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47자) · 오월 십이일
문턱 하나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그 일주일 동안 명우는 밤마다 세탁소 앞에 종이컵 셋을 놓았다. 목요, 금요, 일요. 해 질 녘에 셋이 와서 먹고 갔다. 사장님은 창틀에서 그것을 내려다봤다. 강수혁은 문자를 두 번 보냈다. 첫 번째는 월요 사진이었다. 흰 방석 위에 앉은 고양이. 방석에 발바닥 로고가 수놓여 있었다. 두 번째는 한 줄이었다. 원조 생각해 보셨어요. 명우는 두 문자 다 답하지 않았다. 마 실장은 수요일에 올라와서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오월 삼십일일. 명우 달력이 아니라 상담실 벽의 달력이었다. 동그라미를 치고 재채기를 하고 나갔다. 사장님은 그 동그라미 위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달력이 벽에 걸려 있는데 어떻게 그 위에 앉았는지는 명우도 모른다. 책장을 밟고 올라가 액자 위에 걸터앉았다가, 달력 앞으로 늘어져 있었다. 빨간 동그라미가 고양이 배에 가려서 안 보였다.
일주일 뒤 같은 시각에 그림자가 다시 왔다.
오월 십이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명우는 이번에도 그 시간을 비워 두었다. 대기자는 서른한 명이었다. 다섯 시 정각에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왔다. 바닥이 얇은 신발. 서른 칸.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문 앞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바람이 없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노크도 없었다.
명우는 문을 열었다.
여자가 서 있었다. 서른 중반. 갈색 머리를 뒤로 느슨하게 묶었는데 몇 가닥이 빠져 볼에 붙어 있었다. 세이지색 니트. 오월 중순에 입기에는 두꺼운 니트였다.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긴 베이지 치마. 가슴에 청록 서류철을 안고 있었다. 두 팔로, 누가 뺏어 갈 것처럼.
“상담 예약하셨습니까?”
“아니요.”
“들어오시겠습니까?”
“아니요.”
여자는 문턱 바깥에 서서 방 안을 봤다. 책장, 화분, 청록 머그, 청록 티슈 상자, 벽 글귀. 그리고 소파 위 회색 고양이. 여자의 눈이 고양이에게서 멈췄다. 멈춘 채로 말했다.
“상담받을 게 없는데 들어가면 이상하잖아요.”
그 말에 사장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도 안 켜고 바로. 바닥으로 뛰어내려 문 쪽으로 달렸다. 꼬리가 채찍처럼 휘었다. 명우 무릎 앞을 지나갔다. 명우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은 허공에서 멈췄다. 사장님은 명우 손 밑을 빠져나가 문턱까지 갔다. 문턱에서 멈췄다. 여자 발 앞이었다.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장님도 움직이지 않았다. 둘이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봤다.
“화요.”
여자가 불렀다. 작은 목소리였다. 사장님 귀가 한 번 돌아갔다. 명우가 불렀을 때는 한 번도 안 돌아간 귀였다.
“일 층 세탁소 따님이시죠.”
명우가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채린이요. 김채린. 엄마 가게 짐 빼러 왔어요. 지난주에도 왔는데, 여기까지 올라왔다가 그냥 내려갔어요.”
“압니다.”
“아세요?”
“발소리가 열 칸째에서 멈췄습니다.”
채린이 명우를 봤다. 위아래로. 명우 뒤쪽 방 안에는 소파 하나, 상담사 의자 하나, 접이식 의자 둘이 있었는데 전부 비어 있었다. 명우는 그 빈 의자들 앞에 서 있었다. 채린의 눈이 빈 의자들과 선 남자를 번갈아 봤다.
“왜 서 계세요? 의자 많은데.”
“서서 하는 게 익숙해져서요.”
“상담을요?”
“네.”
채린은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맞았다.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그러다 그 눈이 조금 풀렸다. 이상한 사람인 것은 맞는데 해로운 쪽은 아니라는 판단 같았다.
