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47자) · 유월 일일
예순두 날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수요는 세탁소 창고 뒤 보일러 배관 틈에 있었다. 배관이 벽을 따라 꺾이는 자리, 손바닥 두 개만 한 틈에 헌 수건을 깔고. 수건은 세탁소 것이었다. 순애세탁이라고 파란 실로 수놓은 수건. 할머니가 넣어 둔 것이었다. 새끼 넷이 수요 배에 붙어 있었다. 눈은 떴는데 아직 걸음이 서툴렀다. 셋은 회색이고 하나는 삼색이었다.
채린은 휴대폰 불빛으로 틈 안을 비추며 숫자를 셌다. 넷. 그러고는 소매를 걷었다. 할머니 니트 소매가 팔꿈치까지 올라갔다. 명우는 그 뒤에 서서 불빛을 들고 있었다. 채린이 손을 뻗자 수요가 하악, 했다. 채린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손을 더 낮게, 바닥에 붙여 내밀었다. 손등을 위로. 수요가 그 손등에 코를 댔다. 오래. 그러고는 하악 소리를 멈췄다.
“엄마 냄새가 나나 봐요. 이 니트에서.”
채린이 새끼 넷을 하나씩 꺼내 무릎 위 수건에 올렸다. 눈곱을 닦고, 배를 눌러 보고, 귀를 들여다봤다. 셋째 회색이 콧물을 흘렸다. 채린 얼굴이 굳었다. 수의사 얼굴이었다.
“허피스예요. 고양이 감기. 두면 눈이 멀어요. 약 있어야 돼요.”
그날부터 세탁소가 병원이 됐다. 채린은 부산 병원에 전화를 걸어 동료한테 일주일을 부탁했다. 일주일이 열흘이 됐다. 카운터 위에 수건을 깔고 새끼들 약을 먹였다. 스포이트로 한 방울씩. 새끼가 약을 뱉으면 채린이 혀를 찼다. 할머니가 혀 차는 소리와 똑같았다. 명우는 그걸 들으면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서른 칸. 하루에 여섯 번. 상담과 상담 사이 십 분마다 내려가서 새끼들이 약을 먹었는지 봤다. 예약 노트에 쉬는 시간이 다시 생겼다. 그가 만든 것이었다.
내담자들이 그걸 알아챘다. 상담이 끝나면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가다 세탁소 셔터 앞에서 멈췄다. 반쯤 올라간 셔터 밑으로 카운터 위 수건과 새끼 넷이 보였다. 누군가 셔터 밑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물었다. 여기도 상담해요? 채린이 스포이트를 든 채 대답했다. 여기는 진료만 해요. 그 사람은 진료를 구경하다가 울었다. 새끼가 약을 뱉는 걸 보다가. 왜 우는지는 본인도 몰랐다. 채린은 그 사람한테 티슈 대신 세탁소 수건을 줬다. 순애세탁. 파란 실. 그 사람은 수건을 돌려주지 않고 갔다. 다음 날 빨아서 가져왔다. 다려서.
그다음 주 목요일, 토요가 왔다. 뒷다리를 절면서. 세탁소 셔터 밑으로 기어 들어와 카운터 앞에 앉았다. 할머니 달력의 세모. 채린이 다리를 만졌다. 오래된 골절이 잘못 붙은 자리였다.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대신 계단은 못 오른다고. 그날 명우는 영업일지 뒷장, 요일 일곱 개를 적어 둔 자리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쳤다. 화요, 목요, 금요, 일요, 수요, 토요. 새끼 넷. 열.
열에서 하나가 빠져 있었다. 강남에.
오월 이십구일 금요일 저녁 여섯 시. 골목에 저녁 준비하는 소리가 올라올 시각이었다. 도마 소리, 압력밥솥 추 도는 소리, 누가 창문 열고 텔레비전 볼륨을 올리는 소리. 흰 승합차가 다시 계단 아래 섰다. 발바닥 로고. 작업복 입은 남자 둘이 이동장 둘을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한 사람은 포획용 뜰채를 들고 있었다. 뜰채 그물이 계단 담쟁이에 걸렸다가 풀렸다.
