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740자)
탁자 위의 구슬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젖은 고양이는 무겁다. 연탄은 밤새 바퀴 전각 기둥 밑에서 털을 골랐다. 혀로 한 번 쓸 때마다 털에서 물이 한 방울씩 빠졌다. 등을 다 고르고 나면 배가 다시 축축해져 있었다. 토끼 신령이 곁에 앉아 긴 귀로 연탄에게 부채질을 했다. 귀가 펄럭일 때마다 바람과 함께 토끼 털이 날아와 연탄의 혀에 붙었다.
“퉤. 그만해요.”
“말리는 거야. 아니, 그만할까? 아니, 말려야지.”
토끼 신령은 그만두지 않았다. 연탄은 혀에 붙은 하얀 털을 앞발로 떼어 냈다. 날이 밝고 있었다. 하늘 궁의 아침은 장터보다 늦게 왔다. 돌바닥의 서리가 먼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홍염이 구름 계단을 올라왔다. 짐승 모습이었고, 등에 묵돌을 태우지는 못하고 묵돌 옆에 붙어 걸었다. 묵돌은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쉬었다. 홍염이 연탄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토끼를 건졌다며? 고양이가 물에 들어갔다며?”
“배만요.”
“배만 들어간 것도 들어간 거다. 이 몸은 물에 들어가 본 적 없다.”
홍염은 자랑처럼 말했다. 묵돌이 숨을 고르며 연탄의 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주머니가 조각 셋의 무게로 축 처져 있었다.
“무겁나.”
“조금요.”
묵돌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데 또 숨 한 번이 들었다.
*
용 전각은 궁 동편 구름 연못 위에 떠 있었다. 전각 바닥이 연못에 반쯤 잠겨 있었고, 연못물은 물이 아니라 우유처럼 희고 걸쭉한 구름이었다. 전각 한가운데 돌 탁자가 하나 있었다. 탁자 위에 주먹 두 개만 한 구슬이 놓여 있었다. 구슬 안에서 푸른 빛이 천천히 돌았다.
용 신령은 탁자를 감고 자고 있었다. 몸통이 탁자 다리를 세 번 휘감고 전각 기둥을 한 번 더 감고, 꼬리 끝은 연못에 잠겨 있었다. 비늘 하나가 연탄의 머리만 했다. 콧수염 두 가닥이 탁자 가장자리에서 늘어져 연못물에 닿아 있었다.
쪼롬이 붉은 실 감은 꼬리를 들고 용 신령의 코앞으로 갔다. 용 신령의 콧김에 쪼롬이 한 자쯤 밀려났다.
“지키는 용 집안이 겨루기를 고르십시오.”
용 신령의 눈꺼풀 하나가 반쯤 열렸다. 노란 눈이 쪼롬을 보았다가 연탄을 보았다.
“해 지기 전까지 내 구슬을 이 전각 밖으로 가지고 나가라. 나는 자면서도 지킨다.”
눈꺼풀이 도로 닫혔다. 코 고는 소리가 전각 기둥을 울렸다. 홍염이 연탄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면서도 지킨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냥 잔다는 말이다.”
연탄은 대답하지 않고 용의 몸통에 앞발을 올렸다. 비늘이 차고 미끄러웠다. 비늘과 비늘 사이 틈에 발톱을 걸었다. 높은 데로 가는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연탄은 똬리를 한 바퀴씩 타고 올라갔다. 용의 몸통이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렸고, 연탄은 오르내림을 타고 한 칸씩 더 올라갔다.
탁자 위에 올라섰을 때 해는 하늘 꼭대기에 있었다.
*
구슬은 연탄의 앞에 있었다. 둥글었다. 매끄러웠다. 푸른 빛이 안에서 돌았다. 연탄은 구슬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몸 안에서 무엇인가가 간질거렸다. 이백 년 동안 상자 위에서, 장터 떡판 위에서, 할머니 화로 옆 선반 위에서 느낀 간질거림이었다.
탁자 위에 둥근 것이 있으면 고양이는 떨어뜨린다. 까닭은 없다.
연탄은 앞발 하나를 들었다. 아주 천천히 구슬에 댔다. 용 신령의 눈꺼풀이 반쯤 열렸다. 노란 눈이 연탄의 앞발을 보았다. 연탄은 용 신령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구슬을 조금 밀었다. 구슬이 탁자 가장자리로 굴러갔다. 용 신령의 눈이 커졌다.
“하지 마라.”
연탄은 한 번 더 밀었다.
구슬이 탁자에서 떨어졌다. 똬리 위에 한 번 튕기고, 두 번 튕기고, 전각 바닥을 굴러 연못으로 들어갔다. 퐁. 걸쭉한 구름물이 구슬을 삼켰다.
전각 밖에서 홍염이 앞발로 눈을 가렸다. 토끼 신령은 귀로 얼굴을 덮었다. 묵돌은 씹다가 멈췄다. 용 신령이 고개를 들었다. 전각 지붕이 머리에 받혀 흔들렸다.
