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86자)

이주비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섣달 보름 점심⁠, 상견례에서 돌아온 실장은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구두부터 벗어 던졌다⁠.

“⁠원장님⁠, 저 오늘 시어머니 노릇 하다가 죽을 뻔했어요⁠.⁠”

나는 진료대 위 바구니에서 고개를 들었다⁠. 실장의 숨에서 소주 냄새와 한정식 집 간장게장 냄새가 났다⁠. 새론은 원피스 위에 가운을 걸치고 말없이 손을 씻었다⁠. 세면대 물이 오래 흘렀다⁠.

“⁠회장님이 저한테 소주를 세 잔 따라 주셨어요⁠. 신부 쪽 어른이 목소리가 커서 좋대요⁠. 제가 원장님 이모라고 했거든요⁠. 이모가 마흔여섯이면 원장님 엄마는 몇 살이었냐고 물으셔서 제가 거짓말을 또 했어요⁠. 오늘 거짓말만 일곱 개 했어요⁠.⁠”

“⁠수고하셨어요⁠.⁠”

“⁠그리고요⁠, 원장님⁠. 서류 꺼내셨을 때요⁠.⁠”

실장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원장님이 펜을 안 받았잖아요⁠. 함 들어오는 날 쓰겠다고⁠. 회장님 얼굴이 그때 처음 굳었어요⁠. 우겸 씨는 젓가락을 떨어뜨렸고요⁠. 간장게장에⁠.⁠”

새론이 수도꼭지를 잠갔다⁠. 거울 속의 새론은 자기 얼굴을 보지 않았다⁠. 손등만 보았다⁠.

“⁠함 들어오는 날까지 닷새예요⁠. 닷새만 더 생각하고 싶었어요⁠.⁠”

닷새⁠. 섣달 보름부터 다섯 밤⁠. 새론은 몰랐다⁠. 새론이 생각하겠다는 닷새가 내가 사람으로 지내는 닷새와 꼭 같았다⁠.

*

자정⁠, 다섯 번째 울림이 왔다⁠. 소리는 처음보다 작았다⁠. 정수리로 들어오는 소리가 귀 뒤쪽 어딘가에서 웅얼거렸다⁠. 그래도 몸은 어김없이 길어졌다⁠.

나는 귤 상자 밑바닥에 숨겨 둔 분양 책자를 꺼냈다⁠. 보름 동안 고양이 엉덩이로 깔고 앉아 있던 책자는 반들반들한 표지가 털투성이였다⁠. 털을 털어 내고 진료실로 내려갔다⁠. 새론은 진료실 책상에서 차트를 쓰고 있었다⁠.

나는 책자를 새론 앞에 펼쳤다⁠. 일층 평면도⁠. 「⁠대형 카페 입점 확정⁠」

새론은 오래 들여다보았다⁠. 볼펜 끝으로 「⁠확정⁠」 두 글자를 두 번 짚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분양 홍보관이요⁠. 청소하시는 분이 줬어요⁠.⁠”

“⁠새벽에 거길 왜 가요⁠?⁠”

“⁠물어보러요⁠.⁠”

“⁠뭘요⁠?⁠”

“⁠일층에 뭐가 들어오는지⁠.⁠”

새론이 책자를 덮었다⁠. 표지의 아파트 그림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이건 분양 책자예요⁠. 광고요⁠. 우겸 씨는 병원 자리를 비워 두겠다고 했어요⁠. 저한테 직접⁠. 식탁에서⁠.⁠”

나는 진료실 문을 열고 대기실로 나갔다⁠. 창가 새장에서 앵무새가 깃털 속에 머리를 박고 자고 있었다⁠. 나는 새장 앞에 쪼그려 앉아 철망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앵무새가 한쪽 눈을 떴다⁠.

“⁠영감 목소리⁠. 한 번만⁠.⁠”

앵무새가 하품을 했다⁠. 새도 하품을 한다⁠. 새론이 새장 앞으로 다가왔다⁠. 앵무새가 새론을 보더니 깃털을 부풀렸다⁠. 사람 구경꾼이 있으면 앵무새는 신이 난다⁠.

