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66자)
목을 칠 칼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형당 옥은 땅 밑으로 한 층을 더 내려간 자리에 있었다. 횃불 하나가 벽에 꽂혀 있었고, 이 불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 물이 떨어졌다. 똑, 똑. 숨 다섯 번에 한 방울이었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이 소리로 밤을 셌을 것이다.
객경은 옥 한가운데 짚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손은 풀어 주었다.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꼼짝하지 않았다. 갑돌이 쇠창살 문을 열고 들어가 맞은편에 앉았다. 국밥 한 그릇을 둘 사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덕순이 계단 삼백 개를 지고 올라온 솥에서 뜬 것이었다.
“드시오.”
객경은 그릇을 보지 않았다.
“이름을 묻겠소.”
“객경이오. 진가의.”
“그건 자리고.”
객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돌은 물방울이 셋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객경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 밑이 검게 꺼져 있었다.
“형당주. 그 칼, 잘 갈았다고 들었소. 한 번에 쳐 주시오. 그거면 되오.”
갑돌은 손을 뻗어 객경의 오른 어깨를 잡았다. 객경이 움찔했다. 갑돌은 손바닥 아래 어깨뼈의 자리를 더듬었다. 뼈가 제자리에서 손가락 한 마디쯤 밀려나 굳어 있었다. 오래된 것이었다. 빠졌다가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아문 어깨였다.
“팔을 들어 보시오. 머리 위로.”
객경은 팔을 들었다. 어깨 높이에서 멈췄다. 더 올라가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열 해는 됐겠소.”
“열두 해요.” 객경이 팔을 내렸다. “비무에서 빠졌소. 그 뒤로 검은 왼손으로 쓰오. 비도는 못 던지오. 진가에서도 다 아오.”
“그럼 왜 자수했소?”
객경은 다시 바닥을 보았다. 그리고 국밥 그릇을 처음으로 보았다. 김이 다 식어 가고 있었다.
“한 번에 쳐 주시오.”
갑돌은 일어서면서 그릇을 객경 앞으로 밀어 주었다.
“치든 안 치든 국밥은 드시오. 우리 어머니는 손님이 국밥 남기는 걸 사람 죽는 것보다 싫어하오.”
쇠창살 문을 잠그고 계단을 오르다 돌아보았을 때, 객경은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한참 뒤에 형당 무사 하나가 올라와 전했다. 다 먹었는데 소금이 세다고 하더라고. 갑돌은 이 말을 어머니에게 전하지 않기로 했다. 전하면 객경의 목은 형당이 아니라 국밥집에서 날아갈 터였다.
*
이튿날 해 뜨기 전 덕순이 형당 계단을 내려왔다. 솥은 없었다. 대신 앞치마 주머니가 불룩했다. 형당 문 앞 돌계단에 앉아 이불을 덮고 졸던 아들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일어나. 개방 거지들이 그러더라.”
“무슨 거지요?”
“우리 국밥집 뒷문에 열 해 동안 남은 국밥 얻어먹으러 오던 거지들. 그중 우두머리 영감이 거지들 문파 개방의 무한 분타주라더라. 나는 거지 왕초인 줄만 알았지.” 덕순이 주머니에서 주먹밥 두 개를 꺼내 아들 손에 쥐여 주었다. “그 영감이 그러는데, 진가 객경 하나 마누라랑 아들이 그저께 밤에 진가 별채로 끌려갔대. 객경 이름은 모르고, 오른 어깨가 처진 사람이래.”
갑돌은 주먹밥을 쥔 채 굳었다.
“그 마누라가 남문 쪽 물레방앗간에서 일했대. 아들은 스물이고 짐꾼이고. 거지들이 그 방앗간 뒤에서 자니까 다 봤대.” 덕순이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너 그 사람 목 칠 거냐?”
“안 치면 내가 맞소.”
“뭘 맞아?”
“형을 거부한 형당주는 죄인 대신 곤장 스무 대를 맞는다고, 부당주가 어젯밤에 친절하게 알려 줬소.” 갑돌이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소금이 셌다. “그리고 형은 장로회가 다시 정하오.”
