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18자)

깨진 자리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말 신령은 달리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올해가 내 해였잖아⁠. 사람 세상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말띠 해라 그렇다고 하더라⁠. 비가 많이 와도 말띠 해⁠, 물가가 올라도 말띠 해⁠. 내가 물가를 어떻게 올려⁠? 나는 풀만 먹는데⁠.⁠”

말 신령은 구름 다리 앞에서 앞발로 바닥을 긁었다⁠. 갈기가 바람에 옆으로 날렸다⁠. 다리는 하늘 궁 북문에서 건너편 망루까지 이어진 줄다리였다⁠. 굵은 동아줄 두 가닥에 구름 판자를 엮어 깔았고⁠, 다리 밑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다리 전체가 출렁였다⁠.

“⁠망루까지 먼저 가는 자가 이긴다⁠. 나는 말이야⁠. 달리기로 진 적이 없어⁠. 아⁠, 그리고 그거 알아⁠? 용 집 영감 재채기에 비 맞은 거⁠, 호랑이가 이틀째 털 말리고 있대⁠.⁠”

“⁠지금 그 얘기를 왜 해요⁠?⁠”

“⁠재밌잖아⁠.⁠”

쪼롬이 꼬리를 들었다⁠. 말 신령은 출발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뛰어나갔다⁠. 말굽이 구름 판자를 두드렸다⁠. 탁⁠, 탁⁠, 탁⁠. 말굽 하나가 내려올 때마다 다리가 한 자씩 가라앉았다가 튀어 올랐다⁠. 판자들이 서로 부딪쳐 덜그럭거렸다⁠. 연탄은 다리 입구에서 동아줄 위로 뛰어올랐다⁠. 판자 말고 줄 위였다⁠. 고양이는 담장 위도 걷는다⁠. 동아줄은 담장보다 넓었다⁠.

말 신령은 빨랐다⁠. 다리 절반쯤에서 연탄보다 스무 걸음은 앞서 있었다⁠. 거기서 다리가 견디지 못했다⁠. 말굽의 무게가 다리를 아래로 끌어당기고⁠, 튀어 오르는 다리가 말 신령을 위로 밀어 올렸다⁠. 출렁임이 점점 커졌다⁠. 말 신령의 네 다리가 따로 놀았다⁠. 말 신령이 멈췄다⁠. 멈추자 다리가 더 크게 출렁였다⁠.

“⁠어⁠, 어⁠, 어⁠.⁠”

말 신령은 다리 한가운데서 네 다리를 쩍 벌리고 버텼다⁠. 말이 많던 입이 처음으로 다물렸다⁠. 연탄은 동아줄 위로 말 신령 옆을 지나갔다⁠. 줄은 다리만큼 크게 출렁이지 않았다⁠. 연탄은 몸을 낮추고⁠, 꼬리를 길게 뻗어 균형을 잡았다⁠. 말 신령의 눈알이 연탄을 따라 굴렀다⁠.

“⁠줄 위로 가는 건 반칙 아니야⁠?⁠”

“⁠다리 위로 가라고는 안 하셨잖아요⁠.⁠”

연탄이 망루에 닿았을 때 말 신령은 아직 다리 한가운데서 네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망루에서 뒤를 돌아보니 말 신령이 소리쳤다⁠.

“⁠좋아⁠! 졌어⁠! 근데 나 좀 데리러 와 줘⁠!⁠”

여섯 번째 조각은 망루 바닥에 떨어졌다⁠. 묵돌이 다리 입구에서 한 걸음씩 들어가 말 신령의 갈기를 물고 끌어냈다⁠. 묵돌이 디디자 다리가 한 번 크게 가라앉았다가 그대로 버텼다⁠. 무거운 짐승이 천천히 걸으면 다리는 출렁이지 않았다⁠.

땅에 내려선 말 신령은 금세 입이 돌아왔다⁠. 연탄 곁에 붙어 걸으며 귀에 대고 떠들었다⁠.

