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64자)

그믐의 새벽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섣달 그믐 오후⁠, 조 회장이 한우 선물 세트를 들고 살림집 계단을 올라왔다⁠.

구두 소리가 계단 중간에서 두 번 멈췄다⁠. 숨을 고르는 소리였다⁠. 예순여덟 살의 무릎이 이층 계단에서 쉬어 갔다⁠. 나는 신발장 위에 올라가 몸을 낮췄다⁠. 새론이 현관문을 열었다⁠. 조 회장은 선물 세트를 문턱 안쪽에 내려놓고 들어오지 않았다⁠.

“⁠설이라 왔다⁠. 고기는 먹고⁠, 서류는 써라⁠.⁠”

선물 세트 위에 서류 봉투가 얹혀 있었다⁠. 함 들어오던 날 우겸이 탁자 귀퉁이에 두고 간 것과 같은 봉투였다⁠.

“⁠결혼식 날 아침에 쓰겠다고 했어요⁠, 회장님⁠.⁠”

“⁠결혼식은 이월 열엿새다⁠. 대주단 회의는 이월 첫 주야⁠. 회의에 서류가 없으면 저쪽에서 경매부터 넣으래⁠. 너 결혼하기 전에 이 건물이 법원에 들어간다⁠. 날짜가 안 맞잖아⁠.⁠”

조 회장은 현관 문틀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퉁⁠. 처음 왔던 날 진료실 벽을 두드리던 손이었다⁠.

“⁠목수는 치수 안 맞으면 문을 못 단다⁠. 너는 날짜가 안 맞아⁠. 설 쇠고 바로 써⁠.⁠”

“⁠그럼 회장님도 아셔야 해요⁠.⁠”

새론이 문고리를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제가 결혼 안 할 수도 있다는 거요⁠.⁠”

계단참이 조용해졌다⁠. 조 회장이 새론을 오래 보았다⁠.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점퍼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공사 현장 앞에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단체 사진이었다⁠. 서른 명쯤이 다 웃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다⁠. 현장 소장⁠, 철근 반장⁠, 함바집 아줌마⁠, 경비⁠. 우리 회사 밥 먹는 사람이 이백이다⁠. 올해는 설 상여금을 못 줬어⁠. 내가 목수 할 때 우리 오야지가 설에 쌀 한 가마씩 줬는데⁠. 나는 쌀 한 됫박도 못 줬다⁠.⁠”

조 회장은 휴대전화를 넣었다⁠.

“⁠너는 개 마흔을 쳐다보지⁠. 나는 사람 이백을 쳐다본다⁠. 누가 더 무거운지는 모르겠다⁠. 근데 내 쪽이 말은 하잖아⁠.⁠”

조 회장이 계단을 내려가다가 신발장 위의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정 안 뗐냐⁠.⁠”

나는 수염을 앞으로 뻗었다⁠. 조 회장의 발소리가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 새론은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 문틈으로 한우 선물 세트의 비닐 냄새가 들어왔다⁠. 나는 비닐 냄새가 싫었다⁠. 고기 냄새는 좋았다⁠. 고양이로서는 둘 다 처음 겪는 문제였다⁠.

저녁에 새론은 한우를 냉동실에 넣고 떡국을 끓였다⁠. 혼자 먹을 떡국이었다⁠. 원장님이 살아 있을 때는 섣달 그믐 밤마다 둘이 떡국을 먹고 자정까지 텔레비전을 보았다고⁠, 새론은 냄비를 저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꼬리로 의자 다리를 감았다⁠. 새론은 떡국을 두 그릇 펐다가 한 그릇을 도로 냄비에 부었다⁠.

휴대전화가 울었다⁠. 우겸이었다⁠. 새론이 스피커를 켜 식탁에 놓았다⁠.

“⁠아버지 다녀가셨죠⁠? 죄송해요⁠. 말렸는데⁠.⁠”

“⁠고기 주고 가셨어요⁠.⁠”

“⁠…서류도요⁠?⁠”

“⁠네⁠.⁠”

전화기 너머에서 사람들 웃음소리가 났다⁠. 우겸네 큰집이라고 했다⁠. 친척들이 화투를 치는 소리⁠, 아이들이 뛰는 소리⁠, 누군가 우겸을 부르는 소리⁠. “⁠조 대표⁠! 장가 언제 가⁠!⁠” 우겸이 손으로 전화기를 막는 소리가 났다⁠. 다시 손을 뗐다⁠.

“⁠내일 차례 지내고 들를게요⁠. 새론 씨⁠, 떡국은 먹었어요⁠?⁠”

“⁠지금요⁠.⁠”

“⁠혼자요⁠?⁠”

새론이 식탁 의자의 나를 보았다⁠.

“⁠먹물이랑요⁠.⁠”

우겸이 웃었다⁠. 재채기 없이 웃는 우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새론은 전화를 끊고 떡국을 반도 먹지 않았다⁠.