“엄마가 문자를 보냈어요. 삼 년 동안. 저는 답장을 안 했고요. 문자가 거의 다 고양이 얘기였어요. 오늘 화요 왔다. 오늘 목요가 새끼를 물고 왔다. 오늘 이 층 총각이 셔츠 맡겼는데 단추가 또 헐렁하더라.”
명우는 자기 소매를 봤다. 걷어 올린 베이지 셔츠. 단추 하나가 실 두 가닥에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 문자가 삼월 이십팔일이었어요. 화요 부탁한다. 누구한테 부탁하는지 안 썼어요. 저한테 한 건지. 저는 부산이고, 동물병원 하고, 엄마랑 삼 년 말을 안 했는데.”
채린이 서류철을 고쳐 안았다. 청록 서류철 모서리에 사망 신고, 세탁소 폐업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데려가려고요. 부산으로. 엄마가 부탁한 거니까.”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이 방의 규칙이었다. 채린은 그 침묵을 허락으로 들었는지, 문턱을 넘지 않은 채로 몸을 숙여 사장님을 안으려 했다. 사장님이 한 발 물러났다. 방 안쪽으로. 채린 손이 허공에 남았다. 조금 전 명우 손처럼.
채린이 허리를 폈다.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채린의 눈이 문 옆 간판 아래로 갔다. 테이프가 반쯤 떨어진 종이. 고양이 있음.
“이거 선생님이 붙이셨어요?”
“제 내담자가 붙였습니다.”
“떼지는 않으셨네요.”
“네.”
“계단 올라오다가 할머니들한테 들었어요. 이 층 상담소가 고양이 덕에 예약이 삼 주 밀렸다고. 인터넷에 사진이 칠천 개 돌았다고. 우리 엄마 고양이로요.”
채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오월 오후의 계단에 그 목소리가 울렸다. 계단참에서 화분에 물을 주던 할머니가 물뿌리개를 멈췄다.
“선생님, 우리 엄마 고양이로 장사하세요?”
명우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스무 마디 가운데 이 질문에 맞는 말은 없었다. 그는 십 년 동안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법을 연습했다. 대답해야 할 때 대답하는 법은 연습하지 않았다.
“아니라고는 못 하시네요.”
채린이 손을 뻗어 간판 아래 종이를 뗐다. 테이프가 늘어나며 뜯겼다. 종이가 채린 손에서 반으로 접혔다. 두 번. 손바닥만 해졌다. 채린은 그것을 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일 층 짐은 다음 주에 뺄 거예요. 그때 화요 데려갈게요. 이동장 가져와서.”
채린이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가려다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월요 어디 갔어요. 엄마 문자에 제일 많이 나온 애가 월요예요. 사람을 잘 따른다고.”
명우는 대답했다. 이번에는 대답했다.
“강남에 있습니다. 펫마음코칭이라는 곳이 지난주에 데려갔습니다. 구조라고 했습니다.”
채린이 돌아봤다. 표정이 바뀌었다. 조금 전의 화는 사람한테 내는 화였다. 지금 것은 수의사가 내는 화였다. 더 조용하고, 더 무서웠다.
“어디라고요?”
명우는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뒷면에 청록 머그 자국이 동그랗게 찍힌 명함. 채린이 받아서 앞면을 읽었다. 발바닥 로고. 가맹 문의 환영.
“이 사람들 알아요. 부산에도 한 곳 냈어요. 번식장에서 고양이를 한 달 단위로 빌려요. 한 달 동안 하루 열두 시간 손님 무릎에 올려놓고, 지치면 돌려보내고 새로 빌려요. 저희 병원에 한 마리 실려 왔어요. 스트레스성 방광염. 피오줌을 싸고 있었어요.”
계단참 할머니가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할머니 입이 벌어져 있었다.
“월요는 길에서 산 애예요. 여섯 살. 하루 열두 시간 무릎 위에서 못 살아요.”
채린은 명함을 서류철 사이에 끼웠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서른 칸.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세탁소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녹슨 셔터가 비명을 질렀다.
