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15자)

수족구

마흔셋 경단녀, 동기는 스물넷 · 여시결

월요일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찬결의 이마가 손바닥에 뜨거웠다⁠. 체온계가 삑 울리고 38⁠.9도가 떴다⁠. 단희가 불을 켜고 아이의 입을 벌리자 혀끝과 입천장에 하얀 물집이 좁쌀처럼 돋아 있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도 붉은 점이 있었다⁠. 다섯 해 엄마 노릇에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손과 발과 입안에 물집이 잡히는 아이 돌림병⁠, 수족구였다⁠.

여덟 시 이십 분⁠, 동네 소아과 앞에는 벌써 줄이 이어져 있었다⁠. 문 여는 시간은 아홉 시였다⁠. 맨 앞의 아빠는 접이식 낚시 의자에 앉아 보온병 커피를 마셨고⁠, 두 번째 엄마는 아이를 아기띠에 넣은 채 서서 졸았다⁠. 단희는 열한 번째였다⁠. 뒤에 선 엄마가 단희의 연노랑 카디건을 보고 물었다⁠.

“⁠출근하세요⁠?⁠”

“⁠하려고 했어요⁠.⁠”

“⁠저도요⁠.⁠”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는 줄이었다⁠. 진료는 삼 분 만에 끝났다⁠. 수족구⁠, 등원 중지 일주일⁠, 물 많이 먹이고 찬 것 먹이세요⁠. 의사는 다음 아이를 불렀다⁠.

경채는 전화를 두 번 만에 받았다⁠. 사무실 소음이 수화기 너머로 쏟아졌다⁠.

“⁠연차 못 써⁠. 이번 주 거래처 단가 협상이야⁠. 팀장이 영업은 사람이 자리 비우면 끝이래⁠.⁠”

“⁠나는 자리 비워도 돼⁠?⁠”

“⁠당신은 인턴이잖아⁠.⁠”

경채는 말해 놓고 바로 숨을 들이켰다⁠. 단희는 전화를 끊지 않고 오래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경채를 불렀다⁠. 경채가 미안하다고⁠, 저녁에 얘기하자고 했다⁠. 돌봄콜은 「⁠전염성 질환 아동은 매칭할 수 없습니다⁠」를 띄웠다⁠. 엄마의 무릎은 여전히 계단 앞에서 멈췄다⁠.

단희는 실장 엄여란에게 재택으로 과제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답은 십 분 만에 왔다⁠. 「⁠인턴은 재택 규정이 없어요⁠. 이번 주는 결석 처리돼요⁠. 점수는 걱정 마세요⁠.⁠」 점수 걱정은 마시라는 말을 단희는 벌써 세 번째 들었다⁠.

*

화요일과 수요일⁠, 개봉동 아파트 식탁이 교육장이 되었다⁠. 찬결은 단희의 무릎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았고⁠, 노트북 화면에는 민성의 얼굴이 떠 있었다⁠. 민성은 교육장 맨 앞자리에서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사장님⁠, 소득 증빙 대신 쓸 걸 찾아야 돼요⁠. 금요일 시연에 화면이 나와야 해요⁠.⁠”

“⁠시장 사장님들은 매출이 카드 단말기에 남아요⁠. 그날 긁은 돈이 이틀 뒤에 통장으로 들어와요⁠. 그 흐름을 보면⁠…⁠.⁠”

“⁠안경 형아다⁠!⁠”

찬결이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가에 초콜릿과 물집이 같이 있었다⁠. 민성이 몸을 뒤로 뺐다⁠.

“⁠어⁠, 안녕⁠.⁠”

“⁠형아 왜 안경 썼어⁠?⁠”

“⁠눈이 나빠서⁠.⁠”

“⁠왜 나빠⁠?⁠”

“⁠화면을 많이 봐서⁠.⁠”

“⁠그럼 화면 그만 봐⁠.⁠”

민성은 대답을 못 하고 이어폰을 만지작거렸다⁠. 단희가 찬결을 안아 내리자 찬결은 바닥에서 울었다⁠. 우는 소리가 화상 회의를 덮었다⁠. 민성은 음소거를 했다가 풀었다가 다시 했다⁠. 수요일 오후⁠, 꼬박이가 「⁠4조 조원 결석 3일째예요⁠. 힘내요⁠!⁠」를 올렸다⁠. 하트가 두 개 붙어 있었다⁠.

