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21자)
턱도 움직임입니다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소 문 앞마당에는 짚 냄새가 고여 있었다. 해가 하늘 문 기둥 중간쯤 내려와 있었고, 장터 사람들이 벌써 마당 둘레를 세 겹으로 메웠다. 연탄은 짐승 모습으로 사람들 다리 사이를 빠져나갔다. 겨루기 판에서는 본모습이어야 했다. 새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붉은 끈 방울을 달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오자, 너구리 엿장수가 엿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고양이 왔다! 엿 두 판 아직 받는다!”
묵돌은 마당 끝 여물통 옆에 엎드려 있었다. 소 모습의 묵돌은 엎드려 있어도 연탄의 키 다섯 배는 되었다. 뿔 끝을 새끼줄로 감았고, 콧김이 나올 때마다 앞에 깔린 짚이 한 번씩 들렸다. 턱이 천천히 돌았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묵돌은 늘 무엇인가를 씹고 있었다.
“네가.”
묵돌이 말했다.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연탄은 꼬리를 두 번 흔들었다.
“고양이.”
“네.”
“앉아라.”
연탄은 앉지 않았다. 쪼롬이 마당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아침의 짓궂은 얼굴은 없었다. 앞치마를 벗고 하늘 궁의 붉은 띠를 어깨에 둘렀고, 손에 놋쇠 저울추 하나를 쥐고 있었다. 심판의 표시였다.
“지키는 소 집안이 겨루기를 고르십시오.”
묵돌의 턱이 멈췄다. 한참 뒤에 다시 돌았다.
“버티기.”
“어디서 하시겠습니까?”
“큰 저울. 위에서.”
마당 둘레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장터 한가운데 큰 저울을 소 문 앞으로 끌고 올 수는 없었다. 쥐 집안 일꾼들이 저울판만 떼어 수레에 싣고 왔다. 저울판은 멍석 두 장 넓이였고, 판 밑에 바늘 달린 둥근 눈금이 붙어 있었다. 저울판에 무엇이 올라가든 바늘이 무게를 가리켰고, 판 위에서 무엇이 꿈틀하면 바늘이 떨렸다.
쪼롬이 규칙을 읊었다.
“두 분이 저울판에 오릅니다. 바늘이 멎은 뒤로 먼저 움직이는 분이 집니다. 발을 떼는 것, 몸을 옮기는 것, 말을 하는 것, 다 움직임입니다. 숨은 치지 않습니다.”
묵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데 숨 한 번이 다 들었다. 연탄은 저울판 끝에 앞발을 올렸다. 차가운 쇠판이 발바닥에 붙었다. 묵돌이 반대편 끝에 올라오자 판 전체가 한 뼘 가라앉았고, 연탄의 몸이 묵돌 쪽으로 미끄러질 뻔했다. 연탄은 발톱을 세워 쇠판을 붙잡았다.
바늘이 크게 돌았다가 돌아왔다가, 몇 번 흔들리고 멎었다.
“시작입니다.”
*
연탄은 식빵을 구웠다. 앞발을 가슴 밑에 접어 넣고 꼬리를 몸에 붙여 둥글게 앉는 자세를, 장터 사람들은 고양이가 식빵 굽는다고 불렀다. 이 자세로는 반나절도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상자 안에서 그렇게 이백 년을 살았다.
묵돌은 네 다리로 선 채 눈을 반쯤 감았다. 콧김이 저울판 위의 먼지를 천천히 밀어냈다. 턱은 멈춰 있었다. 묵돌이 씹지 않는 모습을 연탄은 처음 보았다.
해가 기둥 한 마디를 더 내려왔다. 마당 둘레의 사람들이 하나씩 주저앉았다. 두꺼비 떡장수는 가래떡을 뜯어 먹었고, 너구리는 졸다가 엿판을 떨어뜨렸다. 연탄은 꼼짝하지 않았다. 귀만 앞으로 향해 있었다. 귀를 돌리는 것도 움직임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으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미가 저울판 가로 걸어왔다.
자미는 판에 오르지 않았다. 판 가장자리, 연탄의 코앞 한 자 거리에 쪼그려 앉았다. 사람 모습 그대로였다. 동그란 안경에 저녁 해가 비쳤다. 자미는 주판을 무릎에 올려놓고 알을 하나씩 튕기며 말했다.
“말씀은 안 하셔도 됩니다. 듣기만 하시지요.”
탁.
