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26자)

야간 근무

마흔셋 경단녀, 동기는 스물넷 · 여시결

월요일 새벽 여섯 시 반⁠, 떡집 천막 아래에서 단희는 백설기를 자르다 칼을 비뚤게 넣었다⁠. 네모가 사다리꼴이 되었다⁠. 옆에서 시루를 내리던 춘례가 혀를 찼다⁠.

“⁠은행에서 돈은 똑바로 셌잖아⁠.⁠”

“⁠돈은 접혀 있잖아요⁠. 떡은 말랑해요⁠.⁠”

“⁠말랑한 걸 똑바로 자르는 게 장사야⁠.⁠”

춘례는 칼을 빼앗아 한 번에 그었다⁠. 칼날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짧았다⁠. 시루에서 올라온 김이 둘의 앞치마를 적셨다⁠. 단희가 아침마다 떡집에 온 지 나흘째였다⁠. 춘례는 첫날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둘째 날에는 손녀 이야기만 했고⁠, 셋째 날부터 매출 이야기를 했다⁠.

“⁠비 오는 날은 반이야⁠. 사람들이 시장에 안 와⁠. 대신 이튿날 두 배로 와⁠. 제사 떡 맞춰 놓은 사람들이 비 그치면 한꺼번에 찾으러 오거든⁠.⁠”

춘례는 계산대 서랍에서 카드 단말기 영수증 묶음을 꺼냈다⁠. 한 달 치 영수증이 고무줄에 묶여 두꺼운 두루마리가 되어 있었다⁠. 단희는 휴대전화로 두루마리를 한 장씩 찍었다⁠. 손목 보호대 위로 쌀가루가 쌓였다⁠.

“⁠이거 다 찍어서 뭐 해⁠?⁠”

“⁠꼬박페이가 사장님 비 오는 날을 배우게 하려고요⁠.⁠”

“⁠앱이 비를 알아⁠?⁠”

“⁠지금은 몰라요⁠. 사장님이 가르쳐 주시면 알아요⁠.⁠”

춘례는 코웃음을 쳤지만 영수증을 한 묶음 더 꺼냈다⁠.

*

같은 시각⁠, 개봉동 아파트에서 배경채는 해윤의 머리를 세 가닥으로 나누고 있었다⁠. 곰 인형으로 사흘을 연습했지만 사람 머리카락은 곰 털보다 미끄러웠다⁠. 가운데 가닥이 자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거울 속에서 해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빠⁠, 이거 브로콜리 같아⁠.⁠”

“⁠브로콜리가 몸에 좋아⁠.⁠”

“⁠머리에 좋은 건 아니잖아⁠.⁠”

찬결은 현관에서 신발을 거꾸로 신고 기다렸다⁠. 일곱 시 오십 분⁠, 경채는 땋다 만 머리를 고무줄로 묶어 버리고 두 아이의 손을 잡았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선생님이 찬결을 받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버님이 오셨네요⁠. 경채는 오늘‘⁠은⁠’에 힘이 들어간 것을 들었다⁠.

여덟 시 십오 분⁠, 경채가 대들보건자재 회의실 문을 열자 팀장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배 과장⁠, 애 보느라 늦었어⁠? 와이프는⁠?⁠”

“⁠떡집에 갔습니다⁠.⁠”

“⁠떡집⁠?⁠”

회의실에 웃음이 퍼졌다⁠. 경채는 설명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설명하려면 열 해 전 겨울부터 해야 했다⁠. 팀장은 이후로 회의 내내 경채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경채는 팀장의 침묵이 벌인지 배려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

아홉 시 반⁠, 민성이 시장에 왔다⁠. 반찬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춘례가 준 영수증 사진을 받아 정리하던 민성의 고개가 두 번 꺾였다⁠. 세 번째에는 꺾인 채 돌아오지 않았다⁠. 반찬가게 이모가 민성의 어깨에 꽃무늬 담요를 덮어 주었다⁠. 건어물 가게 이모가 지나가다 멈추었다⁠.

