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88자)

등에 바르는 술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술이 등에 닿자 갑돌의 온몸이 한 번 굳었다⁠.

소교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손바닥에 술을 부어 터진 살 위로 펴 발랐다⁠. 곤장 판 자국이 등에 가로로 스무 줄 났고⁠, 이 가운데 일곱 줄이 갈라져 있었다⁠. 술이 갈라진 자리로 스며들 때마다 갑돌의 어깨가 들썩였다⁠. 갑돌은 이를 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등잔불이 흔들려 갑돌의 등 위에 그림자가 물결처럼 지나갔다⁠.

“⁠아파요⁠?⁠”

“⁠술이 아깝소⁠.⁠”

“⁠아까우면 다음엔 맞지 마요⁠.⁠” 소교가 다시 술을 부었다⁠. 방 안에 독한 쌀 냄새가 찼다⁠. “⁠스무 대에 은 몇 냥어치 술을 쓰는지 셈해 줘요⁠?⁠”

“⁠하지 마시오⁠. 더 아플 것 같소⁠.⁠”

소교가 웃었다⁠. 소리 없이 숨만 짧게 나갔다⁠. 이 숨이 갑돌의 등에 닿았다⁠. 따뜻했다⁠. 술이 닿을 때와는 다른 데가 굳었다⁠.

소교는 술을 다 바르고 무명천을 등에 덮었다⁠. 그리고 손을 떼지 않았다⁠. 천 위로 손바닥을 얹은 채 가만히 있었다⁠. 이 손의 무게를 갑돌은 셀 수 있었다⁠. 반 근이 안 되었다⁠. 그런데 곤장 스무 대보다 등에 오래 남았다⁠.

“⁠회랑에서 물었죠⁠. 셈 말고는 누가 도와주느냐고⁠.⁠” 소교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셈 말고는 제가요⁠.⁠”

“⁠셈으로는 안 맞는 일이오⁠?⁠”

“⁠전혀요⁠. 손해예요⁠. 크게⁠.⁠” 소교의 손가락이 천 위로 등뼈를 따라 내려갔다⁠. 하나⁠, 둘⁠, 셋⁠. 뼈마디를 세는 손이었다⁠. “⁠근데 오늘 아침 형당 마당에서 당신이 칼을 내려놓을 때⁠, 제가 셈을 못 했어요⁠. 산가지를 쥐고 있었는데 손이 안 움직였어요⁠. 그런 적이 없었어요⁠.⁠”

갑돌은 몸을 돌렸다⁠. 등이 짓눌려 숨이 막혔다⁠. 그래도 돌았다⁠. 등잔불 아래 소교의 얼굴이 가까웠다⁠. 술 냄새와 소교의 머리카락 냄새가 섞여 있었다⁠. 머리카락에서는 먹 냄새가 났다⁠. 하루 종일 맹의 셈을 하던 사람의 냄새였다⁠.

“⁠등이 터진 사람이오⁠.⁠” 갑돌이 말했다⁠.

“⁠알아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요⁠.⁠” 소교가 갑돌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눌러 다시 눕혔다⁠. 그리고 등잔불을 불어 껐다⁠.

어둠 속에서 갑돌은 무게로 소교를 알았다⁠. 침상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무릎이 갑돌의 옆구리 곁에 놓였다⁠. 머리카락이 갑돌의 목에 쏟아졌다⁠. 소교의 숨이 처음에는 셈하듯 고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수를 잃었다⁠. 터진 등을 잊었다⁠. 소교의 손가락이 갑돌의 손바닥 상처 위로 깍지를 꼈고⁠, 혼례 날 쇠가 박혔던 자리가 소교의 손 아래에서 뛰는 것을 느꼈다⁠. 문밖에서 여름 벌레가 울다 그쳤다⁠. 다시 울었다⁠. 이 사이 어디쯤에서 소교가 갑돌의 귀에 대고 무어라 말했는데⁠, 말이 아니라 숨이었다⁠.

한참 뒤에 소교가 갑돌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누운 채 말했다⁠.

