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601자)
나무 타기만은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쪼개진 사과 상자는 넷이었다. 연탄은 사람 모습으로 바람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판자 조각을 주웠다. 못이 빠진 자리마다 나뭇결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할머니가 맨 아래 상자에서 고개만 내밀고 연탄의 손을 보았다.
“호랑이 새끼가 또 왔었냐?”
“새끼가 아니던데요. 문짝만 하던데.”
“내 눈엔 새끼다.”
할머니는 흐린 눈을 깜박였다. 천 이백 살 고양이에게는 장터에 새끼 아닌 짐승이 몇 없었다. 할머니가 하품을 하고 말을 이었다.
“옛날에 그놈 할아비가 우리 집에 와서 재주를 배워 갔다. 몸 낮추는 법, 발소리 죽이는 법, 덮치는 법, 다 가르쳤다. 나무 타는 것만 안 가르쳤지.”
“왜요?”
“가르쳤으면 지금쯤 내가 그놈 뱃속이지.”
할머니는 도로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상자 안에서 목소리만 나왔다.
“나무 없는 데로 부르더냐?”
“모래판이요.”
“그럼 너도 모래판에서는 호랑이다.”
연탄은 판자 조각을 손에 쥐고 할머니의 상자를 보았다. 무슨 뜻인지 물으려 했는데 상자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먼저 나왔다.
*
장터 처마 밑에 자미가 있었다. 해가 하늘 문 기둥 밑동까지 내려와 장터 바닥이 붉었다. 자미는 처마 기둥에 등을 대고 주판을 세고 있었다. 연탄이 지나가려 하자 자미가 주판에서 눈을 들지 않은 채 불렀다.
“잠깐 서 보시지요.”
연탄은 처마 밖에서 걸음을 멈췄다. 처마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늘 궁 석수에게서 전갈이 왔습니다. 소 자리가 가벼워져 바퀴가 실 한 올만큼 기울었답니다.”
“실 한 올이요.”
“빈 저울 바늘이 영으로 안 돌아오는 것을 보셨지요. 장터 저울은 하늘 궁 바퀴와 같은 쇠로 만들었습니다. 위가 기울면 아래도 기웁니다.”
자미가 소매에서 종잇조각 하나를 꺼냈다. 까치가 물어 온 사람 세상 신문 귀퉁이였다. 활자 몇 줄이 찢긴 자리에서 끊겨 있었다. 자미가 읽었다.
“「전북 고창, 섣달에 매화 꽃망울… 기상청 이례적 포근함…」 실 한 올이면 이렇습니다.”
연탄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햇빛을 보았다. 햇빛이 자미의 안경알에서 한 번 번쩍했다.
“한 판 이기셨으니 소 집안 조각을 들고 돌아가시지요. 고양이 집이 소를 꺾었다는 말은 장터에서 천 년을 갑니다. 그거면 됩니다.”
“천 년 동안 쥐가 고양이를 속였다는 말도 갔잖아요. 그건 됐어요?”
자미는 주판알을 튕기지 않았다. 대신 주판을 뒤집어 알을 한쪽으로 다 쓸어내렸다. 주판을 처음부터 다시 놓는 사람처럼.
“모래판에서 다치지 마시지요. 다친 고양이는 하늘 궁 계단을 못 오릅니다.”
*
모래판은 호랑이 문 앞마당에 있었다. 둥글게 금을 긋고 고운 모래를 정강이 깊이로 깔았다. 둘레에 장터 사람들이 모였는데, 소 문에서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묵돌은 맨 앞줄에 엎드려 짚을 씹었다. 너구리 엿장수는 엿판에 새로 적었다. 「고양이 모래판 금 밖으로 — 엿 세 판」
홍염은 짐승 모습으로 금 안에 들어와 있었다. 연탄이 지금껏 본 어떤 짐승보다 컸다. 어깨가 연탄의 머리 위로 높이 솟았고, 앞발 하나가 연탄의 몸통만 했다. 등줄기의 검은 줄무늬가 노을빛 털 위에서 물결처럼 흘렀다. 홍염은 앞발로 수염을 쓸어 넘겼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 줄무늬 봐라. 고양이 집에서 이런 거 나온 적 있냐?”
“우리 집은 다 까매서요.”
“그러니까 상자에서 사는 거다.”
쪼롬이 붉은 띠를 두르고 금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손에 저울추를 쥐고 있었다.
“지키는 호랑이 집안이 고르신 겨루기를 말씀하십시오.”
“싸움. 금 밖으로 내보내거나, 등을 모래에 붙여 셋을 세면 이긴다.”
홍염은 모래판 둘레를 둘러보았다.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장대도 처마도 없었다. 홍염이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오를 데는 없다.”
“시작입니다.”
