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62자) · 칠월 첫 금요일

화요 모임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기일 다음 삼 주는 조용하지 않았다. K가 명우의 열두 시간 메모를 올렸다. 명우 허락은 받지 않았다. 채린한테 받았다. 채린이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K에게 보내면서 한마디만 붙였다. 선생님은 이런 거 안 올리실 분이니까. K는 그 한마디까지 같이 올렸다. 좋아요가 이만을 넘었다. 펫마음코칭 스무 곳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대신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창가 고양이 귀를 찍었다. 젖혀진 귀. 그 사진들이 또 돌았다.

채린은 부산 병원에 두 번째로 전화를 걸었다. 동료 수의사가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를 질렀다. 한 달이라며, 한 달이 왜 두 달이 돼. 채린은 세탁소 카운터 위에서 새끼 약을 먹이며 그 소리를 들었다.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엄마 가게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동료가 세탁소가 무슨 손님이냐고 물었다. 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법을 이 골목에서 배웠다.

칠월 첫째 금요일 밤, 순애세탁 셔터가 끝까지 올라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처음이었다. 셔터 녹이 비명을 지르며 끝까지 말려 올라가자 계단참마다 창문이 열렸다. 이 골목에서 셔터 소리는 계단 서른 칸을 못 간다는 비밀보다 빨랐다.

채린이 모임을 연 것이었다. 이름은 없었다. 셋째 계단참 할머니가 화요 모임이라고 불렀고, 그게 이름이 됐다. 세탁소 카운터를 벽으로 밀고, 찾아가지 않은 셔츠들이 매달린 레일 밑에 의자를 놓았다. 의자는 골목 집집에서 하나씩 들고 왔다. 플라스틱 의자,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 명우가 계단참 할머니한테 빌렸다가 아직 못 돌려준 접이식 의자. 열한 개가 모였다. 사람도 열하나. 전부 순애 할머니한테 셔츠를 맡기던 사람들이었다. 넷째 계단참 할아버지, 둘째 계단참 할머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K, 마 실장까지. 마 실장은 마스크 네 겹을 쓰고 문간에 섰다.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양이가 많아서.

채린이 카운터 위에 할머니 달력을 펼쳤다. 삼월에서 멈춘 달력. 요일 이름 일곱 개와 새끼 넷.

“열하나예요. 엄마가 밥 주던 애들. 세 마리는 집 찾았어요. K 씨네 수요 주니어, J 씨네 회색 둘째, 백 사모님 따님네 회색 셋째. 화요는 이 층에 있고요. 월요는 강남에 있어요. 그럼 남은 게 여섯이에요. 목요, 금요, 일요, 수요, 토요, 회색 첫째.”

“토요는 내가 데려가.”

넷째 계단참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일흔여덟. 이 골목에서 유일하게 계단 없는 일 층 집에 산다.

“다리 저는 놈이 계단 사는 집에 가면 안 되지. 우리 집은 문턱도 없어.”

사람들이 웃었다. 채린이 달력의 토요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넷.

“목요랑 금요는 길에서 사는 게 편한 애들이에요. 집에 들이면 오히려 스트레스 받아요. 대신 밥 줄 사람이 있어야 돼요. 엄마 대신.”

둘째 계단참 할머니와 셋째 계단참 할머니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들고 나서 서로를 봤다. 둘은 사십 년 동안 누가 계단을 더 깨끗이 쓰는지로 싸운 사이였다.

“월수금은 내가.”

“그럼 화목토일은 내가.”

“화요는 이 층에 있잖아.”

“그러니까 화목토일에서 화를 빼고.”

사람들이 또 웃었다. 채린이 목요, 금요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여섯. 명우는 셔츠 레일 밑 접이식 의자에 앉아 그 웃음소리를 들었다. 세탁소에 사람 웃음이 가득 찼다. 스팀 냄새 대신. 할머니는 이 가게에서 웃음을 판 적이 없었다. 셔츠를 팔았다. 단추를 달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떠난 가게에 지금 웃음이 있었다. 할머니가 달아 둔 단추 같은 웃음이었다. 모두 조금씩 헐거운 데를 붙잡고 있는.