“⁠너 그거 알아⁠? 자미 영감⁠, 윤달만 되면 쥐 문에 없어⁠.⁠”

“⁠윤달이요⁠?⁠”

“⁠몰라⁠? 서너 해에 한 번⁠, 열두 달 말고 한 달이 더 끼는 해가 있잖아⁠. 사람 세상은 그 달을 윤달이라고 불러⁠. 그 달엔 신이 안 본다고 수의도 짓고 조상 묘도 옮기고 그래⁠. 아무튼 윤달이 들면 자미 영감이 한 달 내내 안 보여⁠. 쪼롬이 혼자 저울을 봐⁠. 어디 가는지 아무도 몰라⁠. 나는 영감이 몰래 장가가는 줄 알았지⁠.⁠”

“⁠장가요⁠?⁠”

“⁠아니면 한 달씩 어디 가서 뭘 해⁠? 쥐가⁠.⁠”

말 신령은 혼자 웃고 혼자 그쳤다⁠. 앞에서 걷던 쪼롬의 꼬리가 멈칫했다가 다시 흔들렸다⁠. 연탄은 쪼롬의 꼬리를 보았다⁠. 쪼롬은 돌아보지 않았다⁠.

*

양 신령은 바퀴 전각 앞마당을 골랐다⁠.

“⁠내 해가 사흘 뒤에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여기서 싸운다⁠.⁠”

양 신령의 겨루기는 박치기였다⁠. 앞마당에 둥글게 금을 그었다⁠. 금 밖으로 밀려나거나 쓰러지면 지는 판이었다⁠. 양 신령은 머리를 숙이고 뿔을 앞으로 내밀었다⁠. 둥글게 말린 뿔이 연탄의 몸통보다 굵었다⁠. 하얀 털이 숨을 쉴 때마다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아까 궁 앞마당에서 떨리던 목소리와 달리 뿔은 떨리지 않았다⁠.

“⁠네가 이기면 조각은 준다⁠. 네 편은 안 된다⁠. 그것도 알고 들어와라⁠.⁠”

“⁠알아요⁠.⁠”

“⁠알면 됐다⁠.⁠”

시작 소리와 함께 양 신령이 달려왔다⁠. 고개를 숙이고⁠, 앞만 보고⁠, 곧장⁠. 양은 박치기를 할 때 앞을 보지 않는다⁠. 머리를 숙이는 순간부터 자기 뿔밖에 안 보인다⁠. 연탄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 뿔 끝이 수염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옆으로 몸을 뺐다⁠. 양 신령은 멈추지 못했다⁠.

뿔이 바퀴 전각 기둥을 들이받았다⁠.

쿵⁠. 소리가 궁 전체로 퍼졌다⁠. 기둥 열두 개가 한꺼번에 울었다⁠. 머리 위 허공에서 돌바퀴가 흔들렸다⁠. 아주 느리게 돌던 바퀴가 한쪽으로 휘청 기울었다가 돌아왔다가⁠, 다시 기울었다⁠. 다림추가 실 끝에서 그네를 탔다⁠. 석수가 등딱지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거북의 고개가 그렇게 빨리 나오는 것을 연탄은 처음 보았다⁠.

“⁠멈추시오⁠! 멈추시오⁠!⁠”

양 신령은 기둥 밑에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를 흔들며 바퀴를 올려다보았다⁠. 눈동자가 바퀴의 흔들림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바퀴는 몇 번 더 휘청거리고 천천히 멎었다⁠. 멎은 바퀴는 아까보다 한쪽으로 더 기울어 있었다⁠.

양 신령이 일어나지 않은 채 말했다⁠.

“⁠그만⁠. 그만해⁠. 내 해 바퀴를 내 머리로 깨겠다⁠.⁠”

쪼롬이 꼬리를 들었다⁠. 목소리가 작았다⁠.

“⁠양 집안이 먼저 그만두셨습니다⁠.⁠”

일곱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양 신령은 연탄을 보지 않고 조각이 떨어진 자리만 보았다⁠. 연탄이 조각을 주머니에 넣자 주머니 끈이 목을 파고들었다⁠. 일곱 개였다⁠. 앞발로 땅을 디딜 때마다 목이 앞으로 당겨졌다⁠.

