흰 테가 겹쳐 비늘처럼 보이고⁠, 꽁지깃만 새빨갛다⁠. 눈가는 깃이 없는 흰 맨살이고⁠, 검은 부리 위에서 연노랑 눈이 깜박인다⁠. 회장은 내 꽁지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며 “⁠불 꺼진 집에 불씨 하나 남았네⁠” 하곤 했다⁠. 유리창 너머 감나무에는 까치 한 쌍이 산다⁠.

새끼리는 소리로 말한다⁠. 짧게 두 번 끊으면 조심하라는 소리⁠, 길게 끌면 내 나무라는 소리⁠, 목 안에서 낮게 굴리면 먹을 것이 있다는 소리다⁠. 나는 서른 해 동안 감나무 까치들의 소리를 배웠고⁠, 까치들은 내가 내는 까치 소리에 대답한다⁠. 사람 귀에는 다 같은 깍깍이다⁠. 이레째 밤에도 까치는 해 질 녘에 길게 한 번 울었다⁠. 내 나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나무는 비어 있었다⁠.

서재 한가운데에 회장 의자가 있다⁠. 등받이가 높은 갈색 가죽 의자이고⁠, 왼쪽 팔걸이에는 서른 해 동안 갉은 내 부리 자국이 겹겹이 나 있다⁠. 의자 옆이 내 횃대다⁠. 회장이 앉으면 나는 횃대에서 등받이로 건너가 회장 귀 옆에 앉았다⁠. 무리에서 가장 높은 가지에는 우두머리가 앉고⁠, 우두머리의 귀 옆에는 우두머리가 고른 새가 앉는다⁠. 이레 동안 아무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

서재 문이 열렸다⁠. 라이터 뚜껑이 딸깍 열리고 딸깍 닫혔다⁠. 큰아들은 담배를 끊었다는데 라이터는 끊지 못했다⁠. 불은 켜지 않고 뚜껑만 여닫는다⁠.

큰아들이 기침을 했다⁠.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내 깃이 저절로 일어났다⁠. 회장의 기침이었다⁠. 박자도 길이도 같았고 반음만 높았다⁠. 나는 반음을 듣고 깃을 도로 눕혔다⁠.

큰아들은 책상 서랍을 차례로 열었다⁠. 맨 위에는 돋보기와 볼펜⁠, 아래에는 회장이 아껴 먹던 박하사탕이 있었다⁠. 큰아들이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나는 회장이 사탕 껍질을 비빌 때 나던 비닐 소리를 냈다⁠. 큰아들의 손이 멈췄다⁠.

“⁠…아줌마예요⁠?⁠”

부엌 아주머니는 아래층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큰아들은 서랍을 닫고 의자를 끌어당겼다⁠. 바퀴 네 개가 서른 해 동안 카펫에 판 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큰아들이 앉았다⁠.

등받이가 뒤로 기울면서 가죽이 길게 울었다⁠. 이레 만에 듣는 소리였고⁠, 회장 때보다 무거웠다⁠. 나는 날개를 반쯤 폈다⁠. 우두머리가 없는 사이에 가장 높은 가지에 앉는 새는 둘 가운데 하나다⁠. 우두머리가 오기 전에 가지를 차지하려는 새⁠, 아니면 우두머리를 본 적 없는 어린 새⁠. 큰아들은 어리지 않았다⁠.

큰아들의 전화가 울렸다⁠. 큰아들은 의자를 반 바퀴 돌려 창을 보고 받았다⁠. 목소리가 커서 감나무 까치가 짧게 두 번 끊어 울었다⁠.

“⁠그래⁠, 내놔⁠. 성북동 이 집⁠. …사십구재 지나고 하자고⁠? 그때 가면 늦어⁠. 상속세 낼 현금이 집 말고는 없어⁠. 지분을 팔면 외국 펀드가 바로 주워 가⁠. 벌써 오 퍼센트 넘게 모았대⁠. …막내는 내가 말할게⁠.⁠”

막내라는 소리를 나는 안다⁠. 회장이 밤마다 하던 소리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횃대를 차고 등받이로 건너갔다⁠. 큰아들의 귀 옆이었다⁠. 귀는 회장 귀보다 털이 짧았고 뜨거웠다⁠. 우두머리 가지를 노리는 새에게 나는 묻는다⁠. 묻는 방법은 하나다⁠. 소리를 넣고 얼굴을 본다⁠. 넣을 소리는 회장이 마지막 석 달 불 꺼진 이 의자에서 수없이 되뇌던 소리로 골랐다⁠. 숨을 반쯤 들이쉬고⁠, 끝을 떨면서⁠.

