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61자)

한수 나루의 고기 창고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매서한이 일곱 살에 처음 손에 쥔 칼은 진가 부엌의 고기 칼이었다⁠. 어머니가 도마 앞에서 고기를 썰다가 국 끓는 솥을 보러 돌아선 사이에⁠, 칼이 도마 끝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이것을 바닥에 닿기 전에 잡았다⁠. 칼날 쪽이 아니라 자루 쪽을⁠. 어머니가 돌아보고 얼굴이 하얘졌다가⁠, 아들 손에 쥔 칼을 빼앗아 다시 도마에 놓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기를 마저 썰었다⁠.

이 어머니는 진가 부엌에서 스무 해 고기를 썰었다⁠. 손등에 칼자국이 하얗게 겹쳐 있었다⁠. 진가의 잔칫날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썰었고⁠, 잔치가 끝나면 부엌 뒤 쪽방에서 아들의 발을 주무르다 잠들었다⁠. 어머니가 쓰던 칼은 버들잎처럼 좁고 휘어 있었다⁠.

열두 살 되던 해⁠, 한 팔을 잃은 진가 노가주가 부엌을 지나다가 매서한이 떨어지는 그릇 셋을 연달아 받아 내는 것을 보았다⁠. 노가주는 아이를 연무장으로 데려갔다⁠. 이날부터 매서한은 진무상의 그림자가 되었다⁠. 진무상이 검을 배우면 옆에서 같이 배웠고⁠, 진무상이 비무에 나가면 뒤에 섰다⁠. 진무상은 매서한을 아우라 부르지 않았다⁠. 이름으로도 거의 부르지 않았다⁠. ‘⁠너⁠’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매서한이 스무 살 되던 겨울에 죽었다⁠. 마지막까지 부엌에서 썰었다⁠. 진가는 소교를 진가 땅 맨 끝⁠, 부엌 하인들 묻는 비탈에 묻어 주었다⁠. 비탈에는 비석이 없었다⁠. 매서한이 해마다 올려놓은 돌만 하나씩 늘어 이제 열 개가 되었다⁠. 매서한은 이 무덤에 해마다 한 번 갔다⁠. 갈 때마다 진가의 검이 되어 오겠다고 말했다⁠. 진가의 그림자가 아니라⁠.

그리고 지난 혼례 날⁠, 진무상이 매서한에게 비도 두 자루를 쥐여 주었다⁠.

*

해 질 녘 한수 나루는 짐을 다 부린 배들이 줄지어 묶여 출렁였다⁠. 고기 창고는 나루 맨 끝⁠, 물가 쪽으로 반쯤 기울어 있었다⁠. 저잣거리 도축장 열한 집이 잡은 고기를 밤사이 걸어 두는 곳이었다⁠. 소금 냄새와 피 냄새와 강물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문 앞 바닥 판자는 스무 해 동안 고기를 지고 드나든 발에 닳아 가운데가 오목했고⁠, 이 오목한 자리에 소금물이 고여 저녁 햇빛을 붉게 받았다⁠.

갑돌은 창고 문 앞에 섰다⁠. 등은 사흘 사이에 딱지가 앉았다⁠. 굽히면 딱지가 갈라졌다⁠. 허리춤에 덕순이 싸 준 주먹밥 보자기가 매달려 있었다⁠. 결투에 간다는 말에 덕순은 말리지 않았다⁠. 주먹밥만 싸 주었다⁠. 이기면 먹고 지면 먹고 죽으라고 했다⁠.

소교는 따라오겠다고 했다⁠. 총단을 나서기 전 형당 뒷방에서였다⁠.

