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99자)

함 사세요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사흘째 밤⁠, 새론은 입원실에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마흔 칸을 돌았다⁠. 물그릇⁠, 배변 패드⁠, 숨소리⁠. 푸들의 약은 새론이 진료실 책상에 봉투째 올려 두었다⁠. 봉투에 볼펜으로 「⁠밤 두 시⁠, 한 알⁠, 간식에 싸서⁠」라고 적혀 있었다⁠. 새론의 글씨였다⁠. 나한테 쓴 첫 편지였다⁠.

나흘째 밤에도 새론은 내려오지 않았다⁠. 새벽 세 시⁠, 나는 살림집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 앞에 앉았다⁠. 문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 귀에는 안 들렸을 소리⁠. 문에 등을 기댄 사람의 옷이 나무 문에 쓸리는 소리⁠, 무릎을 끌어안은 팔이 바스락대는 소리⁠, 고르지 않은 숨⁠. 새론은 문 바로 너머⁠, 현관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내 등과 새론의 등 사이에 문짝 하나가 있었다⁠.

“⁠거기 있죠⁠?⁠”

새론이 먼저 말했다⁠.

“⁠있어요⁠.⁠”

“⁠발소리가 안 났는데⁠.⁠”

“⁠고양이처럼 걸어서요⁠.⁠”

문 너머에서 새론이 웃었다⁠. 짧고 젖은 웃음이었다⁠.

“⁠오늘은 안 내려갈게요⁠. 내일도요⁠.⁠”

“⁠알아요⁠.⁠”

“⁠국밥집 사장님 딸 등록금이 삼백팔십만 원이래요⁠. 할아버지 일산 방 보증금은 천만 원이고요⁠. 실장님이 알아봤어요⁠. 저 아래 애들 마흔⁠, 열세 집 이주비⁠, 우겸 씨 이백억⁠. 다 저 하나 쳐다봐요⁠. 저 하나가 펜 들면 다 풀려요⁠.⁠”

“⁠나도요⁠.⁠”

“⁠먹물 씨도 저 쳐다봐요⁠?⁠”

“⁠아홉 해요⁠.⁠”

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새론의 숨이 한 번 멈췄다가 길게 나왔다⁠.

“⁠먹물 씨는 그 말을 왜 자꾸 해요⁠? 아홉 해⁠. 우리 먹물이 나이를 아는 것도 이상하고⁠, 먹물 씨가 우리 먹물을 아는 것도 이상해요⁠. 우리 만난 지 두 달 됐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문짝에 이마를 댔다⁠. 나무가 차가웠다⁠. 고양이였으면 문틈에 앞발을 넣어 긁었을 것이다⁠. 사람 손으로는 문을 긁지 않는다⁠. 사람은 문을 두드리거나⁠, 두드리지 않는다⁠. 나는 두드리지 않았다⁠.

해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새론이 가끔 코를 훌쩍였다⁠. 나는 가끔 하품을 했다⁠. 사람 하품은 고양이 하품보다 소리가 컸다⁠. 하품 소리가 날 때마다 문 너머에서 새론이 웃음을 삼켰다⁠. 문을 열지 않아도 같이 밤을 새울 수는 있었다⁠.

*

닷새째 해 질 녘⁠, 골목에서 함이 들어왔다⁠.

“⁠함 사세요⁠! 함 사세요⁠!⁠”

우겸의 친구 넷이 오징어 가면을 쓰고 골목 어귀에서 소리를 질렀다⁠. 맨 앞의 친구가 등에 붉은 보자기로 싼 나무 상자를 지고 있었다⁠. 함이었다⁠. 혼례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비단과 혼서지를 담아 보내는 상자⁠. 조 회장이 고집해서 들어오는 함이었다⁠. 요즘 누가 함을 지고 오느냐고 우겸이 말렸다는데 회장은 들은 척도 안 했다고 했다⁠.

