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71자)

상자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새론은 밀대를 들고 살림집을 뒤졌다⁠.

동짓달 그믐 아침 일곱 시 반⁠, 진료 시작까지 한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새론은 옷장을 열고⁠, 침대 밑에 밀대 자루를 찔러 넣고⁠, 베란다 세탁기 뚜껑까지 열어 보았다⁠. 세탁기 안에는 수술복 두 벌이 있었다⁠. 남자는 없었다⁠.

나는 소파 옆 내 상자 안에 앉아 새론을 구경했다⁠. 내 상자는 귤 상자였다⁠. 아홉 해 동안 상자는 다섯 번 바뀌었고 다섯 번 다 귤 상자였다⁠. 새론은 원장님이 나를 귤 상자에 담아 왔다는 이유로 귤 상자만 남겨 주었다⁠.

새론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밀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엉덩이 밑에 셔츠가 깔려 있었다⁠. 단추 일곱 개짜리 셔츠⁠. 새벽에 해가 오기 직전 서둘러 벗다가⁠, 벗은 것을 둘 데가 없어서 상자에 깔고 고양이가 되었다⁠.

새론이 셔츠 소매를 잡아당겼다⁠. 나는 버티다가 같이 끌려 나왔다⁠.

“⁠먹물아⁠. 네 상자에 왜 남자 셔츠가 있어⁠?⁠”

나는 셔츠 위에 다시 앉았다⁠. 고양이는 들키면 들킨 물건 위에 앉는다⁠. 고양이가 앉은 물건은 고양이 것이다⁠.

“⁠…털 범벅이네⁠.⁠”

새론은 셔츠를 털다가 멈췄다⁠. 셔츠에 코를 댔다⁠. 오래 댔다⁠. 그리고 셔츠를 내 상자에 도로 넣었다⁠.

*

아홉 시 정각⁠, 벽이 울었다⁠.

옆 건물 세탁소였다⁠. 할아버지가 짐을 다 빼고 일산으로 간 지 열흘째였다⁠. 가림막 너머에서 굴착기 집게가 벽돌 벽을 물어뜯었다⁠. 굴착기 끝에 달린 쇠 망치가 콘크리트 바닥을 쪼았다⁠. 다다다다다⁠. 소리가 땅을 타고 와서 반지하 입원실 벽으로 올라왔다⁠.

사람 귀에는 시끄러운 소리였다⁠. 고양이 귀에는 머리통 안에서 쇠를 가는 소리였다⁠. 나는 진료실 약장 뒤로 기어 들어가 귀를 납작하게 붙였다⁠. 붙여도 들어왔다⁠.

입원실에서 마흔 칸이 한꺼번에 울었다⁠. 진돗개가 길게 하울링을 했다⁠. 고양이 삼 남매가 한 덩어리로 뭉쳐 칸 구석에 박혔다⁠. 토끼는 이번에는 진짜로 쓰러졌다⁠. 심장병 푸들의 숨이 빨라졌다⁠. 새론이 청진기를 귀에 꽂고 입원실로 뛰어 내려갔다⁠. 실장이 뒤따랐다⁠.

“⁠원장님⁠, 푸들 숨이 분당 육십이에요⁠!⁠”

“⁠산소방 열어요⁠. 푸들 먼저⁠.⁠”

산소방은 입원실 안쪽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두꺼운 문을 닫으면 바깥 소리가 거의 안 들어왔다⁠. 실장이 푸들을 안고 들어갔다⁠. 산소방 문이 닫히자 푸들 숨이 조금 느려졌다⁠. 산소방에는 하나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머지 서른아홉은 망치 소리 속에 있었다⁠.

새론이 가운을 입은 채 골목으로 나갔다⁠. 나는 약장 뒤에서 나와 새론을 따라갔다⁠.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담장 위로 올라가 몸을 낮췄다⁠.

*

조 회장은 가림막 앞에 안전모를 쓰고 서 있었다⁠. 작업복 입은 현장 소장 옆에서 굴착기를 올려다보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쟀다⁠. 새론이 회장 앞으로 걸어갔다⁠.