“⁠혼자 오라고 했소⁠.⁠”

“⁠그러니까 셈을 해 봐요⁠.⁠” 소교가 산가지를 침상 위에 쏟았다⁠. “⁠등은 딱지가 덜 앉았고⁠, 오른 어깨는 일곱 바늘⁠, 왼손은 손바닥에 구멍⁠. 상대는 다친 데가 없고요⁠. 혼자 가면 이길 셈이 열에 넷이에요⁠.⁠”

“⁠둘이 가면⁠?⁠”

“⁠열에 여섯⁠. 근데 제가 따라가면 매서한이 칼을 안 뽑고 돌아갈 셈이 열에 아홉이에요⁠. 그 사람은 여자 앞에서 사내 둘이 싸우는 걸 부끄러워할 사람이거든요⁠. 바지 끈 끊겼을 때 얼굴 봤잖아요⁠.⁠”

“⁠그럼 혼자 가겠소⁠.⁠”

소교가 갑돌의 정강이를 세게 찼다⁠. 그리고 산가지를 쓸어 담으며 말했다⁠. “⁠문 앞까지만 갈게요⁠. 문 앞은 셈에 안 들어가요⁠.⁠”

소교는 정말 문 앞까지만 따라왔다⁠. 지금 창고 밖 둑 위에 다홍과 함께 앉아 있었다⁠.

창고 문을 밀었다⁠. 안이 어두웠다⁠.

들보마다 쇠갈고리가 박혀 있었고⁠, 갈고리마다 반으로 가른 돼지가 매달려 있었다⁠. 줄지어 셋⁠, 넷⁠, 다섯 줄⁠. 고깃덩이들이 강바람에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이 사이로 지붕 틈의 노을빛이 붉은 줄로 떨어졌다⁠. 고깃덩이 하나의 무게가 백 근 안팎이었다⁠. 갑돌은 이 무게들이 흔들리는 박자를 들었다⁠. 갈고리가 들보에 긁히는 소리가 박자를 셌다⁠.

이 박자 하나가 어긋났다⁠. 세 번째 줄 가운데쯤이었다⁠. 고깃덩이 하나가 바람이 아니라 사람 어깨에 닿아 흔들렸다⁠.

“⁠왔군⁠.⁠”

매서한이 고깃덩이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

첫 검은 고깃덩이 사이로 왔다⁠. 갑돌은 몸을 낮췄다⁠. 검이 머리 위를 지나 매달린 돼지 하나를 스쳤다⁠. 돼지가 크게 흔들려 갑돌의 어깨를 쳤다⁠. 백 근의 무게가 갑돌을 옆으로 밀었다⁠. 이 무게를 거스르지 않고 밀리는 대로 다음 줄로 빠졌다⁠.

매서한이 빠르게 따라왔다⁠. 고깃덩이 사이 좁은 길을 검이 먼저 지나가고 몸이 뒤따랐다⁠. 갑돌은 매서한의 발을 보려 했는데⁠, 어두워서 발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들보가 울렸다⁠. 매서한이 고깃덩이에 몸을 스칠 때마다 이 갈고리가 들보를 긁었고⁠, 이 소리가 갑돌의 자리를 알렸다⁠.

두 번째 검과 세 번째 검을 갑돌은 칼등으로 막았다⁠. 손목이 저렸다⁠. 네 번째 검이 고깃덩이 뒤에서 곧게 찔러 들어왔다⁠. 피할 자리가 없었다⁠. 칼끝이 갑돌의 왼쪽 허벅지에 박혔다⁠. 뜨거운 것이 무릎 뒤로 흘렀다⁠. 다리에 실린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린 돼지 하나를 끌어안았다⁠.

매서한이 검을 뽑았다⁠. 다시 들었다⁠.

갑돌은 끌어안은 돼지를 힘껏 밀었다⁠. 백 근이 갈고리 끝에서 크게 그네를 탔다⁠. 매서한이 이것을 베었다⁠. 반사였다⁠. 검이 돼지 옆구리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멈췄다⁠.

검날이 갈비뼈 두 개 사이에 박혀 있었다⁠. 매서한이 당겼다⁠. 안 나왔다⁠. 돼지가 갈고리에 매달린 채 검을 문 채로 흔들렸다⁠. 매서한이 두 손으로 당기는 사이 이 무게가 갑돌을 앞으로 끌었다⁠.

