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50자) · 연 · 병오년 시월 스무엿새

북쪽으로 나흘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한양에서 김화 오리골까지는 나흘 길이었다. 연은 시월 스무엿새 새벽에 수표교를 떠났다. 할머니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누비 두루마기를 꺼내 주며 북쪽은 한양보다 보름 먼저 춥다고 했다. 막동은 길을 적어 줄 수 없어서 말로 불렀다. 동소문을 나가 포천, 포천에서 철원, 철원에서 김화 읍내를 거쳐 동쪽으로 골짜기 셋을 넘으면 비탈에 불 놓은 자국이 보이고, 그 아래 귀틀집 열한 채가 오리골이라고. 달구는 따라가겠다고 사흘을 조르다가 엿 열 가락에 주저앉았다.

연은 강원도로 가는 보부상 무리 뒤에 붙어 걸었다. 철원 들판을 지날 때 첫서리가 내렸다. 벼를 벤 논바닥이 하얗게 얼어 있었고, 짚가리 위에 앉은 까마귀들이 사람이 지나가도 날지 않았다. 해가 뜨면 서리가 녹아 논둑 흙이 짚신 바닥에 들러붙었다. 저녁에는 주막 봉놋방 구석에서 보부상들이 물건 값을 두고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잤다. 한 사내는 참빗 한 쌍을 두고 밤새 셈을 했다. 연은 스물셋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 셈을 먼저 끝내 주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그 생각이 우스워서 이불 속에서 혼자 웃었다.

김화 읍내에서 보부상들과 헤어졌다. 동쪽 골짜기 셋은 혼자 넘었다. 두 번째 골짜기에서 길을 잃을 뻔했지만 비탈에 불 놓은 자국을 찾았다. 거멓게 탄 그루터기 사이로 조를 벤 자리가 줄지어 있었고, 비탈 아래 연기가 올랐다. 귀틀집 지붕이 보였는데, 통나무를 우물 정 자로 쌓고 틈을 흙으로 메운 집들이었다. 연은 손가락을 접어 가며 세었고, 막동 말대로 열한 채였다.

*

마을 어귀 공터에서 아낙 셋이 조 이삭을 털고 있었다. 도리깨가 멍석을 칠 때마다 마른 껍질이 날아 햇빛 속에서 반짝였다. 연이 한양에서 왔다고 하자 도리깨가 셋 다 멈췄다.

“열한 해 전에 열두 살 아이를 한양으로 보낸 집을 찾습니다.”

아낙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제일 나이 든 아낙이 도리깨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해에 셋이 갔소. 어느 집을 찾으시오?”

연은 그 대답에서 막동이 한 말을 다시 들었다. 한 마을에서 한 해에 아이 셋이 값을 받고 나갔다. 연은 세 집을 다 가 보겠다고 했다.

막동의 집은 맨 아랫집이었다. 늙은 아비가 혼자 소를 먹이고 있었다. 막동이 풀통을 센다더라는 말을 전하자 아비는 대답 대신 여물을 한 삼태기 더 퍼 주었다. 소가 먹는 소리를 한참 듣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세 섬 받고 보낸 놈이 한양에서 풀을 개니 세 섬어치는 한 셈이라고.

두 번째 집 마당에 등이 하나 걸려 있었다.

연은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그 등을 먼저 보았다. 처마 끝 서까래에 새끼줄로 매단 둥근 한지 등이었다. 종이는 비바람에 삭아 거미줄처럼 얇아져 있었고, 대나무 살 하나가 부러져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연은 마당으로 걸어 들어가 그 밑에 섰다. 삭은 한지 틈으로 안쪽이 보였다. 접은 자국이 셋이었다.

서씨 댁 등이었다.

방문이 열리고 여자 하나가 나왔다. 쉰 가까이 되어 보였다. 손마디가 굵었고 얼굴이 비탈 흙빛으로 그을어 있었다. 여자는 낯선 사람이 제 마당 등 밑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이 등을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애가 가면서 주고 갔소.”

“무슨 등인지 여쭤도 됩니까?”

“애 아버지랑 나랑 혼인할 때 쓴 거요. 한양 등방에서 만든 거라고, 애 아버지가 한양 품 팔러 갔다가 얻어 왔소. 그걸 애한테 줬는데, 애가 한양 갈 때 도로 두고 갔소.”

