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32자)

이레째 아침

집사의 결혼식을 막으러 고양이가 간다 · 연가비

대보름부터 엿새 밤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젓가락은 사흘째 밤에 배웠다⁠. 새론이 콩자반 한 접시를 내놓고 한 알씩 집게 했다⁠. 서른 알째에 처음으로 콩이 입까지 왔다⁠. 새론이 손뼉을 쳤다⁠. 단추는 닷새째 밤에 배웠다⁠. 일곱 개를 혼자⁠, 맨 아래부터⁠, 제 구멍에⁠. 새론은 박수를 치지 않고 일곱 번째 단추를 손가락으로 한 번 눌러 보았다⁠. 엿새째 밤에는 뜨거운 국을 삼 분 만에 먹었다⁠. 혀를 데었다⁠. 고양이 혀가 사람 혀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밤마다 귀는 조금씩 멀어졌다⁠. 엿새째 밤에는 시바의 말이 짖는 소리로만 들렸다⁠. 진돗개도⁠. 앵무새는 사람 말 흉내만 들렸다⁠. 누룽지는 입 모양만 보였다⁠. 나는 입원실을 돌 때마다 청진기를 목에 둘렀다⁠.

이레째 밤⁠, 새론과 나는 옥상 물탱크 옆에 앉아 해를 기다렸다⁠. 새론이 원장님 코트를 내 어깨에 덮어 주었다⁠. 자기는 패딩 깃에 턱을 묻었다⁠. 새론의 가방이 발치에 있었다⁠. 가방 안에 서류 봉투가 두 개 들어 있다고 새론이 말했다⁠.

“⁠동의서랑 혼인신고서⁠. 그리고 회장실에서 돌려받은 계약서⁠. 둘 다 가져갈 거야⁠. 어느 걸 쓸지는 아침에 정할래⁠.⁠”

“⁠아침에요⁠?⁠”

“⁠네가 사람으로 남는지 보고⁠.⁠”

새론이 내 손을 잡았다⁠. 반지는 없었다⁠. 반지는 새론의 가방 속 작은 상자에 들어 있었다⁠.

*

해가 오기 십 분 전⁠, 소리가 꺼지기 시작했다⁠.

먼저 달의 울림이 멎었다⁠. 정수리 어딘가에서 웅웅대던 낮은 소리가⁠, 숨을 내쉬듯 길게 잦아들다가 없어졌다⁠. 다음은 벽 속 전선이었다⁠. 아홉 해 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가는 웅웅거림이 뚝 끊겼다⁠. 옥상 창고 비료 포대 밑에서 생쥐가 사각대던 소리가 꺼졌다⁠. 이층 부엌 냉장고 뒤의 모터가 우는 소리가 꺼졌다⁠. 반지하 입원실에서 늙은 진돗개가 꿈을 꾸며 낑낑대는 소리가 꺼졌다⁠.

꺼진 자리에 다른 소리가 들어왔다⁠. 큰길의 버스 소리⁠, 숲길의 바람⁠, 새론의 숨⁠. 사람 귀로도 들리는 소리들이었다⁠. 세상이 한 겹 얇아졌다⁠.

해가 물탱크 위로 올라왔다⁠. 발바닥이 뜨거워지지 않았다⁠. 손끝이 저리지 않았다⁠. 나는 새론이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다섯 개가 그대로 있었다⁠. 손등에 털이 돋지 않았다⁠. 햇볕이 손등에 내려앉았다⁠. 털 없는 살갗에 처음 닿는 아침 해였다⁠. 따뜻했다⁠. 털 위로 받는 볕보다 얇고 따끔했다⁠.

새론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보았다⁠. 해가 내 노란 눈에 비쳤다⁠.

“⁠…남았네⁠.⁠”

“⁠남았어요⁠.⁠”

반지하 창문으로 개 짖는 소리가 올라왔다⁠. 시바였다⁠.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짖는 소리였다⁠.