*

자정⁠. 여섯 번째 울림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안 오는 줄 알았다⁠. 나는 거실 창가에 앉아 달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믐이라 달은 보이지 않았다⁠. 귀를 세웠다⁠. 냉장고 모터⁠, 벽 속 전선⁠, 골목의 바람⁠. 울림은 이 소리들 밑바닥에 깔려 아주 작게 웅웅거렸다⁠. 소리가 작아도 몸은 소리를 알아들었다⁠. 발바닥이 뜨거워지고 등뼈가 늘어났다⁠. 사람이 된 뒤 나는 한동안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울림이 들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대보름 자정에 울림을 못 들으면 다시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누룽지가 말했다⁠. 달의 울림이 이제는 내 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새론은 다시 오지 말라고 했다⁠. 섣달 그믐에 대답하겠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대답하러 계단을 내려갔다⁠. 입원실부터 보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입원실 불을 켰다⁠. 마흔 칸이 한꺼번에 떠들었다⁠. 시바가⁠, 진돗개가⁠, 앵무새가⁠. 말이 다 뭉개져서 왔다⁠. 개들의 목소리도 이제 낱말의 앞머리만 들렸다⁠. 나는 귀를 붙잡고 서서⁠, 마흔 개의 목소리 가운데 하나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맨 위 칸이 조용했다⁠.

누룽지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고양이는 아플 때 옆으로 눕지 않는다⁠. 배를 감추고 웅크린다⁠. 누룽지는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입이 반쯤 벌어져 있었다⁠. 나는 철창 문을 열고 누룽지의 몸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털 밑의 살이 내 손보다 차가웠다⁠.

“⁠누룽지⁠.⁠”

누룽지의 귀가 한 번 움직였다⁠. 입술이 달싹였다⁠. 무슨 말을 했다⁠.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아예 오지 않았다⁠. 숨소리만 들렸다⁠. 아주 얕게⁠, 아주 띄엄띄엄⁠.

나는 누룽지를 담요째 안고 살림집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현관문을 손바닥으로 쳤다⁠. 손가락 마디로 두드리는 법은 잊었다⁠. 아니⁠, 잊은 게 아니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새론⁠! 누룽지가⁠!⁠”

*

새론은 문을 열자마자 내 품의 담요를 받아 들었다⁠. 내 얼굴은 보지 않았다⁠. 누룽지만 보았다⁠.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진료실 형광등 아래에서 새론은 누룽지의 앞다리를 밀어 털을 깎았다⁠. 바늘이 한 번에 들어갔다⁠. 혈액이 작은 관으로 빨려 올라갔다⁠. 새론이 검사 기계에 관을 꽂았다⁠. 기계가 웅웅거렸다⁠. 사람 귀에도 들리는 소리였다⁠.

“⁠체온 삼십육 도⁠. 너무 낮아⁠. 먹물 씨⁠, 수건 데워 와요⁠. 온열 매트 켜고⁠.⁠”

나는 수건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버튼을 처음 눌러 보았다⁠. 삐 소리에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갔다⁠. 데운 수건으로 누룽지를 감쌌다⁠. 새론이 검사지를 뽑아 들었다⁠. 숫자를 읽는 새론의 입술이 굳었다⁠.

“⁠콩팥이 피를 못 걸러요⁠. 칼륨이 너무 높아요⁠. 칼륨이 높으면 심장이 멈춰요⁠.⁠”

새론이 수액 봉지를 걸고 약을 섞었다⁠. 손이 빨랐다⁠. 빠른데 떨리지 않았다⁠. 아홉 해 동안 나는 이 손이 다른 집 고양이를 살리는 것을 약장 꼭대기에서 수백 번 보았다⁠. 자기 집 고양이를 살리는 손은 처음 보았다⁠. 누룽지는 원장님의 고양이였고⁠, 새론에게는 아빠가 남긴 마지막 식구였다⁠.

“⁠먹물 씨⁠, 청진기요⁠. 심장 소리 들어 줄 수 있어요⁠? 저 손이 모자라요⁠.⁠”

나는 원장님의 청진기를 귀에 꽂았다⁠. 쇠 판을 누룽지의 가슴에 댔다⁠. 쿵⁠, 쿵⁠, 쉬고⁠. 쿵⁠, 쉬고⁠.

“⁠두 번 뛰고 쉬어요⁠. 아까는 세 번 뛰고 쉬었어요⁠.⁠”

새론이 수액 조절기를 돌리다 말고 나를 보았다⁠.

“⁠아까요⁠? 언제요⁠?⁠”

“⁠…지난 보름에요⁠.⁠”

새론은 대답하지 않고 조절기를 마저 돌렸다⁠.

수액이 떨어지는 동안 우리는 진료대 양쪽에 서서 누룽지를 지켜보았다⁠. 새론이 누룽지의 데운 수건을 갈다가 물었다⁠. 눈은 누룽지에게 둔 채였다⁠.

“⁠왜 왔어요⁠? 오지 말랬는데⁠.⁠”

“⁠대답하러요⁠.⁠”

“⁠무슨 대답이요⁠?⁠”

나는 입을 열었다⁠. 검사 기계가 삐 소리를 냈다⁠. 두 번째 결과가 나오는 소리였다⁠. 새론이 검사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나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대답은 아직 내 입 안에 있었다⁠.

