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563자)

산소방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정월 초사흘⁠, 누룽지가 산소방에서 맨 위 칸으로 돌아왔다⁠.

뒷다리는 전보다 더 끌렸다⁠. 대신 사료를 한 그릇 다 먹었다⁠. 새론은 누룽지 칸 문을 잠그지 않았다⁠. 밤에 입원실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라고 차트에 적었다⁠. 「⁠노령⁠, 신부전 회복기⁠. 활동 자유⁠. 걸쇠 주의⁠.⁠」 걸쇠가 무엇을 주의하라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누룽지가 산소방 문 걸쇠를 앞발로 건드리다 혼난 적이 있다는 것을⁠, 실장이 나중에 말해 주었다⁠.

낮이라 나는 고양이였다⁠. 맨 위 칸으로 뛰어올라 누룽지 옆에 엎드렸다⁠. 고양이 귀로 듣는 누룽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사람 귀로 들을 때는 입 모양만 보이던 목소리가⁠, 고양이 귀에는 잔소리까지 다 들렸다⁠. 나는 이 목소리를 오래 들어 두고 싶었다⁠.

“⁠떡집 영감 만났어⁠.⁠”

누룽지의 귀가 앞으로 돌아왔다⁠.

“⁠떡집 검은 고양이⁠. 사람 됐어⁠. 늙은 영감이야⁠. 아직 떡 쪄⁠.⁠”

“⁠…거짓말⁠.⁠”

“⁠시장 뒷골목에 생선 대가리 놓는 영감 알아⁠?⁠”

누룽지가 몸을 일으켰다⁠. 뒷다리가 미끄러졌다⁠. 앞발로 버텼다⁠.

“⁠생선 대가리 영감⁠. 알지⁠. 내가 거기서 컸어⁠. 원장 영감이 데려오기 전에⁠. 깨진 접시에 대가리 세 개씩⁠. 손에서 떡 냄새가 났어⁠. 쌀 찐 냄새⁠.⁠”

“⁠그 영감이 떡집 고양이야⁠.⁠”

누룽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입원실의 다른 칸들도 조용해졌다⁠. 시바도 끼어들지 않았다⁠.

“⁠열여섯 해 동안 하루도 안 빼고 놓았대⁠. 맨 처음 온 놈이 뒷다리 끄는 치즈 새끼였대⁠. 제일 많이 먹었대⁠. 영감은 애들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 다 야옹이래⁠. 그래도 놓았대⁠.⁠”

누룽지가 고개를 숙였다⁠. 앞발 사이에 코를 박았다⁠. 늙은 고양이는 울지 않는다⁠. 고양이 눈에서는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누룽지의 등이 오래 떨렸다⁠.

“⁠…나는 영감한테 고맙다고 한 번도 안 했어⁠. 사람이라서⁠. 사람한테는 말해 봐야 소용없으니까⁠.⁠”

“⁠나도 못 들을 거야⁠. 대보름 지나면⁠.⁠”

“⁠알아⁠.⁠”

누룽지가 코를 들었다⁠. 수염이 젖어 있었다⁠.

“⁠그래도 못 듣는 건 못 듣는 거야⁠, 꼬맹이⁠. 나는 네 목소리가 야옹이 되는 게 싫어⁠. 영감은 다 야옹으로 들었다며⁠. 너는 내 잔소리를 야옹으로 들을 거야⁠. 나는 그게 싫어⁠.⁠”

*

정월 열흘 동안 새론은 결혼식 준비를 했다⁠. 드레스 가봉을 다녀오고⁠, 청첩장을 보내고⁠, 하객 명단을 실장과 같이 맞췄다⁠. 실장은 드레스 가봉에 따라갔다 와서 진료실에서 한숨을 쉬었다⁠.

“⁠원장님이 드레스 입고 거울 보는데요⁠, 거울 안 보고 손만 봤어요⁠. 반지 낀 손이요⁠. 직원 언니가 신부님 웃으세요⁠, 하니까 웃었어요⁠. 웃는데 눈이 안 웃어요⁠.⁠”

실장은 진료대 바구니의 나를 내려다보았다⁠.