나는 고양이였다⁠. 살림집 창틀에 올라가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국밥집 사장이 앞치마를 두른 채 가게 앞에 나와 손뼉을 쳤다⁠. 경비 아저씨가 컨테이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블록 사람들이 하나둘 골목으로 나왔다⁠. 새론의 결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웃고 있었다⁠.

실장이 병원 문 앞을 막았다⁠. 신부 이모 노릇이었다⁠.

“⁠함진아비 양반들⁠, 이 골목은 그냥 못 지나가요⁠.⁠”

“⁠이모님⁠, 다리가 아파서 못 걷겠습니다⁠! 봉투를 밟아야 걸어집니다⁠!⁠”

실장이 봉투 하나를 바닥에 놓았다⁠. 함진아비가 밟고 한 걸음 왔다⁠. 실장이 하나를 더 놓았다⁠. 또 한 걸음⁠. 봉투 세 개째에서 실장이 팔짱을 꼈다⁠.

“⁠더는 없어요⁠. 우리 병원 넉 달째 적자예요⁠.⁠”

오징어 가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함진아비가 가면을 들썩이며 실장 앞에 넙죽 엎드렸다⁠. 실장이 엎드린 등을 손바닥으로 철썩 쳤다⁠. 골목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국밥집 사장이 제일 크게 웃었다⁠.

우겸은 맨 뒤에 마스크를 쓰고 서 있었다⁠. 웃지 않았다⁠. 실장의 봉투를 밟는 친구들의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함은 살림집 거실 탁자 위에 놓였다⁠. 붉은 보자기를 풀자 옻칠한 나무 상자가 나왔다⁠. 뚜껑을 열자 안에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이 한 필씩 접혀 있었다⁠. 비단 위에 접은 종이가 하나 있었다⁠. 혼서지였다⁠.

나는 소파 등받이에서 탁자로 뛰어내렸다⁠. 사람들이 비단을 보고 있었다⁠. 나는 상자를 보고 있었다⁠. 나무 냄새⁠, 옻 냄새⁠, 비단의 차가운 결⁠. 깊이가 딱 고양이 하나였다⁠.

나는 들어갔다⁠.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들어갔다⁠. 비단 위에 몸을 말고 턱을 상자 모서리에 얹었다⁠.

“⁠어어⁠, 고양이⁠! 고양이가 함에 들어갔어⁠!⁠”

“⁠이거 길한 거야⁠, 흉한 거야⁠?⁠”

“⁠검은 고양이잖아⁠!⁠”

함진아비들이 오징어 가면을 벗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실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우겸이 재채기를 다섯 번 했다⁠. 새론이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나를 보았다⁠. 나는 새론을 보았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새론은 웃지 않았다⁠.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쓸었다⁠. 엄지로 귀 사이를 한 번⁠. 그리고 나를 함에서 꺼내지 않았다⁠.

우겸이 서류 봉투를 탁자 귀퉁이에 내려놓았다⁠. 친구들이 국밥집으로 내려간 뒤였다⁠.

“⁠아버지가 오늘 받아 오라고 하셨어요⁠. 동의서⁠.⁠”

“⁠결혼식 날 아침에 쓸게요⁠.⁠”

새론이 말했다⁠. 봉투를 열지 않았다⁠.

“⁠혼인신고서랑 같이⁠. 한 자리에서⁠. 그날 아침에⁠.⁠”

우겸이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

“⁠새론 씨⁠. 안 해도 돼요⁠.⁠”

“⁠뭘요⁠?⁠”

우겸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화면에 「⁠아버지⁠」 우겸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받았다⁠.

“⁠…네⁠. 함 들어갔어요⁠. 서류는요⁠, 그날 아침에 쓴대요⁠. 네⁠. 네⁠. 그날 아침에요⁠.⁠”

우겸은 전화를 끊고 새론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

밤 아홉 시⁠, 손님들이 다 간 뒤 나는 반지하로 내려갔다⁠. 함 상자 비단 냄새가 털에 배어 있었다⁠. 시바가 코를 킁킁거렸다⁠.