“⁠지금 몇 잔째인지 모르겠어요⁠.⁠”

“⁠한 잔도 안 마셨소⁠.⁠”

“⁠그러니까요⁠.⁠”

*

다홍은 새벽에 형당 뒷방 문 앞에 서 있었다⁠. 아가씨가 밤새 방에 안 들어왔다⁠. 빗장이 안에서 걸려 있었다⁠. 다홍은 이 빗장을 한참 보다가 조용히 돌아섰다⁠.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 결심은 아침 우물가까지 갔다⁠.

점심때 총단에는 세 번째 소문이 돌았다⁠. 지붕을 뚫던 신랑이 이번에는 형당 뒷방 빗장을 안에서 걸었다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은 해가 기울기 전에 계단 삼백 개를 내려갔고⁠, 다시 올라왔다⁠. 덕순이었다⁠. 이번에는 솥이 아니라 뚝배기 하나를 보자기에 싸 들고 왔다⁠. 형당 뒷방 문을 발로 밀고 들어온 덕순은 엎드린 아들 옆에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소 꼬리 곤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꼬리곰탕이다⁠. 사흘 고았다⁠.⁠”

“⁠국밥집에 꼬리는 안 팔잖소⁠.⁠”

“⁠팔려고 곤 거 아니야⁠.⁠” 덕순이 아들 머리맡에 앉았다⁠. 그리고 아들의 등에 덮인 무명천을 들춰 보았다⁠. 한참 보았다⁠. 천을 도로 덮었다⁠. “⁠곤장 맞은 등으로 빗장은 어떻게 걸었냐⁠?⁠”

갑돌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건 게 아니오⁠.⁠”

덕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더니 무릎을 치며 웃었다⁠. 한참 웃었다⁠. 웃다가 눈가를 앞치마로 훔쳤다⁠. 웃음 끝이 조금 젖어 있었다⁠.

“⁠잘했다⁠. 그 며느리⁠, 국밥 세 그릇 먹을 때 알아봤어⁠.⁠” 덕순이 일어서며 뚝배기를 아들 코앞으로 밀었다⁠. “⁠다 먹어⁠. 반은 며느리 주고⁠. 아니⁠, 며느리가 더 먹을 거다⁠. 그 사람은 너보다 많이 먹어⁠.⁠”

*

무한 시내 동쪽 연못가에 세가 부인들이 달마다 모이는 정자가 있었다⁠. 연잎이 연못을 다 덮었고⁠, 정자 난간에 비단 휘장이 드리웠다⁠. 부인들은 거기서 술을 마시고 남편들 이야기를 했다⁠. 남편들은 이 술자리를 무서워했다⁠. 거기서 오간 말은 사흘이면 맹의 장로회까지 올라갔다⁠.

소교는 이 자리에 다섯 해 만에 나갔다⁠. 다홍이 술 단지 둘을 지고 따라왔다⁠.

부인들은 처음에는 백정 사위 이야기로 소교를 맞았다⁠. 지붕 이야기⁠, 빗장 이야기⁠. 소교는 웃으며 다 들었다⁠. 그리고 첫 잔을 들었다⁠.

“⁠오늘은 제가 낼게요⁠. 대신 저보다 먼저 눕는 분은 제 물음 하나에 답하기예요⁠.⁠”

강가 세가의 안주인이 맨 먼저 웃으며 잔을 들었다⁠. 일곱 번째 잔에서 안주인은 정자 난간에 기대 졸았다⁠. 소교가 물었다⁠. 지난봄에 진가에서 은 상자가 몇 번 왔느냐고⁠. 안주인이 눈을 감은 채 손가락 셋을 폈다⁠.

