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09자)

입원장 마흔 칸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동짓달 보름 낮⁠, 새론이 쇼핑백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실장이 대기실 접수대에서 고개를 쭉 뺐다⁠.

“⁠원장님⁠, 남자 옷이네요⁠? 우겸 씨 거예요⁠?⁠”

“⁠아니요⁠.⁠”

“⁠그럼 누구 거예요⁠? 사이즈가 우겸 씨보다 한 치수 커요⁠. 소매가 길어요⁠. 이거 팔 긴 사람 거예요⁠.⁠”

실장은 쇼핑백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벌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새론이 쇼핑백을 등 뒤로 돌렸다⁠. 나는 접수대 위에서 꼬리를 감고 앉아 둘을 번갈아 보았다⁠. 셔츠 냄새가 났다⁠. 새 천의 풀 냄새와 가게 향초 냄새⁠. 단추가 일곱 개 달린 셔츠였다⁠. 나는 벌써부터 셔츠가 미웠다⁠.

“⁠야간 돌봄 선생님 거예요⁠. 아빠 옷만 입고 다니셔서⁠.⁠”

“⁠야간 돌봄을 언제 뽑았어요⁠? 저한테 말도 없이⁠? 월급은요⁠?⁠”

“⁠밥으로 드려요⁠.⁠”

실장이 입을 벌린 채 새론을 보았다⁠. 새론은 쇼핑백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실장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얘⁠, 먹물아⁠. 너희 원장님 지금 얼굴 빨간 거 봤니⁠?⁠”

봤다⁠. 귀까지 빨갰다⁠.

*

자정⁠, 세 번째 울림이 왔다⁠. 이번에는 사흘 밤이었다⁠.

나는 입원실 불을 하나만 켜고 마흔 칸을 차례로 돌았다⁠. 새론이 차트 묶음을 주며 시킨 일이었다⁠. 물그릇 채우기⁠, 배변 패드 갈기⁠, 숨소리 듣기⁠. 사람 손으로 하니 고양이로 구경만 하던 일이 다르게 보였다⁠. 배변 패드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물그릇은 생각보다 자주 엎어졌다⁠.

칸마다 철창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진돗개 칸에는 「⁠백구 — 보호자 연락 두절⁠, 석 달⁠」 늙은 푸들 칸에는 「⁠심장병 — 하루 두 번 약⁠」 고양이 삼 남매 칸에는 「⁠길에서 구조⁠, 귀 진드기⁠」 이름표 열여덟 장 귀퉁이에 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새론이 찍은 점이었다⁠. 데리러 올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어이⁠, 야간 돌봄⁠.⁠”

깔때기를 벗은 시바가 철창에 코를 박았다⁠. 깔때기를 벗고 나니 얼굴이 생각보다 작았다⁠.

“⁠너 진짜 먹물이지⁠? 아까 원장님 셔츠 산 거 네 거지⁠? 단추 일곱 개던데⁠.⁠”

“⁠알아⁠.⁠”

“⁠너 단추 못 하잖아⁠.⁠”

“⁠알아⁠.⁠”

거북이 칸 앞을 지날 때 거북이가 목을 길게 뺐다⁠. 거북이는 언제나 하루 늦게 대답한다⁠.

“⁠…어제 네가 물어본 거⁠. 배 안 고프냐고⁠. 안 고파⁠.⁠”

“⁠고마워⁠.⁠”

토끼 칸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토끼가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입이 오물오물 움직이고 귀가 앞뒤로 돌았다⁠. 그런데 소리가 멀었다⁠. 물속에서 누가 말하는 소리 같았다⁠. 나는 철창에 귀를 바짝 댔다⁠. 들리기는 했다⁠. “⁠…추워⁠… 이불⁠…⁠” 낱말이 반쯤 빠져서 왔다⁠.

지난 그믐까지는 토끼의 잔소리가 귀를 따갑게 할 만큼 또렷했다⁠. 나는 내 귀를 만져 보았다⁠. 둥글고 납작한 사람 귀였다⁠. 바깥으로 돌릴 수도 없고⁠, 세울 수도 없는 귀⁠.