“왜 떨어뜨렸느냐?”
“모르겠어요.”
연탄은 정말로 몰랐다. 쪼롬이 연못가에서 꼬리를 들었다.
“구슬은 전각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전각 바닥 밑 연못은 전각 안입니다.”
용 신령이 길게 웃었다. 웃음에 구름 연못이 출렁였다.
“그렇다. 가지고 나가야지. 떨어뜨린 것은 가지고 나간 것이 아니다.”
용 신령은 다시 똬리에 머리를 얹고 눈을 감았다.
*
연탄은 연못가에 앉아 구름물을 내려다보았다. 희고 걸쭉해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구슬의 푸른 빛이 아주 깊은 데서 희미하게 돌고 있었다. 어젯밤 언 연못보다 몇 배는 깊어 보였다.
“고양이가 들어가면 뜨나?”
홍염이 물었다.
“안 떠요.”
“그럼 어떻게 나오냐?”
연탄은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를 벗을까 생각했다. 조각 셋이 든 주머니는 물속에서 돌처럼 끌어당길 것이었다. 벗어 두면 가벼웠다. 벗어 두면 누가 집어 갈 수도 있었다. 조각을 자리 밖에 둔 짐승이 겨루기를 이어 갈 수 있는지 연탄은 몰랐다. 연탄은 주머니 끈을 이로 한 번 더 당겨 조였다.
그러고는 뛰어들었다.
구름물은 물보다 차지 않았다. 대신 무거웠다. 털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몸을 아래로 끌었다. 눈을 뜨자 온통 하얬다. 푸른 빛만 보였다. 연탄은 네 다리를 저었다. 고양이도 헤엄은 칠 줄 안다. 싫어할 뿐이다. 젖은 털이 몸을 두 배로 만들었고 주머니가 목을 아래로 당겼다. 푸른 빛이 가까워졌다. 연탄은 구슬을 이로 물었다. 미끄러웠다. 이빨이 구슬 위로 미끄러지다 겨우 박혔다.
위로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지지 않았다. 다리를 저을수록 털이 물을 더 먹었다. 숨이 가슴 안에서 뜨거워졌다.
하얀 물속에 검은 줄 두 가닥이 늘어져 있었다. 용 신령의 콧수염이었다.
연탄은 앞발로 수염 하나를 붙잡았다. 발톱을 박았다. 수염은 밧줄처럼 굵었고 단단했다. 고양이는 오른다. 나무든 기둥이든 방 판이든. 연탄은 구슬을 문 채 수염을 타고 올라갔다. 앞발, 뒷발, 앞발. 털에서 물이 쏟아질 때마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머리가 구름물 위로 나왔다. 숨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수염 끝은 용 신령의 콧구멍에 이어져 있었다. 연탄이 수염을 당길 때마다 용 신령의 코가 찡그려졌다. 찡그려지고, 또 찡그려지고.
용 신령이 재채기를 했다.
전각이 통째로 흔들렸다. 재채기 바람에 연탄의 몸이 수염째 휙 들렸다. 연탄은 들린 김에 수염을 놓았다.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고양이는 떨어질 때 발부터 내린다. 연탄의 네 발이 전각 문지방 너머 돌바닥에 닿았다. 입에 구슬이 물려 있었다.
재채기 끝에 비가 쏟아졌다. 전각 앞마당에만, 아주 잠깐. 홍염이 비를 맞고 털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질렀다.
“나갔다! 밖이다! 고양이 발이 밖이다!”
쪼롬이 젖은 꼬리를 들었다.
“구슬이 전각 밖으로 나왔습니다.”
용 신령이 콧등을 앞발로 문지르며 연탄을 내려다보았다.
“내 수염을 밧줄로 쓴 놈은 처음이다.”
네 번째 조각은 연탄이 구슬을 내려놓은 자리에 떨어졌다. 구슬 옆에 조그만 돌 조각 하나. 용 신령이 길게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감으면서 말했다.
“다음에 오거든. 탁자 위에 아무것도 없을 거다.”
*
연탄은 전각 앞마당 한가운데서 몸을 털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물결처럼 떨자 구름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제일 가까이 있던 홍염이 다 뒤집어썼다. 홍염의 줄무늬가 하얗게 얼룩졌다.
“이 몸 줄무늬에!”
“가까이 있으니까 그렇죠.”
홍염은 앞발로 얼굴을 닦다가 얼룩이 더 번지자 토끼 신령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토끼 신령이 비명을 지르고 묵돌 다리 사이로 숨었다. 묵돌은 다리 사이에 토끼가 들어와도 씹기만 했다.
쪼롬이 연탄 곁으로 왔다. 짐승 모습의 쪼롬은 젖은 연탄의 앞발 옆에 앉아 수염을 닦았다. 쪼롬의 수염에도 구름물이 튀어 있었다.
“주머니 벗을 줄 알았어.”
“벗으면 누가 집어 갈까 봐.”
“누가?”