명우는 문턱에 서 있었다. 사장님이 그의 발 옆에 와서 앉았다. 명우 발 옆. 한 달 반 만에 처음이었다. 둘이 같이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세탁소 셔터가 반쯤 올라가 있었고, 안에 불이 켜졌다.
한 시간 뒤 명우는 계단을 내려갔다. 서른 칸. 손에 청록 머그 두 개. 하나에는 물, 하나에는 믹스커피. 세탁소 셔터 밑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명우는 셔터를 두드리지 않았다. 셔터 앞 셋째 화분 옆에 머그 두 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셔터 안에서 채린 목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상담받을 게 없는데 들어오면 이상하잖아요.”
아까 자기가 한 말을 뒤집어 하는 말이었다. 명우는 반쯤 올라간 셔터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세탁소 안은 스팀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셔터 안에 들어서자마자 계단참 할머니가 뒤따라 셔터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손에 떡 한 접시. 채린이 놀라 일어서자 할머니는 떡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순애 언니 딸이면 내 딸이나 마찬가지라고, 먹으라고, 그러고는 바로 나갔다. 나가면서 명우를 흘끗 보고 셔터 밖에서 한마디 했다. 총각은 단추나 달아. 셔터가 흔들렸다. 비닐 씌운 셔츠들이 천장 레일에 한 줄로 매달려 있었다. 찾아가지 않은 옷들. 채린은 카운터 앞 바닥에 앉아 있었다. 치마를 무릎 아래로 끌어 덮고. 채린이 니트 소매를 손등 위로 끌어당겼다. 털실이 서로 쓸리는 소리가 났다.
“이거 엄마 거예요. 옷장에 걸려 있길래. 부산에서 반팔 입고 왔는데 여기가 이렇게 추울 줄 몰랐어요. 가게가 볕이 안 들어요.”
명우는 니트를 봤다. 소매 끝에 올이 하나 풀려 있었다. 실이 길게 늘어진 것을 누가 매듭으로 묶어 둔 자국이 있었다. 할머니가 명우 셔츠 단추를 달 때 쓰던 매듭과 같은 모양이었다.
“삼 년 동안 왜 답장을 안 하셨습니까?”
명우가 물었다. 그가 먼저 무엇을 묻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채린도 그걸 알아챈 것 같았다.
“상담하세요?”
“아닙니다.”
“엄마가 제 결혼을 반대했어요. 저는 했고요. 이 년 살고 헤어졌어요. 헤어진 걸 엄마한테 말하면 엄마가 맞은 게 되잖아요. 그래서 말을 안 했어요. 말을 안 하니까 답장도 못 하겠더라고요. 문자는 매일 왔는데.”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규칙이어서가 아니라 대답할 말이 없어서였다. 그 둘은 이 방에서는 구분이 안 됐다. 이 방이 아니어도. 카운터 뒤 벽에 달력이 걸려 있었다. 올해 달력. 삼월에서 멈춰 있었다. 날짜마다 볼펜으로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동그라미, 세모, 별. 그리고 그 옆에 이름.
화요 ○ 목요 ○ 금요 ○ 일요 ○ 월요 ○ 수요 ◎ 토요 △
“동그라미는 밥 먹은 날이에요. 엄마 버릇이에요. 별은 병원 데려간 날. 세모는 다리 저는 날. 토요가 뒷다리를 절어요.”
채린이 달력 마지막 장을 넘겼다. 삼월 이십팔일 칸 아래 여백에 연필로 한 줄.
수요 새끼 넷. 창고 뒤.
“일곱에, 새끼 넷. 열한 마리예요. 엄마가 밥 주던 애들.”
채린은 그 숫자를 말하고 명우를 봤다. 명우는 머그를 채린 앞에 내밀었다. 믹스커피 쪽. 채린이 받았다. 한 모금 마셨다. 달다고 했다. 너무 달다고. 엄마가 타 주던 거랑 똑같이 달다고. 그러고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셔터 밖에서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셋. 넷. 명우는 속으로 셌다. 목요, 금요, 일요. 그리고 하나 더. 처음 듣는 목소리. 작고 쉰 목소리가 창고 쪽에서.
채린이 컵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수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