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15자)

발 구르는 토끼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구름 계단은 오를수록 차가워졌다⁠. 처음 몇 칸은 솜을 밟는 것 같았는데⁠, 백 칸쯤 오르자 발바닥에 서리가 붙었다⁠. 연탄은 짐승 모습으로 한 칸씩 뛰어올랐다⁠. 목에 방울과 함께 작은 무명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쪼롬이 앞치마를 뜯어 만들어 준 주머니였다⁠. 안에 조각 둘과 접은 소원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뛸 때마다 주머니가 가슴뼈를 툭툭 쳤다⁠.

쪼롬은 연탄보다 세 칸 위에서 올라가고 있었다⁠. 짐승 모습의 쪼롬은 연탄의 앞발 하나만 했다⁠. 잿빛 털에 귀 끝만 분홍이었고⁠, 꼬리에 붉은 실을 감아 심판 표시를 했다⁠. 연탄은 쪼롬의 꼬리가 칸마다 흔들리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보면 덮치고 싶어졌다⁠.

“⁠앞에서 꼬리 좀 흔들지 마⁠.⁠”

“⁠계단이 기울었잖아⁠. 꼬리로 균형 잡는 거야⁠.⁠”

“⁠그러니까 흔들지 말라고⁠.⁠”

쪼롬이 일부러 꼬리를 한 번 크게 흔들었다⁠. 연탄은 눈을 감고 다음 칸으로 뛰었다⁠. 발을 헛디뎌 턱을 계단에 찧었다⁠. 위에서 쪼롬의 웃음소리가 찍찍 났다⁠.

자미는 맨 앞에서 오르고 있었다⁠. 작은 쥐가 오를 때마다 계단이 한 칸씩 깊이 꺼졌다⁠. 연탄이 디딜 때보다 훨씬 깊었다⁠. 연탄은 꺼진 칸을 디디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끝까지 하기 전에 하늘 궁 문이 나왔다⁠.

*

문지기는 학이었다⁠. 다리 하나로 서서 부리로 방을 넘겼다⁠. 학은 연탄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오래 내려다보았다⁠.

“⁠고양이 집안은 천 년 동안 이 문을 넘은 적이 없소⁠.⁠”

“⁠방에 도장 찍혀 있잖아요⁠.⁠”

“⁠찍혀 있소⁠.⁠”

학은 다리를 바꿔 서고 부리를 비켜 주었다⁠. 연탄은 문지방을 넘었다⁠. 넘는 순간 방울이 울렸다⁠. 연탄이 흔들지 않았는데도 울렸다⁠. 둔하고 낮은 소리가 가슴뼈를 타고 꼬리까지 내려갔다⁠. 학이 고개를 돌려 방울을 보았다⁠. 연탄은 못 들은 척 걸었다⁠.

하늘 궁은 장터보다 조용했다⁠. 돌바닥이 끝없이 깔려 있었고⁠, 바닥 틈마다 서리가 하얗게 끼었다⁠. 연탄은 걸으면서 발바닥으로 기울기를 느꼈다⁠. 오른 발바닥에 무게가 조금 더 실렸다⁠. 궁 전체가 오른편으로 손톱 하나만큼 내려앉아 있었다⁠.

바퀴 전각은 궁 한가운데 있었다⁠. 지붕이 없었다⁠. 기둥 열두 개가 둥글게 서 있었고⁠, 한가운데 허공에 돌바퀴가 매달려 있었다⁠. 연탄은 고개를 젖히고 바퀴를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끝까지 젖혀도 바퀴 꼭대기가 다 보이지 않았다⁠.

테를 따라 자리돌 열두 개가 박혀 있었다⁠. 자리돌마다 띠 짐승이 새겨져 있었다⁠. 쥐 자리가 가장 컸다⁠. 소 자리와 호랑이 자리 모서리에 하얀 생채기가 나 있었다⁠. 막 떼어 낸 자리였다⁠. 바퀴는 아주 느리게 돌았다⁠. 숨 한 번에 머리카락 한 올만큼⁠. 한 자리를 다 도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돼지 자리와 쥐 자리 사이에는 비단 한 폭이 덮여 있었다⁠. 테의 한 부분만 무엇을 가린 것처럼 불룩했다⁠. 연탄이 비단을 보고 있을 때 방울이 또 한 번 울렸다⁠.