“⁠일층은 커피집하고 가계약 끝났다⁠. 병원 자리⁠? 말로 해 둬⁠. 말은 등기가 안 돼⁠.⁠”

조 회장의 목소리였다⁠. 거칠고 낮고⁠, 끝을 내리치는 목소리⁠. 대기실 형광등 아래에서 새론의 얼굴이 하얘졌다⁠.

“⁠…다시⁠.⁠”

새론이 말했다⁠. 앵무새는 새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앵무새에게 다시⁠, 라고 했다⁠. 앵무새가 다시 했다⁠. 토씨 하나 안 틀렸다⁠.

“⁠언제 들은 거예요⁠, 얘가⁠?⁠”

“⁠회장님이 처음 오신 날이요⁠. 진료실에서 나가시면서 여기 창가에서 통화하셨대요⁠.⁠”

“⁠대요⁠?⁠”

새론이 나를 보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앵무새가 신이 나서 한 번 더 했다⁠. “⁠말은 등기가 안 돼⁠!⁠” 이번에는 실장 목소리가 섞였다⁠. “⁠얘⁠, 조용히 해⁠!⁠” 새론이 웃지 않았다⁠. 앵무새가 실장 흉내를 내는데 새론이 안 웃은 것은 처음이었다⁠.

*

나는 새벽 세 시에 입원실을 돌았다⁠. 새론은 진료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토끼의 말은 이제 입 모양만 보였다⁠. 소리는 아주 작게⁠, 아주 멀리서 왔다⁠. 앵무새의 새 말은 수다스러운 휘파람으로만 들렸다⁠. 사람 말 흉내만 또렷했다⁠. 진돗개는 아직 들렸다⁠. 시바도 들렸다⁠. 덩치 큰 개들의 목소리는 사람 귀에 늦게까지 남았다⁠.

누룽지는 맨 위 칸에서 내가 청진기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토끼 안 들리지⁠?⁠”

“⁠입만 보여⁠.⁠”

“⁠다음엔 내가 안 들리겠지⁠.⁠”

“⁠아직 들려⁠.⁠”

누룽지가 꼬리로 코를 덮었다⁠. 고르지 않은 숨소리가 꼬리 밑에서 들렸다⁠. 세 번 쉬고 한 번 멈추는 숨⁠. 숨소리는 아직 또렷했다⁠. 말이 먼저 멀어지고 숨소리가 나중에 멀어진다는 것을 나는 섣달 보름 밤에 알았다⁠.

*

낮에 새론은 진료를 다 보았다⁠. 예방접종 여섯⁠, 피부병 둘⁠, 이물질을 삼킨 리트리버 하나⁠. 리트리버의 배에서는 아이 양말 한 짝이 나왔다⁠. 새론은 양말을 보호자에게 돌려주며 웃었고⁠, 보호자가 나가자 웃음을 거뒀다⁠.

점심시간에 새론은 대기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새장 앞에 혼자 앉아 있었다⁠. 뉴스가 흘렀다⁠. 「⁠공사비 대출 만기 연장 거절 … 중견 건설사 법정관리 신청⁠」 법원이 회사를 맡아 빚을 나눠 정리하는 절차라고 앵커가 덧붙였다⁠. 화면에 짓다 만 아파트 뼈대가 비쳤다⁠. 크레인이 멈춰 있었다⁠.

새론은 새장 철망을 톡톡 쳤다⁠. 앵무새가 회장 목소리를 냈다⁠. 새론이 또 쳤다⁠. 앵무새가 또 냈다⁠. 네 번째에 새론은 손을 내리고 무릎에 팔꿈치를 괴었다⁠. 이마를 손바닥에 묻었다⁠. 어깨가 한 번 떨렸다⁠.