코트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원장님의 청진기를 꺼냈다⁠. 귀꽂이를 꽂고 쇠 판을 토끼 칸 철창 사이로 넣어 토끼의 등에 댔다⁠. 토끼가 몸을 움츠렸다가 가만히 있었다⁠. 쇠 판 너머에서 작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심장 소리 위로 목소리가 고무관을 타고 올라왔다⁠.

“⁠차가워⁠, 이거⁠. 근데 이불 좀 줘⁠. 바닥이 차⁠.⁠”

이번에는 또렷했다⁠. 나는 토끼 칸에 수건 한 장을 더 넣어 주었다⁠. 토끼가 수건 속으로 파고들며 기절하지 않았다⁠. 토끼가 기절하는 척을 안 한 것은 처음이었다⁠.

*

새벽 한 시⁠, 입원실 문이 열렸다⁠. 실장이었다⁠. 재고 조사를 핑계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냄새로 알았다⁠. 실장의 패딩에서 대기실 소파 냄새가 났다⁠. 소파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 냄새였다⁠.

“⁠아⁠, 야간 선생님⁠. 처음 뵙네요⁠.⁠”

실장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보고⁠, 냄새를 맡고⁠, 맨 나중에 잡았다⁠. 순서를 뒤집어야 했다는 것을 실장의 눈썹을 보고 알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수의 간호 공부하셨어요⁠? 동물병원 경력은요⁠? 성은요⁠? 먹물 씨라던데 먹씨예요⁠?⁠”

“⁠…묻는 게 많으시네요⁠.⁠”

“⁠궁금한 걸 못 참아요⁠. 하루 넘게 참아 본 적이 없어요⁠.⁠”

실장이 패딩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고양이 장난감 레이저 포인터였다⁠. 실장은 아무렇지 않게 포인터를 켜서 입원실 바닥에 빨간 점을 굴렸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빨간 점을 보았고⁠, 무릎이 굽었고⁠, 엉덩이가 들썩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닥에 손바닥을 짚고 엎드려 있었다⁠. 빨간 점은 내 손등 위에 있었다⁠. 실장이 포인터를 끄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 키우세요⁠?⁠”

“⁠어릴 때부터요⁠.⁠”

“⁠아니면 고양이세요⁠?⁠”

실장이 웃었다⁠. 농담이었다⁠. 나는 따라 웃었다⁠. 웃음이 반 박자 늦었다⁠.

실장은 포인터를 주머니에 넣고 철창에 등을 기댔다⁠. 웃음기가 빠지자 목소리가 낮아졌다⁠.

“⁠선생님⁠. 원장님 약혼한 거 알죠⁠?⁠”

“⁠알아요⁠.⁠”

“⁠아는데 원장님 볼 때 왜 눈을 그렇게 떠요⁠? 천천히 감았다가 천천히 뜨잖아요⁠. 아까 셔츠 받을 때도 그랬어요⁠.⁠”

나는 몰랐다⁠. 고양이는 좋아하는 상대를 보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뜬다⁠. 사람 얼굴에도 고양이 버릇이 남아 있었다⁠.

“⁠고양이가 그러면⁠,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저 이 일 이십 년 했어요⁠.⁠”

*

이튿날 밤⁠, 나는 새론의 귤 상자에서 귤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블록 모퉁이로 갔다⁠. 대연 개발이 사 둔 빈 다세대 옆에 공사 현장 사무실 컨테이너가 있었다⁠. 창문에 김이 서려 있었고⁠, 안에서 휴대전화로 트로트를 트는 소리가 났다⁠.

경비 아저씨는 귤을 보고 문을 열었다⁠. 혼자 밤을 새우는 사람에게 귤 다섯 개는 큰 손님이었다⁠.

“⁠병원 사람이구먼⁠. 원장님 귤이지⁠? 그 집 귤 맛있어⁠. 원장 아버지 때부터 상자로 사다 놓더라⁠.⁠”

난로 위에서 주전자가 끓었다⁠. 아저씨가 종이컵에 보리차를 따라 주었다⁠. 김이 올라왔다⁠. 나는 종이컵을 받아 들고 컵 위에서 오래 숨을 불었다⁠. 아저씨가 웃었다⁠.