“고창 늙은이의 보리는 지난가을 시월 스무날에 뿌렸습니다. 그 사람은 날마다 같은 시각에 밭에 나가 땅을 발로 눌러 봅니다. 입춘 지나 땅이 녹으면 밭에 소를 끌고 나가지요. 요새 사람 세상에는 밭 가는 소가 몇 마리 안 남았는데, 그 늙은이 집에는 아직 한 마리가 있습니다.”
탁.
묵돌의 귀가 한 번 움찔했다. 쪼롬이 묵돌의 귀를 보았다가 바늘을 보았다. 바늘은 그대로였다. 쪼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퀴가 기울면 입춘이 당겨집니다. 땅이 일찍 녹으면 소가 일찍 나가고, 다시 얼면 갈아 놓은 흙이 서릿발에 들뜹니다. 보리 뿌리도 같이 들뜨지요. 들뜬 뿌리는 봄에 말라 죽습니다.”
연탄은 자미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잠이 왔다. 고양이 집안의 잠은 늘 제일 나쁠 때 왔다. 천 년 전에도 그랬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연탄은 눈을 도로 떴다.
자미가 소매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생쥐 한 마리였다. 쥐 집안 일꾼의 막내쯤 되어 보였다. 생쥐가 자미의 손바닥에서 내려와 저울판 가장자리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달렸다. 연탄의 코앞을 지나, 수염 끝을 스치고, 꼬리 쪽으로.
연탄의 눈동자가 둥글어졌다. 엉덩이 근육이 저 혼자 당겨졌다. 들썩이기 직전이었다. 쪼롬의 눈이 연탄의 엉덩이에 박혔다. 연탄은 이를 악물었다. 고양이는 이를 악물 수 있다. 악문 이 사이로 숨이 새어 나갔다.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고 그냥 굳었다.
생쥐는 판을 한 바퀴 돌고 자미의 소매로 돌아갔다. 자미가 주판알을 튕겼다.
“잘 참으시는군요.”
연탄은 대답하는 대신 세기 시작했다. 잠을 쫓으려면 무엇이든 세야 했다. 마당에서 세기 쉬운 것은 묵돌의 콧김이었다. 하나. 둘. 셋. 서른쯤 셌을 때 이상한 것이 귀에 들어왔다. 콧김 사이사이에 아주 작은 소리가 끼어 있었다. 사각, 사각. 마른 짚을 이로 가는 소리.
연탄은 눈만 굴려 묵돌의 얼굴을 보았다. 묵돌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턱이 돌고 있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아주 느리게. 묵돌 자신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소는 먹은 것을 다시 올려 씹는다. 사람 세상 소도 하늘 소도 같았다. 숨처럼, 멈춘다고 멈춰지는 일이 아니었다.
연탄은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연탄이 지는 것이었다.
*
쪼롬은 바늘을 보고 있었다.
연탄은 쪼롬의 얼굴을 보았다. 쪼롬이 무엇을 보는지 연탄은 알았다. 바늘 끝이 떨리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두께만큼, 일정하게. 사각, 하고 짚이 갈릴 때마다 한 번. 연탄의 숨과는 박자가 달랐다.
쪼롬은 오래 바늘을 보았다. 오래 묵돌의 턱을 보았다. 그러고는 자미를 보았다. 자미도 바늘을 보고 있었다. 저울을 천 년 동안 본 사람이었다. 자미가 딸에게 고개를 아주 작게 저었다.
쪼롬이 손을 들었다. 저울추를 쥔 손이었다.
“묵돌 어르신, 턱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묵돌의 턱이 멈췄다. 묵돌이 눈을 떴다. 큰 눈이 쪼롬을 보았다가 자기 입가로 내려갔다. 입가에 짚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자미가 일어났다.
“되새김질은 숨과 같습니다. 숨은 치지 않는다고 심판이 처음에 말했지요.”
“숨은 코로 쉽니다.”
쪼롬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대신 저울추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바늘이 떨렸습니다. 고양이의 숨과 박자가 다릅니다. 짚을 가는 소리와 박자가 같습니다. 턱도 움직임입니다.”
자미는 딸을 보았다. 쪼롬은 아버지를 보지 않고 바늘만 보았다. 자미가 무엇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묵돌이 먼저 말했다.
“맞다.”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마당 사람들이 숨을 참았다.
“나는. 씹었다.”
묵돌은 저울판에서 앞발 하나를 내렸다. 판이 출렁이고 바늘이 크게 돌았다. 연탄은 그제야 식빵 자세를 풀었다. 다리가 저려서 일어나다가 옆으로 넘어졌다. 너구리 엿장수가 엿판을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엿 두 판 날아갔다!”