두 번째는 서쪽 세가 부인이었다⁠. 이 사람은 술 대신 벌주 놀이를 하자고 했다⁠. 시를 한 구씩 잇다가 막히는 사람이 석 잔을 마시는 놀이였다⁠. 서쪽 세가 부인은 시를 잘 지었다⁠. 소교는 시를 하나도 몰랐다⁠. 소교는 첫 구부터 막혔고⁠, 석 잔을 마셨다⁠. 두 번째 구에서도 막혔고⁠, 또 석 잔을 마셨다⁠. 다섯 번을 막히고 열다섯 잔을 마시는 동안 소교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서쪽 세가 부인은 시를 다섯 구 지었고 한 잔도 안 마셨는데⁠, 소교가 마시는 것을 보다가 제 속이 울렁거린다며 잔을 들었다⁠. 그리고 아홉 번째 잔에서 무너졌다⁠. 시를 이긴 사람이 술에 진 것이었다⁠. 세 번째는 남쪽 세가의 며느리였는데⁠, 다섯 번째 잔에서 스스로 손을 들었다⁠. 묻기도 전에 말했다⁠. 시아버지가 진가 노가주와 바둑을 두며 맹회 날 손을 들어 주기로 했다고⁠.

소교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산가지 하나를 소매 안에서 옆으로 옮겼다⁠. 얼굴은 그대로였다⁠. 다홍이 술 단지를 바꿔 들고 오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가씨⁠, 이 셈은 무슨 셈이에요⁠?⁠”

“⁠맹회 날 손 드는 셈⁠.⁠”

*

해가 기울 무렵 정자 입구에 흰 장포가 나타났다⁠. 진무상이었다⁠. 정자 주인 부인이 반갑게 일어섰다⁠. 진무상을 부른 사람이었다⁠.

“⁠부인들 술자리에 사내가 와서 송구합니다⁠.⁠” 진무상이 예를 올리고⁠, 소교 맞은편에 앉았다⁠. “⁠소교 아가씨가 오셨다기에 꼭 드릴 말이 있어서요⁠.⁠”

“⁠드세요⁠. 술부터⁠.⁠” 소교가 잔을 채워 밀었다⁠.

“⁠나는 안 마시오⁠. 취하면 칼이 무뎌져서⁠.⁠”

“⁠그럼 평생 반쯤만 이기시겠네요⁠.⁠”

부인 몇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무상도 웃었다⁠. 진무상은 잔을 받아 손에 쥐기만 했다⁠.

“⁠아가씨⁠, 셈이 빠르시니 돌려 말하지 않겠소⁠.⁠” 진무상이 잔을 돌렸다⁠. 술이 잔 안에서 한 바퀴 돌았다⁠. “⁠백정은 지금 등이 터져서 누워 있소⁠. 다음엔 목이 터지겠지⁠. 그때 아가씨는 과부가 되고⁠, 맹의 돈줄은 장로회로 넘어가오⁠. 여자에게 셈을 못 맡긴다는 그 장로들 말이오⁠.⁠”

소교의 손이 잔을 쥔 채 멈췄다⁠.

“⁠그 전에 나와 혼인하시오⁠. 진가가 맹을 쥐면⁠, 맹의 돈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가씨 것이오⁠. 장로 누구도 손 못 대게 하겠소⁠. 아버님이 서른 해 혼자 쥐었던 것을⁠, 아가씨가 쥐는 거요⁠.⁠”

정자 안이 조용해졌다⁠. 졸던 강가 안주인까지 눈을 떴다⁠. 연못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소교는 잔을 내려놓았다⁠. 소매에서 산가지 한 줌을 꺼내 탁자에 쏟았다⁠. 그리고 하나씩 세웠다⁠.

“⁠당신이 맹주가 되면 저는 진가 며느리가 돼요⁠. 진가 며느리는 진가 셈을 해요⁠. 은이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나가는지 제가 다 알아도⁠, 그 은이 누구 손에 가야 하는지는 진가가 정하죠⁠. 그건 돈줄을 쥔 게 아니라 돈줄에 묶인 거예요⁠.⁠” 소교가 산가지 하나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당신은 시장 행수를 한수에 띄웠어요⁠. 스무 해 진가 저울을 밀던 사람을요⁠. 셈이 끝나면 사람을 물에 버리는 집안에 제가 며느리로 가면⁠, 제 셈이 끝나는 날 저는 어디 떠요⁠?⁠”

진무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돌아온 웃음은 차가웠다⁠.