“⁠회장님⁠. 멈춰 주세요⁠.⁠”

조 회장이 안전모 챙을 들어 올렸다⁠.

“⁠내 건물 내가 부수는데⁠?⁠”

“⁠입원실 벽이 이 건물 벽이랑 붙어 있어요⁠. 애들 심장이 못 버텨요⁠. 지금 푸들 하나는 산소방에 들어갔어요⁠.⁠”

“⁠시간 지키고 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 구청 신고도 했고 소음 측정기도 달았어⁠. 법대로 한다⁠.⁠”

“⁠법대로 하시는 거 알아요⁠. 애들은 법을 몰라요⁠.⁠”

조 회장이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나도 법 몰랐어⁠. 열여섯에 목수 일 시작할 때⁠. 대패 소리 시끄럽다고 동네 사람들이 쫓아왔지⁠. 그래도 집은 지어야 사람이 살아⁠. 이 블록 철거 날짜는 내가 정한 게 아니야⁠. 돈 빌려준 데서 정해⁠. 공정표가 밀리면 이자가 붙고⁠, 이자가 붙으면 하청 애들 월급이 밀려⁠.⁠”

굴착기가 세탁소 간판을 물었다⁠. 「⁠연남 세탁⁠」 네 글자가 공중에서 흔들리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흙먼지가 가림막 위로 넘쳤다⁠. 새론이 기침을 했다⁠.

“⁠결혼하라니까⁠.⁠”

조 회장이 말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굴착기 소리 사이로 정확하게 들어왔다⁠.

“⁠결혼하면 니 병원도 내 병원이야⁠. 내 병원 옆에서 누가 망치를 드냐⁠.⁠”

새론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담장 위의 나를 보았다⁠. 새론의 눈에 흙먼지가 들어가 있었다⁠. 새론은 눈을 비비지 않았다⁠. 비비면 우는 것처럼 보이니까⁠. 새론이 담장 밑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새론의 팔로 뛰어내렸다⁠.

*

저녁 여섯 시 정각에 망치가 멈췄다⁠. 법대로였다⁠. 망치가 멈추자 입원실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귀가 아직 울리고 있어서 다들 자기 목소리를 못 믿었다⁠.

맨 처음 입을 연 것은 시바였다⁠.

“⁠…끝났어⁠? 나 귀 있어⁠? 내 귀 아직 붙어 있어⁠?⁠”

“⁠붙어 있어⁠.⁠”

“⁠다행이다⁠. 깔때기 벗자마자 귀가 떨어지면 억울하잖아⁠.⁠”

토끼가 수건 밑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이번 기절은 진짜였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아무도 안 믿었다⁠. 진돗개가 목이 쉬어서 끄르륵거렸다⁠.

누룽지는 맨 위 칸에서 앞발로 귀를 덮고 있다가 천천히 내렸다⁠. 나는 누룽지 칸 아래 바닥에 앉았다⁠.

“⁠꼬맹이⁠. 들었지⁠? 이게 사람 세상 소리야⁠. 사람들은 이 소리를 매일 듣고 살아⁠. 사람 귀는 이걸 시끄럽다고만 해⁠. 머리통이 안 갈리거든⁠.⁠”

“⁠알아⁠.⁠”

“⁠사람 되면 너도 이걸 시끄럽다고만 하겠지⁠. 그러다 우리가 우는 소리도 그냥 시끄럽다고 하겠지⁠.⁠”

누룽지의 말 끝이 갈라졌다⁠. 망치 소리가 늙은 고양이 목에도 들어갔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 귀가 무엇을 잃는지 나는 이미 토끼 칸 앞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

자정⁠, 네 번째 울림⁠. 나흘 밤이었다⁠.

사람이 되자마자 살림집 계단 쪽문을 열었는데 계단참에 새론이 앉아 있었다⁠. 무릎에 담요를 덮고⁠, 손에는 휴대전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손전등 빛이 내 맨발에서 멈췄다⁠. 나는 셔츠만 걸치고 단추는 하나도 안 잠근 채였다⁠.

“⁠새벽에 우리 집 계단으로 왜 들어가요⁠?⁠”

새론의 목소리는 진료실 목소리였다⁠. 나는 셔츠 앞섶을 여몄다⁠.

