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찾으러 왔습니다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고양이가 온 지 오십일 일째 되는 날, 나는 상담소 이름을 바꿨다. 원래 이름은 ‘마음자리 심리상담’이었다. 십 년 동안 그 간판을 걸었다. 새 간판은 이렇게 만들었다.
마음자리 심리상담 (고양이 있음)
간판 업체 사장이 물었다.
“괄호 안에 그거 진짜 넣어요?”
“예.”
“광고 심의 같은 거 없어요?”
“없습니다.”
예약이 삼 주 밀렸다.
이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십 년 동안 예약이 밀린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내 실력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맞다.
다만 지금은 실력의 문제가 아닌 이유로 밀리고 있다.
“고양이 보러 오시는 건 아니지요?”
첫 상담에서 나는 반드시 이 질문을 한다.
“아니에요.”
“정말입니까.”
“...반은요.”
정직한 사람은 상담이 잘 된다. 나는 이 사람을 받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다음 주였다. 한 내담자가 고양이를 안고 나가려 했다.
“잠깐만요.”
“얘 유기묘라면서요.”
“그렇습니다.”
“제가 키울게요.”
“안 됩니다.”
“왜요? 선생님도 이름 안 붙였다면서요.”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소파에 앉아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는 창틀에 있었다. 처음 왔을 때와 같은 자리.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고양이는 밖을 보고 있었다.
“제가 십 년 동안 사람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이름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다룰 수 있게 된다고.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르는 채로 두면 계속 커진다고.”
고양이가 귀를 뒤로 돌렸다. 듣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러면서 저는 제 것에는 이름을 안 붙였습니다.”
나는 영업일지를 폈다. 빈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들 1. 고양이 2. 4년 전에 그만두려다 만 것 3. 어머니 기일에 매년 하는 그것
세 번째 줄을 쓰고 나는 펜을 놓았다. 십 년 동안 남의 목록만 만들어 왔다. 내 목록을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동물병원에 갔다.
“등록하시려고요?”
“예.”
“이름이.”
나는 준비해 온 이름을 말했다.
“화요.”
“화요? 화요일 할 때 화요?”
“예.”
수의사가 차트에 적었다.
“성별은 암컷이고요, 나이는 세 살 전후. 건강해요.”
“오래 살 수 있습니까.”
“관리하시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상담에서, 나는 처음으로 말을 했다.
“K씨.”
내담자가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열두 번째 회기였고, 내가 먼저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네?”
“세 번 같은 이유로 헤어졌다고 하셨지요.”
“...네.”
“그 이유에 이름을 붙여 보시겠습니까.”
내담자는 오래 생각했다. 고양이가 소파로 올라가 그녀 옆에 앉았다.
“...무서움이요.”
“무엇이 무섭습니까.”
“먼저 좋아하는 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최소한이 아니라 제대로 끄덕였다.
“오늘 처음으로 진짜 말씀하셨습니다.”
영업일지 그날 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16:00 K, 12회기. 상담자 최초 개입. 내담자 스스로 명명 성공. 특이사항: 고양이 등록 완료. 이름 화요. 추가: 상담자도 목록 작성 시작함. 3항목 중 1항목 처리.
그리고 아래에 한 줄 더.
남은 두 개는 다음 주 화요일에.
목록의 두 번째 줄은 사 년 전에 그만두려다 만 일이다. 정확히는 상담소를 접으려고 했다. 사무실 계약 해지 통보서까지 썼다. 부치지 않았다. 부치지 않은 이유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접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세 번째 줄은 어머니 기일에 매년 하는 일이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상담을 잡는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열두 명씩 받는다.
십 년 동안 그랬다. 남의 말을 듣는 날로 그날을 채우면, 내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화요가 무릎 위로 올라왔다.
“이건 이름이 뭡니까.”
나는 물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회피라고 하면 너무 쉽고요.”
화요가 몸을 말았다.
“성실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나는 펜을 들었다. 목록 세 번째 줄 옆에 이렇게 적었다.
대신 채우기
적고 나서 조금 웃었다. 이름을 붙이니 크기가 줄어들었다. 내가 십 년 동안 내담자들에게 말해 온 그대로였다. 다음 주 화요일에 나는 상담을 하나도 잡지 않았다. 어머니 기일이었다.
그날 나는 상담소에 나와서 문을 열어 두고 앉아 있었다. 내담자는 오지 않았다. 화요가 창틀에 있었다. 오후 네 시쯤에 문이 열렸다. K씨였다.
“선생님, 오늘 휴진이라면서요.”
“네.”
“근데 왜 계세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나와 있고 싶어서요.”
K씨가 소파에 앉았다.
“저도요.”
우리는 한 시간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십 년 동안 내가 팔아 온 것이 바로 그 침묵이었는데, 그날은 내가 그것을 샀다. 영업일지 그날 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휴진. 16:00 K, 무회기. 상담 없음. 대화 없음. 특이사항: 오늘은 상담자가 앉아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