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783자)
이동장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설날 아침, 새론은 거실 바닥에 앉아 나를 보았다.
나는 귤 상자 안에 있었다. 새론은 상자 앞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산소방 앞에서 나를 안고 올라온 뒤로 세 시간째였다. 세수도 안 하고, 어제 입은 수술복 그대로였다. 누룽지는 산소방에서 자고 있었다. 새벽에 새론이 한 번 더 내려가 수액을 갈았다. 수액을 갈러 다녀온 십 분 말고는 새론은 나만 보았다.
“먹물아.”
나는 귀를 세웠다.
“어젯밤에 그거, 너면 앞발 들어.”
나는 앞발을 들었다. 오른쪽.
새론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웃었다. 웃다가 팔로 눈을 덮었다. 팔 밑으로 귀를 타고 물이 흘렀다. 새론은 웃는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었다. 고양이는 둘 중 하나만 한다.
정오에 우겸이 왔다. 차례를 지내고 바로 온 듯 양복 위에 코트를 걸치고, 손에는 큰집에서 싸 준 전 봉투를 들고 있었다. 새론은 현관문을 열지 않았다.
“몸이 안 좋아요. 내일 연락할게요.”
“새론 씨, 괜찮아요? 문 좀 열어 봐요.”
“전은 문고리에 걸어 두고 가요.”
문 너머에서 우겸이 한참 서 있었다. 봉투 비닐이 문고리에 매달리는 소리가 났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는 무거웠다.
*
자정, 사람이 되어 진료실로 내려가자 새론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원장님 청진기, 내 쥐 인형, 반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새론은 반지를 끼지 않고 있었다.
나는 원장님 스웨터를 입었다. 스웨터는 산소방 앞 바닥에 빈 껍질로 남았던 것을 새론이 개켜 진료대에 올려 둔 것이었다. 스웨터에 머리를 넣는 동안 새론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를 똑바로 보았다. 나는 스웨터 속에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람 얼굴은 부끄러우면 뜨거워졌다.
“앉아.”
나는 앉았다. 의자에. 엉덩이로.
“너 다 들었지? 아홉 해 동안. 내가 너한테 한 말.”
“들었어요.”
“우겸 씨 흉본 거.”
“네.”
“실장님 흉본 거.”
“네. 두 번요.”
“아빠 얘기.”
“네.”
“내가 우는 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새론이 책상 위의 쥐 인형을 집어 내 가슴에 던졌다. 쥐 인형이 스웨터에 맞고 무릎에 떨어졌다. 아프지 않았다.
“너 내 베개에 털 뿜고 다니는 거, 사람이 할 짓이야?”
“그때는 고양이였어요.”
“지금은?”
“지금은 사람이에요. 해 뜰 때까지는.”
새론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손바닥 사이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먹물 씨라고 해야 돼, 먹물아라고 해야 돼?”
“아무거나요. 밥 줄 때는 먹물아.”
새론이 웃음을 참으려다 코로 터뜨렸다. 웃음이 그치자 진료할 때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언제부터야?”
“시월 보름부터요. 반지 냄새 맡은 날.”
나는 다 말했다. 달의 울림, 보름마다 하룻밤씩 느는 밤, 떡집 검은 고양이, 이레째 밤을 사람으로 나면 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대보름에서 이레째 되는 아침이 조 회장이 받아 온 결혼식 날 아침이라는 것. 나는 시월 그믐에 이미 정했다는 것. 대보름에 사람이 되고, 결혼식 날 아침에 사람으로 남겠다고.
새론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못 돌아와? 고양이로?”
“네.”
“나 때문에?”
“내가 고른 거예요.”
“안 돼.”
새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반지가 책상 위에서 굴렀다.
“대보름에 하지 마. 너 귀 지금 어때? 누룽지 말 안 들린다며. 사람 되면 다 안 들려? 고양이 친구들 말도? 그거 다 버리고 사람 돼서 뭐 할 건데?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서른 살 남자로? 밥으로 월급 받으면서?”
“새론 옆에 있으려고요.”
“그러니까 안 된다고.”
새론이 반지를 집었다. 약지에 끼웠다. 손이 떨려서 두 번 만에 들어갔다.
“나 결혼할 거야. 동의서 쓰고, 혼인신고서 쓰고. 그럼 너는 사람으로 남을 이유가 없잖아. 고양이로 있어. 내 무릎 옆에. 아홉 해 그랬던 것처럼.”
“새론이 결혼하면 나는 고양이로 그 남자 재채기를 아흔 해 들어요.”
“고양이는 아흔 해 못 살아.”
“그러니까요.”
