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18자) · 사월

아홉 통

사람들은 고양이 앞에서만 운다 · 오세림

전화기는 진동으로 해 두면 책상 위를 기어간다. 명우는 그 사실을 사월 둘째 주에 알았다. 십 년 동안 상담소 전화는 하루 한두 번 울렸고, 한두 번은 기어갈 거리가 안 됐다. 사월 칠일 화요일에는 아홉 번 울렸다. 아홉 번이면 책상 끝까지 간다. 명우가 오십 분 상담을 하는 동안 전화기는 책상 모서리에서 모서리로 한 뼘씩 이동했고, 세 번째 진동에 예약 노트를 밀어내며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내담자가 그걸 붙잡았다. 붙잡고 웃었다. 울러 온 사람이 웃었다.

원인은 사진 한 장이었다. K가 간판 밑 종이를 찍어 올렸다. 고양이 있음. 그 아래 K가 적은 설명은 세 줄이었다. 해오름 계단길 이 층 연애 상담소. 상담사는 말을 거의 안 함. 고양이가 다 함. 그 세 줄이 퍼졌다. 퍼진 속도는 명우가 알 수 없는 속도였다. 그는 그 사진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는 그런 걸 보는 앱이 없었다. 계단참 할머니가 손주 휴대폰으로 보여 줬다. 좋아요 칠천. 할머니는 그 숫자를 칠천 원처럼 읽었다.

아홉 통 가운데 여섯은 예약이었고 셋은 고양이 안부였다. 고양이 잘 있어요? 사장님은 오늘 기분 어때요? 사장님이라는 건 내담자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소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서 들어오는 사람을 위아래로 훑는 태도가 영락없이 사장님이라고. 명우는 그 고양이를 화요라고 불렀다. 순애 할머니가 부르던 이름. 그러니까 한 고양이에 이름이 둘이었다. 명우가 부르면 화요, 내담자가 부르면 사장님. 고양이는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공평했다.

예약은 삼 주가 밀렸다. 명우는 노트에 이름을 적다가 적을 칸이 모자라서 여백에 적었다. 여백이 모자라서 뒷장에 적었다. 오십 분 상담 사이 십 분 쉬는 시간이 사라졌다. 점심은 계단을 내려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바뀌었고, 그다음 주에는 그것도 사라졌다. 사장님은 하루 세 번 사료를 먹었다. 명우는 하루 한 번 먹었다. 이 방에서 누가 사장인지는 분명했다.

그 주의 내담자들은 명우에게 말하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말했다. 수요일 오후의 여자는 오십 분 내내 사장님 쪽으로 몸을 틀고 앉아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중간중간 사장님, 제 말 맞죠, 하고 물었다. 사장님은 하품을 했다. 여자는 그 하품을 동의로 들었다. 목요일 오전의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명우에게 선생님은 잠깐 나가 계셔도 된다고 했다. 명우는 나가지 않았다. 대신 창가로 의자를 돌려 앉았다. 남자는 사장님에게 사십 분을 말하고 명우에게 삼만 원을 냈다. 명우는 그 삼만 원을 받으면서 이 방의 수입이 누구 몫인지 잠깐 생각했다. 사료 값을 빼면 반반이었다.

사월 십사일 화요일 오후 네 시 오십 분. 예약에 없던 남자가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노크가 없었다. 요즘 이 방에 오는 사람들은 노크를 안 했다. 고양이 방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온다고 누가 그랬다.

남자는 마흔 초반이었다. 네이비 재킷에 흰 운동화. 운동화가 너무 하얘서 백스물네 계단 가운데 서른 칸을 올라온 신발 같지 않았다. 손에 명함을 들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방을 둘러봤다. 책장, 화분, 청록 머그, 청록 티슈 상자, 벽 글귀. 그리고 소파 위 사장님. 남자가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허락은 받지 않았다.

“하명우 선생님이시죠. 강수혁입니다. 펫마음코칭 대표예요.”

명함에는 발바닥 모양 로고가 있었다. 펫마음코칭.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마음 코칭. 가맹 문의 환영.