“⁠그럼 하는 수 없지⁠.⁠” 진무상이 일어섰다⁠. 그리고 부인들을 둘러보며⁠,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부인들께도 미리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맹주께서 가을을 못 넘기신다고 의원이 그럽니다⁠. 맹회가 생각보다 일찍 열리겠지요⁠. 남편분들께 손 들 준비를 하시라 전해 주십시오⁠.⁠”

부인들이 숨을 들이켰다⁠. 소교가 일어섰다⁠. 손바닥이 탁자를 짚었다⁠. 산가지가 굴러떨어졌다⁠.

“⁠그건 맹의 일이에요⁠. 술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고요⁠.⁠”

“⁠아가씨가 술자리에서 맹회 날 손 드는 셈을 하길래⁠, 나도 거든 거요⁠.⁠” 진무상이 고개를 숙였다⁠. “⁠술은 다음에 마시겠소⁠. 아가씨가 과부가 된 뒤에⁠.⁠”

진무상이 정자를 나갔다⁠. 부인들은 한동안 아무도 잔을 들지 않았다⁠. 소교가 다시 앉았다⁠. 산가지를 주워 소매에 넣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이것을 본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강가 안주인이 소교의 잔을 채워 주었다⁠. 아무 말 없이⁠.

*

소교는 해가 진 뒤 총단으로 돌아와 곧장 아버지 침소로 갔다⁠. 위장천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창가 의자에 앉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방 안의 약 냄새가 낮보다 짙었다⁠.

“⁠진무상이 부인들 술자리에서 그랬어요⁠. 아버지가 가을을 못 넘기신다고⁠. 의원이 그랬대요⁠.⁠”

위장천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의원 말은 그게 아니네⁠.⁠”

소교가 숨을 놓았다⁠. “⁠그럼 그렇다고 장로회에 말해야죠⁠. 진무상이 거짓말을⁠…⁠…⁠.⁠”

“⁠의원은 여름이라고 했어⁠.⁠”

방 안이 조용해졌다⁠. 창밖에서 장강 뱃고동이 길게 울렸다⁠. 소교는 아버지 머리맡에 섰다⁠. 손이 소매 속 산가지를 찾았다⁠. 찾고 나서 쥐지 않았다⁠. 셈할 것이 아니었다⁠.

“⁠진무상은 의원이 나한테만 한 말을 알고 있다⁠. 그 말이 어느 입으로 새는지 알아 두거라⁠.⁠” 위장천이 눈꺼풀을 내렸다⁠. “⁠그리고 네 남편한테 전해라⁠. 등 아물기를 기다릴 여름이 없다고⁠.⁠”

*

이 밤 갑돌은 형당 뒷방에서 엎드려 있다가 문 쪽의 무게에 고개를 들었다⁠. 마당 돌바닥 위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발소리는 내지 않았는데⁠, 서 있는 무게가 돌바닥을 눌렀다⁠. 백십 근이 조금 넘었다⁠.

갑돌은 일어나 문을 열었다⁠. 등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매서한이 형당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허리에 띠를 두 겹으로 맸다⁠. 검은 칼집에 있었다⁠. 달빛이 매서한의 마른 얼굴을 반만 비췄다⁠.

“⁠비도를 던진 손을 찾는다지⁠.⁠” 매서한이 말했다⁠. “⁠나다⁠.⁠”

갑돌은 문틀을 잡고 섰다⁠. 매서한은 오른팔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아무 걸림 없이 올라갔다⁠. 그리고 내렸다⁠.

“⁠객경은 풀어 줘라⁠. 그 사람은 내 대신 꿇었다⁠.⁠” 매서한의 목소리에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았다⁠. “⁠사흘 뒤 해 질 녘⁠, 한수 나루 고기 창고⁠. 혼자 와라⁠. 내가 지면 장로회 앞에서 내 입으로 말한다⁠.⁠”

“⁠이기면⁠?⁠”

“⁠그럼 네가 말할 입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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