수요일 밤 열 시⁠, 경채가 늦게 들어와 식탁에 앉았다⁠.

“⁠거봐⁠. 이렇게 되잖아⁠.⁠”

단희는 경채를 오래 보았다⁠. 경채는 넥타이를 풀지도 않고 계산기 앱을 열려다가 그만두었다⁠. 열한 시⁠, 단희는 실장에게 메시지를 썼다⁠. 「⁠그만두겠습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성 씨에게 미안합니다⁠.⁠」 보내기를 누르고 휴대전화를 엎었다⁠. 손목의 구슬 팔찌가 식탁 유리에 닿아 작게 울었다⁠.

*

목요일 아침 아홉 시⁠, 실장의 답이 왔다⁠. 「⁠아쉽네요⁠. 1기 선배님 인터뷰 영상 링크 보내 드려요⁠. 언제든 다시 오세요⁠.⁠」 열 시에는 꼬박이가 교육장 전체에 알렸다⁠. 「⁠4조는 조원 이탈로 금요일 시연에 나갈 수 없어요⁠. 시연은 두 명이 함께 서야 해요⁠. 민성 님은 개인 과제로 옮겨 가요⁠!⁠」 느낌표가 둘이었다⁠.

단희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그만두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만두니 민성이 같이 끝났다⁠.

밤 여덟 시⁠,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 화면에 덥수룩한 갈색 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이 떠 있었다⁠. 손에 편의점 봉지가 들려 있었다⁠. 단희가 문을 열자 찬 기운과 함께 민성이 서 있었다⁠. 구로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탔다고 했다⁠.

“⁠그만두실 거면 처음부터 오지 마시지⁠.⁠”

“⁠알아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썼잖아요⁠.⁠”

“⁠미안하다는 말로 제 시연이 돌아와요⁠?⁠”

복도 센서 등이 꺼졌다⁠. 민성이 팔을 휘저어 다시 켰다⁠.

“⁠앞에 네 번 떨어질 때는 다 제 탓이었어요⁠. 이번엔 남 탓으로 떨어지게 생겼어요⁠. 그건 못 해요⁠.⁠”

“⁠애가 아파요⁠.⁠”

“⁠알아요⁠. 그래서 이거 사 왔어요⁠.⁠”

민성이 봉지를 내밀었다⁠. 아이스크림 여섯 개와 빨대 꽂는 요구르트였다⁠. 수족구에는 찬 것을 먹인다고 검색해 봤다고 했다⁠.

“⁠사장님⁠, 그만두는 거 하루만 미뤄 주세요⁠. 시연 하나만 같이 서 주세요⁠. 그다음에 그만두세요⁠.⁠”

“⁠내일 아침에 애를 누가 봐요⁠?⁠”

민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단희의 뒤에서 경채의 목소리가 났다⁠. 퇴근길 그대로 구두를 신은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참이었다⁠.

“⁠누구⁠…세요⁠?⁠”

민성이 허리를 숙였다⁠.

“⁠차민성입니다⁠. 동기입니다⁠.⁠”

경채는 민성의 맨투맨과 단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동기가⁠… 스물넷이야⁠?⁠”

*

여덟 시 반⁠, 식탁 위에 노트북 둘과 아이스크림 봉지가 놓였다⁠. 단희는 실장에게 다시 메시지를 썼다⁠. 「⁠어제 메시지 거두겠습니다⁠. 내일 시연에 나가겠습니다⁠.⁠」 경채는 거실에서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서성였다⁠. 팀장에게 내일 오전 반차를 말하는 목소리가 자꾸 작아졌다⁠.

