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806자)
닭보다 먼저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사람 세상의 흙은 물렀다.
연탄은 짐승 모습으로 밭둑에 내려앉자마자 발바닥으로 알았다. 앞발이 흙에 반 마디쯤 박혔다. 섣달 흙은 딱딱해야 했다. 장터 하역 마당으로 떨어지는 사람 세상 제물에서도 섣달이면 언 흙 냄새가 났다. 여기 흙은 젖어 있었다. 발을 빼자 쩍 소리가 났다.
쪼롬이 짐승 모습으로 연탄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장터 하역 마당 구멍을 거꾸로 타고 내려오는 동안 연탄의 털을 꽉 잡고 있었다. 쪼롬은 흙을 밟고 발을 털었다.
“물러.”
“알아.”
밭 끝에 슬레이트 지붕 집이 있었다. 하늘 궁 연못 얼음에 비치던 집이었다. 창은 다 꺼져 있었다. 외양간에서 늙은 소가 되새김질하는 소리가 났고, 닭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닭 신령은 벌써 닭장 안 횃대에 올라가 있을 것이었다. 닭 신령이 내려오기 전에 한 말이 있었다. 새벽은 횃대에서 맞는 거다.
연탄은 집 앞 돌담 위로 뛰어올랐다. 높은 데였다. 마당과 밭과 외양간과 닭장이 다 내려다보였다. 쪼롬은 돌담 틈에 몸을 넣고 귀만 내놓았다.
“지금 열한 시쯤이야. 첫 홰는 여섯 시 반쯤.”
“일곱 시간 반.”
“잘 수 있으면 자 봐.”
“안 자.”
연탄은 식빵을 구웠다. 굽자마자 하품이 나왔다. 낮에 구름 연못에 빠지고 원숭이 상자를 넘고 장터 지붕을 오르내린 몸이었다. 연탄은 하품을 반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
잠은 열두 시 넘어서 왔다.
포근한 밤이었다. 섣달 밤에 돌담이 차지 않았다. 바람에서 젖은 짚 냄새가 났다. 연탄은 눈꺼풀이 내려올 때마다 귀를 세웠다. 귀를 세우면 소리가 들어왔고, 소리가 들어오면 잠이 조금 물러났다.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지붕에 쌓였던 눈이 녹는 소리였다. 똑. 한참 있다가 또 똑. 연탄은 물방울을 세기 시작했다. 세는 동안은 깨어 있었다. 백을 넘기자 물방울 사이가 짧아졌다. 섣달 한밤중에 처마가 녹고 있었다. 연탄은 세기를 멈추고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처마 끝 고드름이 가늘어져 있었다.
두 시쯤 창 하나에 불이 켜졌다.
부엌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나왔다. 배가 불러 있었다. 두꺼운 솜 조끼를 입고 한 손으로 허리를 받쳤다. 여자는 마당 평상에 앉아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다 돌담 위의 연탄을 보았다.
“어? 야옹아.”
연탄은 꼬리 끝을 까딱였다. 여자가 웃었다.
“너도 잠 안 와?”
연탄은 대답했다. 냐아. 여자에게는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연탄은 사실 이렇게 말했다. 잠 오면 안 돼요. 여자는 냐아를 듣고 평상에서 일어나 돌담 밑으로 왔다. 손을 뻗어 연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따뜻했다. 연탄의 목에서 저절로 그르릉 소리가 났다. 연탄은 소리를 멈추려 했는데 멈춰지지 않았다.
“줄무늬 고양이. 우리 고향에서는 고양이 좋아. 복 와.”
여자의 말에는 받침 몇 개가 가볍게 빠져 있었다. 소원 종이의 글씨처럼.
“우리 고향은 베트남. 바다 건너 남쪽. 거기는 띠에 고양이 있어. 토끼 대신. 우리 엄마도 고양이띠.”
여자는 자기 배를 손으로 쓸었다.
“얘는 봄에 나와. 여기 달력으로는 양띠야. 양도 좋아. 그런데 엄마가 전화로 그래. 고양이띠면 더 좋은데, 고양이띠는 똑똑하고 혼자서도 잘 산다고.”
여자가 웃었다. 웃음 끝이 조금 흔들렸다.
“어제 종이에 고양이 그려서 아궁이에 태웠어. 연기 타고 하늘 가라고. 바보 같지?”
연탄은 목에 단 주머니를 앞발로 눌렀다. 주머니 안에 조각 여덟과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세모난 귀를 한 크레파스 고양이. 여자가 태운 종이가 연탄의 가슴에 붙어 있었다. 연탄은 다시 냐아 했다. 바보 같지 않아요. 여자에게는 또 냐아로 들렸다.
여자는 조끼 주머니에서 마른 멸치 한 마리를 꺼냈다. 연탄은 멸치를 보았다. 겨루기도, 바퀴도, 주머니도 잠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연탄은 멸치를 받아먹었다. 돌담 틈에서 쪼롬의 한숨 소리가 났다.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닭장 문틈으로 닭 신령의 머리가 쑥 나왔다.