덕순은 한참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들의 머리에 붙은 짚 부스러기를 털어 주고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
장로회는 갑돌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공동 장로가 말을 끊었다. 자수한 자가 제 입으로 했다는데 형당주가 무슨 권리로 아니라 하느냐고. 청성 장로가 받았다. 어깨가 처졌다고 비도를 못 던지느냐, 강호에는 발로 비도를 던지는 사람도 있다고. 갑돌이 그럼 발을 보자고 하자 장로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진무상은 이 자리에 있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었다.
위장천은 맹주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갑돌이 장인을 보았다. 맹주는 눈을 뜨지 않았다. 형당은 형당주의 것이라는 듯이.
대청을 나서자 회랑 기둥 뒤에서 소교가 걸어 나왔다. 장로회 문틈으로 다 듣고 있었던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안 도와줘요. 여기서 아버지가 당신 편을 들면, 장로들은 당신을 아버지가 휘두르는 칼로 봐요. 그럼 아버지 미워하는 사람들이 당신까지 미워하고요.”
“그럼 누가 도와주오?”
소교는 산가지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셈으로는 아무도요.”
“셈 말고는?”
소교는 대답하지 않고 회랑 끝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
형 집행 날 새벽, 형당 마당은 사람으로 찼다. 장로들이 처마 아래 의자에 앉았고, 세가 사람들이 이 옆에 섰다. 맹의 무사들이 담장을 따라 둘러섰고, 담장 밖 언덕에도 사람이 올라와 있었다. 이 가운데 덕순이 있었다. 앞치마를 입은 채로였다. 옆에 춘길이 데인 팔을 목에 걸고 섰다.
마당 한가운데 객경이 꿇어앉았다. 앞에 짚을 깐 나무 받침이 놓였다. 형당 무사 둘이 큰 칼을 들고 나와 갑돌 앞에 세웠다. 날이 새벽빛을 받아 파랬다. 이틀 동안 갈아 놓은 날이었다.
갑돌은 칼자루를 잡았다. 오른팔은 이제 천에서 뺐다. 두 손으로 쥐어 들어 올렸다. 마흔 근이 고르게 손목에 실렸다. 한 번에 갈 무게였다. 제일 잘 아는 무게였다.
객경이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한 번에.”
갑돌은 칼을 든 채 숨을 세 번 쉬었다. 담장 위로 해가 올라왔다. 마당에 칼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이 그림자 끝이 객경의 목에 닿아 있었다.
갑돌은 칼을 내렸다. 칼끝이 받침 옆 돌바닥에 닿아 쿵 울렸다.
마당이 술렁였다. 갑돌은 칼을 형당 무사에게 넘기고 객경 옆에 쪼그려 앉았다.
“팔을 들어 보시오. 아까처럼.”
객경이 갑돌을 보았다. 눈이 흔들렸다. 오른팔을 들었다. 어깨 높이에서 멈췄다. 장로들이 다 보는 앞이었다. 이를 악물고 더 들려 했다. 팔이 떨리기만 하고 올라가지 않았다.
갑돌이 일어섰다. 장로석을 향해 섰다.
“혼례 날 비도는 열두 걸음을 곧게 왔소. 내 손바닥에 박힌 깊이가 손가락 두 마디였소. 머리 위로 팔을 못 드는 사람은 그 쇠를 그만큼 못 보내오. 멀리 보내려면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야 하오. 소 모는 채찍도 어깨 아래에서는 소리가 안 나오.” 갑돌이 담장 쪽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 사람이 던졌다는 것은 이 사람 입뿐이오. 이 사람 몸은 아니라고 하오.”
“그 입이 자수를 했네.” 청성 장로가 말했다.
“사람 입은 식구가 어디 묶여 있으면 아무 말이나 하오.”
마당이 조용해졌다. 진무상이 처음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아우, 무거운 말이군. 누가 누구 식구를 묶었다는 건가?”
갑돌은 진무상을 보았다. 거기서 진가 별채라고 말하면 거지들의 눈이 증거가 되었다. 장로들은 거지의 눈을 증거로 듣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객경의 아내와 아들은 이 밤 안에 한수에 떠오를 터였다. 시장 행수가 그랬듯이.
“누가 묶었는지는 모르오.” 갑돌이 말했다. “그러니 이 사람 목은 못 치오. 모르는 걸 칠 수는 없소. 소도 병든 줄 모르고는 안 잡소.”
