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28자)

구파의 사절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객경은 장로회 대청 한가운데에 섰다⁠. 닷새 전 형당 마당에서 목을 내밀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등이 펴져 있었다⁠. 처진 오른 어깨를 감추지 않았다⁠.

“⁠저는 비도를 던지지 않았습니다⁠. 던질 수 없는 몸입니다⁠. 진가가 제 아내와 아들을 별채에 잡아 두고⁠, 제 입으로 자수하라 했습니다⁠.⁠”

장로들이 술렁였다⁠. 공동 장로가 진무상을 보았다⁠. 진무상은 세가 사람들 맨 앞에 서 있었고⁠, 뒤에 매서한이 섰다⁠. 매서한의 허리에 새 검이 걸려 있었다⁠. 칼집에 흠집 하나 없었다⁠.

“⁠진 공자⁠, 어떻게 된 일인가⁠?⁠”

“⁠진가 별채에 객경의 식구가 머문 것은 맞습니다⁠. 객경이 형당 옥에 갇혔으니 그 식구를 진가가 돌보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진무상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어젯밤 개방 거지들이 개구멍으로 들어와 그 식구를 데려갔다지요⁠. 거지들을 누가 보냈는지는 장로님들도 아실 겁니다⁠. 형당주의 어머니가 국밥집을 하신다지요⁠. 거지들이 거기서 밥을 얻어먹고요⁠.⁠”

장로석 몇 군데서 웃음이 났다⁠. 갑돌은 대청 가장자리에 서서 허벅지의 동여맨 천을 손으로 눌렀다⁠.

“⁠그러니 식구를 데려간 쪽이 객경의 입에 무슨 말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진가 객경이 풀려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무상이 객경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돌아오게⁠. 진가는 자네를 버리지 않았네⁠.⁠”

객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돌은 진무상 뒤의 매서한을 보았다⁠. 매서한도 갑돌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어제 해 질 녘 창고 문턱에서 주먹밥을 나눠 먹던 눈이었다⁠. 매서한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입술이 한 번 움직였다가 닫혔다⁠.

장로회는 객경을 풀어 주었다⁠. 비도를 던진 자는 모르는 채로 두었다⁠. 장로들은 이 일보다 더 큰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객경은 대청을 나와 회랑에서 갑돌을 기다렸다⁠. 진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갑돌 앞에 서서 처진 오른 어깨를 한 번 만졌다⁠.

“⁠진가로는 못 가오⁠. 돌아가면 이번엔 별채가 아니라 강이오⁠.⁠” 객경이 말했다⁠. “⁠왼손으로는 검을 아직 쓰오⁠. 형당 문지기라도 시켜 주시오⁠.⁠”

“⁠형당 녹봉이 맹에서 제일 적다는데⁠.⁠”

“⁠목 값보다는 많소⁠.⁠”

갑돌은 허리춤의 형당 열쇠 꾸러미에서 쇠고리 하나를 풀어 객경의 손에 쥐여 주었다⁠. 옥 바깥문 열쇠였다⁠. 객경은 이것을 왼손으로 받았다⁠. 한참 들여다보더니⁠, 오른손으로 바꿔 쥐려다 어깨 높이에서 멈추고⁠, 도로 왼손에 쥐었다⁠.

*

구파의 사절단은 정오에 총단 정문을 넘었다⁠. 아홉 문파에서 하나씩⁠, 장문인의 뜻을 받든 사절들이었다⁠. 장로회에 앉은 장로들보다 한 단 높은 사람들이었다⁠. 이 맨 앞에 소림의 사절 장로가 섰다⁠. 일흔 가까운 승려였다⁠. 눈썹이 하얗고 길어 눈을 반쯤 덮었고⁠, 가사 자락이 걸음마다 바닥을 쓸었다⁠.

갑돌은 형당주로서 정문에서 이들을 맞았다⁠. 사절들이 정문을 지날 때마다 형당 무사들이 무기를 맡아 두는 것이 맹의 법이었다⁠. 화산의 사절이 검을 풀어 넘기며 갑돌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미의 사절이 코를 막았다⁠. 소림의 사절은 무기가 없었다⁠. 갑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합장을 했다⁠.

“⁠형당주가 백정이라 들었소⁠.⁠”

“⁠스무 해 소를 잡았소⁠.⁠”

소림 사절은 합장을 풀지 않은 채 한 걸음 물러섰다가 지나갔다⁠. 이 한 걸음이 정문 앞 모든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

이 오후 총단 주방에서는 덕순이 솥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숙수가 방금 소림 사절은 고기를 못 먹는다고 전했다⁠.

“⁠고기 없는 국밥이 어디 있어⁠? 그건 국밥이 아니라 국이지⁠.⁠”

“⁠그래도 어떻게 좀⁠…⁠…⁠.⁠” 숙수가 손을 비볐다⁠. 숙수는 이제 덕순 앞에서 칼 쥐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중이었다⁠.