“⁠갈비뼈는 칼을 무오⁠.⁠” 갑돌이 말했다⁠. 허벅지에서 피가 흘렀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소 잡는 사람은 갈비 사이로 칼을 안 넣소⁠. 거기는 뼈가 칼을 붙잡소⁠. 빼려면 칼을 비틀어야 하는데⁠, 비틀면 칼이 상하오⁠.⁠”

매서한은 칼을 놓지 않았다⁠. 칼자루를 쥔 매서한의 오른 손목이 갑돌 눈앞에 있었다⁠. 힘줄이 팔뚝까지 줄처럼 섰다⁠.

갑돌의 칼이 이 손목 위에 놓였다⁠. 칼날이 아니라 칼등이 먼저 닿았다⁠. 다음 칼날을 아주 조금 돌렸다⁠. 손목 안쪽⁠, 검을 쥐는 힘줄이 지나가는 자리에 칼날이 닿았다⁠. 살갗만 눌렀다⁠.

“⁠여기를 끊으면 다시는 검을 못 쥐오⁠.⁠” 갑돌이 말했다⁠. “⁠부엌에서 고기 써는 사람들도 여기만은 안 다치게 조심하오⁠.⁠”

매서한의 손목이 굳었다⁠. 고개가 갑돌 쪽으로 천천히 돌았다⁠. 노을빛 한 줄이 갑돌의 눈을 지나갔다⁠.

“⁠…⁠…부엌을 어떻게 아나⁠?⁠”

“⁠당신 지붕에서 내 칼을 보던 눈이⁠, 칼 쓰는 사람 눈이 아니었소⁠. 칼을 아는 사람 눈이었소⁠. 그런 눈은 부엌에서 크오⁠.⁠” 갑돌이 칼을 떼었다⁠. “⁠놓으시오⁠. 이 돼지는 내일 아침 국밥집에 가야 하오⁠.⁠”

매서한은 한참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러다 손을 놓았다⁠. 검이 돼지 옆구리에 박힌 채 흔들렸다⁠.

“⁠졌다⁠.⁠”

*

둘은 창고 문턱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갑돌은 허벅지를 허리띠로 동여맸다⁠. 매서한은 물 한 바가지를 떠 와서 반을 마시고 반을 갑돌에게 넘겼다⁠. 둑 위에서 소교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일어서 오지는 않았다⁠. 다홍이 다홍 옆에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갑돌은 허리춤의 보자기를 풀었다⁠. 주먹밥 두 개였다⁠. 하나를 매서한에게 내밀었다⁠.

매서한은 받지 않으려다 받았다⁠. 한 입 먹고 멈췄다⁠.

“⁠속에 아무것도 없군⁠.⁠”

“⁠결투 날 고기를 넣으면 체한다고 어머니가 뺐소⁠. 이기고 오면 그때 고기를 넣어 준다 했소⁠.⁠”

“⁠그럼 너는 고기 든 걸 먹겠군⁠.⁠”

“⁠당신 몫도 넣어 달라고 하겠소⁠. 우리 어머니는 진 사람한테는 두 배로 넣소⁠.⁠”

매서한이 처음으로 입꼬리를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짧았다⁠. 주먹밥을 다 먹었다⁠. 그리고 강을 보며 말했다⁠.

“⁠지붕에서 네 칼을 처음 봤을 때⁠, 어머니 칼이 생각났다⁠. 그래서 손이 늦었다⁠.⁠”

갑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 건너 무한 성벽 위로 마지막 햇빛이 걸려 있었다⁠. 둘 다 이 빛이 꺼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이때 둑길 쪽에서 발소리가 여럿 왔다⁠. 춘길이었다⁠. 데인 팔을 목에 건 채 뛰어오고 있었고⁠, 뒤로 누더기 차림의 거지 넷이 중년 여자 하나와 젊은 사내 하나를 둘러싸고 왔다⁠. 거지 가운데 맨 뒤에서 늙은 거지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걸었다⁠. 개방 무한 분타주였다⁠.

“⁠형님⁠! 진가 별채 지키던 칼잡이들이 오늘 해 질 녘에 다 어디로 빠졌습니다⁠. 매 호위가 없으니까 다들 노름하러 갔대요⁠!⁠” 춘길이 숨을 몰아쉬었다⁠. “⁠거지 영감님들이 뒷담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빼 왔습니다⁠. 객경 아저씨네 식구요⁠!⁠”

매서한이 일어섰다⁠. 객경의 아내와 아들을 보았다⁠. 그리고 갑돌을 내려다보았다⁠.