그때 셔터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흰 운동화. 강수혁이었다. 뒤에 양복 입은 남자가 하나 따라왔다. 서류 가방.

“모임 중이시네요. 마침 잘됐다. 다 계시니까.”

강수혁은 문간에 선 마 실장 옆을 지나 셔터 안으로 들어왔다. 고양이 냄새에 코를 한 번 찡그렸다. 양복 남자가 서류를 꺼냈다.

“저희 법무팀에서 나왔습니다. 오 여사님과 강 대표님의 일 층 임대차 계약에 특약이 있습니다. 이 층 임차인 하명우 씨가 기르는 고양이를 칠월 삼십일일까지 강 대표 측에 인도하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양복 남자가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보였다. K의 계정이었다. 명우가 강남점에서 열두 시간 동안 적은 메모. 월요가 무릎에서 내려와 쉰 시간 이십육 분. K가 그걸 올렸다. 좋아요 이만.

“이 게시물로 저희 가맹점 스무 곳 예약이 삼 주 사이에 반으로 줄었습니다.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입니다. 게시한 분과 작성한 분 모두.”

K가 얼굴이 하얘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옆에서 K 손을 잡았다. 아르바이트생은 사월에 명우가 종이컵 스무 개와 사료를 살 때 파티하냐고 물었던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로 명우가 종이컵을 사러 올 때마다 사료 한 봉지를 몰래 할인해 줬다. 이 골목에서 몰래는 서른 칸을 못 간다. 명우도 알았다. 사람들이 명우를 봤다. 명우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강수혁이 명우 앞에 섰다.

“선생님, 간단하게 가요. 원조 넘기시면 이거 다 없던 일로 해요. 월요도 돌려드리고. 선생님 상담소도 지키고. 고양이 한 마리로 다 끝나요?”

세탁소가 조용했다. 셔츠 레일에 매달린 비닐들이 선풍기 바람에 사각거렸다.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이 방의 규칙이었다. 여기는 이 방이 아니었다. 할머니 가게였다.

명우가 일어섰다.

“제가 이 골목에서 십 년 동안 한 말이 몇 마디인 줄 아십니까?”

강수혁이 눈을 깜빡였다.

“하루 스무 마디입니다. 제가 한 말 가운데 절반은 네, 였습니다. 제 얘기는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오늘 하겠습니다. 대표님이 들으셔야 합니다.”

강수혁이 웃으려다 말았다. 명우 목소리가 달랐다. 두 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십 년 전 유월 십사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날 상담소에 있었습니다. 예약이 셋 있었습니다.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안 했습니다. 어머니는 말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동네 사람 얘기를 다 아는 분이었습니다. 아프시고 나서 말을 안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말을 안 하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들으러 갔습니다. 세 번째 사람 얘기를 듣는 동안 전화가 왔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오십 분이 안 끝나서.”

세탁소가 조용했다. 채린이 달력 위에 볼펜을 내려놓았다.

“그다음 해부터 그날 열두 명을 받았습니다. 육백 분 동안 제 얘기를 안 해도 되니까. 십 년 동안 그랬습니다. 그 날짜에 아무것도 안 적었습니다. 올해 처음 한 줄 말했습니다. 이분한테.”

명우가 채린을 봤다. 채린이 명우를 봤다.

“그 열두 시간 메모는 제가 쓴 겁니다. 들은 걸 그대로 적었습니다. 고소하시면 제가 받겠습니다. 이 골목 고양이는 원조가 아닙니다. 요일마다 밥 먹으러 오던 손님입니다. 손님은 넘기는 게 아닙니다.”

강수혁은 한참 명우를 봤다. 그 얼굴에서 웃음이 다 빠졌다. 이십 년 이 바닥에 있었다는 얼굴 밑에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선생님, 저 브랜딩 이십 년 했어요. 사람들은 고양이한테 울지 상담사한테 안 울어요. 선생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압니다.”

