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04자) · 오월 첫 주
서서 하는 상담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상담실 의자는 원래 둘이었다. 상담사 의자 하나, 내담자 소파 하나. 소파는 이인용이지만 이 방에 둘이 같이 오는 일은 드물었다. 연애 상담은 대개 혼자 온다. 둘이 오면 그건 연애가 아니라 협상이다.
사월 말부터 사람들은 둘씩 왔다. 친구를 데려왔다. 고양이를 보러 따라온 친구였다. 친구는 소파 끝에 앉았고, 내담자는 소파 가운데 앉았고, 사장님은 그 사이에 누웠다. 소파가 꽉 찼다. 셋째 주에는 셋이 오는 팀이 생겼다. 명우는 계단참 할머니한테 접이식 의자를 하나 빌렸다. 할머니는 의자를 빌려주면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미 알았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 의자 돌려줄 때 고양이 사진 한 장. 손주가 보고 싶어 한다고. 명우는 휴대폰 사진을 찍을 줄은 알았지만 고양이를 찍어 본 적은 없었다. 그날 저녁 그는 사장님을 스물세 장 찍었다. 스물두 장이 흔들렸다. 고양이는 찍으려고 하면 움직인다. 한 장은 꼬리만 나왔다. 할머니는 그 꼬리 사진이 제일 좋다고 했다.
접이식 의자는 펼 때 금속 다리가 벌어지며 딸깍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날 때마다 사장님이 귀를 돌렸다. 명우는 의자를 펴서 친구 쪽에 놓았다. 그러고 나니 명우가 앉을 의자가 없었다. 원래 상담사 의자에 셋째 사람이 앉았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은 앉으면서 미안해했다. 명우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섰다.
오십 분을 서서 하는 상담은 명우의 십 년에 없던 형식이었다. 처음 이십 분은 괜찮았다. 삼십 분이 넘어가면 무게를 한쪽 발로 옮겨야 했다. 사십 분이 넘어가면 허리가 기울었다. 명우는 창틀에 한 손을 짚고 섰다. 청록 머그를 다른 손에 들었다. 물을 마시는 건 여전히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서서 마시니까 뜻이 조금 달라 보였다. 내담자 하나가 사십오 분째에 물었다. 선생님, 혹시 지금 저 빨리 끝내라는 뜻이에요? 명우는 아니라고 했다. 그 대답은 반쯤만 사실이었다.
사장님은 그 모든 것을 소파 한가운데서 봤다. 사람들이 사장님 앞에서 울었다. 삼 주 동안 명우가 센 것만 스물일곱 명이었다. 명우 앞에서 운 사람은 없었다. 사장님 앞에서였다. 명우는 그 숫자를 영업일지에 적지 않았다. 적으면 자기가 몇 명이었는지도 적어야 했다. 영이었다.
오월 첫째 주 월요일. 백 사모가 왔다.
백 사모는 예약 노트에 이름이 없었다. 계단참 할머니 말로는 남산 아래 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데, 딸 결혼 문제로 여기저기 상담소를 다니는 걸로 유명했다. 백 사모는 노크를 했다. 이 방에 노크하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노크를 하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왔다.
“선생님, 저 돈은 두 배로 낼게요. 오십 분 동안 저 고양이를 제 무릎에 올려 주세요.”
명우는 선 채로 백 사모를 봤다. 백 사모는 벌써 소파에 앉아 무릎을 탁탁 치고 있었다. 명품 치마 위였다. 사장님은 책장 맨 위 칸에 있었다. 조각상 옆. 백 사모 무릎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제가 올리는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올려요.”
“고양이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불러요. 쯧쯧, 하든지.”
“부르면 안 옵니다.”
“안 오면 오게 해야죠. 제가 돈을 두 배로 낸다니까요.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요. 고양이가 무릎에 올라가면 다 풀린다고. 우리 딸 문제 좀 풀어야겠어요.”
명우는 청록 머그를 내려놓았다. 물을 마시지 않았다. 십 년 동안 이 방에서 그가 물을 마시지 않은 건 계속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그 뜻을 쓴 건 손에 꼽았다.