*

아침 여덟 시⁠, 새론은 화장을 하러 먼저 호텔로 갔다⁠. 결혼식은 마포 강변 호텔 연회장에서 열한 시였다⁠. 새론은 택시를 타기 전에 나를 돌아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방을 꽉 쥐었다⁠.

여덟 시 반⁠, 실장이 출근해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낮에⁠. 해가 대기실 유리문으로 쏟아지는 시간에⁠.

“⁠…야간 선생님이 왜 낮에 있어요⁠?⁠”

“⁠이제 낮에도 있어요⁠.⁠”

실장은 가방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대신 오래 나를 보았다⁠. 내 발치에서 누룽지가 내 발목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실장의 눈이 누룽지를 보고⁠, 나를 보고⁠, 대기실 구석에 놓인 빈 귤 상자를 보았다⁠. 귤 상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먹물이 오늘 아침에 안 보이던데⁠.⁠”

“⁠네⁠.⁠”

실장이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결혼식 가요⁠?⁠”

“⁠가요⁠.⁠”

“⁠그 옷으로요⁠? 원장님 아버지 스웨터로⁠?⁠”

실장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십 분 뒤 실장의 언니가 양복 한 벌을 들고 병원에 왔다⁠. 실장의 전남편이 두고 간 양복이라고 했다⁠. 소매가 짧았다⁠. 내 손목이 소매 밖으로 한 뼘 나왔다⁠. 실장이 소매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입을 막았다⁠.

“⁠팔 긴 사람이라니까⁠. 내가 셔츠 사이즈 보고 처음부터 알았어⁠.⁠”

실장은 넥타이를 매 주었다⁠. 단추는 내가 잠갔다⁠. 일곱 개⁠. 실장이 단추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얘⁠. 너 원장님한테 잘해⁠.⁠”

실장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얘⁠’라고 불렀다⁠. 나는 처음으로 실장의 ‘⁠얘⁠’가 고양이를 부를 때와 같은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

호텔 연회장 앞은 하객으로 붐볐다⁠. 평일 아침 열한 시라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줄이 길었다⁠. 나는 비상계단으로 갔다⁠. 계단을 보면 오르고 싶었다⁠. 고양이 버릇이었다⁠. 십이 층까지 올라갔다⁠. 사람 다리는 십이 층에서 후들거렸다⁠.

복도에서 국밥집 사장과 세탁소 할아버지를 보았다⁠. 국밥집 사장은 한복을 입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지팡이에 넥타이를 맸다⁠. 블록 사람들이 하객으로 와 있었다⁠. 새론의 결혼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국밥집 사장이 나를 알아보았다⁠.

“⁠어⁠, 병원 총각⁠! 양복 소매가 왜 그래⁠?⁠”

나는 대답하지 않고 신부 대기실 문을 열었다⁠.

새론은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하얀 드레스⁠, 올린 머리⁠. 화장대 위에 서류 봉투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새론이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돌아보지 않고 거울로⁠.

“⁠…소매⁠.⁠”

“⁠실장님 언니가요⁠.⁠”

새론이 웃었다⁠. 거울 속에서 새론의 눈가가 번졌다⁠. 화장 담당 직원이 휴지를 들고 달려왔다⁠. 새론이 손을 들어 막았다⁠. 직원이 눈치를 보고 나갔다⁠.

나는 새론의 의자 뒤로 갔다⁠. 거울 속에서 우리 둘이 나란히 보였다⁠. 하얀 드레스와 소매 짧은 양복⁠.

“⁠오늘 아침부터 누룽지 말이 안 들려요⁠.⁠”

새론의 어깨가 굳었다⁠.

“⁠시바도요⁠. 냉장고 모터도요⁠. 다 안 들려요⁠. 새론 숨소리는 들려요⁠.⁠”

“⁠…그래서 왔어⁠?⁠”

“⁠결혼할 거면 해요⁠. 동의서 쓰고⁠, 혼인신고서 쓰고⁠. 나는 여기 있을게요⁠. 사람으로⁠. 내가 사람으로 남은 건 새론이 결혼하든 안 하든 같아요⁠. 새론이 정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시월 그믐에 정했어요⁠.⁠”

새론이 거울에서 눈을 떼고 돌아보았다⁠. 처음으로 거울 말고 나를 보았다⁠.

