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09자)

일층은 커피집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그만뒀다고 할 거예요⁠.⁠”

새론이 말했다⁠. 동짓달 그믐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진료 시작 전의 진료실이었다⁠. 실장이 소독솜을 통에 채우다가 손을 멈췄다⁠. 나는 진료대 밑 바구니에 몸을 말고 있었다⁠. 밤새 사람이었던 몸이 무거웠다⁠.

“⁠우겸 씨한테요⁠?⁠”

“⁠네⁠. 내보냈다고⁠.⁠”

“⁠안 내보내고요⁠?⁠”

새론은 대답하지 않고 진료 장갑을 꼈다⁠. 고무가 손목에서 탁 소리를 냈다⁠. 실장이 소독솜 통 뚜껑을 닫았다⁠. 평소보다 세게 닫았다⁠.

“⁠원장님⁠, 저 그 사람 좋아요⁠. 애들이 그 사람만 오면 밥을 먹어요⁠. 백구가 석 달 만에 그릇을 비웠어요⁠. 근데 이건 아니잖아요⁠. 거짓말을 두 번 하면 세 번째는 거짓말인지도 몰라요⁠. 제가 이혼을 해 봐서 알아요⁠.⁠”

“⁠실장님⁠.⁠”

“⁠네⁠, 알아요⁠. 제 일 아니죠⁠.⁠”

실장은 소독솜 통을 들고 나가다가 진료대 밑의 나를 보았다⁠. 쪼그려 앉아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얘⁠, 너는 원장님 편이지⁠? 나도 원장님 편이야⁠. 근데 편드는 게 맞장구치는 거랑은 달라⁠.⁠”

*

자정⁠, 사흘째 밤이었다⁠. 사람이 되어 입원실로 내려가자 앵무새 칸 앞에 시바와 진돗개가 몰려 있었다⁠. 낮에는 새론이 볕을 쬐라고 앵무새 새장을 대기실 창가에 내놓는다⁠. 밤에는 입원실로 들여놓는다⁠. 앵무새는 하루치 사람 말을 배에 담아 와서 밤마다 풀었다⁠.

“⁠해 봐⁠, 영감 목소리⁠.⁠”

시바가 졸랐다⁠. 앵무새가 깃털을 부풀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앵무새의 목에서 조 회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거칠고 낮고⁠, 끝을 내리치는 목소리⁠.

“⁠일층은 커피집하고 가계약 끝났다⁠. 병원 자리⁠? 말로 해 둬⁠. 말은 등기가 안 돼⁠.⁠”

입원실이 조용해졌다⁠. 시바가 꼬리를 내렸다⁠. 진돗개가 나를 돌아보았다⁠.

“⁠언제 들었어⁠?⁠”

내가 물었다⁠. 앵무새가 고개를 갸웃했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흉내 낼 때만 또렷하고⁠, 제 말은 늘 수다스럽게 돌았다⁠.

“⁠영감이 처음 왔던 날⁠. 진료실에서 나와서 대기실 창가에서 전화하더라⁠. 내 새장 바로 앞에서⁠. 커피집⁠, 가계약⁠, 등기⁠.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외웠어⁠. 맛있는 소리였거든⁠.⁠”

“⁠다시 해 봐⁠.⁠”

“⁠일층은 커피집하고 가계약 끝났다⁠. 병원 자리⁠? 말로 해 둬⁠. 말은 등기가 안 돼⁠.⁠”

나는 귀를 만졌다⁠. 앵무새의 흉내는 또렷했다⁠. 사람 말이라서 사람 귀에 잘 들렸다⁠. 정작 앵무새 제 목소리⁠, 수다스럽게 도는 새의 말은 반쯤 물에 잠겨서 왔다⁠. 사람 귀는 사람 말만 골라 듣기 시작했다⁠.

“⁠등기가 뭐야⁠?⁠”

시바가 물었다⁠. 아무도 몰랐다⁠. 나도 몰랐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는다⁠. 나는 원장님 코트를 입고 골목으로 나갔다⁠.