“⁠얘⁠, 먹물아⁠. 원장님이 요새 너랑은 말도 안 하지⁠? 너 쳐다보지도 않더라⁠. 싸웠니⁠?⁠”

싸우지 않았다⁠. 새론은 밥을 주고⁠, 빗질을 하고⁠, 약을 먹였다⁠. 무릎 옆에서 자게 두었다⁠. 다만 말을 하지 않았다⁠. 아홉 해 동안 나에게 하던 혼잣말을⁠, 새론은 정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내가 듣는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까⁠.

*

정월 대보름 저녁⁠, 실장이 부럼을 한 봉지 사 왔다⁠. 땅콩⁠, 호두⁠, 밤⁠. 대보름날 아침에 딱딱한 열매를 깨물어 한 해 부스럼을 막는 풍습이었다⁠. 아침을 놓쳐서 저녁에 깬다고 했다⁠. 실장이 호두를 깨물다 이가 시리다며 뱉었다⁠. 새론은 땅콩 하나를 깨물고 껍질을 접시에 놓았다⁠.

나는 탁자에서 굴러떨어진 호두를 앞발로 쳤다⁠. 호두가 대기실 바닥을 굴렀다⁠. 나는 쫓아갔다⁠. 다시 쳤다⁠. 호두가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실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새론은 웃지 않았다⁠. 소파 밑으로 앞발을 넣고 휘젓는 나를 오래 보았다⁠.

밤 열한 시⁠, 실장이 퇴근하자 새론이 나를 안고 반지하로 내려갔다⁠.

산소방 문 앞에서 새론이 걸음을 멈췄다⁠. 산소방 안에 내 귤 상자가 들어가 있었다⁠. 상자 안에 원장님 스웨터가 깔려 있었다⁠. 물그릇과 사료 그릇⁠, 쥐 인형도 있었다⁠. 산소 기계는 꺼져 있었다⁠. 두꺼운 문을 닫으면 바깥 소리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다⁠. 철거 망치 소리도 못 들어왔다⁠. 달의 울림이라고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

나는 새론의 팔에서 버둥거렸다⁠. 새론이 나를 꽉 안았다⁠. 새론의 심장이 내 등에 닿았다⁠. 무겁게⁠, 빨리⁠.

“⁠미안해⁠. 나는 너 고양이로 잃는 것도 싫고 사람으로 잃는 것도 싫어⁠. 근데 고양이로 잃는 건 아홉 해 해 봤잖아⁠. 아침마다 네가 내 베개에서 자고 있는 거⁠. 그거 나 다시 할 수 있어⁠.⁠”

새론이 나를 귤 상자에 내려놓았다⁠. 나는 상자에서 튀어나와 문으로 달려갔다⁠. 문이 닫혔다⁠. 걸쇠가 내려가는 소리가 철컥 났다⁠. 새론이 유리창 너머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유리창을 앞발로 긁었다⁠. 새론이 유리창에 손바닥을 댔다⁠. 내 앞발과 새론의 손바닥 사이에 두꺼운 유리 한 장이 있었다⁠.

“⁠대보름 지나면 다시 고양이로만 사는 거지⁠? 누룽지가 그랬다며⁠. 대보름 자정에 못 들으면 다시는 안 된다고⁠.⁠”

나는 유리창을 긁었다⁠. 긁는 소리가 유리 속에서 둔하게 울렸다⁠. 새론은 입술을 깨물었다⁠.

밤 열한 시 오십 분⁠, 새론이 일어났다⁠.

“⁠자정 지나고 올게⁠. 네가 긁는 소리 듣고는 못 있겠어⁠.⁠”

새론의 슬리퍼 소리가 계단을 올라갔다⁠. 진료실 문이 닫혔다⁠. 나는 산소방 유리에 이마를 대고 귀를 세웠다⁠.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냉장고 모터도⁠, 전선도⁠, 골목 바람도⁠. 고양이 귀로도 아무것도 안 들렸다⁠. 이렇게 조용한 데는 아홉 해 동안 처음이었다⁠.