*

석수가 다림추를 붙잡아 멈췄다⁠. 실 끝이 금에서 엄지 한 마디만큼 비껴 있었다⁠.

“⁠하루 반⁠.⁠”

석수가 말했다⁠. 까치 하나가 궁 담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까치가 부리에서 종이를 떨어뜨렸다⁠. 종이가 담을 타고 미끄러져 연탄 앞에 떨어졌다⁠.

「⁠입춘 앞두고 전국 이상 고온⁠… 남녘 보리 웃자람⁠… 이번 주말 한파 예보⁠」

자미가 바퀴 밑으로 걸어왔다⁠. 짐승 모습의 작은 쥐가 걸을 때마다 서리 낀 돌바닥에 발자국이 깊게 찍혔다⁠. 연탄은 발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쥐 발자국이 고양이 발자국보다 깊었다⁠.

“⁠석수 어른⁠. 비단을 걷어 주시지요⁠.⁠”

석수가 자미를 보았다⁠. 한참을 보았다⁠. 석수는 대답 대신 앞발을 뻗어 바퀴 테에 덮인 비단 자락을 잡았다⁠. 돼지 자리와 쥐 자리 사이였다⁠. 비단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테에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자리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았다⁠. 깨끗하게 판 자리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박혀 있다가 깨져 나간 자리였다⁠. 깨진 단면에 오래된 이빨 자국이 있었다⁠. 작은 이빨이 수없이 갉아 낸 자국이었다⁠. 구덩이 바닥은 이상하게 반들반들했다⁠. 작은 짐승 하나가 웅크린 만큼⁠, 오래 닳은 듯이⁠.

연탄의 방울이 울렸다⁠.

연탄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울렸다⁠. 낮고 둔한 소리가 가슴뼈를 울리고 앞마당을 울렸다⁠. 구덩이 가장자리의 돌이 방울 소리에 맞춰 아주 작게 떨었다⁠. 장터 사람들이 모두 연탄의 목을 보았다⁠. 묵돌이 씹던 것을 멈췄다⁠. 홍염의 털이 일어났다⁠.

자미가 구덩이를 등지고 연탄을 마주 보았다⁠.

“⁠천 년 전 경주 날⁠, 저는 고양이 집안 어른께 하루 늦은 날짜를 일러 드렸습니다⁠. 어른은 하루를 더 주무시고 오셨지요⁠. 열두 띠가 다 자리에 앉은 뒤였습니다⁠. 어른은 궁 문 앞에서 사흘을 우셨습니다⁠.⁠”

말 신령이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소문을 덧붙이지 않았다⁠.

“⁠옥황상제께서 우는 고양이를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석수 어른께 자리 하나를 더 파라 하셨지요⁠. 바로 여기입니다⁠.⁠”

석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팠소⁠. 내 정으로⁠.⁠”

“⁠바퀴가 열세 자리로 한 해를 돌았습니다⁠. 그해 사람 세상의 입춘은 동짓달에 들었습니다⁠. 땅이 한겨울에 녹았다가 다시 얼었습니다⁠. 보리 뿌리가 다 들떴고⁠, 봄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캤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그해 하늘로 올라온 소원은 전부 하나였습니다⁠. 쌀 한 됫박⁠.⁠”

자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앞마당의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림추 실이 바람에 아주 작게 울었다⁠.

“⁠이 자리를 깬 것은 접니다⁠. 제 이로 깼습니다⁠. 사흘 밤낮이 걸렸지요⁠.⁠”

자미가 앞발을 들어 구덩이 단면의 이빨 자국을 가리켰다⁠.

“⁠깨진 조각은 대부분 바퀴 밖으로 떨어져 구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 조각만 고양이 집안 어른이 주워 가셨지요⁠.⁠”

연탄은 자기 목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끈 끝에서 돌 방울이 아직 떨고 있었다⁠. 이백 년 동안 소리가 둔하다고만 생각했던 방울이었다⁠. 할머니가 걸어 준 날부터 한 번도 벗지 않은 방울이었다⁠.

“⁠규칙도 제가 썼습니다⁠.⁠”

자미가 말했다⁠.