“⁠너 정말 바보구나⁠.⁠”

새론이 화장대 위 봉투 하나를 집었다⁠. 회장실에서 돌려받은 계약서가 든 봉투였다⁠. 다른 하나는 화장대에 그대로 두었다⁠.

“⁠우겸 씨 불러 줘⁠.⁠”

*

우겸은 턱시도 차림으로 들어왔다⁠. 나를 보고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고양이 털이 이제 내 몸에서 안 났다⁠. 우겸이 냄새가 없는 것을 알아채고 잠깐 나를 보았다⁠.

새론이 계약서를 우겸 앞에 내밀었다⁠.

“⁠이거 쓸래요⁠. 결혼 말고⁠.⁠”

우겸이 계약서를 받았다⁠. 넘겨 보지 않았다⁠. 다 아는 내용이었다⁠. 우겸은 턱시도 안주머니에서 작은 천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서 나무 도장이 나왔다⁠. 대표이사 도장이었다⁠.

“⁠새벽에 금고에서 꺼내 왔어요⁠.⁠”

대기실 문이 다시 열렸다⁠. 조 회장이었다⁠. 혼주 한복을 입고⁠, 두루마기 고름을 손으로 쥐고 있었다⁠. 회장은 들어오자마자 우겸의 손에 든 도장을 보았다⁠.

“⁠너 그거 왜 들고 있냐⁠.⁠”

“⁠아버지⁠, 반 토막으로 가요⁠.⁠”

우겸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재채기에 끊기지도 않았다⁠.

“⁠이 계약서대로면 이월 말을 넘겨요⁠. 결혼해도 넘기고요⁠. 다른 건 이윤이에요⁠. 반이요⁠. 이윤이 반이지⁠, 사람이 반은 아니에요⁠. 아버지 차랑 제 차 팔고⁠, 제 월급 없애고⁠, 일층 모퉁이는 반은 병원 주고 반은 커피집 주면 돼요⁠. 커피집은 반만 써도 들어온대요⁠. 어제 본사에 전화해 봤어요⁠.⁠”

“⁠이백 명은⁠.⁠”

“⁠이백 명 다 데리고 가요⁠. 대신 저 서른넷에 장가가서 아내 병원 자리를 커피집에 넘기는 거⁠, 그건 못 해요⁠. 아버지가 목수 할 때 치수 안 맞는 문은 안 다셨다면서요⁠. 이 결혼 치수 안 맞아요⁠.⁠”

조 회장이 우겸을 오래 보았다⁠. 화를 내지 않았다⁠. 혼주 한복 소매에서 손을 꺼내 새론 앞으로 내밀었다⁠. 계약서를 달라는 손이었다⁠. 새론이 건넸다⁠. 조 회장은 일층 평면도를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모퉁이를 쟀다⁠. 엄지와 검지를 벌려 반을 접었다⁠.

“⁠반으로 나누면 출입문이 두 개 나야 돼⁠. 치수가 안 나와⁠.⁠”

“⁠치수는 아버지가 뽑으시면 돼요⁠.⁠”

조 회장이 코로 짧게 웃었다⁠. 계약서를 화장대에 내려놓았다⁠.

“⁠찍어라⁠. 니 이름으로 된 도장이다⁠.⁠”

우겸이 도장에 인주를 묻혔다⁠. 계약서 맨 끝⁠, 대연 개발 대표이사 조우겸 옆에 눌렀다⁠. 새론이 펜을 들어 맞은편에 이름을 썼다⁠. 동의서도 화장대 앞에서 썼다⁠. 혼인신고서는 봉투째 화장대에 남았다⁠.