*

분양 홍보관은 큰길 건너편 빈 주차장 자리에 있었다⁠. 하얀 가건물 정면에 「⁠연남 철길 더 포레스트 — 2028년 상반기 분양 예정⁠」 글씨가 밤새 빛났다⁠. 새벽 한 시 반⁠, 유리문 안에서 청소부 아주머니가 밀대로 대리석 바닥을 밀고 있었다⁠. 나는 유리문을 손가락 마디로 두드렸다⁠.

“⁠문 닫았어요⁠. 낮에 와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새벽에 무슨 분양 상담이야⁠.⁠”

아주머니는 밀대를 세우고 나를 보았다⁠. 코트 소매가 길어서 손가락 끝만 나온 남자⁠. 아주머니가 한숨을 쉬고 문을 반만 열었다⁠.

“⁠신발 벗고 들어와요⁠. 방금 닦았어⁠.⁠”

홍보관 한가운데에 유리 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에 블록 전체가 손바닥만 하게 지어져 있었다⁠. 하얀 아파트 세 동⁠, 손톱만 한 나무들⁠, 쌀알만 한 사람들⁠. 철길 숲길은 초록 융단이었다⁠. 내가 아홉 해를 산 모퉁이는 지워져 있었다⁠. 지워진 자리에 아파트 정문과 상가가 있었다⁠.

나는 유리 상자에 이마를 댔다⁠. 고양이가 창밖 새를 볼 때처럼⁠.

“⁠일층 모퉁이에 뭐가 들어와요⁠?⁠”

“⁠커피집⁠. 큰 데⁠. 외국 커피 체인⁠. 지난주에 본사 사람들 와서 사진 찍고 갔어⁠. 일층 모퉁이 통째로 쓴대⁠. 그거 보고 은행 사람들이 좋아했다던데⁠. 큰 가게 들어온다고 하면 돈이 잘 나온대⁠.⁠”

유리 상자 속 모퉁이 상가에 초록색 동그라미 간판이 손톱만 하게 붙어 있었다⁠. 간판 아래에 쌀알만 한 사람 둘이 컵을 들고 서 있었다⁠.

“⁠동물병원은요⁠?⁠”

“⁠동물병원⁠?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여기 분양 책자에도 없어⁠.⁠”

아주머니가 접수대에서 반짝이는 책자를 한 권 뽑아 주었다⁠. 일층 평면도에 「⁠대형 카페 입점 확정⁠」 병원은 어느 층에도 없었다⁠. 나는 책자를 코트 안에 넣었다⁠. 아주머니가 밀대를 다시 들었다⁠.

“⁠총각은 여기 분양받을 사람 아니지⁠? 그 코트로는 계약금도 못 낼 것 같은데⁠.⁠”

“⁠거기 살았어요⁠. 지워진 데요⁠.⁠”

아주머니가 밀대를 멈추고 유리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오래 보다가⁠, 나를 보았다⁠.

“⁠나도 옛날 살던 동네가 저렇게 지워졌어⁠. 신발 신고 가요⁠. 바닥 또 닦으면 되니까⁠.⁠”

돌아오는 길에 큰길 모퉁이 편의점에 들렀다⁠. 등기가 무엇인지 아직 몰랐다⁠. 계산대의 아르바이트생은 스무 살 남짓으로 보였고⁠, 컵라면 진열대 옆에서 졸고 있었다⁠. 내가 계산대 앞에서 헛기침을 하자 눈을 떴다⁠.

“⁠등기가 뭐예요⁠?⁠”

“⁠…등기 우편이요⁠? 택배는 저쪽 기계에서 하시면 되는데⁠.⁠”

“⁠말로 하면 등기가 안 된대요⁠. 무슨 뜻이에요⁠?⁠”

아르바이트생이 눈을 비비고 나를 보았다⁠. 새벽 두 시에 코트 소매로 손을 덮은 남자가 국어 문제를 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했다⁠.

