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01자)

야간 돌봄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아침 아홉 시⁠, 새론이 나를 진료대에 올렸다⁠.

“⁠먹물이 요새 왜 이렇게 자⁠? 어제 열네 시간 잤어요⁠. 밥도 반밖에 안 먹고⁠.⁠”

“⁠밤에 나가 노는 거예요⁠, 얘⁠. 수컷이잖아요⁠.⁠”

간호 실장이 내 앞발을 잡았다⁠. 새론이 체온계를 들었다⁠. 나는 체온계가 어디로 들어오는지 알았다⁠. 아홉 해 동안 알았다⁠. 사람으로 이틀 밤을 지내고 나니 이번에는 더 억울했다⁠. 새론에게 컵라면 국물을 얻어먹은 남자가⁠, 지금 진료대 위에서 꼬리를 들리고 있었다⁠.

“⁠삼십팔 도 오⁠. 정상이네⁠.⁠”

새론이 체온계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진료대에서 뛰어내려 약장 뒤로 들어갔다⁠. 고양이에게도 체면이 있다⁠.

*

반지하 입원실 맨 위 칸에서 누룽지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꼬리 끝만 까딱거렸다⁠.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어젯밤에 원장이랑 라면 먹었다며⁠. 시바가 다 떠들었어⁠.⁠”

“⁠면이 다 불었어⁠.⁠”

“⁠그 얘기가 아니잖아⁠.⁠”

누룽지가 몸을 돌렸다⁠. 뒷다리를 끄는 소리가 철판 위에서 사각거렸다⁠. 누룽지는 열여섯 해를 살았다⁠. 새끼 때 한 해를 빼고는 다 이 반지하에서 살았다⁠. 원장님이 처음 거뒀을 때도 뒷다리를 끌었다고 했다⁠.

“⁠꼬맹이⁠. 결혼 막을 생각이지⁠?⁠”

“⁠막는 게 아니야⁠. 나는 대보름 이레째 아침에 사람으로 남을 거야⁠.⁠”

“⁠같은 말이야⁠.⁠”

누룽지의 수염이 앞으로 뻗었다⁠.

“⁠그 결혼 깨지면 여기 마흔이 길바닥이야⁠. 나도 거기 들어가⁠. 보호소 공고 열흘이면 나 같은 늙은이가 제일 먼저 간다⁠. 뒷다리 끄는 열여섯 살 치즈를 누가 데려가⁠? 그 영감 말 들었지⁠? 개는 모른대⁠. 고양이는 더 모르겠지⁠.⁠”

“⁠알아⁠.⁠”

“⁠아는데 해⁠?⁠”

“⁠새론이 그 남자 옆에서 숨을 늦게 쉬어⁠. 웃을 때도 늦게 쉬어⁠.⁠”

“⁠사람은 원래 숨을 늦게 쉬어⁠. 덩치가 크니까⁠.⁠”

“⁠어젯밤엔 안 늦었어⁠. 나랑 라면 먹을 때는⁠.⁠”

누룽지가 오래 나를 보았다⁠. 그러다 철창 바닥에 턱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되면 우리를 잊어⁠. 떡집 놈도 그랬어⁠. 마지막 날 밤에 우리한테 와서 안 잊는다고 했지⁠. 다음 날부터 골목에 안 왔어⁠. 너도 똑같은 소리 하고 있다⁠.⁠”

건너편 칸에서 깔때기 쓴 시바가 끼어들었다⁠. 시바는 중성화 수술을 하고 깔때기를 쓴 지 엿새째였고⁠, 엿새 내내 남의 말에 끼어들었다⁠.

“⁠나는 먹물 편⁠. 사람 되면 깔때기 좀 벗겨 줘⁠.⁠”

“⁠너는 빠져⁠.⁠”

누룽지와 내가 동시에 말했다⁠. 시바가 깔때기 안에서 귀를 접었다⁠. 앵무새가 횃대 위에서 고개를 갸웃하더니 낮에 들은 실장 목소리를 흉내 냈다⁠. “⁠얘⁠, 조용히 해⁠!⁠” 입원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철창 사이로 앞발을 넣어 누룽지의 이마를 눌렀다⁠. 누룽지는 피하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늙은 고양이는 대답 대신 눈을 감는다⁠.