연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쪼롬도 더 묻지 않았다. 둘 다 같은 얼굴을 떠올렸다. 쪼롬이 앞발로 연탄의 젖은 주머니를 툭 쳤다. 조각들이 안에서 부딪쳐 묵직한 소리를 냈다.
“연탄. 네 상자에 그 종이 누가 넣었는지, 안 궁금해?”
“안 궁금해.”
연탄은 대답하고 나서 쪼롬을 보았다. 쪼롬은 연탄을 보지 않았다. 바퀴 전각 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저 너머에 바퀴가 아주 느리게 돌고 있을 터였다.
“지금은 안 궁금해. 다 이기고 궁금해할래.”
“다 이기고 나면 안 궁금할걸.”
쪼롬은 꼬리의 붉은 실을 고쳐 감고 일어났다. 뱀 집안 겨루기 시각이었다.
*
뱀 신령의 겨루기는 짧았다. 궁 서편 돌 정원에서 숨바꼭질이었다. 향 한 대가 다 타기 전에 숨은 뱀을 찾으면 이기는 판이었다. 뱀 신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속삭였다.
“나는 냄새가 없다. 소리도 없다. 숨도 반 각에 한 번 쉰다. 고양이 코로는 못 찾는다.”
뱀 신령은 자갈 사이로 사라졌다. 정원에는 자갈과 바위와 마른 이끼밖에 없었다. 연탄은 코를 박고 다녔다. 냄새가 없었다. 귀를 세웠다. 소리가 없었다. 향이 절반쯤 탔다.
연탄은 걷다가 발바닥으로 알았다. 자갈은 밟으면 조금씩 밀려났다. 대부분은 똑같이 밀려났다. 한 자리만 덜 밀렸다. 발밑이 단단했다. 자갈 밑에 무엇이 깔려 있었다. 무게가 자갈을 밑에서 받치고 있었다.
연탄은 앞발로 자갈을 헤쳤다. 차가운 비늘이 나왔다.
“무겁게 똬리를 트셨네요.”
뱀 신령은 혀를 날름거리며 자갈 밖으로 나왔다. 화를 내지 않았다. 다섯 번째 조각을 내주며 연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쥐 집이 무릎 꿇는 거, 내가 천 년 기다렸다. 쥐는 뱀의 밥이거든.”
연탄은 쪼롬을 보았다. 쪼롬은 붉은 실 꼬리를 든 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귀 끝만 빨갰다.
*
궁 앞마당으로 돌아오자 자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미 곁에 둘이 더 있었다. 하얀 털이 구름처럼 부푼 양 신령과, 붉은 볏을 세운 닭 신령이었다.
석수가 다림추 옆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하루요.”
석수는 한마디만 했다. 다들 무슨 말인지 알았다. 사람 세상 입춘이 하루 당겨졌다. 까치 하나가 궁 담을 넘어 날아와 자미의 발치에 신문 귀퉁이를 떨어뜨렸다. 자미가 읽지 않고 연탄 쪽으로 밀었다. 연탄은 젖은 앞발로 종이를 눌렀다.
「남부 지방 개나리 꽃망울… 농가 냉해 걱정…」
양 신령이 앞으로 나왔다. 걸음이 느렸고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사흘 뒤면 내 해다. 정월 초하루부터 바퀴가 내 자리에 선다. 기운 바퀴로 시작하면 내 해 열두 달이 다 비뚤어진다. 사람 세상에서 내 해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비뚤어진 절기로 첫 봄을 맞는다.”
“비켜 주실 거예요?”
연탄이 물었다.
“안 비킨다. 겨루기는 받는다. 규칙이니까. 지면 조각은 주마.”
양 신령의 털이 바람에 부풀었다.
“네 편은 안 된다.”
닭 신령이 볏을 흔들었다.
“새벽은 내가 연다. 하루 당겨진 새벽은 새벽이 아니다. 나도 받기는 받는다. 나도 네 편은 안 된다.”
홍염이 이빨을 드러내며 앞으로 나가려 했다. 묵돌이 큰 머리로 홍염의 옆구리를 막았다. 토끼 신령은 묵돌 뒤에 숨었다. 앞마당이 두 무리로 갈렸다. 쥐와 양과 닭이 한 무리였고, 고양이와 소와 호랑이와 토끼가 한 무리였다. 둘 사이에 쪼롬이 붉은 실 꼬리를 들고 혼자 있었다.
자미가 쪼롬을 보았다.
“오늘 밤은 집에 오너라.”
“심판은 궁에서 잡니다.”
자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연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섯 판이군요. 다섯 판을 이기는 동안 한 번도 묻지 않으셨지요. 고양이 집안 어른이 왜 천 년 동안 이 궁에 못 오르셨는지.”
연탄은 앞발 밑 신문 귀퉁이를 꾹 눌렀다. 종이가 젖어 찢어졌다.
“오늘 밤 바퀴 전각에서 보여 드리지요. 말 집과 양 집 겨루기가 끝나면.”
자미는 주판을 튕기지 않고 등을 보였다. 연탄의 가슴께에서 방울이 혼자 한 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