덕순은 한참 솥을 노려보더니 앞치마를 고쳐 맸다⁠. 표고를 불리고⁠, 두부를 굵게 썰고⁠, 다시마를 찬물에 담갔다⁠. 돼지 뼈 국물 대신 다시마와 무를 우렸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맛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소금을 조금 치고 다시 맛보더니 또 찡그렸다⁠. 세 번째 숟가락에서 아무 표정 없이 국자를 내려놓았다⁠.

“⁠됐어⁠.⁠”

“⁠맛있습니까⁠?⁠”

“⁠맛없어⁠. 근데 스님 입에는 맞을 거야⁠. 스님들은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하도록 배웠잖아⁠.⁠”

*

연회는 해 질 녘 총단 대청에서 열렸다⁠. 혼례가 있었던 바로 이 대청이었다⁠. 위장천이 맹주 자리에 앉았다⁠. 소교가 이 곁에 서서 아버지의 팔을 받쳤다⁠. 사절들이 오른쪽 윗자리에⁠, 장로들이 왼쪽에⁠, 세가 가주들이 아래에 앉았다⁠. 기둥에 감긴 붉은 비단은 혼례 날 그대로였는데⁠, 그새 볕에 바래 끝이 분홍빛이 되어 있었다⁠. 갑돌은 이 기둥 옆을 지나며 혼례 날 비도가 박혔던 돼지머리 자리를 한 번 보았다⁠.

갑돌의 자리는 형당주 자리였다⁠. 사절들 바로 맞은편이었다⁠. 갑돌이 앉으려 할 때 소림 사절이 일어섰다⁠.

“⁠맹주께 여쭙겠소⁠.⁠”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대청을 덮었다⁠. “⁠소림은 살생을 금하오⁠. 사람을 죽이는 일만 아니라 짐승을 죽이는 일도 마찬가지요⁠. 살생을 업으로 삼은 자와는 한 상에 앉지 않는 것이 소림의 계율이오⁠. 형당주의 자리를 옮겨 주시든지⁠, 소림의 자리를 옮겨 주시오⁠.⁠”

대청이 조용해졌다⁠. 진무상이 세가 자리에서 찻잔을 들었다⁠. 웃음을 찻잔으로 가렸다⁠.

위장천은 기침을 하고⁠, 대답 대신 사위를 보았다⁠.

갑돌은 앉으려던 의자를 도로 밀어 넣고 섰다⁠. 허벅지가 당겼다⁠.

“⁠스님⁠, 한 가지만 묻겠소⁠.⁠”

“⁠말하시오⁠.⁠”

“⁠소림 대웅전 앞에 큰 북이 있다 들었소⁠. 아침저녁 예불 때 치는 북⁠.⁠”

“⁠있소⁠.⁠”

“⁠열한 해 전 가을⁠, 그 북 가죽을 새로 갈았을 거요⁠. 소림에서 무한 한수 나루로 사람을 보내 가장 큰 황소 가죽을 주문했소⁠. 북을 메울 가죽은 흠집이 없어야 해서⁠, 살아 있을 때 상처가 없는 소를 골라야 했소⁠. 나루 백정 열둘 가운데 그 가죽을 벗길 줄 아는 사람이 둘이었소⁠.⁠” 갑돌이 소림 사절을 똑바로 보았다⁠. “⁠한 사람은 쇠전 영감이었고⁠, 한 사람은 열일곱 살 나였소⁠. 영감이 손이 떨려서 내가 벗겼소⁠.⁠”

대청 어딘가에서 누가 숨을 들이켰다⁠. 화산 사절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스님이 열한 해 동안 아침저녁으로 들은 북소리는 내가 벗긴 가죽에서 났소⁠. 그 소리 듣고 마음이 맑아지셨으면⁠, 나하고 한 상에 앉아도 마음이 크게 흐려지지는 않을 거요⁠.⁠”

소림 사절의 긴 눈썹 아래에서 눈이 크게 떠졌다⁠. 사절은 한참 갑돌을 보았다⁠.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그 가죽은 소리가 좋았소⁠.⁠”

“⁠두께를 고르게 벗겨서 그렇소⁠.⁠”

화산 사절이 웃음을 참다가 사레가 들렸다⁠. 이 기침이 신호처럼 대청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졌다⁠. 장로들도 세가 가주들도 웃었다⁠. 진무상은 웃지 않았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소림 사절은 한숨처럼 염불을 한 마디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갑돌도 앉았다⁠. 둘은 한 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웃음이 잦아든 뒤 소림 사절이 갑돌에게만 들리게 물었다⁠.

“⁠그 소는 어떻게 갔소⁠?⁠”

“⁠한 번에 갔소⁠. 숨 한 번 쉴 동안이었소⁠.⁠”

소림 사절은 눈을 감고 짧게 염불을 외웠다⁠. 그리고 눈을 뜨며 말했다⁠. “⁠그럼 됐소⁠.⁠” 소림 사절의 앞에는 덕순이 주방에서 올려 보낸 나물 국밥이 놓였다⁠. 고기 대신 버섯과 두부를 넣고 사흘 우린 다시마 국물이었다⁠. 소림 사절은 첫 숟가락을 뜨고 한참 멈춰 있다가⁠, 그릇을 다 비웠다⁠.