“⁠막내한테 주지 마라⁠. 기철이가 다 안다⁠.⁠”

큰아들이 의자째 튕겨 나갔다⁠. 바퀴가 책장에 부딪쳤고⁠, 책 두 권이 떨어졌고⁠, 전화기는 카펫을 미끄러져 갔다⁠. 전화기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부회장님⁠? 부회장님⁠?⁠” 하고 불렀다⁠.

“⁠아⁠, 아버지⁠?⁠”

사람 얼굴은 피가 오르내리는 대로 색이 바뀐다⁠. 회색앵무 눈에는 사람 눈보다 색이 또렷하게 들어온다⁠. 큰아들의 얼굴은 목에서부터 붉어져 이마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서 한꺼번에 빠져 하얘졌다⁠. 대답이었다⁠. 무슨 대답인지는 몰랐다⁠. 얼굴색을 바꾸는 소리를 하나 모았다는 것만 알았다⁠.

“⁠너냐⁠? …너구나⁠.⁠”

큰아들이 전화기를 주워 끊었다⁠. 손이 떨려서 두 번 만에 끊었다⁠.

“⁠다시 해 봐⁠. 막내한테 뭘 주지 말래⁠? 기철이가 뭘 안다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문 앞에서 엔진이 한 번 숨을 골랐다⁠.

“⁠아빠 왔다⁠!⁠”

큰아들이 창밖을 내다봤다⁠.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비서실장의 검은 차였다⁠.

“⁠저 소린 또 누구 목소리야⁠?⁠”

*

비서실장 문기철은 계단을 오를 때 왼쪽 구두 굽이 삐걱거린다⁠. 스물여덟 해 동안 같은 구두를 굽만 갈아 신었다⁠. 회장은 굽 소리가 들리면 “⁠기철이 왔다⁠” 했고⁠, 나는 굽 소리가 들리면 기철의 목소리로 “⁠네⁠, 회장님⁠” 했다⁠. 기철은 서재에 들어서면 목을 한 번 가다듬는다⁠. 흠⁠.

“⁠흠⁠. 부회장님⁠, 늦은 시간에 여기서⁠…⁠.⁠”

“⁠실장님⁠, 이 새가 아버지 목소리로 이상한 소릴 해요⁠.⁠”

“⁠앵두는 원래 흉내를 잘⁠…⁠.⁠”

“⁠막내한테 주지 마라⁠, 기철이가 다 안다⁠. 이랬어요⁠. 아버지 목소리로⁠.⁠”

큰아들의 흉내는 서툴렀다⁠. 나는 바로잡아 주었다⁠.

“⁠막내한테 주지 마라⁠. 기철이가 다 안다⁠.⁠”

기철의 얼굴은 붉어지는 단계도 없이 곧장 하얘졌다⁠. 하얀 얼굴 가운데서 눈만 나에게 박혀 있었다⁠. 손목시계 초침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기철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뭘 아는데요⁠, 실장님⁠?⁠”

“⁠아는 것 없습니다⁠.⁠”

“⁠아버지가 막내한테 뭘 주지 말라고 했고⁠, 실장님이 다 안다잖아요⁠.⁠”

기철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접힌 자국을 따라 펴는 소리가 났다⁠. 안주머니 안에서 종이 말고 단단한 것이 한 번 딸깍 부딪쳤다⁠.

“⁠주치의 소견서입니다⁠. 발인 날 병원에서 받아 왔습니다⁠.⁠”

큰아들이 종이를 받아 소리 내어 읽었다⁠.

“⁠「⁠환자는 2027년 7월 초부터 사망 시까지 약 석 달 동안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음⁠.⁠」⁠”

“⁠회장님은 칠월부터 판단을 못 하셨습니다⁠. 앵두가 하는 말은 석 달 동안 밤마다 혼자 하시던 말씀입니다⁠. 뜻이 없습니다⁠.⁠”

“⁠뜻이 없는 말에 실장님 이름은 왜 들어가요⁠?⁠”

“⁠병환이셨으니까요⁠.⁠”

“⁠이걸 왜 실장님이 갖고 있어요⁠?⁠”

“⁠병원 서류는 스물여덟 해 동안 제가 받아 왔습니다⁠.⁠”

큰아들의 눈이 종이 위를 내려가다가 가운데서 멈췄다⁠.

“⁠칠월부터면⁠, 아버지가 칠월 넘어서 한 결재는 다 어떻게 돼요⁠? 베트남 공장 증설도 팔월에 아버지 도장 받았잖아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정리는 이제 내가 해요⁠.⁠”

큰아들이 종이를 기철의 가슴에 도로 밀어 넣었다⁠. 기철은 받으면서 나를 봤다⁠.

