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18자) · 유월 십사일
열두 번째 김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유월 십사일은 일요일이었다. 묘연은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십 년 동안 한 번의 예외가 있었고, 그 예외는 해마다 유월 십사일이었다. 그날 명우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열두 명을 받는다. 오십 분 상담에 십 분 쉬면 한 시간. 열한 시간이면 열한 명인데, 점심을 안 먹으면 열두 명이 된다. 십 년 동안 그는 그날 점심을 안 먹었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이 골목에 없었다. 계단참 할머니들도 몰랐다. 할머니들은 이 층 총각이 일요일에 한 번씩 미친 듯이 일한다는 것만 알았다. 순애 할머니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날이면 할머니는 셔츠를 다리지 않는 일요일인데도 세탁소 셔터를 반쯤 올려 두었다. 명우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보려고.
올해 유월 십사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세탁소 셔터가 반쯤 올라가 있었다. 채린이 올린 것이었다. 채린은 이유를 몰랐다. 새끼들 환기를 시키려고 올렸다. 명우는 계단을 오르다가 그 셔터를 봤다. 반쯤 올라간 높이가 할머니가 올리던 높이와 같았다. 그는 셔터 앞에서 삼 초 멈췄다. 발소리가 끊겼다. 셔터 안에서 채린이 고개를 내밀었다.
“일요일인데 출근하세요?”
“네.”
“몇 시까지요?”
“여덟 시까지입니다.”
“누구 오는데요?”
“열두 명입니다.”
채린이 뭔가 더 물으려는데 명우는 벌써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서른 칸. 발소리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채린은 그 발소리를 셌다. 엄마가 하던 대로. 그러다 멈췄다. 자기가 왜 세고 있는지 몰라서.
아홉 시. 첫 내담자. 명우는 오십 분 동안 들었다. 물을 마셨다. 사장님은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아무 무릎에도 올라가지 않았다. 창틀과 소파를 오가며 명우를 봤다. 명우만. 그걸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내담자들은 고양이가 자기를 안 봐서 조금 서운해했다.
열 시의 내담자는 여자친구가 자기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는 남자였다. 여자친구 집 고양이가 자기를 보면 하악거린다고. 오십 분 가운데 삼십 분이 고양이 얘기였다. 남자가 말하는 동안 사장님이 남자 발 앞을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남자를 한 번 쳐다봤다. 남자가 말을 멈췄다. 저 봐요, 저 눈. 고양이들이 다 저를 저렇게 봐요. 명우는 물을 마셨다. 남자는 계속했다. 결국 남자는 오십 분째에 스스로 결론을 냈다. 제가 고양이한테 잘 보이려고 너무 애쓴 것 같아요. 명우는 네, 했다. 남자가 나가면서 사장님한테 손을 흔들었다. 사장님은 하품을 했다. 남자는 그 하품을 받아들이는 얼굴로 나갔다.
열한 시. 열두 시. 명우는 서 있었다. 열두 시 반쯤 배에서 소리가 났다. 내담자가 말을 멈추고 명우를 봤다. 명우는 물을 마셨다.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사장님이 그 소리에 귀를 돌렸다. 내담자가 웃었다. 명우는 웃지 않았다. 십 년 동안 이날 그의 배는 늘 이 시각에 울었다. 그는 그 소리를 이날의 시계로 썼다. 의자는 내담자 몫이었다. 오늘은 둘씩 오는 사람이 없어서 접이식 의자가 비어 있었는데도 그는 앉지 않았다. 창틀에 한 손을 짚고. 청록 머그를 다른 손에. 한 시. 두 시. 명우의 무게가 오른발에서 왼발로, 왼발에서 오른발로 옮겨 갔다. 세 시. 아래층에서 다리미 소리가 났다. 탁. 명우의 머그가 멈췄다. 채린이 엄마 다리미로 세탁소 셔츠를 다리고 있었다. 찾아가지 않은 옷들. 탁. 할머니가 쇠받침에 다리미를 내려놓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였다. 명우는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물을 마셨다. 내담자는 그게 계속하라는 뜻인 줄 알고 계속했다.