“⁠알고 오늘 나를 여기로 불러낸 건가⁠?⁠”

“⁠당신이 불렀소⁠. 사흘 뒤 해 질 녘⁠, 혼자⁠.⁠” 갑돌이 허벅지를 짚고 일어섰다⁠. “⁠당신이 오면 별채가 빈다는 건 우리 어머니가 셈했소⁠.⁠”

객경의 아내가 갑돌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려 했다⁠. 갑돌이 팔을 잡아 일으켰다⁠. 허벅지가 휘청였다⁠. 젊은 사내⁠, 객경의 아들이 어머니 대신 고개를 숙였다⁠. 짐꾼답게 어깨가 넓었다⁠.

늙은 분타주가 그제야 둑 아래까지 내려와 숨을 골랐다⁠. 이가 반쯤 빠졌고⁠, 누더기 위에 기운 자국이 열 겹은 되었다⁠. 분타주가 갑돌을 위아래로 훑었다⁠.

“⁠네가 그 국밥집 아들이냐⁠? 열 해 동안 네 어미 국밥 남은 걸 우리 애들이 다 얻어먹었다⁠. 개방은 얻어먹은 건 갚는다⁠.⁠” 분타주가 지팡이로 땅을 두 번 찍었다⁠. “⁠근데 네 어미가 오늘 일을 시키면서 그러더라⁠. 이걸로 열 해 치 국밥 값은 다 갚은 거라고⁠. 셈은 네 어미가 네 마누라보다 독하다⁠.⁠”

둑 위에서 소교가 이 말을 들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다홍이 아가씨 입을 막았다⁠.

*

이 밤 진가 저택 대청에서 매서한은 진무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검이 없었다⁠. 고기 창고의 돼지 옆구리에 두고 왔다⁠.

진무상은 의자에 앉아 찻잔을 들고 있었다⁠. 별채 일은 이미 들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졌다지⁠.⁠”

“⁠졌습니다⁠.⁠”

“⁠그리고 장로회 앞에서 네 입으로 말하겠다고 했다지⁠. 비도를 던진 게 너라고⁠.⁠”

“⁠그렇게 약조했습니다⁠.⁠”

“⁠누구와⁠?⁠”

“⁠그 백정과요⁠.⁠”

진무상이 찻잔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한 바퀴⁠, 두 바퀴⁠. 잔 속의 차가 잔 벽을 타고 돌았다⁠.

“⁠백정과 한 약조는 백정 셈으로 치면 얼마짜리냐⁠?⁠”

매서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의 돌 틈을 보았다⁠. 어머니가 썰던 고기를 날라 이 대청에 올리던 날들⁠, 이때도 이 돌 틈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당시에는 그릇을 들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빈손이 무릎 위에서 무거웠다⁠.

“⁠그 사람은 제 손목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안 끊었습니다⁠.⁠”

“⁠그래서 네 입을 그 사람한테 주겠다고⁠?⁠”

진무상이 일어섰다⁠. 매서한 앞으로 와서 섰다⁠. 그리고 몸을 굽혀 매서한의 귀에 대고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네 입은 진가 것이다⁠. 네 어미가 묻힌 비탈도 진가 땅이고⁠.⁠” 진무상이 허리를 폈다⁠. “⁠내일 아침 구파의 사절단이 무한에 닿는다⁠. 맹주의 병을 들으러 오는 거야⁠. 이제 백정 하나와 진가 객경 하나의 일이 아니다⁠. 너는 내일 내 뒤에 서라⁠. 검은 무기고에서 새것을 꺼내 가고⁠.⁠”

매서한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진무상이 대청을 나갔다⁠. 촛불 하나가 진무상의 그림자를 오래 끌고 갔다⁠.

매서한은 이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남았다⁠. 오른 손목 안쪽에 칼날이 눌렀던 자리가 가늘게 붉었다⁠. 살갗만 눌린 자리였다⁠. 이 자리가 밤새 아팠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