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38자)
눈을 뜨지 않은 고양이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헛간 짚더미는 따뜻했다.
연탄은 짐승 모습으로 짚 속에 몸을 묻었다. 짚이 눌리며 몸 모양대로 꺼졌다. 장터 사과 상자의 헌 솜이불처럼. 돼지 신령은 바로 옆에서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돼지 신령의 숨이 오르내릴 때마다 짚더미 전체가 같이 오르내렸다.
쪼롬은 헛간 들보 위에 있었다. 짐승 모습이었고, 꼬리의 붉은 실은 끝내 다시 감지 않았다. 쪼롬이 들보 위에서 규칙을 읊었다.
“먼저 눈을 뜨는 분이 집니다. 몸을 뒤척이는 것, 꿈을 꾸는 것, 코를 고는 것은 따지지 않습니다. 눈만 봅니다.”
돼지 신령이 눈을 감은 채 손을 들었다. 앞발이었다.
“코 고는 거 따지면 나는 벌써 졌지.”
“아직 시작 안 했습니다.”
“그럼 시작해. 졸려.”
헛간 문 밖에 자미가 앉아 있었다. 사람 모습이었다. 문지방에 등을 대고, 보온병을 무릎 사이에 끼고, 헛간 안을 보지 않고 보리밭을 보고 있었다.
연탄은 눈을 감았다. 감자마자 잠이 왔다. 이백 년 동안 이렇게 빨리 잠든 적은 없었다. 밤을 새운 몸이 연탄을 짚 밑으로 끌어당겼다.
*
자는 동안에도 고양이의 귀는 깨어 있다.
연탄은 꿈속에서 헛간 지붕 위를 걷고 있었다. 지붕이 상자로 되어 있었다. 상자를 하나 밟을 때마다 안으로 빠졌다. 꿈 밖에서 무언가가 연탄을 짓눌렀다. 따뜻하고 무겁고 숨을 쉬는 무언가였다. 돼지 신령이 잠결에 돌아누우며 연탄 위로 반쯤 올라온 것이었다. 연탄은 숨이 막혔다. 눈은 뜨지 않았다. 몸을 녹여 돼지 신령의 배 밑에서 빠져나왔다. 홍염의 앞발 밑에서 빠져나오던 몸이었다.
돼지 신령이 잠꼬대를 했다.
“가래떡… 꿀은 따로…”
들보 위에서 쪼롬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찍, 하고 아주 작게. 연탄의 엉덩이가 꿈속에서 들썩였다. 눈은 뜨지 않았다.
해가 높아졌다. 헛간 판자 틈으로 볕이 들어와 연탄의 등에 줄을 그었다. 등이 따뜻했다. 입춘 볕이 섣달 볕보다 두꺼웠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가벼운 발소리, 며느리였다.
“어? 아버님! 우리 헛간에 돼지가 자요!”
조금 있다 무거운 발소리가 왔다. 농부의 기침 소리가 함께 왔다.
“웬 돼지여? 동네에 돼지 키우는 집이 없는디.”
“고양이도 같이 자요. 꼭 껴안고.”
농부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입춘에 돼지가 제 발로 들어오면 복이여. 깨우지 마라. 문 닫아 줘라.”
헛간 문이 반쯤 닫혔다. 볕 줄이 가늘어졌다. 문 밖에서 자미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농부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복이라고 하는군요.”
오후에는 손님이 늘었다. 연탄은 잠결에 냄새로 알았다. 짚 냄새, 호랑이 냄새, 젖은 토끼털 냄새. 연탄의 편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헛간 뒤 대숲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하기에는 홍염의 목소리가 컸다.
“고양이 자냐? 진짜 자냐? 코를 안 고는데?”
“고양이는. 조용히. 잔다.”
묵돌의 목소리였다. 이어서 묵돌의 발소리가 외양간으로 갔다. 외양간의 늙은 소가 낮게 울었고, 묵돌이 더 낮게 울었다. 두 소가 한참을 주고받았다. 무슨 말인지 연탄은 꿈속에서도 알 수 없었다. 소끼리만 아는 말이었다.
마당에서 농부가 외양간을 들여다보다가 굳은 목소리로 며느리를 불렀다.
“아가. 우리 소가 원래 두 마리였냐?”
“한 마리요, 아버님.”
“그럼 저 큰 놈은 뭐여?”
농부가 외양간 문을 열었을 때 묵돌은 이미 대숲으로 돌아가 있었다. 늙은 소 혼자 여물을 씹고 있었다. 농부는 눈을 비비고 여물통을 두 번 들여다보았다. 대숲에서 토끼 신령이 웃다가 발을 굴렀다. 대나무가 우수수 흔들렸다.