“⁠고양이 혀네⁠, 총각⁠.⁠”

“⁠네⁠.⁠”

“⁠회장님이 요새 밤마다 와⁠. 와서 차 세워 놓고 병원만 쳐다보다 가⁠. 열네 필지 중에 열셋을 샀거든⁠. 큰길에 붙은 건 병원 하나야⁠.⁠”

“⁠큰길에 붙은 게 왜요⁠?⁠”

아저씨는 귤을 까서 반을 내게 주었다⁠. 손가락으로 컨테이너 벽에 붙은 지도를 짚었다⁠. 블록 안쪽은 꼬불꼬불한 골목뿐이었고⁠, 큰길에 닿은 모퉁이 하나에만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안쪽은 다 골목이라 소방차가 못 들어가⁠. 큰 아파트를 지으려면 큰길로 나는 입구가 있어야 허가가 나⁠. 그 입구 자리가 병원이야⁠. 병원 없으면 열세 필지가 그냥 골목 땅이지⁠.⁠”

라디오에서 새벽 뉴스가 트로트를 끊었다⁠.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지 않기로 … 국내 건설사 자금줄 경색⁠」 아저씨가 혀를 찼다⁠.

“⁠저런 뉴스 나오는 날은 회장님이 더 오래 쳐다봐⁠.⁠”

나는 지도 위의 빨간 동그라미를 보았다⁠. 내가 아홉 해를 산 건물은 지도 위에서 손톱만 했다⁠.

*

이튿날 낮⁠, 우겸이 진료실에 왔다⁠.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서류 봉투가 있었다⁠. 나는 창틀에 엎드려 햇볕을 쬐는 척을 했다⁠.

“⁠아버지가 상견례를 섣달 보름으로 잡으셨어요⁠. 그 자리에서 새론 씨가 서명할 서류가 있대요⁠. 땅 쓰는 걸 동의한다는 서류요⁠. 결혼 전에⁠.⁠”

“⁠결혼 전에요⁠? 결혼하면 없던 일로 해 준다면서요⁠.⁠”

“⁠빚은요⁠. 땅은 따로래요⁠.⁠”

새론이 서류 봉투를 열지 않고 진료대에 내려놓았다⁠. 우겸이 마스크를 고쳐 썼다⁠.

“⁠그리고⁠, 새론 씨⁠. 그 야간 선생님⁠. 누구예요⁠? 신원 확인은 했어요⁠? 주민등록번호⁠, 주소⁠, 경력⁠, 하나라도요⁠.⁠”

“⁠애들이 그 사람을 좋아해요⁠.⁠”

“⁠애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들여요⁠?⁠”

우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높아졌다가 재채기에 끊겼다⁠. 우겸은 휴지로 코를 누르고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낮게⁠.

“⁠새론 씨는 그래서 병원이 이렇게 된 거예요⁠. 데려오는 애는 다 받고⁠, 못 내는 치료비는 다 미루고⁠, 맡겨 놓고 전화 끊은 사람 개까지 석 달씩 먹이고⁠. 저는 그게 좋아서 새론 씨를 좋아했어요⁠. 근데 숫자는 그걸 안 봐줘요⁠.⁠”

새론이 진료대 모서리를 손으로 짚었다⁠. 손끝이 하얘졌다⁠.

“⁠네⁠. 그래서 이렇게 됐어요⁠. 그래서 우겸 씨랑 결혼하는 거고요⁠.⁠”

진료실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모터만 울었다⁠. 우겸이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마스크 위의 눈이 빨갰다⁠.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겸이 나가고 나서도 새론은 한참 진료대를 짚고 있었다⁠. 나는 창틀에서 내려와 새론의 발등에 몸을 비볐다⁠. 새론이 쪼그려 앉아 나를 안았다⁠. 내 털에 얼굴을 묻지는 않았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생각해서 새론은 요즘 나를 안고 나서 꼭 옷을 털었다⁠. 이날은 털지 않았다⁠.

*

사흘째 밤 자정⁠, 사람이 되어 입원실로 내려가자 누룽지가 맨 위 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룽지는 내가 목에 두른 청진기를 보았다⁠.