나는 소파 밑에 굴러가 있던 쥐 인형을 물고 대기실로 갔다⁠. 털실로 만든 회색 쥐였다⁠. 아홉 해 동안 꼬리가 두 번 떨어졌고 새론이 두 번 꿰매 붙였다⁠. 나는 쥐 인형을 새론의 운동화 앞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소중한 사람이 사냥을 못 하면 대신 잡아다 준다⁠.

새론이 손바닥에서 얼굴을 들었다⁠. 쥐 인형을 보았다⁠. 나를 보았다⁠.

“⁠…고마워⁠, 먹물아⁠. 근데 나 쥐 못 먹어⁠.⁠”

새론은 쥐 인형을 주워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오후 진료 내내 주머니가 불룩했다⁠.

*

이튿날 새벽 다섯 시 반⁠, 대기실 유리문을 누군가 주먹으로 두드렸다⁠.

국밥집 사장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채였고⁠, 뒤에 세탁소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산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무릎이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새론이 진료실에서 나와 문을 열었다⁠. 나는 대기실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원장님⁠, 상견례 했다며⁠. 서류 왜 안 써⁠?⁠”

국밥집 사장은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목소리에서 밤새 끓인 뼈 국물 냄새가 났다⁠.

“⁠우리 블록 열세 집이 다 원장님 하나 쳐다보고 있어⁠. 이주비가 묶였다고⁠. 대연 사람들이 그래⁠. 병원 동의서 들어와야 열세 집 이주비가 한꺼번에 나간대⁠. 나 딸내미 등록금 이월에 내야 돼⁠. 할아버지는 일산 방 보증금 못 내서 계약 날아가게 생겼고⁠.⁠”

“⁠사장님⁠, 새 건물에 제 병원 자리가 없대요⁠.⁠”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국밥집 사장이 대기실 의자를 발로 툭 찼다⁠. 의자가 밀려 나갔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사장의 정강이를 가볍게 쳤다⁠.

“⁠의자는 왜 차⁠.⁠”

“⁠아저씨는 어느 편이에요⁠? 원장 편이에요⁠?⁠”

“⁠나는 원장 편도 아니고 회장 편도 아니야⁠.⁠”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두 손을 얹었다⁠. 숨을 고르고 나서 새론을 보았다⁠.

“⁠나는 이달 보증금 편이야⁠. 원장⁠, 원장 아버지가 우리 똥개 다리 고쳐 준 거 나 안 잊었어⁠. 근데 그 똥개 죽은 지 십 년이야⁠. 나는 산 사람이라 방이 있어야 돼⁠.⁠”

새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밥집 사장이 앞치마를 벗어 손에 감았다⁠.

“⁠원장 아버지 좋은 사람이었어⁠. 우리 다 알아⁠. 공짜로 개 고쳐 주고⁠, 길고양이 밥 주고⁠. 그래서 빚졌잖아⁠. 원장도 똑같이 하잖아⁠. 저 아래 마흔 마리⁠. 그거 우리가 먹여 살리는 거야⁠, 지금⁠. 우리 이주비로⁠.⁠”

사장은 문을 열고 나가다가 대기실 구석의 나를 보았다⁠. 위아래로 훑었다⁠.

“⁠총각은 또 왜 여기 있어⁠? 원장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유리문이 닫혔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뒤따라 나갔다⁠. 지팡이 짚는 소리가 골목 끝까지 갔다⁠.

*

새론은 휴대전화를 들고 한참 서 있다가 우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고 우겸이 받았다⁠.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이었다⁠. 우겸은 깨어 있었다⁠. 홍보관 사무실이라고 했다⁠.

“⁠지금 와 줄 수 있어요⁠?⁠”

십 분 뒤⁠, 우겸이 대기실 유리문을 열었다⁠. 넥타이 없이⁠,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눈 밑이 검었다⁠. 알약을 삼키려다가 대기실 구석의 나를 보았다⁠. 알약을 쥔 손이 멈췄다⁠.