“선생님, 이 컨셉 대박이에요. 진짜로. 고양이 있음. 이 세 글자가요. 제가 이십 년 이 바닥에 있었는데 이렇게 깔끔한 브랜딩은 처음 봐요.”

“브랜딩한 적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박이라는 거예요. 의도 안 한 게 제일 먹혀요.”

강수혁은 소파 옆 의자에 앉았다. 내담자 의자였다. 사장님이 그를 봤다. 표정은 없었다. 강수혁은 사장님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고양이가 꼬리 끝을 한 번 탁 치자 손을 거뒀다.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릴게요. 이 고양이, 저희한테 파세요. 그리고 고양이 있음이랑 묘연 이름도요. 저희가 서울에 가맹점 스무 곳을 내려고 해요. 각 지점마다 고양이를 두고 연애 상담, 진로 상담, 퇴사 상담. 이 고양이는 원조로 본점에 모시고요. 삼백 드릴게요. 고양이 값이 아니라 원조 값이에요.”

명우는 청록 머그를 들어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는 것은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강수혁은 그 뜻을 몰랐지만 계속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그의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두 번 진동했고, 명우 책상 위 전화기가 한 번 진동했다. 두 전화기가 서로 대답하듯 번갈아 떨었다. 강수혁은 자기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명우도 자기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사장님만 그 소리 쪽으로 귀를 돌렸다.

“선생님 혼자 하시면 한계가 있잖아요. 지금도 삼 주 밀렸다면서요. 저희가 하면 스무 곳에서 삼 주가 아니라 사흘이에요. 사람들 더 많이 울 수 있어요. 좋은 일이잖아요.”

“제 고양이가 아닙니다.”

“아, 그럼 누구 거예요?”

“화요일마다 일 층 세탁소 앞에 오던 고양이입니다. 세탁소 할머니가 밥을 주셨습니다. 지난달에 돌아가셨습니다.”

명우는 그날 처음으로 문장 네 개를 한꺼번에 말했다. 강수혁은 그 네 문장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정보를 받아 적는 사람의 끄덕임이었다.

“그럼 주인이 없는 거네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그런 뜻이죠. 주인 없는 동물은 먼저 데려가서 돌보는 사람이 사실상 주인이에요. 선생님이 안 파시면 저희가 따로 알아보면 돼요. 이 골목에 할머니가 밥 주던 애들이 더 있다면서요. 원조 골목 고양이. 스토리 좋잖아요.”

사장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켰다. 앞발을 쭉 뻗고 등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고는 강수혁 무릎 앞을 지나 명우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강수혁 무릎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선생님.”

“네.”

“생각해 보세요. 연락 주시고요.”

강수혁이 명함을 책상에 놓고 일어섰다. 나가면서 문 앞에서 돌아봤다.

“아, 그리고 일 층 세탁소 자리. 비었죠. 제가 건물주님 쪽에 연락드렸어요. 본점을 거기 내면 딱이겠더라고요. 이 층 원조 고양이, 일 층 본점. 계단 올라오는 동선도 좋고.”

문이 닫혔다. 명우는 책상 위 명함을 봤다. 발바닥 로고. 그는 명함을 뒤집어 놓았다. 뒷면은 하얬다. 그는 그 흰 면 위에 청록 머그를 올려놓았다.

그날 저녁 마 실장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두 겹.

“하 선생, 에취, 강 대표라는 사람 왔었죠. 이모가 일 층을 그 사람한테 줄까 보시던데. 월세를 두 배 부른대요. 이모는 좋아하세요. 근데 조건이 하나 있대요.”

“뭡니까?”

“이 층 고양이를 자기네가 데려가겠대요. 원조라고.”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 실장이 마스크 너머로 한숨을 쉬었다. 한숨이 마스크를 한 번 부풀렸다.

“저는 고양이가 없어지기만 하면 돼요. 누가 데려가든. 제십이조. 하 선생, 이번 달 말까지예요. 그 전에 안 되면 이모한테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세탁소 따님은 올라오셨습니까?”

명우가 물었다. 마 실장이 눈을 깜빡였다. 이 층 상담사가 먼저 뭘 묻는 건 처음이었다.