“⁠어머⁠, 총각 자⁠?⁠”

“⁠밤새 공부했나 봐⁠. 깨우지 마⁠.⁠”

장 보러 온 할머니 손님이 담요 쓴 민성을 한참 보더니 반찬가게 이모에게 물었다⁠. 이 마네킹은 얼마냐고⁠. 이모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웃음소리에 민성이 벌떡 일어났고⁠, 무릎이 플라스틱 바구니를 차서 멸치가 골목에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민성은 멸치를 손으로 주워 담았다⁠. 단희가 같이 쪼그려 앉았다⁠. 민성의 눈 밑이 보라색이었다⁠.

“⁠어젯밤에 몇 시에 잤어요⁠?⁠”

“⁠잤어요⁠.⁠”

“⁠몇 시에요⁠?⁠”

“⁠사장님⁠, 멸치나 주우세요⁠.⁠”

길영두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요일 오전 열한 시⁠, 9층에서 현장 시험 중간 점검이라고 했다⁠. 민성은 전화를 받으며 눈을 비볐고⁠, 단희는 멸치를 바구니에 마지막까지 주워 담았다⁠. 반찬가게 이모는 쏟아진 멸치 대신 민성의 전화번호를 다시 물었다⁠.

*

수요일 오전 열 시⁠, 해윤의 학교에서 공개수업이 있었다⁠. 3학년 2반 교실 뒤에 엄마들과 아빠 둘이 줄지어 있었다⁠. 단희는 연노랑 카디건 차림으로 맨 끝에 자리를 잡았다⁠. 열한 시까지 9층에 가려면 열 시 사십 분에는 나서야 했다⁠.

수업 주제는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이었다⁠. 해윤의 차례가 왔다⁠. 해윤은 공책을 들고 일어나 또박또박 읽었다⁠.

“⁠우리 엄마는 인턴이에요⁠. 인턴은 아직 배우는 사람이에요⁠. 엄마는 아침마다 떡집에서 배워요⁠. 떡을 똑바로 자르는 걸 배우는데 아직 못 해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비뚤어진 백설기가 많아요⁠.⁠”

교실에 웃음이 퍼졌다⁠. 선생님이 물었다⁠. 엄마가 배우는 게 좋아 보이느냐고⁠. 해윤은 공책을 내리고 잠깐 생각했다⁠.

“⁠엄마가 배울 때는 혼자 웃어요⁠. 집에서는 잘 안 웃는데⁠.⁠”

교실 뒤의 엄마들이 단희를 돌아보았다⁠. 단희는 손목의 구슬 팔찌를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열 시 사십 분⁠, 단희는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수요일 저녁 학부모 단톡방에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혹시 인턴이 무슨 직업인가요⁠? 아이가 자기도 인턴 되고 싶대요⁠」

열한 시 이십 분⁠, 단희가 9층 회의실 문을 열었을 때 중간 점검은 거의 끝나 있었다⁠. 화면에 4조의 현장 시험 자료가 떠 있었다⁠. 영수증 두루마리 사진⁠, 비 오는 날과 이튿날의 매출 막대⁠. 화면 맨 아래에 이름이 둘이었다⁠. 「⁠차민성 · 금단희⁠」

영두가 단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운동화가 아니라 구두였다⁠. 영두는 단희의 눈길을 알아채고 발을 탁자 밑으로 넣었다⁠.

“⁠위에서 투자사 사람들 온대서⁠. 옆 건물 핀테크 하나 이번 달에 문 닫았잖아⁠. 우리도 구두 신을 때야⁠.⁠”

“⁠마침 왔네⁠. 떡집 사장님 비 오는 날 얘기⁠, 이거 누가 받아 왔어⁠?⁠”

민성이 대답했다⁠.

“⁠금단희 씨요⁠. 저는 사진만 정리했어요⁠.⁠”

단희는 문가에 선 채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화면만 보고 있었다⁠.