새론이 나를 노려보았다. 노려보다가 입술이 떨렸다. 새론은 진료실 불을 끄고 나가 버렸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한 칸씩 무거웠다.
*
이튿날 오전, 새론이 이동장을 꺼냈다.
고양이 이동장은 앞에 쇠창살 문이 달린 플라스틱 상자였다. 나는 이동장을 싫어했다. 이동장에 들어가면 늘 병원에 갔다. 우리 집이 병원인데도 이동장은 싫었다. 새론이 이동장 문을 열고 나를 들어 넣었다. 나는 네 발로 문틀을 버텼다. 새론이 엉덩이를 밀었다.
“너 혼자 두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택시가 큰길을 달려 대연 개발 사옥 앞에 멈췄다. 낡은 오 층 건물이었다. 목수 출신 회장답게 일층 로비 벽이 통나무 판자로 덮여 있었다. 새론은 이동장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겸에게 미리 전화를 했다고 했다. 오 층 문이 열리자 우겸이 서 있었다.
“새론 씨, 아버지가 기다리세요. 근데… 고양이는요?”
“얘가 다 들었거든요.”
우겸은 영문을 모른 채 재채기를 했다.
회장실은 넓지 않았다. 창가에 대패와 끌이 유리장에 들어 있었다. 조 회장은 책상 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새론이 이동장을 책상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쇠창살 사이로 회장의 구두 끝을 보았다. 구두약 냄새가 났다.
새론이 서류철 하나를 책상에 올렸다. 실장이 밤새 인쇄해 준 것이었다.
“회장님. 계약을 하나 드릴게요. 결혼 말고요.”
조 회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큰길에 닿은 땅은 제 거 하나예요. 이월 말이 만기고요. 경매는 법원에 넣어도 여섯 달 걸려요. 회장님은 이월 말까지 제 땅이 없으면 블록이 안 묶이고, 대주단이 돈을 끊어요.”
“누가 그래?”
“블록 모퉁이 경비 아저씨가 그래요. 회장님 차 모는 대리기사님도요. 홍보관 청소 여사님도요.”
조 회장이 우겸을 보았다. 우겸은 창가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론이 서류철을 넘겼다.
“제 땅 값을 쳐주시고, 거기서 빚 사억을 빼세요. 새 건물 일층 모퉁이를 병원 자리로 계약서에 쓰고, 등기에 올려 주세요. 말로 말고요. 공사하는 동안 애들 마흔이 지낼 임시 병원도 회사에서 얻어 주세요. 그럼 오늘 동의서에 서명할게요. 결혼식 없이.”
조 회장은 서류철을 넘겨 보지도 않았다. 두 손을 책상 위에 깍지 꼈다. 굵은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일층 모퉁이는 커피집 거다. 그 가게가 들어와야 돈이 나와. 임시 병원은 돈이 어디서 나고. 니 땅 값을 쳐주면 이 사업 이윤이 반 토막이다. 반 토막 나면 이백 명 중에 절반을 내보내야 돼.”
“결혼하면 공짜로 가져가시려고 했던 거죠.”
“며느리 땅이 공짜냐. 집안 땅이지.”
조 회장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니 말 다 맞다. 니 땅 빼면 우리 망해. 그런데 우리 망하기 전에 니가 먼저 무너져. 경매 신청 들어가는 날 니 병원 문 앞에 법원 딱지 붙는다. 그거 보고 누가 개를 맡기겠냐. 입원실 마흔 마리 밥값은 니 통장에서 나가지. 이월 말까지 니 통장이 버티냐, 내 회사가 버티냐. 해 볼래? 나는 마흔 해 버텼다.”
새론이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철 위에 얹은 손가락이 하얬다. 조 회장이 창가의 우겸에게 말했다.
“너도 할 말 있냐.”
우겸이 새론을 보았다. 이동장을 보았다. 아버지를 보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없습니다.”
조 회장이 일어나 서류철을 새론 앞으로 밀어 돌려주었다. 그리고 이동장 앞에 쪼그려 앉아 쇠창살 사이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회장의 숨에서 쓴 커피 냄새가 났다.
“고양이는 왜 데려왔어?”
“얘가 증인이에요.”
조 회장이 웃었다.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고 나서 일어나 무릎을 짚었다.
“증인이 고양이면 재판은 졌다. 대보름 이레째 아침 열한 시다. 늦지 마라.”
*
섣달 그믐부터 엿새째, 마지막 밤이었다. 새론은 이틀 밤 내내 진료실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도 새론을 찾아가지 않았다. 입원실을 돌고, 누룽지의 수액을 확인하고, 산소방 유리에 이마를 댔다. 누룽지는 이제 사료를 반 그릇 먹었다. 누룽지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입 모양만 보였다.