*

바퀴 밑에 늙은 거북이 있었다⁠. 등딱지에 이끼가 끼었고⁠, 앞발에 쇠정과 망치를 쥐고 있었다⁠. 하늘 궁의 석수였다⁠. 석수 곁에는 기둥 꼭대기에서 늘어뜨린 실이 있었고⁠, 실 끝에 놋쇠 다림추가 달려 있었다⁠. 다림추 끝은 바닥에 그은 금을 가리켜야 했다⁠. 지금은 금에서 오른편으로 손톱 하나만큼 비껴 있었다⁠.

자미가 석수 앞으로 갔다⁠.

“⁠석수 어른⁠. 바퀴가 기울면 겨루기를 멈출 권한이 석수에게 있지요⁠.⁠”

석수는 대답하기 전에 고개를 등딱지에서 반쯤 꺼냈다⁠. 거북의 대답은 묵돌의 대답보다 느렸다⁠.

“⁠바퀴가 무너질 때는 있소⁠. 기울 때는 없소⁠.⁠”

“⁠기울다 보면 무너집니다⁠.⁠”

“⁠그건 짐작이고⁠. 지금은 다림추요⁠.⁠”

석수가 앞발로 다림추를 가리켰다⁠. 자미는 다림추를 보았다⁠. 연탄도 보았다⁠. 실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절기로 치면 얼마요⁠?⁠”

자미가 물었다⁠.

“⁠반나절⁠. 사람 세상 입춘이 반나절 당겨졌소⁠.⁠”

자미는 연탄을 돌아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것이 없는 얼굴이 아니라⁠, 말을 아끼는 얼굴이었다⁠. 석수가 연탄을 보며 덧붙였다⁠.

“⁠규칙이 먼저요⁠. 방이 붙었고 도장이 찍혔소⁠. 고양이 세 번째 판은 토끼 집이오⁠.⁠”

“⁠토끼 집이면 쉽겠네요⁠.⁠”

연탄이 말했다⁠. 석수가 눈을 껌벅였다⁠.

“⁠토끼는 겁이 많잖아요⁠. 제가 쳐다만 봐도 도망가요⁠.⁠”

석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도로 등딱지에 넣었다⁠. 등딱지 안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났다⁠. 하늘 궁 연못이 얼마나 얇게 어는지 아는 웃음이었다⁠.

*

토끼 신령은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 장터에서 귀를 감싸 쥐고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던 여자였다⁠. 짐승 모습의 토끼 신령은 눈처럼 하얬고⁠, 귀가 몸보다 길었다⁠. 연탄이 다가가자 토끼 신령이 펄쩍 뛰어 세 걸음 물러났다⁠.

“⁠가까이 오지 마⁠. 아니⁠, 와도 돼⁠. 아니⁠, 오지 마⁠. 고양이는 토끼를 먹어⁠?⁠”

“⁠안 먹어요⁠.⁠”

“⁠먹는 고양이도 있다던데⁠. 남쪽 나라 고양이들은 우리 자리도 먹었다던데⁠.⁠”

연탄은 무슨 말인지 몰라 쪼롬을 보았다⁠. 쪼롬이 연탄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바다 건너 남쪽에 띠를 열둘 쓰는 나라가 있는데⁠, 거기는 토끼 자리에 고양이가 들어가 있어⁠. 토끼 해가 그 나라에서는 고양이 해야⁠.⁠”

연탄은 목에 단 주머니를 앞발로 눌렀다⁠. 주머니 안에서 소원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우리 고향 달력에는 고양이가 있어요⁠.⁠」 크레파스 고양이의 세모난 귀가 떠올랐다⁠.

토끼 신령이 연못을 가리켰다⁠. 하늘 궁의 연못은 장터 마당 열 개만 했다⁠. 온통 얼어 있었는데⁠, 얼음이 유리처럼 맑았다⁠.