*

유리창 너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누룽지였다⁠. 맨 위 칸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칸 문을 밀고⁠, 아래 칸 지붕으로⁠, 다시 한 칸 아래 지붕으로⁠. 뒷다리가 미끄러질 때마다 앞발로 철창을 붙들었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동안 나는 숨을 쉬지 못했다⁠. 바닥에서 산소방까지는 일곱 걸음이었다⁠. 누룽지는 뒷다리를 끌며 일곱 걸음을 왔다⁠.

산소방 문 걸쇠는 사람 허리 높이에 있었다⁠. 길쭉한 쇠 손잡이를 아래로 누르면 문이 열렸다⁠.

누룽지가 뛰었다⁠. 앞발이 손잡이에 닿기 전에 떨어졌다⁠. 엉덩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꼬리를 한 번 털었다⁠. 다시 뛰었다⁠. 이번에는 앞발 하나가 손잡이를 스쳤다⁠. 떨어졌다⁠. 앞발 끝에서 피가 났다⁠. 발톱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누룽지⁠, 하지 마⁠!⁠”

문틈이 없어서 내 소리는 안 나갔다⁠. 누룽지는 듣지 못했다⁠. 들었어도 안 멈췄을 것이다⁠.

입원실의 다른 칸들이 일어났다⁠. 시바가 철창에 머리를 박았다⁠. 진돗개가 짖었다⁠. 토끼가 기절하지 않고 서 있었다⁠. 앵무새가 날개를 펴고 외쳤다⁠. 실장 목소리였다⁠. “⁠얘⁠, 할 수 있어⁠!⁠” 누군가 낮에 한 말을 앵무새가 배에 담아 두었다가 지금 꺼냈다⁠.

누룽지가 세 번째로 뛰었다⁠. 앞발 두 개가 손잡이를 감쌌다⁠. 매달렸다⁠. 열여섯 해 먹은 몸무게가 쇠 손잡이를 아래로 눌렀다⁠. 걸쇠가 철컥 풀렸다⁠. 문이 손가락 하나만큼 열렸다⁠.

소리가 들어왔다⁠.

낮고 길게⁠, 정수리로 들어오는 울림⁠. 달이 꽉 찬 대보름의 울림이었다⁠. 문틈 하나만큼이었는데 고양이 귀에는 충분했다⁠.

누룽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옆으로 누웠다가 배를 감추고 웅크렸다⁠. 숨을 몰아쉬며 문틈에 코를 댔다⁠. 고양이 귀로 듣는 누룽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숨이 차서 갈라져도 한 글자도 빠지지 않았다⁠.

“⁠가⁠, 꼬맹이⁠.⁠”

“⁠누룽지⁠.⁠”

“⁠생선 대가리 놓으러 와⁠. 네 말 안 들려도 냄새는 맡을게⁠. 떡 냄새 말고⁠, 네 냄새⁠. 그거면 돼⁠.⁠”

나는 문틈 앞에 앉아 있었다⁠. 문틈은 고양이 하나가 나갈 만큼 열려 있었다⁠. 안 나가면 울림은 문틈으로만 들어오다 자정을 넘길 것이다⁠. 문을 도로 닫으면 끝이었다⁠. 새론의 무릎 옆에서 아홉 해를 더 살 수 있었다⁠. 누룽지의 잔소리를 끝까지 고양이 귀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누룽지의 이마를 핥았다⁠. 피 묻은 앞발도 핥았다⁠. 그리고 문틈으로 걸어 나갔다⁠.

*

자정⁠, 입원실 바닥에서 사람이 되었다⁠. 일곱 번째 울림이었다⁠.

몸이 다 펴지고 나서 나는 누룽지를 안아 맨 위 칸에 눕혔다⁠. 부러진 발톱에 솜을 댔다⁠. 누룽지가 무언가 말했다⁠. 입 모양만 보였다⁠. 사람 귀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또렷하던 목소리였다⁠.

계단에서 슬리퍼 소리가 뛰어 내려왔다⁠. 새론이었다⁠. 자정을 넘기자마자 내려온 것이었다⁠. 새론은 열린 산소방 문을 보았다⁠. 맨 위 칸의 누룽지를 보았다⁠. 원장님 스웨터 하나만 허리에 감고 서 있는 나를 보았다⁠.