*
하늘 문 너머에서 종소리가 났다. 멀고 낮은 소리였다. 장터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엇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쌀가마보다 훨씬 작았다. 콩알만 한 것이 반짝이며 내려와 연탄 앞 저울판 위에 톡 떨어졌다.
돌 조각이었다. 엄지손톱만 했고, 한쪽 면은 매끈하게 닳았고 다른 면은 막 쪼갠 듯 거칠었다. 연탄은 앞발로 조각을 건드려 보았다. 따뜻했다. 앞발을 대고 누르자 생각보다 무거웠다. 돌 조각 하나가 고양이 한 마리를 바닥 쪽으로 끌어당기는 무게였다.
“내.”
묵돌이 연탄 위로 큰 머리를 숙였다.
“자리. 조각이다.”
“아파요?”
연탄이 물었다. 묻고 나서 스스로 놀랐다. 묵돌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턱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묵돌도 알고 씹었다.
“아니. 가볍다.”
묵돌은 연탄 앞에 무릎을 꿇듯 엎드렸다. 등이 낮아졌다.
“타라.”
“네?”
“다음 판. 데려다준다.”
연탄은 돌 조각을 입에 물고 묵돌의 앞다리를 디뎌 등으로 올라갔다. 높았다. 장터가 다 보였다. 연탄은 소 등 위에서 다시 식빵을 구웠다. 묵돌이 일어서자 연탄의 몸이 하늘 쪽으로 쑥 올라갔다.
묵돌이 걸으며 말했다. 걸음 한 번에 낱말 하나였다.
“천 년. 전에. 나는. 쥐를. 태웠다.”
연탄은 귀를 묵돌의 목덜미에 댔다. 묵돌의 목 안에서 짚 가는 소리가 울렸다.
“그 쥐가 내 등에서 뛰어내려 먼저 들어갔다. 나는 두 번째가 됐다.”
묵돌이 처음으로 끊지 않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다물고 씹었다.
*
저울판을 도로 장터에 붙이고 나서, 쪼롬이 빈 저울 앞에 서서 바늘을 오래 보고 있었다. 연탄은 묵돌의 등에서 내려와 쪼롬 곁으로 갔다.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 조각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한쪽이 축 늘어졌다.
“고마워.”
“너 이기라고 한 거 아니야. 바늘이 그랬어.”
쪼롬은 바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울판에는 아무것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바늘이 영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큼 비껴 있었다.
“아까 아버지가 고개 젓는 거, 나도 봤어.”
“나도 봤어.”
“그런데 왜?”
쪼롬은 바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코를 찡그렸다.
“저울지기가 아버지 고개 보고 바늘 읽으면, 저 저울 녹여서 솥 만들어야 돼. 솥은 거짓말을 해도 밥이 되잖아.”
연탄은 웃으려다 말았다. 쪼롬의 귀 끝이 빨갰다. 쥐 집안 사람들은 화가 나면 귀부터 빨개졌다. 누구에게 화가 났는지는 묻지 않았다.
“빈 저울인데 안 돌아와.”
“고장 났어?”
“아침에는 멀쩡했어.”
쪼롬이 바늘 끝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바늘은 떨리다가 다시 같은 자리에 멎었다. 영보다 아주 조금 오른편이었다. 쪼롬은 하늘 문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연탄도 따라 올려다보았다. 하늘 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장터 반대편에서 나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돼지 문과 쥐 문 사이, 바람구멍이었다.
연탄은 뛰었다. 사람 모습으로 뛰다가 너무 느려서 짐승 모습으로 바꿔 뛰었다. 바지가 바닥에 떨어졌고, 주머니에서 돌 조각이 굴러 나왔다. 쪼롬이 뒤에서 조각을 주워 들었다.
바람구멍 앞에 줄무늬 두건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키가 묵돌만 했고, 어깨가 문짝만 했다. 맨 위에 쌓인 작은 사과 상자 셋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내가 하나를 더 걷어찼다. 상자가 날아가 쥐 문 담벼락에 부딪쳐 쪼개졌다.
“소 하나 꺾었다고 상자 집에서 노래가 나와?”
호랑이 신령 홍염이었다. 홍염은 두건을 벗어 던졌다. 머리카락에 검은 줄무늬가 결대로 나 있었다.
“이 몸이 다음이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것 없다. 해 지면 모래판으로 와라.”
홍염은 쪼개진 상자 조각을 발로 밟아 바스러뜨렸다.
“나무도, 장대도, 지붕도 없는 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