“⁠옥상으로 나가요⁠. 비상계단으로⁠.⁠”

“⁠왜 옥상으로요⁠?⁠”

“⁠해 뜨는 거 보려고요⁠.⁠”

“⁠해 뜨는 거 보러 가는 사람이 왜 해 뜨기 전에 없어져요⁠?⁠”

“⁠…해가 뜨는 걸 보면⁠, 가야 돼서요⁠.⁠”

새론이 손전등을 껐다⁠. 계단참이 어두워졌다⁠. 사람 눈에는 어두웠다⁠. 내 눈에는 아직 새론의 얼굴이 보였다⁠.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우리 집 안에는 안 들어갔죠⁠?⁠”

“⁠안 들어갔어요⁠.⁠”

거짓말이었다⁠. 나는 아홉 해 동안 새론의 집 안에서 살았다⁠.

“⁠그럼 셔츠는 왜 우리 먹물 상자에 있어요⁠?⁠”

“⁠먹물이 물어 갔나 봐요⁠.⁠”

새론이 어둠 속에서 짧게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걔가 셔츠를 왜 물어 가요⁠?⁠”

“⁠좋아하는 냄새가 나면 물어 가요⁠. 고양이는⁠.⁠”

새론이 담요를 개켜 들고 일어났다⁠. 나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다가 멈췄다⁠.

“⁠먹물 씨⁠. 단추⁠.⁠”

“⁠못 해요⁠.⁠”

“⁠알아요⁠.⁠”

새론은 단추를 잠가 주지 않고 내려갔다⁠. 나는 계단참에 혼자 남아 단추 일곱 개를 한 시간 동안 잠갔다⁠. 마지막 단추를 끼웠을 때 맨 위 단추가 맨 아래 구멍에 들어가 있었다⁠.

*

새벽 한 시 반⁠, 새론이 대기실에 내려와 보니 나는 사료 상자 안에 있었다⁠.

대형견 사료 이십 킬로그램이 들어 있던 상자였다⁠. 사료는 실장이 창고로 옮겨 놓았고⁠, 빈 상자만 대기실 구석에 있었다⁠. 나는 상자를 보는 순간 들어가 있었다⁠.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들어갔다⁠. 무릎을 가슴까지 접고⁠, 어깨를 오므리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상자 옆구리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새론의 슬리퍼가 상자 앞에서 멈췄다⁠.

“⁠…뭐 해요⁠?⁠”

“⁠생각해요⁠.⁠”

“⁠상자 안에서요⁠?⁠”

“⁠상자 안에서 하면 잘 돼요⁠.⁠”

새론은 웃다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반지가 입술에 눌렸다⁠. 새론은 상자 옆 바닥에 앉았다⁠. 상자에는 둘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새론은 상자에 등을 기댔다⁠. 상자 벽 너머로 새론의 등이 내 무릎에 닿았다⁠.

“⁠낮에 망치 소리 들었어요⁠?⁠”

“⁠들었어요⁠.⁠”

“⁠애들 귀에는 몇 배로 들릴까요⁠? 수의대에서 배우긴 했는데⁠. 개는 사람보다 네 배쯤 멀리 듣고⁠, 고양이는 더 높은 소리까지 듣고⁠. 숫자로는 아는데⁠.⁠”

“⁠머리통 안에서 쇠를 가는 소리예요⁠.⁠”

새론이 고개를 돌려 상자 구멍으로 나를 보았다⁠.

“⁠어떻게 알아요⁠?⁠”

나는 대답 대신 상자 안에서 무릎을 더 접었다⁠. 상자가 찌익 소리를 내며 한쪽 모서리가 터졌다⁠. 새론이 이번에는 참지 않고 웃었다⁠.

*

이틀째 밤⁠, 나는 동교로 고깃집 앞으로 갔다⁠. 경비 아저씨가 회장님 단골집이라고 알려 준 집이었다⁠. 새벽 한 시⁠, 가게 앞에 검은 세단이 서 있고⁠, 대리기사가 세단 옆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십 줄의 남자였다⁠. 점퍼 등판에 「⁠대리운전⁠」 글씨가 갈라져 있었다⁠.