채린이 셔터 밖으로 나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할머니 앞치마. 순애세탁. 가슴에 파란 실.
“뭐 하세요.”
“구조하러 왔습니다. 이 골목에 방치된 고양이들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방치 아니에요. 제가 돌보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누구신데요?”
채린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수의사 면허증. 남자 앞에 들이밀었다. 남자가 읽었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수의사 김채린이에요. 이 골목 고양이 열 마리 제가 진료 기록 다 있어요. 새끼 넷은 허피스 치료 중이고요. 지금 데려가시면 치료 중인 동물을 옮기는 거예요. 그쪽 강남점 월요, 걔도 제가 보고 싶네요. 방광 괜찮은지.”
남자 둘이 서로를 봤다. 뜰채 든 남자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목소리가 크게 났다. 명우는 그 목소리를 알았다. 브랜딩. 원조. 스토리. 남자가 전화를 끊고 채린한테 말했다.
“대표님이 그러시는데요, 수의사면 더 좋대요. 본점 고문으로 모시고 싶대요.”
채린이 웃었다. 소리 내서. 계단참 할머니들이 창문을 열고 내다봤다. 셋째 계단참 할머니가 물뿌리개를 든 채 계단 두 칸을 내려왔다. 둘째 계단참 할머니도 나왔다. 넷째 계단참 할아버지까지. 순식간에 계단에 사람이 다섯 섰다. 전부 순애 할머니한테 셔츠를 맡기던 사람들이었다.
명우는 이 층에서 내려왔다. 서른 칸. 손에 접이식 의자 하나. 그는 계단 한가운데, 세탁소 앞 계단참에 그 의자를 폈다. 금속 다리가 딸깍 벌어졌다. 그리고 앉았다. 계단을 막고.
“상담 예약하셨습니까?”
뜰채 든 남자가 명우를 봤다.
“네?”
“이 골목에 들어오시려면 예약하셔야 합니다. 대기가 서른한 명입니다.”
셋째 계단참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가 따라 웃었다. 남자 둘은 뜰채와 이동장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계단을 내려갔다. 승합차가 떠났다. 명우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금요일 저녁 계단 한가운데 접이식 의자 위에. 채린이 앞치마를 벗어 손에 들고 명우를 내려다봤다.
“방금 뭐예요, 그거.”
“스물여섯 마디째입니다. 오늘.”
“많이 하셨네요.”
“네.”
다음 날은 오월 삼십일일, 마 실장이 벽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친 날이었다. 마 실장은 오후 두 시에 올라왔다. 마스크 세 겹. 명우 앞에 종이 한 장을 놓았다. 제십이조 위반에 따른 계약 해지 예고. 건물주 오 여사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았다. 마 실장 도장만 있었다.
“이모 도장은요.”
“이모한테는 아직 말 안 했어요. 에취. 하 선생이 이번 주 안에 정리하면 이건 없던 걸로 해요.”
“하루만 더 주십시오.”
“왜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 실장이 한숨을 쉬었다. 마스크 세 겹이 한꺼번에 부풀었다.
“하 선생, 내가 이 건물 관리 이십 년 했어요. 이모부 살아 계실 때부터. 이모부가 제십이조 넣은 사람이에요. 개가 무서워서. 어릴 때 물려서. 이모부 돌아가시고도 이모는 그 조항 안 빼요. 이모부가 넣은 거라서. 나도 그래서 지키는 거예요. 에취. 내 코 때문만은 아니라고.”
명우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할머니 니트의 매듭을 생각했다. 할머니 달력의 동그라미를. 이모부의 제십이조를. 떠난 사람이 남긴 것을 산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각자 다른 것을. 명우는 달력을 봤다. 삼월 삼십일일에서 오늘까지. 그는 세지 않아도 알았다. 예순한 날. 내일이면 예순둘.