“왜 두고 갔답니까?”

“가져가면 잃어버린다고 합디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등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오면 들이고 개면 내놓는다고 했다. 열한 해 동안 그렇게 했다고. 불은 못 켠다고, 켜면 종이가 타 버린다고. 그래도 걸어 둔다고.

연은 접은 자국 셋을 보고 그 등을 만든 사람이 할머니라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서른 해 전쯤, 한양에 품 팔러 온 화전민 사내의 말을 듣고 만든 등이었다. 궁 일도 아니고 값도 얼마 안 되었을 등이 비탈 아래 귀틀집 처마에서 열한 해 동안 비를 피해 들락날락했다.

*

연은 방에 들어가 앉았다. 방에는 창이 넷 있었다. 셋은 한지를 바른 작은 봉창이었고, 하나는 아래쪽 흙벽에 쥐가 뚫은 주먹만 한 구멍이었고, 거기에도 한지가 덧발라져 있었다. 연은 그 창을 보고 오래 아무 말도 못 했다. 창밖으로 비탈이 보였다. 불 놓은 비탈에 삼베가 널려 있었고, 바람이 불자 삼베가 산 쪽으로 누웠다.

부뚜막에는 소 여물 끓이는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무쇠 뚜껑에 손때가 반들반들했다. 겨울에 손이 시리면 저 뚜껑에 올렸다가, 뜨거워서 떼고, 떼면 시려서 다시 올렸다고 했다. 연은 제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치자물 든 손끝이 떨렸다.

그때 싸리문 밖이 시끄러워졌다. 비탈에서 조 짚단을 지고 내려온 사내아이 둘과 계집아이 하나였다. 위로 둘이 사내고 막내가 계집이라던 동생 셋이었다. 사내아이들은 연을 보고 짚단을 진 채 굳었고, 막내는 짚단을 내던지고 방문 앞까지 달려왔다. 열다섯쯤이었고, 눈이 어미를 닮아 가늘었다.

“한양서 왔어요? 우리 큰오라비 봤어요? 큰오라비 한양서 활 쏴요? 한양 양반들은 다 활 쏜다던데.”

“활은 싫어하신답니다. 줄 튕기는 소리에 어깨가 올라간대요.”

막내가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뒤돌아 오라비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뭐랬어, 큰오라비는 한양 가도 활 못 쏜다 했지, 소 세는 것만 잘한다 했지. 사내아이 둘이 짚단 밑에서 킥킥거렸다. 어미가 막내의 등짝을 한 번 쳤는데, 치는 손이 느렸다. 연은 그 웃음소리가 쥐구멍 창으로 새어 나가 비탈 쪽으로 번지는 것을 들었다. 열한 해 전 쌀 열 섬이 이 웃음값이었을까, 연은 그 물음을 삼켰다. 물어도 답해 줄 사람이 이 방에는 없었고, 답을 아는 사람은 한양 북촌 서재에서 먹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이들이 짚단을 부리러 나간 뒤 연이 물었다.

“아드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자가 이상하다는 듯 연을 보았다.

“한양 사람이 그건 알아 뭐 하오?”

“한 번만 소리 내어 불러 주시겠습니까? 적지는 않고 듣기만 하겠습니다.”

여자는 한참 연을 보다가, 봉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밖 삼베가 다시 누웠다. 그리고 여자가 불렀다.

두 자였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부엌에서 아이를 부를 때처럼 끝을 조금 끌었고, 비탈에 대고 부를 때처럼 앞을 높였다. 열한 해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소리였는데 여자의 입은 그것을 틀리지 않았다. 연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귀로 들은 것이 가슴 한가운데로 내려가 거기 비어 있던 자리에 앉았다. 쪽빛 등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빈 자리가 떠올랐다.

연은 그것을 글자로 옮기지 않았다. 소리로만 가지고 있기로 했다. 글자로 먼저 보면 언젠가 그 사람이 그 소리를 제 귀로 들을 때 헷갈릴 것 같았다.

“그 애가 지금 어찌 사는지 아시오?”

“네, 잘 삽니다.”

여자는 소리를 안 내고, 무릎 위의 손을 한 번도 안 움직이고 울었다. 그러다 울음 사이로 말했다.

“그럼 됐소, 그럼 됐소.”