“자냐?”
“안 자요.”
닭 신령은 머리를 도로 넣었다가 조금 있다 다시 내밀었다.
“자냐?”
“안 잔다니까요.”
세 번째로 머리를 내민 닭 신령은 묻지 않았다. 대신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자장가였다. 닭의 목으로 부르는 자장가는 쇠문 긁는 소리와 비슷했다. 연탄의 털이 등줄기를 따라 한꺼번에 일어났다. 돌담 틈에서 쪼롬이 귀를 앞발로 막았다.
“노래로 재우는 건 반칙 아니야?”
연탄이 쪼롬에게 물었다. 쪼롬은 귀를 막은 채 대답했다.
“노래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어.”
닭 신령은 자장가를 세 절까지 불렀다. 외양간의 늙은 소가 음매, 하고 한 번 울어 항의했다. 닭 신령은 노래를 멈추고 머리를 넣었다. 닭장 안에서 혼잣말이 들렸다.
“이상하다. 우리 병아리들은 이거 들으면 다 자는데.”
연탄은 눈을 크게 뜨고 돌담 위에 앉아 있었다. 잠이 저만큼 달아나 있었다.
*
네 시 반에 늙은 농부가 나왔다.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마당에 나오자마자 기침을 길게 했다. 기침 끝에 가래를 뱉고, 평상의 며느리를 보았다.
“아가, 너 또 안 자냐? 찬 데 앉지 말어.”
“안 차요, 아버님. 이상하게 안 추워요.”
“그러니께 이상허지.”
농부는 밭머리로 걸어갔다. 연탄은 돌담 위에서 고개를 돌려 따라 보았다. 농부는 밭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손전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맨손으로 흙을 눌렀다. 하늘 궁 얼음 밑에서 보던 몸짓이었다. 손바닥을 들어 손전등 불빛에 비췄다. 손바닥에 젖은 흙이 묻어 있었다.
“섣달에 땅이 이리 녹으면 안 되는디.”
농부는 혼잣말을 하며 보리 싹을 손끝으로 쓸었다. 싹이 손가락 두 마디는 되게 자라 있었다.
“웃자랐어. 이러다 한 번 꽝 얼면 다 들떠.”
부엌 창턱의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며느리가 켜 놓은 것이었다. 아나운서 목소리가 마당까지 나왔다.
“오늘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입니다. 기상청은 전국에 이례적인 고온이 이어지고 있으나, 내일 밤부터 기온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농가에서는 보리와 마늘 냉해에 대비해…”
농부가 밭머리에서 라디오 소리를 듣고 혀를 찼다.
*
다섯 시쯤 마당 사립문 앞에 늙은이 하나가 와 있었다.
잿빛 외투를 입었고 동그란 안경을 썼다. 사람 모습의 자미였다. 자미는 손에 주판 대신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농부가 밭에서 돌아오다 사립문 앞의 늙은이를 보았다.
“뉘시오?”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보리가 잘 컸습니다.”
“잘 큰 게 아니라 웃자란 거요.”
농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모습이라 농부는 자미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
“절기가 안 맞는 해입니다.”
“절기만 맞으면 보리는 알아서 커요. 이 늙은이 평생 그거 하나 믿고 농사지었소.”
농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자미는 사립문 안으로 들어와 돌담 밑까지 왔다. 연탄은 자미를 내려다보았다. 자미는 보온병 뚜껑을 열어 김을 한 모금 마셨다.
“보셨지요.”
연탄은 대답했다. 신령끼리라 말이 통했다.
“보고 있어요.”
“고양이 겨루기 한 판마다 이 사람 보리가 반나절씩 당겨집니다. 오늘이 입춘이고, 바퀴는 오늘 밤 한 번 더 기울 겁니다. 라디오가 내일 밤 춥다고 하지요. 사람 세상 사람들은 그게 날씨인 줄 압니다.”
“날씨 아니에요?”
“바퀴입니다.”
부엌에서 농부가 다시 나왔다. 늙은이가 돌담 밑에서 고양이를 올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다. 농부의 귀에는 늙은이의 말과 고양이의 냐아냐아가 번갈아 들렸다.
“고양이하고 말씀도 허시오?”
“이놈이 말귀를 알아듣습니다.”
농부는 늙은이를 한 번, 고양이를 한 번 보고 고개를 흔들며 외양간으로 갔다.
자미가 목소리를 낮췄다.
“새벽 전까지라고 했지요. 문 얘기.”
연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쪽 하늘이 회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
잠은 마지막에 왔다.
