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96자) · 강남점
이십육 분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유월 첫 주에 서울에 「고양이 있음」이 스무 개 생겼다.
펫마음코칭 가맹점 스무 곳이 같은 날 문을 열었다. 강남, 홍대, 성수, 잠실, 여의도. 간판은 전부 같았다. 흰 바탕에 발바닥 로고, 그 아래 손글씨체로 고양이 있음. 손글씨체는 컴퓨터 글꼴이었다. K가 테이프로 붙였던 삐뚤빼뚤한 종이를 누가 사진으로 따서 글꼴을 만든 것 같았다. 가게마다 창가에 고양이가 한 마리씩 앉아 있었다. 전부 품종 고양이였다. 브리티시 쇼트헤어, 스코티시 폴드, 러시안 블루. 회색 고등어 태비는 한 마리도 없었다. 원조가 없어서였다.
K가 그 사진들을 모아서 명우에게 보냈다. 명우는 휴대폰으로 스무 장을 넘겼다. 스무 개의 고양이 있음. 스무 마리의 고양이. 그중 몇 마리가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전부 같은 눈이었다.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표정을 다 쓴 눈. K는 사진 스무 장 뒤에 한 줄을 덧붙였다. 선생님, 저 스무 곳 중에 세 곳 가 봤는데요, 거기 상담사는 말을 너무 많이 해요. 고양이가 끼어들 틈이 없어요. 명우는 그 문자를 오래 봤다. 칭찬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판단하지 않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채린은 그 사진을 보지 않았다. 대신 강남점 주소를 찾았다.
유월 삼일 수요일 오후 두 시. 명우와 채린은 강남역 뒷골목 삼 층 건물 앞에 섰다. 일 층이 펫마음코칭 강남 본점이었다. 유리창이 통째로 창문이었다. 거리에서 안이 다 보였다. 창가 쿠션 위에 흰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흰 바탕에 노란 점. 월요였다. 여섯 살, 길에서 산 고양이. 할머니 달력에서 월요일마다 동그라미를 받던 고양이.
월요 무릎 위에는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월요가 사람 무릎 위에 있었다. 그 사람이 일어나자 직원이 월요를 들어 다음 사람 무릎에 올렸다. 오 초도 안 걸렸다. 다음 사람이 월요를 쓰다듬었다. 월요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귀가 뒤로 젖혀져 있었다.
채린이 유리창에 손바닥을 댔다. 명우는 그 옆에 섰다. 세이지색 니트와 베이지 셔츠가 유리에 나란히 비쳤다.
“귀 봐요. 저건 참는 거예요. 좋아서 안 가는 게 아니라, 갈 데가 없어서 참는 거.”
채린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명우가 뒤따랐다. 안은 향초 냄새가 났다. 라벤더. 너무 진해서 고양이 코에는 벽처럼 느껴질 냄새. 카운터에 앉은 직원이 웃으며 물었다. 예약하셨어요? 오늘은 연애, 진로, 퇴사 다 가능해요. 고양이는 오십 분에 삼만 오천 원 추가예요.
“강수혁 대표 불러 주세요.”
강수혁은 이 층 사무실에서 내려왔다. 오늘도 흰 운동화였다. 채린을 보고, 명우를 보고, 웃었다.
“하 선생님! 결정하셨구나. 그리고 이분이 수의사님? 고문 제안 드렸던.”
“월요 돌려주세요.”
채린이 말했다. 인사 없이. 강수혁은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이십 년 이 바닥에 있었다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월요가 누구죠?”
“저 창가 흰 고양이요. 해오름 계단길에서 데려간.”
“아, 우리 원조 골목이. 저희가 이름을 새로 지었어요. 해오름이. 스토리가 살잖아요.”
“이름 말고 방광이요. 하루에 몇 시간 무릎에 올려놓으세요?”
강수혁 웃음이 한 칸 내려갔다.
“고양이가 원할 때만요. 저희는 동물 복지 가이드라인 지켜요.”
“그럼 지금 왜 귀가 젖혀져 있어요?”
“고양이는 원래 귀를 막 움직이잖아요.”