*

자정에 사람이 되자마자 나는 골목으로 나갔다⁠.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세탁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새벽 한 시에 세탁소 할아버지가 다리미판을 접어 노끈으로 묶고 있었다⁠. 가게 바닥에 종이 상자가 열댓 개 쌓여 있었다⁠. 다리미 냄새와 낡은 옷걸이의 쇠 냄새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유리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손가락 마디로⁠.

“⁠문 닫았어요⁠.⁠”

“⁠짐 나르는 거 도와 드릴게요⁠.⁠”

할아버지가 돋보기 너머로 나를 훑었다⁠. 형광 연두색 조끼에 체크무늬 잠옷 바지⁠, 짝이 다른 양말⁠.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병원 분실물 상자 털었구먼⁠. 그 조끼 내가 봤어⁠. 등산 가던 양반이 고양이 주워서 병원에 맡기고 간 거⁠.⁠”

“⁠…네⁠.⁠”

“⁠들어와⁠. 저 상자 셋만 저쪽으로 옮겨⁠.⁠”

상자는 무거웠다⁠. 사람 팔은 상자를 들 수 있게 생겼는데 고양이 머리로는 들 줄을 몰랐다⁠. 상자를 두 번 떨어뜨리고서야 무릎을 굽히고 드는 법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다리미판 옆 의자에 앉아 내가 상자와 씨름하는 것을 구경했다⁠. 구경하며 웃었다⁠.

“⁠왜 파셨어요⁠?⁠”

“⁠마흔 해 했어⁠. 무릎이 나갔고⁠. 아들 놈이 사는 일산에 방 하나 얻었지⁠. 대연이 이주비 준다는데⁠, 저 모퉁이 병원 하나 때문에 블록이 다 묶였다더라⁠. 다 팔았는데 그 집 하나가 안 팔아서⁠.⁠”

“⁠병원이 미우세요⁠?⁠”

할아버지가 의자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오래 생각하는 손이었다⁠.

“⁠원장 아버지가 우리 똥개 다리를 공짜로 고쳐 줬어⁠. 이십 년 전이야⁠. 밉긴⁠. 근데 나는 이달 안에 이주비 받아야 일산 방 보증금을 내⁠.⁠”

할아버지는 노끈 끝을 이로 끊었다⁠. 텔레비전에서 새벽 뉴스가 떠들었다⁠. 「⁠정부⁠, 건설 공사비 대출 만기 연장 지원 … 지방 미분양 우려⁠」 할아버지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총각은 어디 살아⁠?⁠”

“⁠저 모퉁이요⁠.⁠”

“⁠병원에⁠?⁠”

“⁠…이층에요⁠.⁠”

할아버지가 웃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세탁소를 나와 골목을 돌자 국밥집 앞에 국밥집 사장이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스물네 시간 문을 여는 집이라 새벽 두 시에도 솥에서 뼈 고는 냄새가 났다⁠. 고양이 코에는 천국의 냄새였다⁠. 사람 코에도 천국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코를 벌름거렸다⁠.

“⁠배고프면 들어와⁠. 한 그릇 팔천 원⁠.⁠”

“⁠돈이 없어요⁠.⁠”

“⁠그럼 냄새만 맡고 가⁠.⁠”

사장이 연기를 길게 뿜었다⁠. 앞치마에 국물 얼룩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다⁠.

“⁠총각⁠, 병원 사람이야⁠? 그 조끼 병원 거잖아⁠. 원장 결혼한다며⁠? 잘됐네⁠. 대연 집 며느리 되면 그 땅 팔겠지⁠. 그 집 하나 팔면 우리 블록 열세 집이 다 산다⁠. 나 이 가게 이주비로 딸내미 대학 등록금 내야 돼⁠.⁠”

사장은 담배를 국밥 깍두기 그릇에 비벼 끄고 가게로 들어갔다⁠. 유리문이 닫히고 냄새가 끊겼다⁠. 새론의 결혼을 기다리는 사람이 골목에 하나 더 있었다⁠.