“⁠그건 뭐야⁠. 원장 영감 거잖아⁠.⁠”

“⁠귀가 좀 멀어서⁠.⁠”

“⁠벌써⁠?⁠”

누룽지의 말은 아직 또렷했다⁠. 열여섯 해를 같이 산 목소리는 토끼 목소리보다 늦게 멀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누룽지 칸 앞에 쪼그려 앉아 쇠 판을 철창 사이로 넣었다⁠. 누룽지가 고개를 돌렸다⁠.

“⁠대지 마⁠. 차가워⁠.⁠”

“⁠한 번만⁠.⁠”

누룽지는 대답 대신 옆구리를 철창에 붙였다⁠. 쇠 판 너머에서 늙은 심장이 뛰었다⁠. 고르지 않았다⁠. 세 번 뛰고 한 번 쉬었다⁠. 새론이 차트에 「⁠부정맥⁠, 경과 관찰⁠」이라고 적어 둔 것을 나는 낮에 보았다⁠. 글자로 볼 때는 몰랐다⁠. 귀로 들으니 알았다⁠. 누룽지의 심장은 쉬어 가며 뛰었다⁠.

“⁠들려⁠?⁠”

“⁠응⁠.⁠”

“⁠거봐⁠. 사람 되면 이런 걸 기계로 들어야 돼⁠. 고양이일 때는 그냥 들리는 걸⁠.⁠”

누룽지가 옆구리를 떼고 칸 안쪽으로 돌아누웠다⁠. 꼬리로 코를 덮었다⁠. 나는 청진기를 목에 건 채 한참 누룽지의 등을 보았다⁠. 등이 숨을 따라 오르내렸다⁠. 세 번 오르고⁠, 한 번 쉬었다⁠.

*

사흘째 밤이 끝나 갈 무렵⁠, 나는 일곱 개짜리 단추 셔츠를 입고 옥상에 새론과 앉아 있었다⁠. 단추는 새론이 잠가 주었다⁠. 내가 셔츠를 입은 채 단추 구멍과 십 분을 싸우는 것을 보다가⁠, 새론이 말없이 다가와 맨 아래 단추부터 하나씩 끼웠다⁠. 새론의 손가락이 단추를 밀어 넣을 때마다 셔츠 천 너머로 손가락 마디가 내 배에 닿았다⁠. 새론의 숨이 내 턱밑에서 하얗게 흩어졌다⁠. 일곱 번째 단추에서 새론의 손이 멈췄다⁠. 목 바로 아래였다⁠.

“⁠보름마다 어디 가요⁠?⁠”

“⁠멀리 안 가요⁠.⁠”

“⁠어디요⁠?⁠”

“⁠아주 가까이요⁠.⁠”

새론이 일곱 번째 단추를 끼우고 손을 거뒀다⁠. 손을 거두고 나서 자기 손가락의 반지를 보았다⁠. 우리는 귤을 하나씩 까먹고 해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해가 오기 십 분 전에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

아침 여덟 시 반⁠, 실장이 진료실 컴퓨터 앞에서 새론을 불렀다⁠. 나는 컴퓨터 옆 프린터 위에서 식빵 자세로 졸고 있었다⁠. 프린터는 따뜻했다⁠.

“⁠원장님⁠, 이거 좀 보세요⁠. 살림집 계단 입구 카메라요⁠.⁠”

화면에 오늘 새벽이 흑백으로 흘렀다⁠. 다섯 시 오십 분⁠, 셔츠를 입은 남자가 비상계단 아래 쪽문으로 들어와 살림집 계단을 올라갔다⁠. 실장이 화면을 빨리 감았다⁠. 여섯 시⁠, 여섯 시 반⁠, 일곱 시⁠. 계단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일곱 시 십 분⁠, 계단 문이 열리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내려왔다⁠.

실장이 화면을 멈췄다⁠. 화면 속의 고양이가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원장님⁠. 이 남자⁠, 원장님 집에 살아요⁠?⁠”

새론이 화면을 보았다⁠. 이어서 프린터 위의 나를 보았다⁠.

나는 졸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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