“그럼 왜.”

“고양이가 쉬어야 사람도 웁니다.”

강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셔츠 레일 위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목요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레일을 타고 셔츠 비닐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레일이 목요 무게에 흔들렸다. 셔츠들이 줄줄이 흔들렸다. 목요는 강수혁 머리 위에서 멈췄다. 내려다봤다. 강수혁이 올려다봤다. 한참. 목요가 하품을 했다. 강수혁이 먼저 눈을 돌렸다. 양복 남자가 서류를 도로 가방에 넣었다. 둘이 셔터 밖으로 나갔다. 문간에 선 마 실장 옆을 지나갔다. 마 실장이 마스크 네 겹 너머로 강수혁을 봤다. 그러고는 셔터 안쪽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고양이 냄새 속으로. 재채기를 참으며.

“하 선생.”

“네.”

“일요는 내가 데려갈게요.”

세탁소가 일순 조용해졌다가 터졌다. 할머니들이 웃었다. 할아버지가 박수를 쳤다. 마 실장이 붉어진 눈으로 소리쳤다. 약 먹으면 돼요, 약! 우리 이모도 원래 고양이 좋아했어요, 이모부 때문에 못 키운 거지! 채린이 일요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일곱.

K가 명우 앞으로 왔다. 울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양이 앞이 아니라 명우 앞에서.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허락도 안 받고. 저 때문에 선생님이 고소당하시면.”

“잘하셨습니다.”

K가 눈을 크게 떴다. 명우가 칭찬을 하는 걸 들은 사람은 이 골목에 없었다. 조언하지 않는다, 편들지 않는다. 칭찬도 편을 드는 일이었다. 명우는 그 규칙을 방금 어겼다. 사람 열한 명과 고양이 셋 앞에서.

마 실장이 마스크를 내리고 코를 풀었다. 그러고는 명우에게 말했다. 이모가 하 선생 한번 보자고 하셨어요. 구청 일 끝나면. 명우는 네, 했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이 의자를 하나씩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채린과 명우만 남았다. 채린이 셔츠 레일에서 비닐 씌운 셔츠 하나를 내렸다. 베이지 셔츠. 소매 단추 자리에 할머니 매듭.

“선생님 거예요. 엄마가 삼월에 다려 놓고 못 드렸나 봐요. 인수증에 이름이 있어요. 이 층 총각.”

명우는 셔츠를 받았다. 비닐 너머로 소매 단추를 봤다. 단단하게 달려 있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단 단추.

“아까 그거.”

채린이 말했다.

“선생님 얘기. 스무 마디 넘었어요.”

“압니다.”

“몇 마디였어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지 않았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가 한 말을 세지 않았다.

그는 셔츠를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서른 칸. 이 층 문을 열자 사장님이 창틀에서 고개를 돌렸다. 명우는 비닐을 벗겼다. 스팀 냄새가 남아 있었다. 석 달이 지났는데도. 할머니 다리미 냄새. 그는 입고 있던 셔츠를 벗고 그 셔츠를 입었다. 단추를 채웠다. 소매 단추가 헐겁지 않았다. 손목에 딱 맞았다.

사장님이 창틀에서 내려왔다. 명우 발 앞까지 왔다. 셔츠 소매 끝에 코를 댔다. 오래. 그러고는 명우 다리에 몸을 한 번 비볐다. 스치고 떠나지 않았다.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명우는 선 채로 그 무게를 느꼈다. 고양이 한 마리 무게가 다리를 한 바퀴 돌아가는 동안. 세탁소 다리미 냄새가 고양이 털에 묻어 갔다. 그 냄새가 이 방에 들어온 첫날부터 사장님이 찾던 냄새였다는 것을 명우는 그제야 알았다. 창틀에서 일 층 셔터를 내려다보던 그 오랜 시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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