“⁠…내보냈다면서요⁠.⁠”

“⁠거짓말했어요⁠.⁠”

새론이 말했다⁠. 새론의 목소리는 빨라지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나쁜 소식을 보호자에게 전할 때의 목소리였다⁠. 낮고 고르고⁠, 한 글자도 흐리지 않는⁠.

“⁠우겸 씨처럼⁠.⁠”

새론이 분양 책자를 대기실 탁자에 내려놓았다⁠. 일층 평면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어서 새장 철망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앵무새가 기다렸다는 듯이 깃털을 부풀렸다⁠.

“⁠일층은 커피집하고 가계약 끝났다⁠. 병원 자리⁠? 말로 해 둬⁠. 말은 등기가 안 돼⁠.⁠”

우겸이 눈을 감았다⁠. 감은 채로 오래 있었다⁠. 앵무새가 신이 나서 한 번 더 하려는 것을 내가 철망을 손바닥으로 덮어 막았다⁠.

“⁠아버지 목소리네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우겸이 눈을 떴다⁠. 알약을 결국 삼키지 않고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결혼하고 나서 받아 내려고 했어요⁠. 며느리 병원이면 아버지도 못 빼요⁠. 그 전에는 제가 말하면 아버지는 제가 회사보다 여자를 고른다고 해요⁠. 그 말 들으면 저 대표 자리 못 지켜요⁠.⁠”

“⁠우겸 씨 대표 자리랑 우리 애들 마흔이랑 같아요⁠?⁠”

“⁠같지 않죠⁠.⁠”

우겸이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국밥집 사장이 발로 찬 의자였다⁠. 의자가 아직 비뚤게 놓여 있었다⁠. 우겸은 의자를 바로 놓지 않고 비뚤어진 채로 앉았다⁠.

“⁠새론 씨⁠. 아버님 빚 사억이요⁠. 새론 씨는 아버님 빚을 지고 있잖아요⁠. 아버님이 하던 일 때문에⁠.⁠”

“⁠네⁠.⁠”

“⁠저도요⁠.⁠”

우겸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새론에게 보였다⁠. 무슨 서류의 사진이었다⁠. 맨 아래에 우겸의 이름과 도장이 있었다⁠.

“⁠아버지가 저를 대표로 올리실 때 같이 서명했어요⁠. 연대보증이요⁠. 회사가 공사비를 못 갚으면 회사 빚이 제 이름으로 와요⁠. 이월 말에 블록이 안 묶이면 대주단이 돈을 끊고⁠, 회사가 넘어가면 저는 서른넷에 빚이 이백억이에요⁠. 새론 씨가 사억을 지고 병원 지키는 거⁠, 저는 이백억을 지고 회사를 지키는 거예요⁠.⁠”

새론이 의자 앞으로 다가갔다⁠. 우겸을 내려다보았다⁠. 아홉 해 동안 새론을 올려다보던 나는⁠, 사람이 사람을 내려다볼 때 얼굴이 얼마나 지치는지 처음 보았다⁠.

“⁠그래서 저랑 결혼하려고 했어요⁠? 이백억 때문에⁠?⁠”

“⁠아니요⁠.⁠”

우겸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갰다⁠. 이번에도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는 새론 씨가 좋아서요⁠. 근데 좋아하는 거 하나로는 이백억이 안 없어져요⁠. 사억도요⁠. 그래서 둘 다 한 번에 없애는 길이 이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둘 다 아버지 빚 지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같이 지면 덜 무겁다고⁠.⁠”

대기실 창밖으로 해가 오고 있었다⁠. 동쪽 유리창이 묽어졌다⁠. 발바닥이 뜨거워졌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없었다⁠. 새론과 우겸이 동시에 나를 보았다⁠.

“⁠먹물 씨⁠, 어디 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살림집 계단 쪽문으로 뛰었다⁠. 등 뒤에서 우겸의 재채기가 들렸다⁠. 세 번⁠. 네 번째는 터지지 않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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