*

연회가 무르익는 동안 갑돌은 맹주 곁으로 약 사발을 들고 갔다⁠. 맹의 의원이 약 단지째 들고 와서 대청 뒷문에 놓고 간 것이었다⁠. 맹주는 연회 중에도 해 질 녘 약을 걸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갑돌은 약 단지를 들었다가 멈췄다⁠.

어제도 갑돌은 이 단지를 맹주 침소로 날랐다⁠. 그제도 날랐다⁠. 형당주가 된 뒤로 맹주의 약은 형당이 지키라고 위장천이 정했다⁠. 날마다 같은 약재⁠, 같은 양⁠, 같은 물이라고 의원이 말했다⁠. 날마다 같은 무게여야 했다⁠.

오늘 단지는 어제보다 무거웠다⁠. 반 냥쯤이었다⁠. 그제는 어제보다 반 냥 가벼웠다⁠. 아니⁠, 그제가 가벼운 게 아니었다⁠. 날마다 반 냥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사흘 전부터 셈하면 한 냥 반이었다⁠.

반 냥은 손으로 잴 수 있는 가장 작은 무게였다⁠. 소 한 마리를 일각 만에 바르는 손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무게였다⁠.

갑돌은 약을 사발에 따르고 단지를 다시 들어 보았다⁠. 약이 다 빠졌는데도 바닥 쪽이 묵직했다⁠. 기울이면 이 무게가 한 박자 늦게 따라왔다⁠. 단지 바닥에 무언가 가라앉아 있었다⁠. 따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무얼 그리 오래 들고 있나⁠?⁠” 위장천이 물었다⁠.

갑돌은 사발을 내밀지 않았다⁠. 장인의 손을 보았다⁠. 핏줄이 마른 덩굴처럼 불거진 손이었다⁠. 석 달 전부터 의원이 고기를 못 먹게 했다던 손이었다⁠.

“⁠장인어른⁠, 이 약 언제부터 드셨소⁠?⁠”

위장천은 사위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사발을 받았다⁠. 갑돌이 놓지 않았다⁠. 둘의 손이 사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섰다⁠.

“⁠놓게⁠.⁠”

“⁠무거워졌소⁠. 날마다⁠.⁠”

“⁠알아⁠.⁠” 위장천이 말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갑돌만 들었다⁠. “⁠석 달 됐네⁠. 알고 마셨어⁠.⁠”

갑돌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위장천이 사발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얼굴을 찡그리고 소매로 입을 닦았다⁠. 그리고 빈 사발을 사위의 손에 돌려주며 말했다⁠.

“⁠안 마시면 다음 것을 넣겠지⁠. 다음 것은 내가 모르는 데서 올 거고⁠. 아는 데서 오는 것을 마시는 게 낫네⁠. 무게를 재는 자네가 오기 전까지는 그게 최선이었어⁠.⁠” 위장천의 눈이 연회장을 한 바퀴 돌았다⁠. 진무상에게서 아주 잠깐 멈췄다⁠. “⁠이제 자네가 왔으니⁠, 다른 수를 둘 차례지⁠.⁠”

*

위장천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소교가 아버지의 팔을 받쳤다⁠. 대청이 조용해졌다⁠. 사절들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구파의 사절께서 먼 길 오신 뜻은 알고 있소⁠. 맹주가 늙고 병들었으니 후계를 서두르라는 것이겠지⁠.⁠” 위장천이 목에 걸린 기침을 삼켰다⁠. 목소리가 대청 끝까지 갔다⁠. “⁠옳은 말씀이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맹주의 후계 후보 하나를 올리겠소⁠.⁠”

진무상이 찻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세가 가주들이 진무상을 보았다⁠. 장로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형당주 석갑돌⁠.⁠”

대청이 얼어붙었다⁠. 화산 사절의 젓가락이 상 위로 떨어졌다⁠. 아미 사절이 코를 막았던 손을 내렸다⁠. 장로석에서 공동 장로가 반쯤 일어섰다가 주저앉았다⁠.

소교의 손가락이 아버지의 소매를 꽉 쥐었다⁠. 소교도 몰랐던 얼굴이었다⁠.

진무상만 움직이지 않았다⁠. 진무상은 찻잔을 다시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일어섰다⁠. 사절들에게⁠, 장로들에게⁠, 마지막으로 맹주에게 예를 올렸다⁠.

“⁠맹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후보는 하나보다 둘이 낫겠지요⁠. 진가도 제 이름을 올리겠습니다⁠. 누가 맹을 맡을지는 맹회가 정할 일입니다⁠.⁠” 진무상이 고개를 들었다⁠. “⁠구파의 사절께서 마침 여기 계시니⁠, 맹회 날까지 무한에 머물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소림 사절이 합장을 했다⁠. 화산 사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홉 사절 가운데 일곱이 이 말에 고개를 움직였다⁠. 진무상은 자리에 앉아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잔 너머로 갑돌을 보았다⁠.

갑돌은 형당주 자리에 앉은 채 빈 약 사발을 쥐고 있었다⁠. 사발이 가벼웠다⁠. 장인이 다 마신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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