*

목요일 저녁 일곱 시⁠, 민성이 먼저 퇴근한 의자 등받이에 남색 조끼가 놓여 있었다⁠. 편의점 조끼였다⁠. 가슴의 명찰에 「⁠신림사거리점 차민성⁠」이 있었다⁠. 단희는 조끼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밤 열한 시 사십 분⁠, 아이들을 재우고 경채에게 집을 맡긴 단희가 신림사거리점 문을 밀었다⁠.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계산대 뒤의 민성이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었다⁠. 조끼 대신 회색 맨투맨 위에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기 왜 오셨어요⁠?⁠”

“⁠조끼 두고 갔어요⁠. 이거 없으면 혼나죠⁠?⁠”

민성이 조끼를 받아 들었다⁠. 계산대 위에서 민성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화면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학자금 미납 두 달째예요⁠. 다음 달까지 내지 않으면⁠…⁠.⁠」 단희가 화면을 보았고⁠, 민성은 단희가 보는 것을 보았다⁠. 민성이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남의 시간표 보지 말라고 했잖아요⁠.⁠”

“⁠봤어요⁠.⁠”

“⁠못 본 척하세요⁠.⁠”

“⁠못 해요⁠. 창구에서 열한 해 동안 제일 많이 한 게 그거예요⁠. 못 본 척⁠. 서류에 없는 건 못 본 척⁠, 사장님 손 떨리는 것도 못 본 척⁠. 그만둘 때까지 그걸 잘했어요⁠.⁠”

문의 종이 울렸다⁠. 넥타이를 반쯤 푼 회사원이 숙취해소제 두 병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회사원은 민성에게 카드를 내밀고 단희를 보며 고개를 꾸벅했다⁠.

“⁠사모님이 이 시간까지 고생하시네요⁠.⁠”

“⁠사모님 아니에요⁠.⁠”

민성과 단희가 동시에 말했다⁠. 회사원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숙취해소제를 한 병 더 집어 올렸다⁠. 회사원이 나가자 민성이 처음으로 웃음을 흘렸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은 밤 열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요⁠. 화요일⁠, 목요일은 열한 시부터 두 시까지 더 해요⁠. 엄마 미용실이 작년에 문 닫았어요⁠. 영천에서요⁠. 엄마 가게 빚까지 같이 갚고 있어요⁠.⁠”

“⁠학자금은요⁠?⁠”

“⁠두 달 밀렸어요⁠. 다음 달까지 정규직 안 되면 신용 정보에 올라가요⁠. 그럼 다음 인턴도 어려워요⁠.⁠”

단희는 지갑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계산대 옆 온장고에서 캔 커피 두 개를 꺼내 민성 앞에 놓고 카드를 내밀었다⁠.

“⁠아침 떡집은 나 혼자 갈게요⁠. 민성 씨는 열 시까지 와요⁠. 대신 영수증 사진은 그날 밤에 다 정리해 줘요⁠. 편의점에서 손님 없을 때요⁠.⁠”

“⁠가산점처럼 봐 주는 거예요⁠?⁠”

“⁠아니요⁠. 나눠 하는 거예요⁠. 나는 아침에 강하고 민성 씨는 밤에 강하잖아요⁠.⁠”

민성은 캔 커피를 계산하고 한 개를 단희에게 밀었다⁠. 바코드 찍는 소리가 났다⁠. 냉장고 진열대의 모터가 웅웅거렸고⁠, 유리문 밖으로 막차를 놓친 대학생 둘이 지나갔다⁠. 단희는 캔을 손바닥에 굴렸다⁠. 따뜻했다⁠.

“⁠사장님 것도 계산했어요⁠. 영수증 드릴까요⁠?⁠”

“⁠주세요⁠. 떡집 사장님한테 보여 드리게⁠. 밤에 일하는 사람도 영수증은 남는다고요⁠.⁠”

*

금요일 오전 열 시⁠, 남구로시장 세 번째 골목에 흰 승합차가 멈추었다⁠. 홍보팀 직원 둘이 카메라와 조명을 내리고⁠, 실장 엄여란이 뒤따라 내렸다⁠. 회색 정장이 시장 골목에서 혼자 반짝였다⁠.