*

새벽 두 시⁠, 대기실 텔레비전에서 설 귀성길 뉴스 사이로 다른 소식이 지나갔다⁠. 「⁠설 연휴 앞두고 지방 건설사 두 곳 부도 … 하청 대금 미지급 우려⁠」 새론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나는 들었다⁠. 조 회장의 단체 사진 속 웃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새벽 세 시⁠, 누룽지의 체온이 삼십칠 도로 올랐다⁠. 새론이 두 번째 검사를 했다⁠. 칼륨이 조금 내려갔다⁠. 새론이 숨을 쉬었다⁠. 몇 시간 만에 처음 쉬는 숨이었다⁠.

입원실에서 시바가 짖었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앵무새가 실장 목소리로 외쳤다⁠. “⁠얘⁠, 조용히 해⁠!⁠” 이 말은 들렸다⁠. 사람 말이라서⁠. 새론이 웃음을 터뜨렸다가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웃음 끝에 눈물이 묻어 있었다⁠.

누룽지를 산소방으로 옮겼다⁠. 새론이 문 앞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도 옆에 앉았다⁠. 산소방 유리창 너머로 누룽지가 데운 수건 속에서 몸을 조금 웅크렸다⁠. 배를 감추었다⁠. 고양이가 다시 고양이처럼 누웠다⁠.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목을 울렸다⁠. 그르렁거리려고⁠. 사람 목에서는 여전히 녹슨 경첩 소리가 났다⁠. 누룽지가 수건 속에서 눈을 반쯤 떴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오지 않았다⁠. 입 모양을 보았다⁠. 아주 짧은 말이었다⁠.

목⁠, 고장⁠, 났다며⁠.

늙은 고양이가 콩팥이 멎다 살아난 밤에 하는 말이 남의 목 걱정이었다⁠. 열여섯 해를 산 고양이의 잔소리는 죽을 고비에서도 줄지 않았다⁠.

나는 웃었다⁠. 웃다가 유리창에 이마를 박았다⁠. 새론이 옆에서 나를 보았다⁠. 새론의 눈이 빨갰다⁠.

“⁠누룽지가 뭐라고 했어요⁠?⁠”

“⁠목 고장 났냐고요⁠.⁠”

“⁠…먹물 씨는 왜 누룽지 말을 알아들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새론도 더 묻지 않았다⁠. 새론은 묻는 대신 내 손을 잡았다⁠. 반지 낀 손이었다⁠. 쇠가 내 손가락 사이에 끼었다⁠.

*

새벽 여섯 시 반⁠, 새론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다⁠.

누룽지의 세 번째 검사가 끝난 뒤였다⁠. 칼륨이 더 내려갔다⁠. 새론은 검사지를 보고 “⁠됐다⁠” 한 마디를 하고⁠, 산소방 문 앞 바닥에 도로 앉았고⁠, 그대로 잠들었다⁠. 서른 시간 넘게 안 잔 사람의 잠이었다⁠. 숨이 길고 무거웠다⁠. 반지 낀 손이 내 손을 쥔 채였다⁠.

동쪽 창이 묽어지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뜨거워졌다⁠.

일어나야 했다⁠. 손을 빼고⁠, 비상계단으로 가고⁠, 일곱 번째 칸에서 고양이가 되어야 했다⁠. 지난 열다섯 번의 새벽마다 그렇게 했다⁠.

손을 빼면 새론이 깬다⁠. 새론이 깨면 산소방 앞에서 일어나 누룽지를 볼 것이다⁠. 누룽지는 이제 괜찮다⁠. 새론은 괜찮지 않았다⁠. 새론은 서른 시간을 깨어 있었고⁠, 사억과 마흔과 열세 집과 이백억을 어깨에 지고 있었다⁠. 내 어깨에 기댄 머리가 무거웠다⁠. 이 무게를 지금 내려놓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새론에게 하려던 대답을 나는 끝내 말로 하지 못했다⁠. 말 대신 앉아 있었다⁠. 사람 엉덩이로⁠, 차가운 입원실 바닥에⁠, 동쪽 창을 등지고⁠. 입원실 마흔 칸이 숨을 죽였다⁠. 시바도 이번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해가 왔다⁠. 손가락 끝부터 저렸다⁠. 새론의 손 안에서 내 손가락이 하나씩 짧아졌다⁠. 손바닥이 오므라들었다⁠. 손등에 털이 돋았다⁠. 까만 털이었다⁠. 어깨가 좁아지면서 새론의 머리가 내 어깨에서 미끄러졌다⁠. 새론이 고개를 떨구다가 눈을 떴다⁠.

새론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새론의 손에 검은 앞발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원장님 스웨터가 바닥에 빈 껍질처럼 내려앉았고⁠, 스웨터 목 구멍으로 고양이 머리 하나가 나와 있었다⁠. 노란 눈 두 개가 새론을 올려다보았다⁠. 아홉 해 동안 올려다보던 높이에서⁠.

새론의 손이 내 앞발을 놓지 않았다⁠. 놓지 못했다⁠. 손가락만 덜덜 떨었다⁠. 반지가 내 발바닥 살에 닿아 차가웠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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