*

새벽 두 시 반⁠, 진료실에 들어가자 새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탁자 위에 남자 스웨터와 바지가 개켜져 있었다⁠. 회색 털실 스웨터는 팔꿈치가 해져 있었고⁠, 바지는 무릎이 나와 있었다⁠.

“⁠분실물 옷 그만 입어요⁠. 아빠 거예요⁠. 코트만 남겨 두고 다 버린 줄 알았는데 옷장 위 칸에 있었어요⁠.⁠”

나는 스웨터를 들었다⁠. 원장님 냄새가 났다⁠. 새론의 냄새도 났다⁠. 새론이 이걸 꺼내서 개기까지 한참을 들고 있었다는 것을 냄새가 말해 주었다⁠.

스웨터에 머리를 넣는 데는 한 번에 성공했다⁠. 단추가 없는 옷은 고양이 편이었다⁠. 새론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 동안 바지를 입었다⁠. 이번에는 앞뒤가 맞았다⁠.

새론이 돌아보았다⁠. 원장님 스웨터를 입은 나를 오래 보았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아빠가 그 스웨터를 입고 우리 먹물을 데려왔어요⁠. 아홉 해 전에⁠, 비 오는 날⁠. 병원 앞에 누가 귤 상자를 놓고 갔는데⁠, 안에 젖은 새끼 고양이가 있었대요⁠. 아빠가 스웨터 배에다 넣고 들어왔어요⁠. 털이 먹물처럼 까매서⁠, 제가 이름을 붙였고요⁠. 그때 저 수의대 다녔는데⁠, 먹물이 제 해부학 노트에 엎어져서 잉크를 다 번지게 했거든요⁠.⁠”

나는 스웨터 배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거기서 왔다⁠. 귤 상자에서⁠, 비에서⁠, 이 털실 속으로⁠. 몰랐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만 새론의 입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양이에게는 아무도 고양이가 어디서 왔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

“⁠먹물 씨는 그 이름 어디서 났어요⁠?⁠”

“⁠…주워 준 사람이 지어 줬어요⁠.⁠”

새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또 농담인 줄 알았다⁠.

진돗개는 하룻밤 사이에 사료를 반 그릇 먹었다고 했다⁠. 새론이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발작은 다시 오지 않았다⁠. 내가 철창 앞에 쪼그려 앉자 진돗개가 코끝으로 내 손가락을 밀었다⁠.

“⁠목 고친 놈이다⁠.⁠”

“⁠아직 못 고쳤어⁠.⁠”

“⁠그래도 냄새는 고양이야⁠. 웃기는 놈⁠.⁠”

진돗개의 말은 어젯밤처럼 또렷했다⁠. 새론에게는 개가 낑낑대는 소리였다⁠. 새론은 개와 내가 서로 코를 대고 있는 것을 보며 볼펜 끝을 깨물었다⁠.

*

새벽 세 시에 대기실 유리문이 열렸다⁠. 우겸이었다⁠.

정장 위에 패딩을 걸쳤고⁠, 넥타이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고⁠,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전복죽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우겸은 현관에서 알약을 삼키다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은 새론과 나를 보았다⁠.

나는 죽 숟가락을 입 앞에 들고 있었다⁠. 새론이 데워 준 남은 죽이었다⁠. 오 분째 불고 있었다⁠. 새론은 내가 부는 것을 보며 웃고 있었다⁠. 우겸이 문을 열었을 때 새론의 웃음이 반쯤 남아 있었다⁠.

“⁠…아⁠.⁠”

우겸의 눈이 나를 알아보았다⁠.

“⁠고양이 잘 아시는 분⁠.⁠”

새론이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나와 우겸 사이로 반 걸음 들어왔다⁠.

“⁠새로 온 야간 돌봄 선생님이에요⁠. 밤에 입원실 봐 주시는⁠.⁠”

새론의 목소리는 진료할 때보다 반 박자 빨랐다⁠. 나는 귀를 세웠다⁠. 사람의 거짓말은 귀로 들으면 빨리 감은 테이프 소리가 난다⁠. 새론은 아홉 해 동안 나한테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체온계 들고 “⁠하나도 안 아파⁠”라고 한 것만 빼고⁠.

