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4자)

갇힌 집

재벌가 며느리가 운전기사와 도망칠 날을 정했다 · 예솔아

외출 금지 첫날⁠, 대문 옆 경비실에 경호원 둘이 더 왔다⁠. 검은 양복⁠, 귀에 무선 이어폰⁠. 하나는 대문을⁠, 하나는 차고를 지켰다⁠. 정원 등나무 앞에도 하나가 서 있었다⁠. 등나무 뒤에는 이제 아무도 숨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는 빼앗기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휴대전화를 빼앗으면 오히려 소문이 난다고 했다⁠. 대신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바뀌었다⁠. 노비호가 새 비밀번호를 적은 쪽지를 아침 죽 그릇 받침 아래에 끼워 두었다⁠. 쪽지 끝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죽은 천천히 드십시오⁠. 급하게 먹으면 체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나갈 데가 없었다⁠. 창가에 앉아 대문을 보았다⁠. 대문 밖 언덕길로 차들이 오르내렸다⁠. 택배 차⁠, 이웃집 차⁠, 학원 버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나는 운전석을 보았다⁠. 운동화를 신은 발이 페달을 밟는지 보았다⁠. 보일 리 없었다⁠.

은하에게서 하루에 한 번 문자가 왔다⁠. 밤 열한 시⁠. 짧았다⁠.

「⁠백초 형 정비소⁠. 브레이크 패드 일곱 개 갈았어요⁠. 오늘 일당⁠.⁠」 「⁠버스 안에서 커브 돌 때마다 손잡이 잡았어요⁠. 기사님이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요⁠.⁠」 「⁠사모님 다리로 마흔두 계단⁠, 오늘 다시 재 봤어요⁠. 아직 사 분이에요⁠.⁠」

나는 답장을 한 줄씩 보냈다⁠. 「⁠오늘 죽 먹었어요⁠.⁠」 「⁠노 집사님이 또 속담을 지어냈어요⁠.⁠」 「⁠등나무 앞에 경호원이 서 있어요⁠. 등나무가 싫어하는 얼굴이에요⁠.⁠」

*

외출 금지 사흘째⁠, 탁은빈이 대문 앞에 왔다⁠. 경비실 화면으로 은빈이 보였다⁠. 회색 정장에 서류 가방⁠. 경호원이 대문을 열지 않았다⁠. 은빈은 대문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창가에서 은빈을 내려다보며 받았다⁠.

“⁠사모님⁠. 저 지금 대문 앞이에요⁠. 안 열어 주네요⁠. 의뢰인 접견을 막으면 그것도 증거예요⁠. 사진 찍었어요⁠.⁠”

“⁠변호사님⁠.⁠”

“⁠좋은 소식이요⁠. 법원이 남편분께 접근 금지 임시 조치 내렸어요⁠. 그믐밤 영상이랑 손목 사진⁠, 화요일 밤 녹음 파일이요⁠. 고요도 증거라고 했잖아요⁠. 오늘부터 남편분은 사모님 백 미터 안에 못 와요⁠. 같은 집에 못 사세요⁠.⁠”

나는 창틀을 잡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남편은⁠.⁠”

“⁠나가셔야죠⁠. 법원 결정이에요⁠. 대륭이라도⁠.⁠”

사흘째 저녁 여섯 시⁠, 남편의 차가 차고를 빠져나갔다⁠. 트렁크에 여행 가방 세 개를 싣고⁠. 남편은 차에 타기 전에 이 층 동쪽 끝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았다⁠. 웃지 않았다⁠. 입 모양이 움직였다⁠. 나는 남편의 입 모양을 여섯 해 동안 읽어 왔다⁠. 두고 보자⁠.

남편의 차가 대문을 나갔다⁠. 엔진 소리가 언덕 아래로 멀어졌다⁠. 일 분⁠. 나는 일 분 동안 숨을 참았다⁠. 엔진 소리가 사라진 뒤에 숨을 쉬었다⁠. 여섯 해 만에 처음으로 이 집 안에 남편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흘렀다⁠. 대륭그룹 회장의 병세가 다시 나빠졌다는 소식이었다⁠. 화면에 대륭전자 차남 부사장이 병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지나갔다⁠. 「⁠아버님 곁을 지키겠습니다⁠.⁠」 차남의 얼굴은 슬펐다⁠. 장남은 화면에 없었다⁠.

*

외출 금지 닷새째 밤 열한 시⁠, 노비호가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쟁반에 보리차 두 잔이 있었다⁠. 노비호는 쟁반을 탁자에 놓고 나가지 않았다⁠. 의자를 가리켰다⁠.

“⁠사모님⁠. 앉아도 되겠습니까⁠. 허리가 아파서요⁠.⁠”

“⁠앉으세요⁠.⁠”

노비호는 의자에 앉았다⁠. 허리를 펴고 보리차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한참 잔을 내려다보았다⁠. 엉뚱한 속담을 꺼내지 않았다⁠. 노비호가 속담 없이 말을 꺼내는 것을 나는 여섯 해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노비호의 손등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서른 해 동안 이 집 차를 닦은 손이었다⁠.