채린이 창가로 걸어갔다. 월요 무릎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쿠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등을 내밀었다. 바닥에 가깝게. 할머니 니트 소매가 손등 위에 덮여 있었다. 월요가 코를 댔다. 오래. 그러고는 무릎에서 내려와 채린 손등에 이마를 박았다. 소리를 냈다. 작고 쉰 소리. 명우는 그 소리를 알았다. 사월에 흰 승합차 이동장 안에서 나던 소리였다.
“엄마 알아보네.”
채린이 말했다. 엄마라는 말이 자기 입에서 나왔다는 걸 채린이 몰랐던 것 같았다. 강수혁이 뒤에서 말했다.
“수의사님, 저희 영업 중이에요. 손님 무릎에서 고양이 내리시면 안 돼요. 그리고 그 고양이 소유권 저희한테 있어요. 구조해서 유실 동물 공고 냈고, 칠 일 지나서 아무도 안 찾아가서 저희가 입양한 거예요. 서류 다 있어요.”
“칠 일 동안 그 골목에 공고 붙이셨어요?”
“구청 사이트에요.”
“우리 엄마는 구청 사이트 못 봐요. 돌아가셨으니까.”
강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채린이 일어섰다. 월요를 안지 않았다. 안으면 그건 절도였다. 채린은 그걸 알았다.
“동물보호법 제구조. 소유자는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휴식 및 수면이 보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루 열두 시간 무릎이면 휴식이 없는 거예요. 신고할 거예요.”
“증거 있으세요?”
강수혁 웃음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이십 년 이 바닥에 있었다는 사람은 그 질문을 많이 해 본 사람이었다.
“저희 영업시간 열두 시간 맞아요. 근데 고양이가 열두 시간 무릎에 있었다는 거, 누가 증명해요? 우리 직원들은 고양이 쉬게 한다고 할 거고요. 손님들은 잠깐 안았다고 할 거고요.”
채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가게 안 손님들이 둘을 보고 있었다. 무릎 위에서 다른 고양이들이 귀를 젖히고 있었다.
그때 명우가 말했다.
“제가 셉니다.”
강수혁이 명우를 봤다. 채린도 봤다. 명우는 카운터로 가서 지갑을 꺼냈다.
“내일 열두 시간 예약하겠습니다. 오십 분짜리 열네 번. 창가 자리로.”
직원이 눈을 깜빡였다. 강수혁이 웃었다. 소리 내서.
“선생님, 그거 사십구만 원이에요.”
“네.”
명우는 카드를 내밀었다.
다음 날 목요일. 명우는 오전 열 시에 강남점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해오름 계단길 상담소는 문을 닫았다. 대기자 서른한 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휴진입니다. 사장님은 채린과 세탁소에 있습니다. 그 문자를 받은 서른한 명 가운데 스물여덟 명이 세탁소로 사장님을 보러 갔다는 걸 명우는 나중에 들었다.
명우는 강남점에서 오십 분마다 상담료를 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직원이 무슨 상담을 원하시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은 그의 전문이었다. 그는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들었다. 가게 안의 소리를. 고양이가 무릎에 올려질 때 쿠션이 꺼지는 소리, 발톱이 청바지에 걸리는 소리, 직원이 다음 손님 이름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사이 고양이들이 내는 소리. 가르릉이 아니었다. 사장님이 채린 무릎 위에서 내던 그 모터 소리가 아니었다. 목 안에서 긁히는 짧은 소리. 명우는 십 년 동안 사람의 목소리에서 참는 소리를 들어 온 사람이었다. 고양이도 참는 소리는 같았다.
그는 휴대폰 메모장에 시각을 적었다. 적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지만, 기다리는 동안 손이 할 일이 필요했다. 월요 무릎 착석 10:12. 교대 10:41. 교대 11:03. 물그릇 앞 이동 시도 11:27, 직원이 다시 올림. 러시안 블루 쿠션 밑으로 숨음 13:14, 직원이 꺼냄. 스코티시 폴드 앞발로 얼굴 가림 15:50. 월요 소변 실수 17:36, 카운터 뒤로 옮김, 이 분 뒤 다시 창가.