“⁠회장님 기다리세요⁠?⁠”

대리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회장님 아는 사람이야⁠?⁠”

“⁠병원 사람이에요⁠. 모퉁이 병원⁠.⁠”

대리기사의 얼굴이 굳었다가 풀렸다⁠. 담배를 꺼내다가 도로 넣었다⁠.

“⁠그 병원이구나⁠. 나 회장님 차 일 년째 몰아⁠. 회장님이 뒷자리에서 맨날 통화해⁠. ‘⁠이월 말까지 땅 다 묶어야 된다⁠. 안 그러면 대주단이 돈 끊는다⁠.⁠’ 이월 말이 만기래⁠. 공사비 빌린 거⁠.⁠”

“⁠만기가 지나면요⁠?⁠”

“⁠회사가 넘어가지⁠. 요새 그렇게 넘어간 회사 많아⁠. 뉴스 봐⁠, 맨날 나와⁠.⁠”

대리기사가 점퍼 지퍼를 턱까지 올렸다⁠.

“⁠나도 원래 대연 하청이었어⁠. 철근⁠. 재작년에 다른 현장이 엎어져서 대금 못 받고 망했지⁠. 대연 망하면 나 같은 놈이 또 백 명 나와⁠. 그 병원 원장한테 나쁜 감정은 없어⁠. 근데 이월 말은 이월 말이야⁠.⁠”

고깃집 문이 열리고 조 회장이 나왔다⁠. 얼굴이 붉었다⁠. 대리기사가 얼른 운전석 문을 열었다⁠. 나는 전봇대 그늘로 물러났다⁠. 조 회장은 차에 타기 전에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믐이라 달이 없었다⁠. 회장은 달이 없는 하늘을 오래 보았다⁠.

*

새벽 네 시⁠, 새론이 숲길을 걷자고 했다⁠. 망치 소리가 귀에서 안 빠진다고 했다⁠.

경의선 숲길은 옛 철길을 덮어 만든 길이었다⁠. 겨울밤의 숲길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른 억새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 멀리 큰길에서 택시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 새론의 운동화가 얼어붙은 흙을 밟는 소리⁠. 나는 원장님 코트를 입고 있었다⁠. 새론이 옷장 자물쇠를 풀고 꺼내 준 것이었다⁠.

새론이 벤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로등 하나가 꺼져 있어서 벤치는 반쯤 어두웠다⁠.

“⁠먹물 씨⁠.⁠”

새론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홉 해 동안 내가 올려다보던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새론의 입김이 내 턱밑에 닿았다⁠. 따뜻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새론의 속눈썹에 앉은 서리가 보였다⁠. 새론이 눈을 감았다⁠.

입술이 닿기 직전에 새론이 고개를 돌렸다⁠. 내 입술이 새론의 귀밑머리에 닿았다⁠. 새론의 귀가 차가웠다⁠.

“⁠나 약혼했어요⁠.⁠”

“⁠알아요⁠.⁠”

“⁠알면서⁠…⁠”

“⁠반지 냄새도 알아요⁠. 재채기 약 냄새⁠.⁠”

새론이 웃음과 울음 사이의 소리를 냈다⁠. 반지 낀 손으로 내 코트 깃을 쥐었다⁠. 쥐었다가 놓았다⁠.

*

해가 오기 삼십 분 전⁠, 새론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우겸이었다⁠. 새론이 스피커를 켜지 않았는데도 나는 다 들었다⁠.

“⁠새론 씨⁠, 자요⁠? 철거 멈췄어요⁠. 아버지한테 말해서 입원실 벽 붙은 데는 설 지나서 하기로 했어요⁠. 망치는 오늘부터 안 들어요⁠.⁠”

새론이 숨을 내쉬었다⁠. 고맙다는 말이 입술까지 왔다⁠.

“⁠대신 하나만 들어줘요⁠.⁠”

우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재채기는 하지 않았다⁠. 고양이 털이 없는 곳에서 우겸의 목소리는 이렇게 맑았다⁠.

“⁠그 야간 선생님⁠, 내보내요⁠.⁠”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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