“⁠아⁠, 이거요⁠. 집이나 땅이 누구 건지⁠, 누가 거기 무슨 권리가 있는지 나라 서류에 올려 두는 거래요⁠. 서류에 올라가야 남들한테도 내 거라고 말할 수 있대요⁠. 말로만 하면 안 되고요⁠. 저희 엄마도 가게 보증금 날린 게 이거 때문이에요⁠.⁠”

“⁠고마워요⁠.⁠”

“⁠삼각김밥 하나 사 가세요⁠. 질문 값으로⁠.⁠”

돈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왔다⁠. 유리문 너머로 아르바이트생이 다시 조는 것이 보였다⁠. 병원 자리는 말로만 있었다⁠. 새론에게 한 약속은 서류에 오르지 않았다⁠.

*

새벽 네 시⁠, 새론이 입원실에 내려왔다⁠. 나는 산소방 앞 바닥에 앉아 분양 책자를 펼쳐 놓고 있었다⁠. 책자를 덮었다⁠. 새론이 책자를 보지 못하게 엉덩이 밑에 깔았다⁠. 들킨 물건 위에 앉는 버릇이 사람 몸에도 남아 있었다⁠.

새론이 옆에 앉았다⁠. 산소방 유리창 너머에서 푸들이 산소를 마시며 잠들어 있었다⁠.

“⁠우겸 씨가 먹물 씨 내보내래요⁠.⁠”

“⁠들었어요⁠.⁠”

“⁠어떻게요⁠? 저 스피커도 안 켰는데⁠.⁠”

“⁠…귀가 밝아요⁠.⁠”

새론이 무릎을 세우고 턱을 얹었다⁠.

“⁠그만뒀다고 할 거예요⁠. 안 내보내고⁠.⁠”

“⁠왜요⁠?⁠”

“⁠애들이 먹물 씨를 좋아해서요⁠.⁠”

새론이 말을 멈췄다⁠.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자리가 하얘졌다가 붉어졌다⁠.

“⁠거짓말이에요⁠. 제가 먹물 씨를 좋아해서요⁠.⁠”

입원실이 조용했다⁠. 마흔 칸이 다 자는 척을 했다⁠. 시바는 숨까지 참았다⁠. 나는 새론의 냄새를 맡았다⁠. 귤⁠, 소독약⁠, 잠⁠. 그리고 오늘은 하나가 더 있었다⁠. 떨리는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겨드랑이와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짭짤한 냄새⁠.

내가 먼저 고개를 숙였는지 새론이 먼저 들었는지 모른다⁠. 숲길에서 비켜 갔던 거리가 이번에는 비켜 가지 않았다⁠. 새론의 입술은 차가웠다가 금방 따뜻해졌다⁠. 새론의 숨이 내 윗입술에 걸쳐졌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새론의 손이 내 뒷목을 감쌌다⁠. 털이 없는 자리를 손가락이 쓸었다⁠. 고양이일 때 새론이 수천 번 쓸던 자리였는데⁠, 사람 살갗 위에서는 처음이었다⁠. 등뼈가 저절로 둥글게 휘었다⁠. 고양이 버릇이었다⁠. 새론이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웃었다⁠. 웃음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새론이 먼저 떨어졌다⁠. 이마를 내 이마에 댔다⁠. 반지 낀 손이 내 뺨에 있었다⁠. 쇠가 차가웠다⁠.

“⁠나쁜 사람이네⁠, 나⁠.⁠”

나는 새론의 손목을 잡아 반지 끼지 않은 손바닥에 입술을 댔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새론은 손을 빼지 않았다⁠.

*

이날 오후⁠, 새론은 진료실에서 우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고양이로 창틀에 엎드려 귀만 세우고 있었다⁠.

“⁠내보냈어요⁠. 어제부로⁠.⁠”

전화기 너머에서 우겸이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우겸의 숨소리를 들었다⁠. 길게 내쉬는 숨이었다⁠. 의심하는 숨이 아니었다⁠. 안심하는 숨이었다⁠.

“⁠고마워요⁠, 새론 씨⁠. 제가 너무했죠⁠. 질투한 거 맞아요⁠. 아버지 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새벽에 새론 씨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아니에요⁠.⁠”

“⁠상견례는 섣달 보름 점심이에요⁠. 새론 씨네는 실장님 오신다고 했죠⁠? 아버지가 실장님 좋아하실 거예요⁠. 목소리 큰 사람 좋아하시거든요⁠. 함은 그 주에 들어간대요⁠. 친구들이 벌써 오징어 가면을 샀대요⁠.⁠”

우겸이 웃었다⁠. 새론도 웃었다⁠. 새론의 웃음은 반 박자 빨랐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웃음은 빨리 감은 테이프 소리가 난다⁠. 전화를 끊은 새론이 진료대에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창틀의 나를 보았다⁠.