“⁠자리를 깬 이듬해 섣달이었습니다⁠. 어른이 장터 바람구멍에서 상자를 쌓고 계셨지요⁠. 무엇이라도 드려야 했습니다⁠. 열두 띠를 차례로⁠, 저마다 고른 겨루기로 한 섣달에 다 꺾으라는 규칙을 써서 하늘 궁 서고에 넣었습니다⁠. 아무도 못 지킬 규칙이었습니다⁠. 소의 참을성과 호랑이의 힘과 용의 물과 말의 다리를 한 짐승이 다 넘을 수는 없으니까요⁠. 문을 열어 둔 척만 하려고 쓴 규칙이었습니다⁠.⁠”

자미가 연탄의 주머니를 보았다⁠. 주머니가 일곱 조각의 무게로 연탄의 목을 당기고 있었다⁠.

“⁠천 년 동안 아무도 서고에서 그 종이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사흘 전 고양이 상자 안에서 나왔지요⁠.⁠”

쪼롬의 꼬리가 떨렸다⁠. 붉은 실이 풀려 한 가닥 늘어졌다⁠. 연탄은 쪼롬을 보지 않았다⁠. 볼 수가 없었다⁠.

*

홍염이 먼저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이 몸이 진 게⁠, 쥐가 쓴 규칙 때문이라고⁠?⁠”

“⁠진 것은 꼬리 때문이지요⁠.⁠”

자미가 대답했다⁠. 홍염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웃는 이는 없었다⁠.

묵돌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걸음 하나에 바닥이 울렸다⁠.

“⁠그해⁠. 나도⁠. 기억한다⁠.⁠”

묵돌이 말했다⁠.

“⁠사람 세상⁠. 소들이⁠. 굶었다⁠.⁠”

연탄은 구덩이 앞으로 한 발 다가갔다⁠. 방울이 더 크게 울었다⁠. 한 발 더 다가가자 방울이 끈째 앞으로 당겨졌다⁠. 돌이 돌을 불렀다⁠. 연탄의 목이 구덩이 쪽으로 기울었다⁠. 일곱 조각이 든 주머니도 함께 당겨졌다⁠. 조각들이 주머니 안에서 서로 부딪치며 구덩이를 향해 몰렸다⁠.

연탄은 네 발로 버텼다⁠. 발톱이 돌바닥을 긁었다⁠.

자미가 연탄의 앞을 막았다⁠. 작은 쥐가 고양이 앞에 있었다⁠. 이백 년 동안 연탄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던 몸집이었다⁠. 연탄의 엉덩이는 들썩이지 않았다⁠.

“⁠열두 조각을 다 모으시면⁠, 석수 어른이 이 바퀴에 열세 번째 자리를 다시 파셔야 합니다⁠. 규칙이니까요⁠. 그러면 바퀴는 다시 열세 자리로 돕니다⁠. 사람 세상 입춘이 다시 동짓달로 갑니다⁠.⁠”

자미는 안경을 쓰지 않은 짐승 모습이었는데도⁠, 안경을 밀어 올리는 사람처럼 앞발로 콧등을 한 번 문질렀다⁠.

“⁠저는 그해를 한 번 봤습니다⁠. 두 번은 안 봅니다⁠.⁠”

연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할머니의 흐린 눈을 떠올렸다⁠. 늦잠 잔 고양이는 뛰어도 늦는다⁠. 천 이백 살 고양이가 화로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할머니는 알았어요⁠?⁠”

연탄이 물었다⁠. 목소리가 자기 귀에도 작게 들렸다⁠.

“⁠어른께 여쭤 보시지요⁠.⁠”

자미가 옆으로 비켰다⁠. 구덩이가 다시 연탄의 눈앞에 있었다⁠. 반들반들한 바닥이 저녁 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방울이 울었다⁠. 끈이 목을 당겼다⁠. 연탄은 이백 년 만에 처음으로 방울을 목에서 벗고 싶었다⁠. 벗지 않았다⁠. 앞발 하나를 들어 방울을 꾹 눌렀다⁠. 눌린 방울이 연탄의 발바닥 밑에서 계속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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