홍염이 먼저 왔다. 큰 짐승이 빠를 리 없다고 연탄은 생각했는데, 홍염은 빨랐다. 앞발 하나가 연탄의 옆구리를 쳤고, 연탄은 모래 위를 공처럼 굴렀다. 숨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방울이 가슴께에서 둔하게 울었다. 일어나기도 전에 두 번째 앞발이 내려왔다. 연탄은 몸을 비틀어 빠져나갔다. 모래가 입에 들어왔다.
홍염은 쫓아오지 않았다. 금 한가운데서 천천히 돌았다. 몸을 낮추고, 발소리를 죽이고, 어깨를 앞으로 밀며. 할머니가 가르쳤다는 걸음이었다. 연탄의 걸음과 같았다. 몸이 다섯 배 클 뿐이었다.
세 번째에 연탄은 피하지 못했다. 홍염의 앞발이 연탄의 등을 눌렀다. 연탄의 배가 모래에 박혔다. 홍염의 무게가 등뼈 위에 그대로 얹혔다. 돌 조각 하나가 고양이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던 무게가 생각났다. 이건 조각이 아니라 바위였다. 연탄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등이 아니라 배입니다. 셋을 세지 않습니다.”
쪼롬의 목소리였다. 홍염이 연탄을 뒤집으려고 앞발에 힘을 주었다. 연탄은 뒤집히지 않으려고 몸을 녹였다. 고양이는 몸을 녹일 줄 안다. 뼈가 있는 줄 모르게 힘을 다 빼면 누르는 앞발 밑에서 몸이 물처럼 퍼진다. 홍염의 발톱 사이로 연탄의 몸이 흘러 나갔다. 귀 한쪽이 발톱에 찢어졌다. 뜨거운 것이 목덜미로 흘렀다.
연탄은 금 가장자리까지 기어가 앉았다.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는 알았다. 할머니 말이 맞았다. 모래판에서는 연탄도 호랑이였다. 둘이 같은 걸음을 걷고, 같은 버릇을 가졌다.
홍염이 다시 몸을 낮췄다. 홍염의 눈이 연탄을 보지 않았다. 연탄의 뒤를 보고 있었다. 연탄은 홍염이 무엇을 보는지 알았다. 숨을 몰아쉬느라 연탄의 꼬리 끝이 저 혼자 까딱거리고 있었다.
연탄은 꼬리를 세웠다. 금 바로 위 허공으로. 그리고 끝만, 아주 조금, 까딱였다.
홍염의 동공이 둥글어졌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한 번, 두 번. 홍염 자신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장터 사람들이 숨을 들이쉬었다. 묵돌이 씹던 것을 멈췄다.
꼬리 끝이 까딱했다.
홍염이 뛰었다.
문짝만 한 몸이 연탄의 머리 위를 넘어 꼬리 끝을 향해 날았다. 꼬리 끝은 금 바로 위 허공에 있었다. 연탄은 꼬리를 홱 내렸다. 홍염의 앞발이 허공을 할퀴었고, 몸이 금을 넘어 장터 사람들 발치에 떨어졌다. 모래가 둘레 사람들 얼굴에 확 끼얹혔다. 너구리의 엿판이 뒤집혔다.
“홍염 어르신, 앞발과 뒷발이 다 금 밖입니다.”
쪼롬이 저울추를 든 손을 들었다. 홍염이 모래투성이 얼굴로 일어나 포효했다. 포효 끝에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꼬리가! 꼬리가 먼저 밖에 나가 있었잖아!”
“꼬리는 금 위 허공에 있었습니다. 금 밖에 닿은 것은 홍염 어르신 발입니다.”
홍염은 쪼롬을 노려보다가 연탄을 노려보았다. 연탄은 금 안에 앉아 찢어진 귀를 앞발로 닦고 있었다. 홍염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건 이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버릇이다. 고양이 집에서 배운 게 아니야.”
“알아요.”
연탄은 귀를 닦던 앞발을 내렸다.
“그래서 할머니가 안 가르쳐 준 거예요. 원래 가지고 있던 거라서.”
*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장터가 다 울렸다. 하늘 문 기둥이 떨었고, 하역 마당의 쌀가마 더미가 한 자쯤 미끄러졌다. 두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모래판 한가운데, 연탄의 앞발 사이였다. 소 조각보다 조금 크고 조금 더 따뜻했다. 연탄은 조각을 입에 물었다. 턱이 아래로 당겨졌다.
장터 끝에서 쪼롬이 빈 저울 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연탄은 쪼롬이 무엇을 읽을지 알았다.
홍염은 모래를 털고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줄무늬 두건을 주워 썼다. 연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람구멍으로 걸어갔다. 연탄은 조각을 문 채 뒤따라갔다.
홍염은 쪼개진 상자 조각들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판자 하나를 집어 들고 못 구멍을 맞춰 보았다. 맞지 않았다. 다른 판자를 집었다. 홍염이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망치 어디 있냐?”