“⁠사모님⁠. 제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집사가 아니었습니다⁠. 회장님 운전기사였습니다⁠. 서른한 해 전⁠, 제가 스물아홉이었을 때요⁠.⁠”

나는 잔을 들다가 멈췄다⁠.

“⁠회장님은 그때 사장님이셨습니다⁠. 회장 사모님은 스물아홉이셨고요⁠. 시집오신 지 이 년째였습니다⁠. 장남께서는 돌이 지난 아기였습니다⁠.⁠”

노비호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내려놓는 손이 늘 같은 각도가 아니었다⁠.

“⁠섣달 그믐이었습니다⁠. 사장님이 송년회에서 늦게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차고에서 차를 닦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 회장 사모님이 차고로 내려오셨습니다⁠. 혼자서요⁠. 블라우스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코에서 난 피였습니다⁠. 맨발이었습니다⁠. 저한테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아무 데나 먼 데로⁠.⁠”

노비호가 창밖을 보았다⁠. 대문 옆 경비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저는 회장 사모님을 뒷자리에 태웠습니다⁠. 사장님 차였습니다⁠. 그 차로 의정부까지 갔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병원이었습니다⁠. 코뼈가 부러졌다고 했습니다⁠. 회장 사모님은 진료실에서 나와서 저한테 물으셨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어디가 나오냐고⁠. 저는 강원도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회장 사모님은 그럼 강원도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가셨어요⁠?⁠”

“⁠동이 틀 때까지 차 안에 앉아 계셨습니다⁠. 병원 주차장에서요⁠. 아기 이름을 세 번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을 무릎 위에 놓지 않았다⁠. 탁자 위에 그대로 두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사장님이 차 열쇠를 금고에 넣으셨습니다⁠. 집사실 금고요⁠. 지금 사모님 열쇠가 들어 있는 금고입니다⁠. 회장 사모님 차 열쇠도⁠, 제 차 열쇠도요⁠. 저는 운전기사에서 집사가 되었습니다⁠. 차를 몰지 말고 집을 지키라고⁠. 사장님이 그러셨습니다⁠. 그 뒤로 서른 해 동안 저는 이 집 차를 고치기만 했습니다⁠. 몰지 않았습니다⁠.⁠”

노비호가 나를 보았다⁠. 돋보기를 쓰지 않은 눈이었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사모님⁠. 회장 사모님은 그날 동이 틀 때 강원도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안 모셨습니다⁠. 시동을 걸면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안 걸었습니다⁠. 아기가 있다고⁠, 사장님이 찾으실 거라고⁠, 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서른 해 동안 그 시동을 생각했습니다⁠.⁠”

“⁠집사님⁠.⁠”

“⁠차 기사가 지난주에 서재에서 그러더군요⁠. 사람 앞에서는 브레이크를 일찍 밟아야 한다고⁠. 저는 그날 너무 일찍 밟았습니다⁠.⁠”

노비호가 일어났다⁠. 쟁반을 들었다⁠.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다시 집사의 얼굴이었다⁠.

“⁠보리차는 식으면 맛이 없습니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

외출 금지 엿새째 오후⁠,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건 것은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세린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륭건설에 조사를 나갔다⁠. 오늘 아침에⁠. 신문에 났다⁠.⁠”

나는 휴대전화로 신문을 열었다⁠. 경제면 머리기사였다⁠. 「⁠대륭건설⁠, 소송 낸 며느리 친정 하청 해지⁠… 공정위 보복성 조사 착수⁠」 기사 아래 댓글이 천 개를 넘어 있었다⁠. 맨 위 댓글은 「⁠며느리 친정을 하청으로 패는 재벌⁠」이었다⁠.

“⁠대륭건설이 해지를 보류한다고 했다⁠. 조사 끝날 때까지⁠. 대륭캐피털 회수도 일단 멈췄고⁠. 15일 월급은 나간다⁠.⁠”

“⁠아버지⁠.⁠”

“⁠열흘 달라고 했지⁠. 오늘이 열흘째다⁠.⁠”

아버지가 잠깐 말을 멈췄다⁠. 전화기 너머로 사무실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열흘 동안 울리던 전화벨이 오늘은 조용했다⁠.

“⁠경리 과장이 그러더라⁠. 대리 하나가 결혼식 축의금 덜 받아도 되니까 너 편 들라고 했다고⁠. 나한테 직접 말을 못 해서 과장한테 말했다더라⁠. 나는 그 말 듣고 화장실에서 한참 있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괜찮냐고 묻지 마라⁠. 너 괜찮다고 말하는 버릇⁠, 나한테서 배웠다⁠. 나는 이제 그 말 안 할 거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 채로 말했다⁠.