“고양이도 편을 안 듭니다.”
백 사모가 무릎 치던 손을 멈췄다.
“뭐라고요?”
“이 방 규칙이 셋입니다. 조언하지 않는다. 편들지 않는다. 다음에 또 오라고 하지 않는다. 고양이도 그 규칙을 지킵니다. 사모님 편을 들라고 제가 고양이를 무릎에 올리면, 그건 고양이가 사모님 편을 드는 게 됩니다. 저는 그걸 못 합니다.”
그날 명우가 한 말 중에 가장 긴 말이었다. 스물한 마디 안에 들어가지 않는 길이였다. 백 사모는 한참 명우를 봤다. 그러고는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이런 데서 무슨 상담을 한다고.”
백 사모가 문으로 가는데 사장님이 책장에서 뛰어내렸다. 소리 없이. 백 사모 발 앞을 지나 창틀로 갔다. 지나가면서 백 사모 발목에 꼬리 끝을 한 번 감았다가 풀었다. 백 사모가 멈췄다. 사장님은 창틀에 앉아서 백 사모를 돌아봤다. 초록 눈. 표정은 없었다.
백 사모가 문 앞에 선 채로 울었다. 소리 없이. 핸드백 끈을 두 손으로 쥐고. 오 분쯤. 명우는 청록 티슈 상자를 들고 가서 그 앞에 섰다. 백 사모가 티슈를 뽑았다. 한 장, 두 장, 세 장.
“우리 딸이 결혼을 한대요. 제가 반대한 사람하고. 이 년을 반대했어요. 걔는 이 년을 저한테 말을 안 했고요. 청첩장이 우편으로 왔어요. 우편으로. 딸이 엄마한테.”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 있었다. 물을 마시지 않고, 편들지 않고. 오십 분이 되기 전에 백 사모는 문을 나갔다. 돈은 한 배만 내고 갔다. 나가면서 사장님한테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명우한테는 안 숙였다. 그건 이제 이 방의 관례였다.
백 사모가 나간 뒤 명우는 소파 끝에 앉았다. 앉을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소파 가운데는 사장님 자리였다. 사장님은 명우가 앉자 한 번 쳐다보고,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둘 사이가 한 뼘이었다. 명우는 그 한 뼘을 넘어 손을 뻗지 않았다. 넘으면 사장님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 삼 주 동안 명우 손이 닿은 적은 사료를 부어 줄 때 머그 가장자리에서 한 번뿐이었다. 그는 한 뼘 떨어진 자리에서 사장님이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고양이는 숨을 쉴 때 코끝에서 아주 작게 휘파람 소리를 낸다. 십 년 동안 이 소파에 앉은 수천 명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그 휘파람 같은 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날 저녁 명우는 창틀에 기대 계단을 내려다봤다. 세탁소 앞 셋째 화분에 고양이 셋이 모여 있었다. 흰 바탕에 노란 점이 있는 것, 온통 검은 것, 삼색. 명우가 종이컵에 사료를 부어 두면 해 질 녘에 셋이 온다. 사장님은 창틀에서 셋을 내려다봤다. 내려가지는 않았다. 이 층이 제자리라는 듯이.
셋째 계단참 할머니가 올라오다가 명우를 봤다.
“총각, 저 애들 이름 알아?”
“모릅니다.”
“흰 거는 목요, 검은 거는 금요, 삼색이는 일요. 순애 언니가 오는 요일로 불렀어. 화요까지 넷. 더 있어. 월요도 있고 수요도 있고. 수요는 요새 안 보여.”
명우는 그 이름들을 입 안에서 한 번씩 굴렸다. 목요, 금요, 일요, 화요. 할머니가 매일 누군가를 맞이한 셈이었다. 요일마다 다른 손님을. 그는 영업일지 뒷장에 요일 일곱 개를 세로로 적었다. 이름을 아는 넷에 동그라미를 쳤다. 셋이 비었다.