우겸이 비닐봉지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재채기를 두 번 했다⁠. 마스크를 고쳐 쓰고 나를 보았다⁠.

“⁠선생님⁠, 야간 돌봄 월급은 누가 드려요⁠?⁠”

“⁠…⁠”

“⁠이 병원 수납 넉 달째 마이너스예요⁠. 새론 씨는 말 안 해도 저는 알아요⁠. 회사에서 이 건물 숫자를 매일 보거든요⁠.⁠”

우겸의 휴대전화가 주머니에서 떨었다⁠. 우겸은 화면을 힐끗 보고 엎었다⁠. 화면에 「⁠대주단⁠」이라는 글자가 지나갔다⁠. 대연 개발에 공사비를 빌려준 금융회사들을 우겸은 그렇게 불렀다⁠. 새벽 세 시에도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었다⁠.

“⁠새론 씨⁠. 저보다 이 병원 걱정을 더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좋아요⁠. 진짜로요⁠. 근데 그 사람이 새벽 세 시에 맨발로 골목을 다니는 사람이면 곤란해요⁠.⁠”

“⁠맨발 아니에요⁠. 오늘은 양말 신었어요⁠.⁠”

내가 발을 들어 보였다⁠. 한 짝은 곰돌이⁠, 한 짝은 줄무늬⁠. 새론이 입술을 깨물었다⁠. 우겸은 웃지 않았다⁠. 웃지 않으려고 코를 찡그렸다가 재채기를 했다⁠.

“⁠죽 식기 전에 드세요⁠, 새론 씨⁠.⁠”

우겸이 문을 열다 말고 돌아보았다⁠.

“⁠선생님은 식혀서 드시고요⁠.⁠”

유리문이 닫혔다⁠. 차 문 닫히는 소리가 골목에서 났다⁠. 엔진 소리는 한참 뒤에야 났다⁠. 우겸은 차 안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핸들에 이마가 닿는 소리⁠, 길게 내쉬는 숨까지 나는 다 들었다⁠.

*

새론은 대기실 의자에 도로 앉았다⁠. 반지를 돌렸다⁠. 한 바퀴⁠, 반 바퀴⁠.

“⁠왜 거짓말했지⁠, 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숟가락의 죽은 다 식어 있었다⁠. 한 입 먹었다⁠. 전복 냄새가 혀에 붙었다⁠. 사람 혀는 맛을 오래 쥐고 있었다⁠. 고양이 혀는 맛보다 온도를 먼저 쥔다⁠.

새론이 휴지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적어 내 앞에 밀었다⁠. 「⁠야간 돌봄⁠. 자정부터 아침까지⁠. 월급 없음⁠. 밥 있음⁠. 식혀서⁠.⁠」

“⁠진짜로 해요⁠.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면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해요⁠.⁠”

“⁠내일 밤도 와요⁠?⁠”

“⁠보름 뒤에요⁠.⁠”

새론이 고개를 들었다⁠.

“⁠보름이요⁠? 왜요⁠?⁠”

“⁠일이 그래요⁠.⁠”

“⁠보름마다 오는 야간 돌봄이 어딨어요⁠?⁠”

“⁠여기요⁠.⁠”

동쪽 창이 묽어지고 있었다⁠. 나는 원장님 스웨터를 입은 채로 비상계단을 내려갔고⁠, 계단 끝에서 스웨터 속에 고양이로 엎어졌다⁠. 이번에는 새론이 쫓아오지 않았다⁠.

아침 일곱 시 반⁠, 새론이 이층으로 올라와 베개 위에 엎드린 나를 보았다⁠. 새론은 침대에 걸터앉아 내 등에 손을 얹었다⁠. 빗질하는 손이 아니었다⁠. 그냥 얹어 둔 손이었다⁠.

“⁠먹물아⁠. 나 오늘 우겸 씨한테 거짓말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너만 알아⁠.⁠”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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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10.31· 3화

    체온계 장면에서 소리 내서 웃었어요. 고양이에게도 체면이 있다는 말 너무 좋아요.

    • 연가비작가2026.10.31

      먹물이 제일 억울해한 장면이라 저도 쓰면서 많이 웃었어요.

야간 돌봄 ·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