“⁠시장 사장님들 돈은 이렇게 들어와요⁠.⁠”

단희는 공책에 줄을 그었다⁠. 월요일에 긁은 카드 매출이 수요일에 들어오고⁠, 비 오는 날은 반으로 줄고⁠, 장날 앞에는 두 배가 된다⁠. 떡집은 설과 추석 앞 한 달에 일 년 벌이의 절반을 번다⁠. 그러니 한 달 매출만 보고 심사하면 떡집은 부자였다가 거지가 된다⁠.

“⁠석 달은 봐야 해요⁠. 날마다 들어오는 돈이 끊기지 않는지⁠, 비 오는 날 얼마나 꺼지는지⁠, 꺼졌다가 언제 다시 올라오는지⁠. 창구에서는 그걸 사장님 얼굴 보고 물었어요⁠. 요즘 비 오면 손님 어떠세요⁠?⁠”

민성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사장님이 동의하면 카드사 정산 내역 석 달 치를 불러오고⁠, 끊긴 날과 꺼진 날과 다시 오른 날을 세어 점수를 낸다⁠. 소득 증빙 화면은 건너뛸 수 있게 하고⁠, 대신 「⁠최근 석 달 카드 매출을 보여 주시겠어요⁠?⁠」를 띄운다⁠.

“⁠사장님 직접 해 보세요⁠. 이 줄 하나만요⁠.⁠”

민성이 단희 쪽으로 노트북을 돌렸다⁠. 화면에 데이터를 불러오는 명령어 한 줄이 반쯤 쓰여 있었다⁠. 단희는 손목 보호대를 풀고 자판에 손을 얹었다⁠. 구슬 팔찌가 자판 모서리에 닿아 딸깍거렸다⁠. 단희는 민성이 불러 주는 대로 영어 한 단어를 쳤다⁠. 엔터를 누르자 숫자 석 달 치가 줄을 지어 내려왔다⁠.

“⁠나왔어요⁠.⁠”

“⁠나왔네요⁠.⁠”

열 해 만에 단희 손끝에서 나온 숫자였다⁠.

열 시 반⁠, 찬결이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민성을 보고 눈을 비볐다⁠.

“⁠안경 형아 우리 집 왜 왔어⁠?⁠”

“⁠엄마 숙제 도와주러⁠.⁠”

“⁠엄마도 숙제 있어⁠?⁠”

뒤따라 나온 해윤이 팔짱을 꼈다⁠.

“⁠엄마 회사 친구야⁠?⁠”

“⁠동기야⁠.⁠”

“⁠동기가 뭐야⁠?⁠”

“⁠같은 날 들어온 사람⁠.⁠”

해윤은 민성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럼 엄마랑 동갑이야⁠?⁠”

민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단희가 본 민성의 첫 웃음이었다⁠. 자정에 경채가 라면 넷을 끓였다⁠. 경채는 민성의 그릇에 달걀을 하나 더 넣으며 말했다⁠. 반차 냈어⁠. 팀장이 한숨을 세 번 쉬더라⁠. 단희는 젓가락을 든 채 경채를 보았다⁠. 경채는 라면만 보았다⁠.

새벽 한 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민성이 문득 말했다⁠.

“⁠학자금 이천이에요⁠. 이번에 붙으면 삼 년이면 갚아요⁠.⁠”

“⁠떨어지면요⁠?⁠”

“⁠여섯 번째 인턴 해야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

금요일 아침 아홉 시⁠, 배경채는 처음으로 평일 아침의 냉장고 앞에 혼자 남았다⁠. 찬결은 소파에서 만화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냉장고 문에 자석 넷으로 붙은 시간표는 선이 네 가지 색이었다⁠. 파랑이 해윤⁠, 초록이 찬결⁠, 빨강이 경채⁠, 노랑이 단희였다⁠. 경채의 빨간 선은 아침 일곱 시 이십 분에 현관을 나가 밤 아홉 시에 돌아왔다⁠. 두 시각 사이를 노랑이 다 메웠다⁠. 등원⁠, 하원⁠, 소아과⁠, 피아노⁠, 휴지심⁠.