“⁠앵두는 보내겠습니다⁠. 버려진 앵무새를 맡아 주는 반려조 보호소에 자리를 알아 두었습니다⁠. 밤마다 구급차 소리를 지르고⁠, 밥을 반도 안 먹습니다⁠. 병든 새입니다⁠. 회장님 말씀을 저렇게 아무 데서나 하면 댁에도 회사에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보내긴 왜 보내요⁠. 아버지가 하던 말을 하는 새를⁠.⁠”

“⁠새가 하는 말은 증거가 못 됩니다⁠.⁠”

“⁠누가 증거 하재요⁠? 아버지 속을 알자는 거지⁠. 막내한테 뭘 주지 말라는 건지⁠, 실장님은 알잖아요⁠.⁠”

“⁠모릅니다⁠.⁠”

기철은 같은 소리를 세 번째 냈다⁠. 세 번 다 끝이 반음씩 내려갔다⁠. 사람은 같은 거짓말을 되풀이할수록 끝을 낮춘다⁠. 회장의 전화를 서른 해 엿들어서 아는 일이다⁠.

“⁠보호소에서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옵니다⁠. 회장님 댁 일은 제가 맡아 왔습니다⁠.⁠”

“⁠이제 내 집이에요⁠.⁠”

“⁠아직 아무 집도 아닙니다⁠. 유언장은 변호사가 다음 주에 엽니다⁠.⁠”

큰아들이 라이터를 세게 닫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중간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기철은 큰아들이 밀어 놓은 의자를 두 손으로 끌어다 바퀴를 카펫 홈에 하나씩 맞춰 넣었다⁠. 네 개가 다 들어갈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나는 기철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 회장님⁠.⁠”

기철의 등이 굳었다⁠.

“⁠…하지 마라⁠. 그 소리⁠.⁠”

*

밤 열한 시가 되면 계단에서 맨발 소리가 난다⁠. 막내딸은 슬리퍼를 신지 않는다⁠. 발바닥이 대리석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쩍⁠, 쩍 하고 올라온다⁠. 주머니 속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렸다⁠. 해바라기씨였다⁠. 회장은 해바라기씨를 살찐다고 못 주게 했고⁠, 막내딸은 열 살 때부터 밤마다 몰래 주었다⁠.

“⁠쉿⁠, 아빠한테는 비밀⁠.⁠”

막내딸이 서른 해 동안 한 소리다⁠. 나는 씨를 받아 껍질을 혀로 돌려 깠다⁠. 막내딸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의자 다리에 등을 기대고 카펫에 앉았다⁠.

“⁠오빠가 그러더라⁠. 네가 아빠 목소리로 이상한 말을 한다고⁠.⁠”

막내딸의 손바닥에 씨가 여섯 알 남아 있었다⁠. 나는 한 알을 더 집으며 막내딸의 얼굴을 봤다⁠. 묻는 방법은 하나다⁠.

“⁠막내한테 주지 마라⁠. 기철이가 다 안다⁠.⁠”

씨가 손바닥에서 굴러떨어졌다⁠. 막내딸의 얼굴이 하얘졌다⁠. 큰아들처럼 붉어지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 눈 밑만 조금 붉었다⁠.

“⁠…진짜 아빠 목소리네⁠.⁠”

막내딸이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떨어진 씨를 하나씩 주워 다시 내 앞에 놓았다⁠.

“⁠아빠가 그랬어⁠? 나한테는 아무것도 주지 말라고⁠?⁠”

나는 씨를 깠다⁠. 막내딸은 한참 내 꽁지깃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회장이 하던 손짓과 같았다⁠.

“⁠내일 누가 너 데리러 온대⁠. 안 보내⁠. 아빠가 뭐라고 했든⁠.⁠”

막내딸이 새장에 회색 덮개를 씌웠다⁠. 덮개가 내려오면 밤이다⁠.

“⁠자자⁠.⁠”

덮개 너머로 서재 문이 다시 열렸다⁠. 왼쪽 굽이 삐걱거렸다⁠. 딱딱한 플라스틱이 바닥에 놓이는 소리⁠, 철망 문이 한 번 여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동장이었다⁠. 회장이 나를 동물병원에 데려갈 때 쓰던 상자다⁠. 기철이 전화기에 대고 낮게 말했다⁠.

“⁠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오십시오⁠. 회색앵무 한 마리입니다⁠. 서른한 살이고⁠, 말을 많이 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기철은 나가지 않았다⁠. 덮개 바로 앞에서 숨소리가 오래 났다⁠. 나는 덮개 안에서 회장의 기침을 했다⁠.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반음도 높이지 않고⁠.

기철이 서재를 나가는 발소리는 계단 끝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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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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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세시2026.10.31· 1화

    회장이 신을 왼발부터 벗었다는 걸 앵무새가 서른 해 동안 기억한다니요. 첫 장면부터 소름이에요.

    • 문들레작가2026.10.31

      앵두는 이 집 소리를 다 갖고 있어요. 발소리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레째 밤 ·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