“⁠단희 님⁠, 아침에 떡집 나오신다는 얘기 듣고 바로 왔어요⁠. 「⁠경단녀⁠, 시장에서 새벽을 연다⁠」 제목도 정했어요⁠.⁠”

카메라가 떡집 천막을 향했다⁠. 춘례가 시루 뚜껑을 내려놓고 나왔다⁠. 앞치마의 쌀가루가 흩날렸다⁠.

“⁠뭘 찍어⁠.⁠”

“⁠사장님⁠, 꼬박 인재문화실장 엄여란입니다⁠. 금단희 님이 사장님 가게에서 배우시는 모습을 조금만 담으려고요⁠. 사장님 얼굴은 안 나와요⁠. 떡이랑 손만요⁠.⁠”

“⁠내 떡이 내 얼굴이야⁠.⁠”

춘례가 카메라 앞을 가로막았다⁠.

“⁠내 얼굴로 대출 광고 하려고⁠? 일수꾼 앱 광고에 내 떡을 넣어⁠? 이 골목 사람들이 다 봐⁠. 춘례네도 일수 쓴다고⁠.⁠”

“⁠사장님⁠, 그런 광고가 아니에요⁠.⁠”

“⁠광고는 다 그런 광고야⁠.⁠”

실장은 웃음을 잃지 않고 단희를 보았다⁠. 도와 달라는 눈이었다⁠. 단희는 앞치마를 벗지 않고 춘례 옆으로 갔다⁠.

“⁠실장님⁠, 사장님이 싫다시면 안 찍어요⁠.⁠”

“⁠단희 님⁠.⁠”

“⁠여기는 사장님 가게예요⁠. 열네 장째 서명은 저만 했어요⁠. 사장님은 안 하셨어요⁠.⁠”

반찬가게 이모와 건어물 가게 이모가 하나둘 골목으로 나왔다⁠. 카메라를 든 홍보팀 직원이 렌즈를 내렸다⁠. 실장은 단희의 팔을 가볍게 잡고 골목 끝 방앗간 앞으로 데려갔다⁠. 방앗간 기계 소리가 둘의 목소리를 덮었다⁠.

“⁠단희 님⁠, 현장 시험 점수에 홍보 기여가 들어가요⁠. 영상 안 찍으면 최종에 못 가요⁠.⁠”

“⁠그런 기준은 공지에 없었어요⁠.⁠”

“⁠이번 주에 생겼어요⁠.⁠”

실장의 목소리는 밝았다⁠. 단희는 방앗간에서 고춧가루 빻는 냄새를 맡았다⁠.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럼 다른 걸 찍으세요⁠. 사장님 말고 저를요⁠. 교육장에서요⁠.⁠”

“⁠얼굴 나오는 거예요⁠. 아이 얘기도 나와요⁠.⁠”

“⁠제 얼굴은 나와도 돼요⁠. 아이 얼굴은 안 돼요⁠. 사장님 떡도 안 돼요⁠.⁠”

실장은 몇 초 동안 단희를 보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일정을 적었다⁠.

“⁠다음 주 화요일⁠, 3층 교육장⁠. 광고 대행사도 불러요⁠.⁠”

실장이 승합차로 돌아갔다⁠. 골목에 나와 있던 이모들이 흩어지며 한마디씩 했다⁠. 춘례네가 서울 회사를 이겼다고⁠, 저 언니 은행 다닐 때도 고집은 셌다고⁠. 건어물 가게 이모는 승합차를 향해 멸치 한 줌을 흔들었다⁠. 춘례가 칼을 다시 들며 단희를 불렀다⁠. 처음으로 금 대리가 아니었다⁠.

“⁠단희야⁠, 백설기 다시 잘라 봐⁠.⁠”

단희는 칼을 받았다⁠. 이번에는 네모가 반듯하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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