“아이고, 귀신 붙었나. 입춘에 별일이 다 있네.”
연탄은 짚 속에서 웃지 않았다. 웃으면 눈이 떠질까 봐서였다. 대신 꼬리 끝만 아주 조금 흔들렸다.
*
밤이 오면서 공기가 바뀌었다.
연탄은 꿈 바깥에서 먼저 알았다. 코끝이 시렸다. 판자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낮의 바람과 달랐다. 날이 서 있었다. 짚 끝에서 사락사락 소리가 났다. 서리가 짚에 앉는 소리였다. 연탄은 몸을 더 둥글게 말았다. 꼬리로 코를 덮었다. 꼬리털 끝이 차갑게 굳어 갔다.
라디오가 말한 것보다 하루 일찍이었다. 연탄은 꿈속에서도 알았다. 자미가 마당에서 했던 말을 알았다. 바퀴입니다.
마당에서 문이 열렸다. 농부의 기침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길었다. 기침 사이로 혼잣말이 들렸다.
“얼어. 다 얼어. 짚이라도 덮어야.”
헛간 문이 활짝 열렸다. 찬 공기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농부가 헛간 벽에 쌓인 짚단을 끌어냈다. 짚단 하나, 둘. 농부의 숨이 거칠었다. 손전등 불빛이 짚더미 위를 지나갔다. 연탄의 감은 눈꺼풀 너머로 불빛이 붉게 번졌다가 사라졌다. 농부는 짚단을 지고 밭으로 갔다.
연탄은 짚 속에서 소리를 따라갔다. 농부의 발소리가 밭으로 멀어졌다. 짚단을 내려놓는 소리. 펼치는 소리. 다시 헛간으로 오는 발소리. 짚단 하나, 다시 밭으로. 세 번째에 발소리가 느려졌다. 네 번째에 기침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다섯 번째 발소리는 밭 한가운데서 멈췄다.
무거운 것이 언 흙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짚단이 아니었다. 짚단은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연탄의 귀가 밭 쪽으로 돌아갔다. 발톱이 저 혼자 짚 속에서 나왔다. 몸 안의 무언가가 일어나라고, 뛰라고, 창 밑으로 가서 울라고 했다. 새벽에 사람을 깨우던 울음으로. 연탄의 눈꺼풀이 떨렸다.
눈을 뜨면 졌다. 열 판이 끝났다. 열 조각이 주머니 안에 있었다. 두 판이 남아 있었다.
연탄은 눈을 뜨지 않았다.
*
한참 뒤 부엌문이 열렸다.
“아버님? 아버님!”
며느리의 목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밭으로 갔다. 발소리가 뛰었다. 배가 부른 사람의 뜀이었다. 밭에서 비명이 났다. 다시 발소리가 마당으로 달려왔다. 헛간 문 앞에서 멈췄다.
“야옹아!”
연탄은 짚 속에서 굳었다.
“야옹아, 아버님이, 아버님이 밭에…”
며느리는 헛간 벽에 세워 둔 손수레를 끌어냈다. 손수레 바퀴가 언 흙을 긁었다. 며느리가 손수레를 끌고 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헛간 안을 향해 소리쳤다. 울음이 섞여 있었다.
“야옹아, 옆집! 옆집 가서 울어! 너 새벽에 잘 울잖아!”
연탄의 몸이 짚 밑에서 한 번 당겨졌다. 앞발 하나가 짚을 헤치고 반쯤 나왔다. 들보 위에서 쪼롬이 숨을 들이켰다. 연탄은 앞발을 도로 짚 속에 넣었다. 눈은 감겨 있었다.
며느리의 발소리가 손수레와 함께 멀어졌다. 옆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개 짖는 소리, 사람들 목소리, 경운기 시동 소리. 한참 뒤 트럭 엔진 소리가 마을 길로 멀어졌다. 읍내로 가는 길이었다.
헛간 안에는 돼지 신령의 코 고는 소리만 남았다. 연탄은 눈을 감은 채로 짚더미 위의 서리가 두꺼워지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밤새 들렸다.
*
새벽에 돼지 신령이 먼저 눈을 떴다.
“배고파. 배고파서 못 자겠다.”
돼지 신령은 짚더미에서 굴러 내려와 헛간 안을 킁킁거렸다. 먹을 것이 없었다. 돼지 신령은 연탄을 보고 투덜거렸다.
“너 아직도 자냐? 독하다, 고양이.”
쪼롬이 들보에서 내려왔다. 짐승 모습 그대로 짚더미 앞에 앉아 꼬리를 들려고 했다. 헛간 문이 먼저 열리고 자미가 들어왔다. 사람 모습이었다. 외투 어깨에 하얗게 서리가 앉아 있었다. 밤새 문 밖에 앉아 있던 몸이었다.