“⁠먹물아⁠. 나 두 번째야⁠.⁠”

새론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고⁠, 하나씩 접었다⁠. 세 번째는 거짓말인지도 모르게 된다고 실장이 아침에 말했다⁠. 새론도 세고 있었다⁠.

*

이튿날 밤⁠, 나흘째 밤이었다⁠. 분양 홍보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청소부 아주머니는 없었고⁠, 안쪽 사무실 유리 너머에 우겸이 앉아 있었다⁠. 넥타이를 풀고⁠, 노트북 화면 세 개를 켜 놓고⁠, 화면마다 숫자가 빽빽했다⁠. 「⁠대주단 회의 자료 — 2월 만기 연장 조건⁠」 텔레비전에서는 새벽 뉴스가 흘렀다⁠. 「⁠외국계 커피 체인⁠, 국내 대단지 상가 입점 확대⁠」

유리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들어가서 유리 상자 앞으로 갔다⁠. 우겸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재채기는 문을 나오자마자 했다⁠.

“⁠…야간 선생님⁠. 그만두셨다고 들었는데⁠.⁠”

“⁠일층 모퉁이요⁠.⁠”

나는 유리 상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초록 동그라미 간판 위에⁠.

“⁠새론한테는 병원 자리라고 했잖아요⁠.⁠”

우겸이 유리 상자를 보았다⁠. 나를 보았다⁠. 다시 유리 상자를 보았다⁠. 우겸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홍보관 천장의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사람 귀에도 들릴 만큼 오래⁠.

“⁠알아요⁠.⁠”

“⁠알아요⁠?⁠”

“⁠처음부터 알았어요⁠. 가계약은 여름에 아버지가 했어요⁠. 대주단이 큰 가게 하나가 확실히 들어온다는 서류를 원했어요⁠. 그게 있어야 공사비가 계속 나와요⁠. 일층 모퉁이는 블록에서 제일 비싼 자리예요⁠. 병원을 거기 넣으면 숫자가 안 맞아요⁠.⁠”

“⁠그럼 왜 거짓말했어요⁠?⁠”

“⁠거짓말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우겸이 유리 상자에 손바닥을 댔다⁠. 손바닥 자국이 김으로 남았다⁠. 골목에서 내가 창문에 남겼던 것과 같은 자국이었다⁠.

“⁠결혼하고 나면 아버지한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집안사람이 되면요⁠. 이층이든 뒷동 상가든⁠, 병원 자리 하나는 받아 낼 수 있다고⁠. 지금은 제가 그 말을 하면 아버지는 제가 여자 때문에 회사를 판다고 해요⁠. 결혼하면 새론 씨는 아버지 며느리가 되고⁠, 며느리 병원은 회사 일이 돼요⁠. 그때는 말이 되거든요⁠.⁠”

“⁠새론은 그걸 몰라요⁠.⁠”

“⁠네⁠. 몰라요⁠.⁠”

우겸이 손바닥을 뗐다⁠. 김 자국이 천천히 지워졌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걸 왜 캐요⁠? 새벽마다 경비실⁠, 고깃집 대리기사⁠, 여기 청소 여사님⁠. 다 들었어요⁠. 새론 씨 좋아해요⁠?⁠”

“⁠아홉 해요⁠.⁠”

“⁠그 말 저번에도 했어요⁠.⁠”

우겸이 사무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돌리지 않고 서 있었다⁠.

“⁠새론 씨한테 말할 거예요⁠? 말하면 새론 씨는 결혼 안 해요⁠.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에요⁠. 그럼 저 아래 마흔 마리는 누가 먹여요⁠? 선생님이요⁠? 밥으로 월급 받는 선생님이⁠?⁠”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일층은 커피집 ·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