“장례 치르고 바로 내려갔대요. 부산에서 동물병원 한대요. 짐은 오월에 와서 뺀다던데. 왜요.”

“아닙니다.”

“고양이 넘기려고요? 따님한테? 그럼 좋지. 에취. 그럼 제일 깔끔하지.”

마 실장은 그 생각이 마음에 드는지 마스크 너머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생각이 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는 그도 몰랐다.

마 실장이 나가려다 문턱에 멈췄다. 사장님이 책상 밑에서 나와 마 실장 발목에 몸을 한 번 비볐다. 스쳤다가 떠났다. 마 실장은 그 자리에 굳었다. 삼 초. 그러고는 재채기를 세 번 연달아 했다. 마스크 두 겹이 세 번 부풀었다.

“이, 이거 봐요. 이거.”

“고양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합니다.”

명우가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한테 유난히 간다. 명우는 그걸 알았다. 수의사 책에서 읽은 게 아니라 십 년 동안 사람을 보면서 알았다. 싫어하는 티를 내는 사람한테 사람들도 유난히 간다.

마 실장은 코를 쥐고 계단을 내려갔다. 재채기 소리가 계단 서른 칸을 내려갔다. 계단참 할머니가 그 소리에 웃었다. 웃음소리가 올라왔다.

명우는 불 꺼진 세탁소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다리미를 내려놓을 때마다 쇠받침에 탁 소리를 냈다. 이 층 상담실까지 그 소리가 올라왔다. 십 년 동안 명우는 그 탁 소리로 오후 세 시를 알았다. 할머니는 세 시에 명우 셔츠를 다렸다. 셔츠를 가지러 내려가면 할머니는 소매 단추를 가리키며 또 헐렁해, 했다. 명우는 네, 했다. 그게 둘이 십 년 동안 나눈 대화의 거의 전부였다. 탁 소리는 이제 안 났다. 세 시가 조용했다.

그날 밤 명우는 예약 노트를 넘기다가 삼 주 뒤 화요일 칸에서 멈췄다. 오후 다섯 시 칸이 비어 있었다. 삼 주 동안 유일하게 빈 칸. 그는 그 칸을 비워 두었다.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그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날 밤 창틀에 앉아 일 층을 내려다봤다. 세탁소 셔터에 흰 종이가 새로 붙어 있었다. 임대. 문의는 관리 사무소. 국화는 누가 떼어 갔는지 없었다. 테이프 자국만 남아 있었다.

명우는 창을 한 뼘 열어 두고 불을 껐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세탁소 앞 셋째 화분을 들어 사료 봉지를 확인했다. 봉지가 줄어 있었다. 명우가 채운 적 없는 만큼. 누군가 밤마다 여기 사료를 넣고 있었다. 순애 할머니 말고, 할머니가 없는 지금도. 명우는 화분 밑에 쪼그려 앉아 사료 봉지를 들여다봤다. 봉지 안에서 작은 방울 소리가 났다. 사료 알갱이 사이에 고양이 목걸이 방울 하나가 섞여 있었다. 누가 떨어뜨린 것인지, 일부러 넣어 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계단 아래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사장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가늘고 높은 목소리. 그리고 또 하나. 그 밑에서 또 하나. 명우는 계단참에 서서 셌다. 셋. 이 골목에는 화요 말고도 할머니 밥을 먹던 고양이가 있었다. 강수혁이 말한 원조 골목 고양이들.

그는 그 셋을 세고 나서 사료 봉지를 들고 이 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청록 머그가 하나뿐이어서, 그날 밤 그는 편의점에 내려가 종이컵 스무 개를 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종이컵 스무 개와 고양이 사료 한 봉지를 같이 계산하면서, 손님 파티하세요, 하고 물었다. 명우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날 그가 한 거짓말은 그것 하나였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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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차2026.04.30· 2화

    첫 문단에서 이미 분위기가 잡히네요. 다음 화 기다립니다.

    • 오세림작가2026.05.01

      첫 문단은 언제나 제일 오래 붙잡고 있는 자리예요. 다음 화도 이어서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