엿새째 새벽 세 시, 나는 원장님 코트를 입고 철길 숲길을 건넜다.
시장은 어두웠다. 셔터가 다 내려가 있었다. 한 집만 불이 켜져 있었다. 떡집이었다. 새벽 떡을 찌는 집이라 가게 안이 하얀 김으로 가득했다. 유리문 너머로 등이 굽은 노인 하나가 시루에서 떡을 들어내고 있었다. 찐 쌀 냄새가 문틈으로 흘러나와 골목을 데웠다.
나는 유리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발뒤꿈치를 엉덩이에 붙이고 무릎을 모으고. 코를 문틈에 대고 김 냄새를 맡았다. 몸이 저절로 그렇게 앉았다.
노인이 시루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나를 내려다보았다. 쪼그려 앉은 다리, 문틈에 댄 코, 노란 눈. 노인은 오래 보았다. 김이 노인의 등 뒤에서 피어올랐다.
“너, 고양이였구나.”
노인이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와. 나도 그랬다.”
떡집 안은 뜨거웠다. 시루 다섯 개에서 김이 올라왔다. 노인은 나무 의자 하나를 내 앞에 밀어 주고, 막 썬 가래떡 한 토막을 접시에 올려 주었다. 나는 떡 위에서 오래 숨을 불었다. 노인이 내 입김을 보고 웃었다. 이가 몇 개 빠져 있었다.
“나도 처음 몇 해는 그랬어. 국 한 숟가락 먹는 데 십 분씩 걸렸지. 지금은 뜨거운 걸 먹어. 열 해 지나니까 혀가 사람 혀가 되더라.”
“열 해요?”
“열여섯 해 전 봄이었다. 나는 그때 벌써 열다섯 살 먹은 늙은 고양이였어. 그래서 사람도 늙은이로 됐지. 보름마다 하룻밤씩 늘다가, 이레째 밤 지나고 아침에 털이 안 돌아왔다. 떡집 주인 딸이 좋아서 그랬어. 그 사람은 작년에 갔다.”
노인은 떡을 썰던 칼을 내려놓고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 사람한테는 끝까지 말 못 했다. 내가 저 집 검은 고양이였다고. 믿을 리가 없지. 너는 말했냐?”
“들켰어요.”
노인이 크게 웃었다. 웃음 끝에 기침을 했다.
“들킨 게 낫다. 나는 들키지도 못했어.”
나는 떡을 한 입 먹었다. 아직 뜨거웠다. 혀를 데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쌀이 달았다.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생기면 묻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시장 고양이들 잊었어요? 사람 되고 나서?”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김 속에서 노인의 눈이 노랬다. 늙은 사람 눈인데 가운데가 노랬다.
“누가 그래?”
“병원 늙은 고양이가요. 떡집 검은 고양이가 사람이 되더니 다시는 골목에 안 왔다고. 우리를 잊었다고.”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가게 뒷문을 열었다. 뒷문 밖은 좁은 골목이었다. 골목 바닥에 깨진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접시 위에 생선 대가리 세 개가 얹혀 있었다. 어제저녁에 놓은 것이라고 했다. 골목 담 위에서 길고양이 둘이 우리를 내려다보다가 달아났다.
“열여섯 해 동안 하루도 안 빼고 놓았다. 생선 가게 영감한테 대가리를 얻어다가. 내가 놓으면 애들이 와서 먹고 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지는 몰라. 사람이 되고 나서 한 해쯤 지나니까 하나도 안 들리더라. 그냥 야옹, 야옹. 아무리 귀를 대도 야옹이야.”
노인이 접시 옆에 쪼그려 앉았다. 생선 대가리 하나를 바로 놓았다.
“애들은 나를 생선 놓는 영감으로 알지. 저 집 검은 고양이였던 놈인 줄은 몰라. 내가 말해도 걔들 귀에는 사람 소리니까. 그러니 잊은 걸로 알 수밖에. 맨 처음 내 접시에 온 놈은 치즈 새끼였다. 뒷다리를 끌었지. 그놈이 제일 많이 먹었어. 그러다 어느 날부터 안 왔다. 병원 영감이 데려갔다고 들었다.”
나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뒷다리를 끄는 치즈 새끼. 반지하 맨 위 칸.
노인이 일어나 무릎을 짚었다. 해가 오기 한 시간 전이었다. 노인은 시루 앞으로 돌아가며 등 뒤로 말했다.
“잊지는 않아. 못 듣게 될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