강수혁은 오후에 두 번 내려왔다. 첫 번째는 세 시였다. 명우 테이블 앞에 서서 선생님 진짜 이러실 거예요, 하고 웃었다.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수혁은 오 분 서 있다가 올라갔다. 두 번째는 일곱 시였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선생님 이거 영업 방해예요. 명우는 영수증 열 장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펼쳐 보였다. 열 번 모두 정가로 냈다. 강수혁은 영수증을 보다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올라갔다. 그 뒤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 층 사무실 블라인드 틈으로 가끔 누가 내려다봤다.
여섯 시쯤 옆 테이블 여자가 울었다. 삼십 대 초반. 연애 상담 오십 분을 받고 고양이 추가를 했는데, 무릎에 올려진 러시안 블루가 오 초 만에 뛰어내려 쿠션 밑으로 숨었다. 직원이 꺼내려 하자 여자가 됐어요, 하고 말렸다. 그러고는 울었다. 명우 쪽을 보고. 모르는 사람 쪽을.
“쟤도 싫대요. 저 싫대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청록 머그 대신 가게 종이컵을 여자 쪽으로 밀었다. 물이 든. 여자가 그걸 받아 마셨다. 한참 뒤에 여자가 말했다. 쟤가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여기가 싫은 거겠죠. 명우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날 첫 마디였다. 여자는 그 한 마디를 듣고 일어섰다. 나가면서 러시안 블루 쪽을 보고 미안해, 하고 말했다.
밤 열 시. 가게가 문을 닫았다. 명우는 열두 시간 동안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열두 시간 동안 한 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계산할 때 직원이 물었다. 손님, 결국 무슨 상담을 받으신 거예요? 명우는 대답했다. 그날 두 번째 마디였다.
“경청입니다.”
가게 밖 골목에 채린이 서 있었다. 세탁소에서 새끼들 약을 먹이고 강남까지 온 것이었다. 손에 편의점 봉지. 삼각김밥 둘. 명우가 봉지를 받았다. 둘은 가로등 밑 화단 턱에 나란히 앉았다. 명우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채린이 메모를 넘겼다. 열두 시간. 월요가 무릎에서 내려와 쉰 시간은 다 합쳐서 이십육 분이었다. 채린이 그 숫자에서 멈췄다.
“이거, 이거면 돼요. 이거 녹취랑 같이 내면.”
“녹취는 없습니다.”
“그럼요?”
“들었습니다. 그게 제 일입니다.”
채린이 명우를 봤다. 가로등이 채린 뒤에서 비쳐 얼굴이 그늘졌다. 그러다 채린이 웃었다. 삼각김밥 포장을 뜯다가 김이 찢어졌다. 1번, 2번, 3번 순서를 안 지켜서.
“선생님, 오늘 몇 마디 하셨어요?”
“네 마디입니다.”
“적게 하셨네요.”
“오늘은 고양이가 많이 했습니다.”
그날 세탁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우는 돌아와서 들었다. 셋째 계단참 할머니가 계단 중간에서 기다렸다가 다 말해 줬다. 스물여덟 명이 셔터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고. 사장님은 카운터 위에 앉아서 한 사람씩 내려다봤다고. 아무 무릎에도 안 올라갔다고. 스물여덟 명이 그래도 다 울고 갔다고. 채린 선생이 수건을 스물여덟 장 꺼냈다고. 순애 언니 수건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그날 밤 해오름 계단길로 돌아왔을 때 세탁소 앞에 쪽지가 하나 있었다. K의 글씨였다. 새끼 삼색이 제가 데려갈게요. 이름은 화요 다음이라 수요 주니어. J도 하나 데려간대요. 회색 둘째. 채린이 쪽지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할머니 달력에 없던 이름이 둘 생겼다. 곁을 찾은 고양이. 열에서 둘.
명우는 이 층에 올라가 영업일지 뒷장을 폈다. 요일 일곱 개 옆에 두 이름을 적었다. 수요 주니어. 회색 둘째. 할머니가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