경채는 휴대전화를 들어 단희에게 물었다⁠. 「⁠아이스크림 몇 개까지 돼⁠?⁠」 답이 없었다⁠. 「⁠해윤이 피아노 가방 어딨어⁠?⁠」 답이 없었다⁠. 「⁠찬결이가 내 넥타이 맸어⁠」 하고 사진을 보냈다⁠. 넥타이가 아이 무릎까지 내려왔다⁠. 그제야 답이 왔다⁠. 「⁠시연 중⁠. 넥타이 풀어 줘⁠. 목에 뭐 감으면 안 돼⁠.⁠」

경채는 넥타이를 풀어 주고 노트북으로 회사 그룹웨어에 들어갔다⁠. 단가 협상 메일 사이에 「⁠임시 저장된 문서 1건⁠」이 떠 있었다⁠. 지난가을에 쓰다 만 문서였다⁠. 경채는 문서를 열지 않고 창을 닫았다⁠.

*

금요일 열 시⁠, 3층 교육장 앞 화면에 4조의 기능이 떴다⁠. 「⁠최근 석 달 카드 매출을 보여 주시겠어요⁠?⁠」 단희는 가상의 떡집을 하나 세워 심사를 돌렸다⁠. 설 앞에 치솟고⁠, 비 오는 날 꺼지고⁠, 다시 오르는 매출⁠. 소득 증빙 없이도 대출 한도가 나왔다⁠. 꼬박의 대표가 후드티 차림으로 뒷줄에 서 있다가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이 떡집은 실제로 있어요⁠?⁠”

“⁠제가 열한 해 전 창구에서 본 사장님이에요⁠. 이름은 못 밝혀요⁠.⁠”

대표가 웃었다⁠. 영두가 박수를 쳤다⁠. 꼬박이가 오후에 점수를 올렸다⁠. 4조가 맨 위였다⁠.

시연이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 실장 엄여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장은 단희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만두신다더니⁠.⁠”

“⁠하루 미뤘어요⁠.⁠”

“⁠잘 미루셨어요⁠. 그림 좋았어요⁠. 대표님이 손드는 거 처음 봤어요⁠.⁠”

“⁠민성 씨가 짠 거예요⁠. 저는 떡집 얘기만 했어요⁠.⁠”

“⁠알아요⁠.⁠”

실장은 민성을 보지 않고 단희의 손만 한 번 더 쥐었다가 놓았다⁠. 민성은 복도 끝에서 노트북을 끌어안은 채 둘을 보고 있었다⁠.

*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오십 분⁠, 가람디지털센터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으로 꽉 찼다⁠. 민성이 사람들 틈에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기사 하나가 떠 있었다⁠. 「⁠꼬박페이⁠, 마흔셋 경단녀 인턴 아이디어로 시장 사장님 대출 길 연다⁠」 사진은 목요일의 손목이었다⁠. 기사 속 단희는 하지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배운 기다림이 숫자 뒤의 사람을 보게 했어요⁠.⁠」 기사 어디에도 차민성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2층을 지났다⁠. 앞에 선 낯선 직원 둘이 같은 기사를 보며 소곤거렸다⁠. 마흔셋이래⁠, 대단하다⁠. 단희의 손목이 사람들 틈에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제 이름은요⁠?⁠”

“⁠나도 지금 봤어요⁠.⁠”

“⁠수요일에 그만두신 분이 금요일엔 아이디어 주인이 되셨네요⁠.⁠”

“⁠민성 씨⁠.⁠”

“⁠점수도 이렇게 매기겠죠⁠. 기사 보고⁠.⁠”

3층에서 문이 열렸다⁠. 민성이 먼저 내렸다⁠. 단희는 내리지 않고 12층 버튼을 눌렀다⁠. 실장실이 있는 층이었다⁠. 문이 닫히기 전⁠, 민성이 돌아보았다⁠. 단희는 손목의 팔찌를 쥐고 숫자가 올라가는 화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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