그때 계단 아래서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 문이 딸깍 닫히는 소리. 명우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계단 맨 아래, 골목 입구에 흰 승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옆구리에 발바닥 로고. 펫마음코칭. 작업복 입은 남자 둘이 이동장 하나를 들고 차에 싣고 있었다. 이동장 안에서 가는 울음소리가 났다. 명우가 모르는 목소리였다.
명우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을 때 승합차는 떠나고 없었다. 계단 서른 칸. 그는 서른 칸을 뛰어 본 적이 없었다. 세탁소 앞에서 숨을 몰아쉬며 섰다. 셋째 화분 옆에 목요, 금요, 일요가 몸을 낮추고 있었다. 셋 다 있었다. 차에 실린 건 이 셋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뒤따라 내려와서 말했다.
“월요야. 저거 월요 목소리야. 쟤는 사람을 잘 따라서.”
명우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발바닥 로고. 뒷면에 청록 머그 자국이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십 년 동안 명우가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손에 꼽았다.
“아, 하 선생님. 결정하셨어요?”
“방금 해오름 계단길에서 고양이를 데려가셨습니다.”
“아, 그거요. 구조한 거예요. 길에서 떨고 있어서. 저희 직원들이 동물 좋아해요. 걱정 마세요. 저희 강남점에 잘 있을 거예요. 스토리도 있고. 세탁소 할머니가 밥 주던 원조 골목 고양이.”
“돌려주십시오.”
“선생님 고양이 아니라면서요.”
명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 달 전에 자기가 한 말이었다. 제 고양이가 아닙니다. 그 말이 전화선을 타고 돌아와 명우 귀에 꽂혔다.
“선생님이 원조 넘겨주시면 그 애는 돌려드릴게요. 원조 하나면 충분하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전화가 끊겼다. 할머니가 옆에서 다 들었다. 할머니는 혀를 찼다. 그러고는 셋째 화분을 발로 툭 밀며 말했다. 순애 언니 살아 있었으면 저 차 바퀴에 빨래 삶은 물 부었을 거라고. 명우는 그 장면을 상상했다. 상상이 되었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날 밤 명우는 창을 한 뼘이 아니라 두 뼘 열어 두었다. 사장님은 창틀에 앉아 밤새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명우는 집에 가지 않았다. 소파에서 잤다. 사장님 자리였다. 새벽에는 골목이 소리를 냈다. 오토바이 한 대가 계단 아래 큰길을 지나갔다. 누가 창문을 닫았다. 멀리서 고양이 둘이 싸웠다가 그쳤다. 명우는 눈을 감고 그 소리들을 하나씩 세었다. 세다가 잠들었다. 새벽 세 시에 사장님이 그의 발치에 와서 누웠다. 발치까지. 무릎은 아니었다.
오월 오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예약 노트에서 삼 주 동안 유일하게 비어 있던 자리. 명우는 그 시간에 아무 예약도 받지 않았다. 대기자가 스무 명이 넘었는데도. 왜 비워 두는지 그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말할 사람도 없었다. 사장님은 묻지 않았다. 창밖으로 어린이날 인파가 계단을 오르내렸다. 다섯 시 정각에 바람이 불었다. 문이 밀려 열렸다. 문에 달린 종이 흔들렸다. 책상 위에 올려 둔 상담 신청서 한 장이 바람에 날려 문 쪽으로 미끄러졌다.
문밖 계단참에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햇빛이 뒤에서 비쳐 그림자만 문 안으로 길게 들어와 있었다.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림자가 한참 그 자리에 있었다. 사장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귀를 문 쪽으로 세웠다. 수염이 앞으로 모였다. 한 달 동안 명우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표정은 없는데 몸 전체가 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명우는 의자가 없어서 선 채로 그 그림자를 봤다.
그림자가 움직였다. 계단 아래로. 발소리가 났다. 운동화도 구두도 아닌, 바닥이 얇은 신발이 돌계단을 한 칸씩 짚고 내려가는 소리. 서두르지 않았다. 열 칸쯤 내려가다가 한 번 멈췄다. 명우는 그 멈춤을 들었다. 멈춘 자리에서 발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서른 칸. 세탁소 앞에서 소리가 끊겼다. 신청서가 문턱에 걸려 팔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