두 시쯤 창밖으로 백 사모가 보였다. 오월에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 달라던 사람. 백 사모는 계단 아래서 셔터 반쯤 올라간 세탁소로 들어갔다. 나올 때 손에 이동장이 들려 있었다. 명우는 창틀에서 그 이동장을 내려다봤다. 철망 사이로 회색 털이 보였다. 셋째 회색. 허피스가 나은 새끼. 백 사모는 계단을 내려가다 멈춰서 이 층을 올려다봤다. 명우와 눈이 마주쳤다. 백 사모가 이동장을 들어 보였다. 고개는 숙이지 않았다. 대신 입 모양으로 무슨 말을 했다. 명우는 그 입 모양을 읽었다. 딸이 키운대요. 결혼하는 딸. 청첩장을 우편으로 보냈던 딸. 곁을 찾은 고양이가 셋이 됐다.
네 시 오십 분. 다섯 번째 상담과 여섯 번째 상담 사이 십 분. 문이 열렸다. 노크가 없었다. 마 실장이었다. 마스크 세 겹. 손에 서류 봉투.
“하 선생, 일요일에 계시네. 잘됐다. 에취.”
마 실장이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오월 삼십일일에 가져왔던 것과 같은 종이였다. 다른 점은 하나였다. 이번에는 도장이 둘 찍혀 있었다. 마 실장 것, 그리고 오 여사 것.
“이모가 찍으셨어요. 강 대표가 어제 이모를 뵀어요. 일 층 계약 조건으로 이 층 고양이를 꼭 넣어 달래요. 원조가 없으면 본점이 안 된다고. 월세를 세 배로 부르더라고요. 이모 연세가 일흔넷이에요. 이모부 병원비 빚이 아직 있으시고. 에취.”
명우는 종이를 받았다. 계약 해지 통보. 칠월 삼십일일까지 제십이조 위반 사항을 시정하지 않으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함.
“칠월 말까지 고양이 내보내요. 강 대표한테 보내든 따님한테 보내든. 아니면 하 선생이 나가요. 고양이 데리고.”
“오늘은 안 됩니다.”
“뭐가요.”
“오늘은 이 얘기를 못 합니다. 예약이 일곱 명 남았습니다.”
“일요일에 무슨 일곱 명이에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 실장이 명우를 봤다. 이십 년 이 건물을 관리한 사람의 눈이었다. 이 층 세입자가 일요일마다 한 번씩 이상하게 일한다는 걸 마 실장도 알았다. 알고도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관리인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물었다.
“하 선생, 오늘 무슨 날이에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청록 머그를 들었다. 물이 없었다. 빈 머그를 입에 댔다가 내렸다. 마 실장이 그걸 봤다.
사장님이 창틀에서 내려왔다. 마 실장 발목에 몸을 비볐다. 이번에는 스치고 떠나지 않았다.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마 실장이 굳었다. 재채기가 나오려다 멈췄다. 마 실장 눈이 붉어졌다. 알레르기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 선생.”
“네.”
“칠월 말이에요. 내가 이모한테 한 달 더 달라고는 해 볼게요. 약속은 못 하고.”
마 실장은 나가면서 문을 살살 닫았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계단참 할머니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 뒤를 봤다.
다섯 시. 여섯 시. 일곱 시. 명우는 서 있었다. 무릎이 떨리기 시작한 건 여섯 시 반쯤이었다. 내담자는 몰랐다. 명우는 창틀을 짚은 손에 힘을 더 줬다.
일곱 시 오십 분. 열한 번째 내담자가 나갔다. 열두 번째 예약은 여덟 시였다. 예약자 이름은 노트에 한 글자로만 적혀 있었다. 김. 명우는 그게 누군지 몰랐다. 어제 저녁 누가 전화로 예약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명우는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었지만, 어제는 전화 목소리에 집중하지 못했다. 어제는 유월 십삼일이었다. 유월 십사일 전날에는 그가 아무것도 잘 듣지 못한다.