새론이 다가와 내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한 번⁠. 아프지 않았다⁠. 두 번⁠. 세 번째는 치지 않고 주먹을 펴서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바보야⁠.⁠”

“⁠첫 밤이에요⁠. 이레 중에⁠.⁠”

새론이 내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나는 새론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시월 보름 옥상에서 보았던 흰 머리카락이 두 개가 되어 있었다⁠.

*

새벽 세 시⁠, 대연 개발 현장 사무실 컨테이너에 불이 켜져 있었다⁠. 경비 아저씨 대신 우겸이 혼자 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넥타이를 풀고⁠,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 두고⁠, 화면은 꺼진 채였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손가락 마디로⁠.

우겸이 문을 열었다⁠. 나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재채기만 했다⁠.

“⁠들어오세요⁠. 경비 아저씨는 설 쇠러 고향 가셨어요⁠. 제가 대신 지켜요⁠. 아버지는 제가 현장 지키는 줄 아세요⁠. 사실은 집에 있기가 싫어서요⁠.⁠”

난로 위 주전자에서 보리차가 끓었다⁠. 우겸이 종이컵에 따라 주었다⁠. 나는 받아 들고 오래 불었다⁠. 우겸이 내 입김을 보고 웃었다⁠. 처음으로 나에게 웃었다⁠.

“⁠새론 씨가 회장실에 고양이를 데려왔어요⁠. 증인이라고⁠. 아버지가 그날 저녁에 소주 한 병을 혼자 다 드셨어요⁠.⁠”

“⁠그 자리에서 왜 아무 말 안 했어요⁠?⁠”

우겸이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버지 말이 다 맞아서요⁠. 새론 씨 통장이 먼저 무너져요⁠. 경매 딱지 붙으면 병원은 끝나요⁠. 숫자로는 아버지가 이겨요⁠.⁠”

“⁠숫자로는요⁠.⁠”

“⁠네⁠.⁠”

“⁠엿새 뒤 아침에 새론은 결혼식장에 가요⁠. 동의서 들고⁠, 혼인신고서 들고⁠. 당신은 그 서명을 받고 결혼하면 이백억이 없어지죠⁠. 새론은요⁠?⁠”

“⁠병원은 제가 어떻게든⁠…⁠”

“⁠등기는요⁠?⁠”

우겸이 입을 다물었다⁠. 난로 안에서 불이 탁 소리를 냈다⁠.

“⁠새론이 회장실에서 내민 계약서요⁠. 당신 회사가 이월 말을 넘기는 길이 둘이에요⁠. 결혼하거나⁠, 저 계약서에 도장을 찍거나⁠. 결혼하면 회사가 이윤을 다 갖고⁠, 계약서에 찍으면 반을 갖죠⁠. 둘 다 이월 말을 넘겨요⁠. 다른 건 새론이 아는지 모르는지예요⁠.⁠”

우겸이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선생님⁠, 그걸 어떻게⁠…⁠”

“⁠물어봤어요⁠. 경비 아저씨한테⁠, 대리기사님한테⁠, 청소 여사님한테⁠, 편의점 알바한테⁠. 묻는 게 제 일이에요⁠.⁠”

나는 종이컵을 들었다⁠. 보리차가 식어 있었다⁠. 한 모금 마셨다⁠.

“⁠당신 대표잖아요⁠. 회사 도장 누구 손에 있어요⁠?⁠”

“⁠…대표이사 도장은 아버지 금고에 있어요⁠.⁠”

“⁠금고 열쇠는요⁠?⁠”

우겸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작고 두꺼운 쇠 열쇠 하나가 다른 열쇠들 사이에서 반짝였다⁠. 우겸은 열쇠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대표 자리 주실 때 같이 주셨어요⁠. 너도 이제 도장 찍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한 번도 안 썼어요⁠.⁠”

우겸이 열쇠 꾸러미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었다⁠. 코끝이 빨갰고⁠, 눈이 빨갰다⁠.

“⁠선생님⁠. 결혼식에 와요⁠?⁠”

“⁠가요⁠.⁠”

“⁠왜요⁠?⁠”

“⁠그날 아침엔 돌아갈 데가 없어서요⁠.⁠”

11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산소방 ·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