며느리가 평상에서 돌담 위로 팔을 뻗어 연탄을 쓰다듬고 있었다. 머리를, 귀 뒤를, 등을. 손이 지나갈 때마다 몸이 녹았다. 그르릉 소리가 목 안에서 커졌다. 그르릉 소리가 커지면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연탄은 눈을 감았다. 감은 줄도 몰랐다.
돌담 틈에서 쪼롬이 연탄의 꼬리를 물었다.
연탄은 눈을 번쩍 떴다. 하늘이 희었다. 닭장에서 날개 터는 소리가 났다. 퍼덕, 퍼덕. 횃대 위에서 닭 신령이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다. 목이 길게 늘어났다. 부리가 하늘로 열렸다.
연탄은 돌담에서 뛰어내렸다. 부엌 창 밑으로 달려가 창을 올려다보며 울었다.
야아아옹.
새벽이면 고양이는 사람을 깨운다. 밥을 내놓으라고. 장터에서도 연탄은 새벽마다 두꺼비 떡장수의 문을 긁었다. 연탄은 창 밑에서 한 번 더 울었다. 더 길게, 더 크게. 외양간의 늙은 소가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서 농부가 잠결에 소리쳤다.
“저놈의 고양이!”
닭 신령의 부리에서 꼬끼오가 나왔다. 연탄의 두 번째 울음이 끝난 뒤였다.
쪼롬이 돌담 위로 올라와 꼬리를 들었다. 실이 아직 풀린 채였다.
“고양이 집안이 먼저 울었습니다.”
닭 신령이 횃대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볏이 새빨갰다.
“그건 우는 게 아니라 밥 달라는 거잖아!”
“깨어 있으면 이긴다고 하셨습니다. 밥을 달라는 고양이는 깨어 있습니다.”
닭 신령은 볏을 흔들었다. 화를 내다가, 볏을 흔들다가, 아홉 번째 조각이 하늘에서 떨어져 마당 진흙에 박히자 입을 다물었다. 농부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가 마당에 떨어진 돌 조각을 보았다.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네. 입춘에.”
농부는 조각을 줍지 않고 하늘만 보았다. 연탄이 앞발로 조각을 진흙에서 파냈다. 진흙이 묻어 조각이 더 무거웠다.
*
개 신령은 아침밥 시각에 왔다.
누런 털에 귀가 쫑긋한 큰 개였다. 꼬리가 쉬지 않고 흔들렸다. 개 신령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연탄의 냄새를 맡고, 쪼롬의 냄새를 맡고, 진흙에 묻은 조각 냄새까지 맡았다.
“형님, 내 겨루기는 간단해요. 사람이 먼저 부르는 짐승이 이겨요. 사람은 개를 먼저 불러요. 늘 그래요.”
개 신령은 꼬리를 더 세게 흔들었다. 이길 자신이 꼬리에 다 나와 있었다.
부엌문이 열렸다. 며느리가 밥그릇 두 개를 들고 나왔다. 하나는 개밥그릇이었고 하나는 이 빠진 국그릇이었다. 국그릇에 밥과 멸치 국물이 담겨 있었다. 며느리는 마당을 둘러보다가 돌담 밑의 잿빛 줄무늬 고양이를 보았다.
“야옹아! 밥 먹자!”
개 신령의 꼬리가 허공에서 멈췄다. 뒤따라 나온 농부가 외양간을 보며 소리쳤다.
“나비야, 너도 와라. 누렁아, 너도.”
나비야는 이 나라 사람들이 고양이를 부르는 말이었다. 농부는 고양이를 먼저 불렀고, 소를 불렀고, 개는 부르지도 않았다. 개 신령은 연탄을 보았다. 연탄은 국그릇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개 신령의 꼬리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 것을 알았는데도 꼬리가 멈추지 않았다.
“졌어요. 졌는데 왜 기분이 좋지?”
열 번째 조각이 국그릇 옆에 떨어졌다. 개 신령은 조각을 코로 밀어 연탄 앞에 놓아 주었다.
“형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이제 진짜로?”
“아까부터 불렀잖아요.”
*
헛간 문이 삐걱 열렸다. 짚더미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짚더미 꼭대기에 커다란 분홍 돼지 한 마리가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돼지 신령이었다. 돼지 신령은 눈을 반만 뜨고 연탄을 보았다.
“고양이, 너 밤샜다며?”
“네.”
“잘됐다. 내 겨루기는 낮잠이다. 오래 자는 짐승이 이긴다. 먼저 깨면 진다. 지금 바로.”
돼지 신령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눈을 감았다. 코 고는 소리가 헛간 지붕을 울렸다.
연탄은 하품을 했다. 이번에는 반만 하지 않았다. 입이 머리만큼 벌어졌다. 사립문 밖에서 자미가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농부는 대문 기둥에 하얀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입춘대길」 봄이 드니 크게 좋은 일이 있으라는 글이었다. 종이가 젖은 기둥에서 한쪽으로 미끄러졌다. 농부가 손바닥으로 몇 번을 눌러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