“⁠버텨라⁠. 회사는 내가 버틴다⁠. 네 손목은 네가 지켜라⁠. 내가 못 지켰으니까⁠.⁠”

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전화를 무릎 위에 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창밖에서 경호원이 등나무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등나무 뒤에 숨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내 편이었다⁠.

*

외출 금지 이레째 밤⁠, 나는 방을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다⁠. 이 층 서쪽 끝⁠, 시어머니의 방 앞까지 걸었다⁠. 복도 길이가 서른두 걸음이었다⁠. 여섯 해 동안 처음 세어 보았다⁠.

시어머니의 방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문이 열렸다⁠. 시어머니가 서 있었다⁠. 잠옷 위에 카디건⁠. 화장을 지운 얼굴이었다⁠. 예순의 얼굴이었다⁠. 시어머니는 놀라지 않았다⁠.

“⁠발소리를 들었다⁠. 서른두 걸음이더구나⁠.⁠”

“⁠어머님⁠.⁠”

“⁠들어오지 마라⁠. 복도에서 말해⁠.⁠”

나는 복도에 섰다⁠. 시어머니는 문틀에 기대 섰다⁠. 우리 사이에 문턱이 있었다⁠. 한 뼘이었다⁠.

“⁠서른한 해 전 섣달 그믐요⁠.⁠”

시어머니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썹도⁠, 입꼬리도⁠. 움직이지 않는 얼굴이 대답이었다⁠.

“⁠의정부 병원 주차장에서 동이 틀 때까지 앉아 계셨다면서요⁠. 아기 이름을 세 번 부르셨다면서요⁠.⁠”

“⁠노 집사가 말했구나⁠.⁠”

“⁠금고에 차 열쇠가 들어갔다면서요⁠. 제 열쇠가 지금 들어 있는 금고에⁠.⁠”

시어머니가 웃었다⁠. 낮고 느린 웃음이 아니었다⁠. 짧고 마른 웃음이었다⁠.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그래서⁠. 나도 맞았으니까 너를 놓아 달라고⁠?⁠”

“⁠아니요⁠. 어머님도 맞으셨으니까⁠, 어머님이 제일 잘 아실 거라고요⁠. 제가 지금 어디 서 있는지⁠.⁠”

시어머니가 문틀에서 등을 뗐다⁠. 문턱 앞까지 한 걸음 나왔다⁠. 문턱은 넘지 않았다⁠.

“⁠세린아⁠. 나는 그 주차장에서 따져 봤다⁠. 강원도로 가면 나는 산다⁠. 아기는 사장님 집안에 남는다⁠. 내가 없는 집에서⁠. 집으로 가면 나는 맞는다⁠. 대신 아기 곁에 있는다⁠. 나는 집으로 갔다⁠. 서른 해 동안 맞으면서 그 아기를 키웠다⁠. 그 아기가 태빈이다⁠.⁠”

“⁠그 아기가 지금 저를 때립니다⁠, 어머님⁠.⁠”

시어머니의 손이 문틀을 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돋았다⁠. 아주 짧게⁠. 시어머니는 손을 풀었다⁠.

“⁠알아⁠.⁠”

시어머니가 말했다⁠. 처음으로 아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알아서 하는 말이다⁠. 네가 이기면 태빈이가 무너진다⁠. 태빈이가 무너지면 승계가 차남한테 간다⁠. 내가 서른 해 동안 맞으면서 지킨 게 다 무너진다⁠. 나는 그 주차장에서 다 걸었다⁠. 내 코뼈도⁠, 내 강원도도⁠. 너 하나 때문에 그걸 다 내놓을 수 없다⁠.⁠”

“⁠제가 하나예요⁠?⁠”

“⁠이 집에서는 다 하나다⁠. 나도 하나였다⁠.⁠”

시어머니가 뒤로 물러섰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기 전에 탁자 위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번호를 눌렀다⁠. 나를 보면서 눌렀다⁠. 신호가 갔다⁠. 상대가 받았다⁠.

“⁠원장⁠. 나야⁠. 내일 아침 일곱 시⁠. 사설 구급차로⁠. 조용한 병동 하나 비워 둬⁠. 우리 며느리가 많이 아프다⁠.⁠”

시어머니가 전화를 끊었다⁠. 문틈으로 나를 보았다⁠.

“⁠네 친정 회사는 살려 주마⁠. 너만 쉬면 된다⁠. 조용한 데서⁠.⁠”

문이 닫혔다⁠. 문틈의 불빛이 꺼졌다⁠. 나는 서른두 걸음을 걸어 내 방으로 돌아왔다⁠. 걸음을 세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 휴대전화를 들었다⁠. 밤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은하에게 문자를 썼다⁠. 한 줄이었다⁠.

「⁠내일 아침 일곱 시⁠. 구급차⁠.⁠」

답장은 십 초 만에 왔다⁠.

「⁠여섯 시 오십 분에 대문 앞에 있을게요⁠.⁠」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갇힌 집 · 재벌가 며느리가 운전기사와 도망칠 날을 정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