“⁠살얼음 건너기⁠. 저 끝 기슭에 먼저 닿으면 이겨⁠. 얼음 깨면 져⁠. 토끼는 발이 넓어⁠. 무게가 퍼져⁠. 고양이는 발이 좁지⁠? 좁잖아⁠. 좁아⁠.⁠”

토끼 신령은 혼자 묻고 혼자 대답했다⁠. 쪼롬이 붉은 실 감은 꼬리를 들었다⁠.

“⁠지키는 토끼 집안이 고른 겨루기는 살얼음 건너기입니다⁠.⁠”

*

자미가 연못가로 왔다⁠. 시작하기 전이었다⁠. 자미는 얼음 끝에 앞발을 올리고 연탄을 불렀다⁠.

“⁠내려다보시지요⁠.⁠”

연탄은 얼음 위로 고개를 숙였다⁠. 얼음 밑에는 물이 있어야 했다⁠. 물 대신 불빛이 보였다⁠. 아주 멀리⁠, 아주 작게⁠. 연탄은 얼굴을 얼음에 더 가까이 댔다⁠. 수염이 얼음에 닿아 차가웠다⁠.

밤이었다⁠. 넓은 밭이 보였다⁠. 밭고랑마다 푸른 싹이 두 치쯤 올라와 있었다⁠. 밭 끝에 슬레이트 지붕 집 한 채가 있었고⁠, 창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마당에 늙은 사내가 나와 있었다⁠. 사내는 밭머리에 쪼그려 앉아 손바닥으로 흙을 눌렀다⁠. 눌렀다가 들어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고창 늙은이입니다⁠.⁠”

자미가 말했다⁠.

“⁠땅이 섣달에 녹고 있습니다⁠. 반나절 때문에요⁠.⁠”

창에 불 켜진 방 안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배가 불러 있었다⁠. 여자는 벽에 붙은 달력을 보고 있었다⁠. 달력 맨 위에 하얀 양 그림이 있었다⁠. 여자가 손가락으로 양 그림을 쓸었다⁠. 그러고는 공책 한 장을 찢어 크레파스를 쥐었다⁠.

연탄은 얼음에서 얼굴을 뗐다⁠. 주머니 속 종이가 무거웠다⁠. 종이 한 장이 조각 두 개보다 무거웠다⁠.

“⁠저 여자 소원은 저 늙은이 소원하고 같은 집에서 올라옵니다⁠. 하나는 고양이를 달라 하고⁠, 하나는 절기를 지켜 달라 합니다⁠. 하나를 들어주면 하나가 무너집니다⁠.⁠”

자미가 얼음에서 앞발을 뗐다⁠.

“⁠저는 하나를 고른 지 천 년 되었습니다⁠.⁠”

*

“⁠시작입니다⁠.⁠”

토끼 신령이 먼저 얼음에 올랐다⁠. 넓은 뒷발이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착착 붙었다⁠. 토끼 신령은 빨랐다⁠. 몇 번 뛰자 연못 한가운데였다⁠. 연탄은 얼음에 앞발을 올렸다⁠. 얼음이 발바닥 밑에서 아주 작게 울었다⁠. 끼익⁠. 연탄은 발끝으로만 걸었다⁠. 고양이는 소리 없이 걷는다⁠. 무게도 소리처럼 죽일 수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몸을 가볍게 하고⁠, 발 하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무게를 천천히 옮겼다⁠.

토끼 신령이 저 끝 기슭 가까이에 있었다⁠. 연탄은 아직 한가운데를 못 갔다⁠. 질 판이었다⁠.

얼음 밑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노래였다⁠. 아주 많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부르는 노래였다⁠. 연탄이 모르는 말이었다⁠. 말은 몰라도 노래 끝마다 같은 소리가 되풀이되었다⁠. 얼음이 노래에 맞춰 떨었다⁠. 쪼롬이 연못가에서 소리쳤다⁠.

“⁠남쪽 나라야⁠! 고양이 해 노래야⁠!⁠”

토끼 신령이 얼음 위에서 멈췄다⁠. 긴 귀가 노래 쪽으로 돌아갔다⁠. 하얀 털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토끼 신령이 소리를 질렀다⁠.