“판정하기 전에 한 말씀 드리지요.”
자미가 연탄을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는 깨어 있었습니다. 밭에서 소리가 났을 때 귀가 돌아갔습니다. 발톱이 나왔고, 앞발 하나가 짚 밖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문 앞에서 다 봤습니다.”
“규칙은 눈입니다.”
쪼롬이 말했다.
“눈은 감겨 있었습니다.”
“심판은 규칙의 뜻을 봐야 하지요. 잠 겨루기의 뜻은 자는 것입니다. 깨어서 눈만 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쪼롬이 사람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잿빛 저고리 위에 하늘 궁의 붉은 띠가 둘러져 있었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저울추 두 개가 부딪쳤다.
“저울지기는 바늘을 봅니다. 저울에 뜻을 물으면 저울이 아니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쪼롬은 아버지를 보지 않고 짚더미 속의 연탄만 보았다.
“돼지 집안이 먼저 눈을 떴습니다. 고양이 집안이 이겼습니다.”
자미는 오래 딸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쪼롬의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저울추 두 개를 꺼냈다. 쪼롬은 손을 막지 않았다.
“오늘부터 너는 저울지기가 아니다.”
자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지 않았다.
“쥐 문으로 들어오지 마라.”
자미는 저울추를 외투 주머니에 넣고 헛간을 나갔다. 나가면서 문을 닫지 않았다. 찬바람이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
열한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짚더미 위였다. 서리 앉은 짚 위에 떨어져 사락 소리를 냈다.
연탄은 눈을 떴다.
헛간 문 밖이 하얬다. 눈이 온 것이 아니었다. 밭 전체가 서리에 덮여 있었다. 연탄은 짚더미에서 내려와 문지방까지 걸어갔다. 앞발이 저렸다. 문 밖 흙을 디뎠다. 어제 반 마디쯤 박히던 흙이 발밑에서 바스락 부서졌다.
흙 속의 물이 얼어 가느다란 얼음 기둥이 되어 있었다. 얼음 기둥들이 흙을 밑에서 밀어 올려 땅 거죽이 한 치쯤 떠 있었다. 서릿발이었다. 보리 싹이 떠오른 흙덩이에 매달려 뿌리째 들려 있었다. 하얀 뿌리털이 허공에 드러나 있었다. 밭 한가운데 짚단 하나가 펼쳐지다 만 채로 떨어져 있었다. 짚단 옆 흙이 사람 하나 크기로 눌려 있었다.
쪼롬이 연탄 곁에 와 있었다. 사람 모습이었다. 저울추가 빠진 앞치마가 바람에 가볍게 펄럭였다.
“네 귀 봤어.”
쪼롬이 말했다.
“들었어.”
연탄이 말했다. 짐승 모습이었지만 쪼롬에게는 말로 들렸다. 연탄은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것이 없었다.
“나는 바늘대로 했어.”
쪼롬은 서리 덮인 밭을 보았다.
“너는?”
연탄은 대답하지 못했다. 쪼롬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앞치마 끈을 풀어 손에 감고, 밭둑 길을 따라 걸어갔다. 쥐 문으로는 이제 못 돌아가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연탄은 쪼롬의 등을 보았다. 붉은 띠만 남은 등이었다.
*
해가 뜰 무렵 트럭 한 대가 마을 길로 들어왔다. 옆집 사내가 운전했고, 며느리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혼자였다. 며느리는 배를 받치고 마당으로 들어왔다가 헛간 앞에서 멈췄다. 연탄이 문지방에 앉아 있었다.
며느리가 연탄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이 흙에 닿았다. 서릿발이 무릎 밑에서 부서졌다. 며느리의 눈이 부어 있었다.
“아버님 괜찮대. 읍내 병원. 손이 얼었대. 손가락.”
며느리가 손을 뻗었다. 연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손이 머리 위에서 멈췄다. 며느리는 연탄의 눈을 보았다. 사람이 고양이의 눈을 그렇게 오래 보는 것을 연탄은 처음 겪었다.
“너, 들었지?”
연탄은 울지 않았다. 냐아 한 마디면 되었다. 며느리에게는 냐아로만 들릴 것이었다. 연탄은 냐아 한 마디를 내지 않았다. 목에 매단 주머니 속에서 조각 열하나가 서로 부딪쳤다. 며느리가 손을 거두고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연탄은 문지방에 남아 밭을 보았다. 해가 서리 위로 올라오자 뿌리째 들린 보리 싹들이 하나씩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