여덟 시 정각. 노크 소리가 났다. 두 번. 명우가 대답하기 전에 문이 열렸다. 채린이었다. 앞치마를 벗고, 할머니 니트를 입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청록 서류철도 없이.
“열두 번째 김이요. 김채린.”
채린은 소파에 앉았다. 사장님이 바로 올라왔다. 채린 무릎. 식빵. 가르릉.
명우는 창가에 선 채 채린을 봤다. 채린이 명우를 봤다.
“주호소 뭐라고 적으실 거예요?”
“뭘 상담하시겠습니까?”
“없어요. 상담받을 거 없어요. 앉아 있으려고요. 오십 분.”
채린은 그렇게 말하고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을 쓰다듬었다. 창밖을 봤다. 골목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다. 명우는 서 있었다. 물을 마시지 않았다. 계속하라고 할 게 없었다. 채린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오 분. 십 분. 이십 분. 방 안에 가르릉 소리와 벽시계 소리만 있었다. 명우는 그 두 소리의 박자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을 들었다. 벽시계는 일 초에 한 번. 가르릉은 들숨과 날숨에 한 번씩, 그보다 조금 느리게. 두 소리가 가끔 겹쳤다가 다시 벌어졌다. 창밖 골목에서 누가 계단을 올라가다 멈추고 이 층 창을 올려다보는 기척이 났다. 계단참 할머니였을 것이다. 불이 켜진 상담실 창에 고양이 한 마리와 사람 둘의 그림자가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오래 서 있다가 다시 올라갔다.
삼십 분쯤 지났을 때 채린이 턱으로 접이식 의자를 가리켰다. 말은 하지 않았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명우는 그 뜻을 알았다. 앉지 않았다. 채린이 한 번 더 가리켰다. 명우는 한참 서 있다가 창틀에서 손을 뗐다. 무릎이 한 번 꺾일 뻔했다. 의자로 가서 앉았다. 열한 시간 만에. 앉자마자 다리가 저렸다. 발끝부터 무릎까지 전기가 올라왔다. 명우는 그 저림을 참는 동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그가 말했다. 스무 마디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 오늘 한 마디 가운데 처음으로 자기 것이었다.
“오늘이 어머니 기일입니다.”
채린의 손이 사장님 등 위에서 멈췄다. 사장님이 눈을 떴다. 명우는 눈을 뜨지 않았다. 더 말하지 않았다. 채린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이 방의 규칙이라는 걸 채린은 이제 알았다.
오십 분이 끝났다. 채린이 일어섰다. 사장님을 소파에 내려놓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책상에 놓았다. 삼만 원. 명우가 눈을 떴다.
“안 받습니다.”
“받으세요. 상담받았어요.”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하셨잖아요.”
채린이 나갔다. 계단을 내려갔다. 서른 칸.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세탁소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 명우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리 저림이 가라앉을 때까지. 사장님이 소파에서 내려와 명우 발치에 앉았다. 발치까지.
문 앞에 무언가 있었다. 명우는 다리 저림이 가라앉은 뒤에야 그걸 발견했다. 청록 머그. 명우 것이었다. 언제 가져갔는지 몰랐다. 세탁소에 믹스커피를 들고 내려갔던 날 두고 온 것. 머그 안에 믹스커피가 들어 있었다. 식어 있었다. 머그 밑에 할머니 세탁물 인수증 한 장. 뒷면에 한 줄. 점심 안 드신 거 다 들렸어요. 아래층까지.
명우는 식은 믹스커피를 마셨다. 너무 달았다. 채린이 세탁소 바닥에서 한 말 그대로였다.
그날 밤 명우는 영업일지에 열두 명을 적었다. 열두 번째 칸 특이사항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내담자 무언. 상담자 발화 1. 그리고 그 줄 밑에 날짜를 한 번 더 썼다. 유월 십사일. 십 년 동안 그 날짜 밑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올해는 날짜만 적었다. 그것이 적을 수 있는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