“⁠너 비단 냄새 나⁠. 너 장가가냐⁠?⁠”

“⁠아니⁠.⁠”

“⁠그럼 원장님이 시집가냐⁠?⁠”

나는 대답하지 않고 맨 위 칸으로 뛰어올랐다⁠. 누룽지는 저녁 사료를 반도 안 먹고 있었다⁠. 그릇에 사료가 수북했다⁠. 누룽지 몸에서 냄새가 났다⁠. 들큰하고 시큼한⁠, 오래된 오줌 같은 냄새⁠. 지난 보름에는 없던 냄새였다⁠.

“⁠누룽지⁠, 밥⁠.⁠”

“⁠입맛이 없어⁠. 함 들어오는 날 늙은이가 밥 먹으면 체해⁠.⁠”

“⁠냄새가 달라⁠.⁠”

“⁠늙으면 냄새도 늙어⁠.⁠”

누룽지가 내 얼굴을 핥았다⁠. 혀가 말라 있었다⁠. 핥고 나서 물지 않았다⁠. 누룽지는 화가 날 때만 문다⁠. 오늘은 화도 안 냈다⁠.

“⁠꼬맹이⁠. 원장 결혼하면 너는 고양이로 남는 거지⁠? 그럼 됐어⁠. 나는 그거면 돼⁠.⁠”

나는 누룽지 옆에 몸을 붙이고 엎드렸다⁠. 늙은 고양이의 숨이 내 옆구리에서 세 번 오르고 한 번 쉬었다⁠. 쉬는 사이가 지난 보름보다 길었다⁠.

*

자정이 지나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함 상자 안에 있었다⁠. 사람 몸이 상자 안에서 펴지면서 옻칠한 상자 옆판이 우지끈 소리를 냈다⁠. 다행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나는 비단을 깔고 앉은 채 거실 한가운데서 눈을 떴다⁠.

새론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무릎에 담요를 덮고⁠, 불을 끈 채로⁠.

나는 비단을 허리에 감았다⁠. 푸른 비단이었다⁠. 새론이 일어나 부엌으로 가는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함 상자 밖으로 나와 소파 등받이에 걸쳐 둔 셔츠를 집어 입었다⁠. 새론이 늘 거기 걸어 두었다⁠. 일곱 개 단추 셔츠⁠.

새론은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문 잠갔는데⁠.⁠”

“⁠…원래 있었어요⁠.⁠”

“⁠원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새론도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기로 한 사람의 등이었다⁠.

“⁠먹물 씨⁠. 저 결혼해요⁠.⁠”

새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부엌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빛이 새론의 얼굴 반쪽에 내려앉았다⁠.

“⁠결혼식 날 아침에 동의서 쓰고⁠, 혼인신고서 쓰고⁠, 열한 시에 들어가요⁠. 애들 마흔⁠, 열세 집⁠, 이백억⁠. 다 그날 아침에 풀려요⁠.⁠”

“⁠알아요⁠.⁠”

“⁠그러니까 다시 오지 마요⁠.⁠”

나는 새론에게 다가갔다⁠. 새론은 물러나지 않았다⁠. 새론의 손이 올라와 내 셔츠 맨 위 단추를 쥐었다⁠. 단추는 엉뚱한 구멍에 들어가 있었다⁠. 새론이 단추를 바로 끼우려다가 손을 멈췄다⁠.

“⁠오늘만요⁠.⁠”

*

옥상 창고는 원장님이 화분 연장과 비료 포대를 넣어 두던 곳이었다⁠. 새론이 이불 두 채와 전기난로를 들고 올라갔다⁠. 나는 뒤따라 올라갔다⁠. 고양이였을 때 나는 이 창고 비료 포대 위에서 낮잠을 잤다⁠. 사람이 되어 들어가니 창고는 허리를 굽혀야 하는 방이었다⁠.