연은 거짓말을 했다. 그 사람 대신 한 거짓말이었다. 숯으로 편지를 쓰는 사람, 누룽지를 싸 온 한지에 곧은 글씨를 쓰는 사람이 잘 산다고. 연은 그 거짓말을 한양까지 지고 가기로 했다.

*

세 번째 집은 분이네였다. 분이 어미는 연이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마당에 나와 있었다. 한양에서 여자가 왔다는 말이 벌써 비탈 위까지 돌았다고 했다.

“우리 분이가 역병으로 갔다고 했소. 한양에서 사람이 와서 그리 전했소. 그 겨울에 한양에 역병이 그리 셌소?”

연은 대답을 골랐다. 할머니라면 사실대로 말했을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연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 겨울 한양에는 역병이 없었습니다. 분이는 윤 판서 댁 행랑에서 죽었습니다. 도망쳤다가 잡혀 왔고, 그 이튿날 아침에 거적에 싸여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들은 사람이 둘입니다.”

분이 어미는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았다. 대신 방으로 들어가 반닫이 밑바닥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왔다. 누렇게 바랜 한지였고, 네 귀퉁이가 닳아 둥글었다. 쌀 닷 섬을 받고 딸 분이를 윤 판서 댁에 들인다, 그 밑에 곽득수의 수결이 있었다. 분이 어미는 글을 몰랐지만, 그 종이가 딸 값이라는 것만은 알아서 열한 해 동안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마당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사내 하나가 싸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연은 그 얼굴을 알았다. 윤 판서 댁 뒷골목에서 곽득수 뒤에 서 있던 하인이었다. 덕쇠라고 용인댁이 불렀던 사내였다. 수표교에서부터 나흘을 따라온 것이다.

“그 종이 이리 주시오. 청지기 어른 것이오.”

덕쇠가 손을 내밀었다. 분이 어미가 종이를 가슴에 붙였다. 연이 그 앞을 막아섰다.

“이건 분이 어머니 것입니다. 딸 값을 받은 표를 준 사람이 도로 가져가는 법은 없습니다.”

“한양 낭자가 여기까지 와서 무슨 참견이오? 거기서 비키시오.”

덕쇠가 연의 어깨를 밀었다. 연은 밀려서 한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한 걸음 나섰다. 그때 싸리문 쪽에서 도리깨가 땅을 쳤다. 공터에서 조를 털던 아낙 셋이었다. 제일 나이 든 아낙이 도리깨를 어깨에 걸치고 들어섰고, 뒤따른 둘은 부지깽이와 절굿공이를 들었다. 막동의 아비가 소 고삐를 쥔 채 그 뒤에 섰다. 소가 콧김을 뿜었다.

“한양 양반 댁 하인이 오리골 과부 반닫이를 턴다고? 이 골짜기에서는 그런 놈을 산돼지라 하오. 산돼지는 도리깨로 잡소.”

덕쇠가 아낙들을 돌아보았다. 도리깨가 한 번 더 땅을 쳤고, 마른 조 껍질이 덕쇠의 발등에 튀었다. 덕쇠는 손을 거두었다. 거두면서 연을 노려보았다.

“청지기 어른이 한양에서 기다리시오. 낭자가 어디서 무엇을 들었는지 다 말씀드릴 거요.”

덕쇠는 싸리문을 걷어차고 나갔다. 아낙 하나가 그 뒤에 대고 엿이나 먹으라고 소리쳤고, 나머지 둘이 웃었다. 소가 따라 울었다.

분이 어미는 한참 종이를 가슴에 붙인 채 서 있다가, 그것을 연에게 내밀었다.

“이건 낭자가 가져가시오. 여기 두면 또 누가 오오. 그 대신 한양 가서, 우리 분이 이름을 한 번만 크게 불러 주시오. 그 집 사람들 다 듣게.”

연은 종이를 받았다. 한지는 손바닥 위에서 아무 무게도 없었고, 쌀 닷 섬이 이렇게 가벼웠다.

돌아오는 나흘 동안 연은 두 가지를 품고 걸었다. 하나는 종이였고, 하나는 소리였다. 종이는 두루마기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소리는 어디에도 넣지 않았다. 철원 들판을 지날 때 서리가 다시 내렸고, 연은 걸으면서 그 두 자를 입속으로 한 번도 굴리지 않았다. 굴리면 제 목소리가 그 여자의 목소리를 덮을 것 같았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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