그날 밤 명우는 또 소파에서 잤다. 아래층 세탁소에 불이 늦게까지 켜져 있었다. 창을 두 뼘 열어 두었더니 아래서 소리가 올라왔다. 채린이 새끼들한테 뭐라고 말하는 소리. 말이 아니라 노래였다. 가사는 안 들렸다. 곡조만 올라왔다. 명우는 그 곡을 알았다. 할머니가 셔츠를 다리면서 흥얼거리던 곡이었다. 제목은 몰랐다. 십 년 동안 오후 세 시마다 다리미 탁 소리 사이로 들리던 곡. 명우는 눈을 감고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들었다. 사장님이 창틀에서 귀를 아래로 돌리고 있었다.
유월 일일 월요일 오후 다섯 시. 채린이 이동장을 들고 이 층에 올라왔다. 처음으로 노크를 했다. 명우가 문을 열었다. 채린은 문턱에서 멈추지 않았다. 넘어왔다. 이동장을 소파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 내담자 자리였다. 앉으면서 치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명우 책상에 올려놓았다. 두 번 접힌 종이. 테이프 자국이 남은. 고양이 있음. 이 주 전 채린이 떼어 간 그 종이였다. 채린은 그것을 펴지 않고 접힌 채로 두었다. 명우도 펴지 않았다.
“데려가려고요. 새끼들은 이번 주면 약 끝나요. 입양처 알아볼 거고요. 화요는 부산으로.”
명우는 선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장님은 책장 위에 있었다. 조각상 옆. 채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채린이 이동장 문을 열었다. 철망 문이 삐걱 열렸다. 사장님이 그 소리에 귀를 돌렸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뛰어내렸다. 소리 없이. 이동장 쪽으로 가지 않았다. 채린 쪽으로 왔다. 소파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채린 무릎을 올려다봤다. 세이지색 니트 소매가 무릎 위에 늘어져 있었다. 할머니 니트.
앞발이 먼저 무릎에 닿았다. 뒷발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 채린 손이 반사적으로 받치려다 멈췄다. 받치면 도망갈까 봐. 뒷발이 올라왔다. 사장님이 채린 무릎 위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앉았다. 앞발을 가슴 밑에 접었다. 식빵.
명우는 선 채로 그것을 봤다. 예순두 날. 이 방에 들어온 날부터 오늘까지. 사람 백 명 넘게 이 소파에 앉았다. 사장님은 그중 서른 명쯤의 무릎에 올라갔다. 명우 무릎에는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다. 앉을 의자가 없어서 무릎을 내줄 기회도 없었다. 그 고양이가 예순두 날 만에, 제 방에 처음 들어온 사람 무릎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채린이 울었다. 이 방에서 운 사람 중에 제일 조용하게. 니트 소매로 눈을 누르고. 사장님은 그 니트 위에서 눈을 감았다. 가르릉 소리가 났다. 작은 모터 같은 소리. 명우는 그 소리를 이 방에서 처음 들었다. 예순두 날 동안 한 번도 안 났던 소리.
명우 손이 한 번 움직였다. 소파 쪽으로. 반 뼘쯤. 그러고는 멈췄다. 그 손을 그는 허리 뒤로 가져갔다. 명우는 청록 티슈 상자를 소파 쪽으로 밀었다. 티슈가 솟아올랐다. 그는 그러고 나서 창가로 가서 섰다. 창밖을 봤다. 채린 쪽을 안 봤다. 편들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한참 뒤 채린이 말했다. 목이 잠겨 있었다.
“여기가 화요 자리네요.”
“…….”
“부산 안 데려갈게요. 대신 저 한 달만 여기 있을게요. 새끼들 입양 보내고, 월요 찾아오고. 세탁소 짐은 그다음에 빼고.”
채린은 이동장 문을 닫았다. 빈 채로. 그러고는 무릎 위 사장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명우한테 하는 말인지 고양이한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선생님, 이 방은 왜 의자가 다 비어 있는데 서 계세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틀에 한 손을 짚고 섰다. 계단 아래서 할머니 한 사람이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명우는 손을 흔들지 않았다. 대신 영업일지를 폈다. 유월 일일 특이사항 칸. 그는 오래 생각하다가 한 줄을 썼다.
무릎. 상담자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