연탄은 할머니의 상자 옆에서 망치를 꺼내 주었다. 홍염은 상자 넷 가운데 셋을 다시 세웠다. 마지막 하나는 판자가 모자라 바닥만 남았다. 홍염은 바닥만 남은 상자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상자 안에 들어가 앉았다. 상자가 홍염의 엉덩이 반밖에 안 됐다. 홍염의 얼굴이 펴졌다.
“이거 좋네.”
“그거 제 거예요.”
“이 몸이 고쳤으니 이 몸 거다.”
할머니의 상자 안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천 이백 살짜리 웃음은 쇳소리가 섞였다.
묵돌이 느릿느릿 바람구멍까지 걸어와 상자 더미 옆에 엎드렸다. 엎드린 묵돌의 등이 담장 노릇을 해서 바람이 덜 샜다. 홍염이 상자 안에서 묵돌을 흘겨보았다.
“소는 왜 여기 와 있냐? 진 놈끼리 모이는 데냐?”
“너도.”
묵돌이 짚을 한 번 씹었다.
“졌다.”
홍염의 수염이 바르르 떨렸다. 홍염은 상자에서 일어나려다 엉덩이가 끼어 상자째 들렸다. 연탄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홍염이 상자를 엉덩이에 매단 채로 말했다.
“호랑이 문 노인들이 이 몸 꼬리를 뽑겠다고 난리다. 우리 자리돌이 가벼워졌다고. 그깟 조각 하나에.”
“사람 세상.”
묵돌이 말했다.
“소가. 일찍. 밭에 나간다.”
홍염이 입을 다물었다. 상자가 엉덩이에서 툭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
쪼롬이 연탄의 귀를 꿰맸다. 장터 처마 밑, 둘 다 사람 모습이었다. 쪼롬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저울추를 꿰는 실이었다. 바늘이 귓바퀴를 지날 때마다 연탄은 어깨를 움츠렸다.
“가만있어. 고양이는 귀가 얇아서 금방 붙어.”
“그런 말 처음 들어.”
“내가 지금 지어냈거든.”
쪼롬의 손가락이 연탄의 귀 뒤를 눌렀다. 따뜻하고 단단한 손가락이었다. 연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쪼롬의 손바닥 쪽으로 기울였다. 기울이고 나서 깨달았다. 귀 뒤를 긁어 달라는 고양이의 몸짓이었다. 연탄은 고개를 홱 바로 세웠다. 바늘이 귀를 한 번 더 찔렀다.
“아!”
“네가 움직였잖아.”
쪼롬이 실을 이로 끊었다. 연탄의 귀에 쪼롬의 숨이 닿았다. 연탄은 꼬리가 나올까 봐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저울 봤어?”
“봤어.”
쪼롬은 실 끝을 매듭지었다.
“영에서 손톱 하나만큼. 아까는 머리카락 하나였는데.”
“두 판에 손톱 하나면, 열두 판은?”
쪼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연탄의 꿰맨 귀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연탄이 움찔했다. 쪼롬이 웃었다. 웃는 얼굴이 금방 지워졌다.
*
밤이 되기 직전, 하늘 문이 열렸다.
장터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하늘 문 틈에서 종이 한 장이 내려왔다. 종이는 바람에 날리지 않고 똑바로 내려와 방 판 맨 위, 연탄이 박은 종이 바로 옆에 붙었다.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옥황상제의 도장이었다. 쪼롬이 방 판 밑으로 가서 소리 내어 읽었다.
“「돌바퀴가 기울었다. 남은 겨루기는 하늘 궁 바퀴 전각 앞에서 치른다. 겨루는 자와 심판은 짐승 모습으로 오르라.」”
장터가 술렁였다. 고양이 집안은 천 년 동안 하늘 궁에 오른 적이 없었다. 자미가 쥐 문 앞에 서 있었다. 자미는 방을 읽지 않았다. 이미 아는 얼굴이었다.
하늘 문 아래로 구름 계단이 내려왔다. 계단 한 칸 한 칸이 솜처럼 부풀었다가 단단해졌다. 연탄은 계단 맨 아래 칸을 보았다. 계단이 비스듬했다. 오른편이 왼편보다 손톱 하나만큼 낮았다.
자미가 연탄 곁을 지나가며 말했다.
“궁에는 저울이 없습니다. 다림추가 있지요. 거짓말을 못 하는 것은 저울보다 다림추입니다.”
자미는 짐승 모습으로 바뀌어 계단을 올라갔다. 잿빛 쥐 한 마리가 오르는데 구름 계단이 한 칸씩 깊게 꺼졌다. 연탄은 입에 문 조각 둘의 무게를 턱으로 느끼며, 비스듬한 첫 칸에 앞발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