조 회장이 대기실 문을 나서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소매 짧은 양복⁠, 노란 눈⁠.

“⁠너는 누구냐⁠?⁠”

새론이 대답했다⁠.

“⁠증인이요⁠.⁠”

조 회장이 웃음을 참으며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하객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우겸이 넥타이를 고쳐 매고 연회장으로 나갔다⁠. 마이크 앞에 서서 하객들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나는 문틈으로 우겸의 등을 보았다⁠. 국밥집 사장이 한복 치마를 쥐고 일어났다가⁠, 옆자리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무릎을 톡 치자 도로 앉았다⁠. 할아버지가 무언가 말했다⁠. 이주비는 나온다⁠, 라고 입 모양이 말했다⁠.

우겸이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새론은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우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반지 상자였다⁠. 우겸은 상자를 열어 보지 않았다⁠.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더니 웃었다⁠.

“⁠제 약 냄새 나네요⁠.⁠”

“⁠네⁠. 처음부터 났어요⁠.⁠”

우겸이 상자를 턱시도 안주머니에 넣었다⁠. 도장 주머니 옆이었다⁠. 나가다가 문 앞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선생님한테서 이제 고양이 냄새가 안 나네요⁠.⁠”

“⁠네⁠. 오늘 아침부터요⁠.⁠”

우겸은 무언가 알아들은 얼굴로⁠, 그러나 끝까지 묻지 않고 문을 닫았다⁠.

*

저녁⁠, 새론은 드레스를 벗고 수술복을 입었다⁠. 오후 진료를 다 보고⁠, 입원실을 돌고⁠, 누룽지의 수액을 갈았다⁠. 결혼식 날이라 쉰다던 병원 문을 새론은 세 시에 다시 열었다⁠. 실장이 투덜대면서 따라 열었다⁠.

해가 진 뒤⁠, 우리는 누룽지를 담요에 싸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물탱크 옆 고무나무 화분 곁에 앉았다⁠. 정월 스무이튿날의 달이 한쪽이 이지러진 채 숲길 위에 떠 있었다⁠. 달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내 귀에는⁠.

봄이면 이 건물은 헐린다⁠. 반지하 입원실도⁠, 산소방도⁠, 이층 살림집도⁠. 공사하는 동안 아이들 마흔은 숲길 건너편 상가 이층의 임시 병원으로 옮긴다⁠. 계약서에 그렇게 적혔다⁠. 새 건물 일층 모퉁이의 반은 등기에 새론의 이름으로 오른다⁠. 새론은 원장님의 붉은 벽돌을 대가로 내주었다⁠. 나는 고양이 귀를 내주었다⁠.

누룽지가 담요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입을 열었다⁠.

“⁠야옹⁠.⁠”

야옹이었다⁠. 잔소리였을 것이다⁠. 꼬맹이⁠, 양말이 짝짝이다⁠, 라든가⁠. 나는 오늘도 곰돌이 한 짝과 줄무늬 한 짝을 신고 있었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원장님의 청진기를 꺼냈다⁠. 귀꽂이를 사람 귀에 꽂고⁠, 쇠 판을 누룽지의 가슴에 댔다⁠. 누룽지가 차갑다고 몸을 움츠렸다가 가만히 있었다⁠. 새론이 내 옆에 앉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반지 없는 손이 내 무릎 위에 있었다⁠.

고무관을 타고 소리가 올라왔다⁠. 쿵⁠, 쿵⁠, 쿵⁠, 쉬고⁠. 늙은 심장이 쉬어 가며 뛰었다⁠. 심장 소리 밑으로 다른 소리가 깔려 있었다⁠. 낮고 길게⁠, 목 깊은 데서 울리는 소리⁠. 그르렁⁠, 그르렁⁠.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르렁 소리는 들렸다⁠.

누룽지가 담요에서 앞발 하나를 꺼내 내 발목에 얹었다⁠. 그러고는 짝짝이 양말 위에 뺨을 한 번 비볐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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