“⁠내 자리⁠! 내 자리 먹으러 온다⁠!⁠”

토끼는 겁나면 발을 구른다⁠. 토끼 신령의 두 뒷발이 얼음을 쾅 쳤다⁠. 한 번⁠, 두 번⁠. 쩍⁠, 하고 얼음에 금이 갔다⁠. 금이 토끼 신령 발밑에서 사방으로 번졌다⁠. 세 번째로 발을 구르자 얼음이 꺼졌다⁠. 하얀 토끼가 시커먼 물속으로 사라졌다⁠.

연탄은 기슭과 구멍 사이에 있었다⁠. 기슭이 더 가까웠다⁠. 열 걸음이면 닿았다⁠. 연탄은 기슭을 보았다⁠. 구멍을 보았다⁠. 구멍에서 하얀 귀 끝이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갔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 연탄은 이백 년 동안 물에 몸을 담근 적이 없었다⁠. 비 오는 날이면 상자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연탄은 몸을 돌렸다⁠.

구멍 가까이 갈수록 얼음이 울었다⁠. 끼익⁠, 끼익⁠. 연탄은 배를 깔고 엎드렸다⁠.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었다⁠. 상자 안에서 더울 때 하던 자세였다⁠. 장터 사람들은 고양이가 펼쳐졌다고 놀렸다⁠. 펼쳐진 고양이는 무게가 얼음 넓이만큼 퍼졌다⁠. 연탄은 배로 기어갔다⁠. 구멍 가장자리에서 얼음이 출렁였다⁠. 물이 얼음 위로 넘쳐 연탄의 배털을 적셨다⁠. 차가운 것이 살갗까지 들어왔다⁠. 연탄은 이를 악물었다⁠.

하얀 귀가 다시 올라왔다⁠. 연탄은 귀를 물었다⁠. 이빨에 힘을 주지 않고⁠, 놓치지 않을 만큼만⁠. 그러고는 뒷걸음으로 기었다⁠. 토끼 신령의 머리가 올라왔다⁠. 앞발이 얼음 가장자리를 긁었다⁠. 연탄은 계속 뒤로 기었다⁠. 젖은 토끼는 마른 토끼보다 세 배는 무거웠다⁠. 젖은 배털이 얼음에 쩍쩍 붙었다가 떨어졌다⁠.

토끼 신령이 얼음 위로 끌려 나왔다⁠. 둘은 엎드린 채로 한참 숨만 쉬었다⁠. 그러고는 둘 다 엎드린 채로 기슭까지 기어갔다⁠. 펼쳐진 고양이 하나와 펼쳐진 토끼 하나였다⁠. 연탄의 앞발이 먼저 기슭에 닿았다⁠.

*

쪼롬이 꼬리를 들었다⁠.

“⁠토끼 집안이 먼저 얼음을 깼습니다⁠. 고양이 집안이 이겼습니다⁠.⁠”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궁 안에서 울려서 귀가 먹먹했다⁠. 세 번째 조각이 연탄의 젖은 등 위에 떨어졌다⁠. 등이 바닥으로 푹 눌렸다⁠. 젖은 털에 조각까지 얹히자 연탄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쪼롬이 달려와 조각을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토끼 신령이 덜덜 떨면서 연탄 곁으로 왔다⁠. 귀 하나에 연탄의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고마워⁠. 아니⁠, 고맙지 않아⁠. 네가 이겼잖아⁠. 아니⁠, 고마워⁠. 귀 아파⁠. 고마워⁠.⁠”

토끼 신령은 연탄의 젖은 등에 제 젖은 몸을 붙였다⁠. 둘이 붙자 조금 덜 추웠다⁠.

연못 위 구멍으로 노래가 아직 올라오고 있었다⁠. 자미가 구멍가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한참 듣다가 연탄을 보았다⁠.

“⁠토끼를 건지셨지요⁠. 고창 늙은이의 보리가 얼면⁠, 그것도 건지실 수 있겠습니까⁠?⁠”

연탄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빨이 딱딱 부딪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궁 전체가 흔들렸다⁠. 기둥 열두 개가 한꺼번에 울었고⁠, 다림추가 실 끝에서 크게 그네를 탔다⁠. 궁 동편 구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산 하나가 돌아눕는 소리였다⁠. 낮고 긴 목소리가 구름을 뚫고 내려왔다⁠.

“⁠누가⁠. 내 잠자리를⁠. 기울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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