전기난로를 켜자 주황색 빛이 창고 벽을 데웠다⁠. 비료 냄새와 흙 냄새⁠, 새론의 샴푸 냄새가 데워진 공기 속에서 섞였다⁠. 창고의 작은 창밖으로 물탱크 그림자가 길게 누웠고⁠, 물탱크 위로 닷새째 달이 조금 이지러져 있었다⁠.

새론이 이불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도 마주 앉았다⁠. 새론이 손을 뻗어 내 셔츠 맨 위 단추를 풀었다⁠. 엉뚱한 구멍에 들어가 있던 단추였다⁠. 새론은 동짓달 옥상에서 아래부터 하나씩 잠가 주었던 단추를⁠, 이번에는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었다⁠. 하나 풀 때마다 새론의 손가락 마디가 내 가슴에 닿았다⁠. 일곱 번째 단추에서 손이 멈췄다⁠. 이번에는 오래 멈추지 않았다⁠.

새론의 숨이 빨라졌다⁠. 나는 숨을 들었다⁠. 사람 귀로도 들리는 숨이었다⁠. 고양이 귀로 들었다면 새론의 심장 소리까지 들렸을 것이다⁠. 나는 새론의 가슴에 귀를 댔다⁠. 청진기 없이⁠. 쿵⁠, 쿵⁠. 사람 심장은 무겁게 천천히 뛰었고⁠, 내 귀에 닿은 새론의 심장은 무겁게 빨리 뛰었다⁠.

새론이 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었다⁠. 귀 뒤를 쓸었다⁠. 고양이일 때 새론이 늘 쓸던 자리였는데⁠, 사람 머리에서도 같은 자리가 저려 왔다⁠. 나는 이불자락을 두 손으로 번갈아 꾹꾹 눌렀다⁠. 고양이가 좋을 때 하는 짓이었다⁠. 새론이 내 손을 보고 숨 사이로 웃었다⁠.

“⁠뭐 해요⁠, 그거⁠?⁠”

“⁠좋아서요⁠.⁠”

새론이 반지를 뺐다⁠. 이불 옆 비료 포대 위에 놓았다⁠. 쇠가 비닐에 닿는 작은 소리가 났다⁠. 새론의 약지에 반지 자국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나는 자국에 입술을 댔다⁠. 쓴 약 냄새는 이제 안 났다⁠. 새론의 살 냄새만 났다⁠.

난로의 주황색 빛이 이불 위로 흔들렸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숨이 말을 대신했다⁠. 새론의 숨이 내 목덜미에서 뜨거워졌다가 식었고⁠, 다시 뜨거워졌다⁠. 이불 밖으로 나온 새론의 맨발이 차가워서 나는 내 발등으로 덮었다⁠. 사람 발은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새론의 발에 닿으니 내 발이 따뜻했다⁠. 창밖의 달이 물탱크 뒤로 넘어갈 때까지 난로는 꺼지지 않았다⁠.

*

해가 오기 사십 분 전⁠, 새론이 비료 포대 위의 반지를 집었다⁠. 끼지 않고 손바닥에 쥐었다⁠.

“⁠그만 와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새론의 목소리는 진료실 목소리였다⁠. 나쁜 소식을 말할 때의 낮고 고른 목소리⁠. 다만 이번에는 끝이 흔들렸다⁠.

나는 셔츠를 주워 입었다⁠. 단추는 잠그지 않았다⁠. 창고 문을 열자 새벽바람이 들어와 난로의 주황색 빛을 흔들었다⁠.

“⁠다음 보름에 대답할게요⁠.⁠”

“⁠다음 보름이요⁠?⁠”

“⁠섣달 그믐이요⁠. 그때 대답할게요⁠.⁠”

새론이 반지를 쥔 손을 가슴에 댔다⁠. 나는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계단 일곱 번째 칸에서 무릎이 접혔다⁠. 셔츠가 나를 덮었다⁠. 셔츠 속은 새론의 냄새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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