형당 부당주가 처마 아래에서 앞으로 나섰다. 얇은 입술이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맹의 법을 읽겠소. 형을 거부한 형당주는 그 죄인을 대신하여 곤장 스무 대를 받는다. 형은 장로회가 다시 정한다.”
갑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당 구석에 놓인 곤장 틀로 걸어갔다. 소를 묶는 틀과 생김새가 비슷했다. 웃옷을 벗어 형당 무사에게 건넸다. 꿰맨 어깨와 굳은살 박인 등이 아침 햇빛에 드러났다. 제 발로 틀 위에 엎드렸다.
*
덕순은 담장 위 언덕에서 이 등을 보았다.
젖먹이 때 업고 다니던 등이었다. 아홉 살에 도축장에 처음 들어갈 때 소 앞다리 무게를 못 이겨 휘청거리던 등이었다. 열다섯에 처음 소 한 마리를 혼자 바르고 와서 국밥을 세 그릇 먹고 부뚜막 옆에서 잠들던 등이었다. 이 등이 지금 맹의 형당 마당 한가운데 엎드려 있었다.
형당 무사가 곤장을 들었다. 넓적한 참나무 판이었다.
첫 대가 떨어졌다. 철썩. 소리가 담장까지 왔다. 덕순은 눈을 감지 않았다.
“하나.” 덕순이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옆에 선 춘길만 들었다.
둘. 셋. 넷. 곤장이 떨어질 때마다 아들의 등이 한 번씩 들썩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아들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섯. 여섯. 덕순의 손이 앞치마 자락을 쥐었다. 손톱이 천을 뚫을 것 같았다.
일곱 번째에서 등의 살갗이 터졌다. 붉은 것이 곤장 판에 묻어났다. 마당의 무사 몇이 고개를 돌렸다. 장로석의 화산 장로가 눈을 내리깔았다. 진무상만 눈을 돌리지 않았다.
“여덟. 아홉. 열.”
덕순의 목소리는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춘길이 옆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덕순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열다섯 번째쯤에서 곤장을 들던 형당 무사의 팔이 느려졌다. 사흘 전 형당 문 앞에서 갑돌에게 형님이라 부른 이 무사였다. 부당주가 처마 아래에서 헛기침을 했다. 무사는 다시 팔을 들었다.
“열아홉. 스물.”
덕순은 그제야 숨을 쉬었다. 앞치마를 놓았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넷씩 패어 있었다.
*
갑돌은 혼자 일어났다. 형당 무사가 부축하려는 것을 손으로 밀어냈다. 등을 타고 흐른 피가 허리춤을 적셨다. 웃옷을 받아 걸치지 않고 어깨에 걸쳤다. 걸치는 것만으로 등이 불에 덴 것 같았다.
진무상이 마당 가운데로 걸어와 이 앞에 섰다. 객경은 다시 형당 무사들에게 끌려 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우, 스무 대로 무엇을 샀나?”
“이 사람 목을 며칠 샀소. 장로회가 다시 정할 때까지.”
“그 며칠 동안 무엇을 하려고?”
“진짜로 던진 손을 찾겠소.” 갑돌이 진무상을 보았다. 등에서 흐른 피가 발뒤꿈치에 닿았다. “그날 열두 걸음 밖에서, 어깨 위로 팔이 잘 올라가는 손을.”
진무상은 웃지 않았다. 처음으로 웃음 없는 얼굴로 갑돌을 보았다. 그리고 몸을 기울여 갑돌의 귀에 대고 말했다.
“등이 아물기 전에 찾게. 다음에는 스무 대가 아닐 테니.”
진무상이 돌아서 갔다. 장로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담장 위의 덕순은 이때까지 이 자리에 서 있다가, 아들이 형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다 보고 나서야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처음으로 느렸다.
*
이 밤 형당 뒷방에는 등잔 하나만 켜져 있었다. 갑돌은 엎드려 누워 있었다. 의원이 다녀갔다. 덕순은 다시 오지 않았다. 춘길이 와서 국밥을 놓고 갔는데, 그릇이 식도록 손을 못 댔다. 고개를 들 때마다 등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문이 열렸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문간에 소교가 서 있었다. 한 손에 술 단지를 들고, 다른 손에 무명천 한 꾸러미를 들었다. 다홍은 따라오지 않았다.
“술은 마시라고 가져온 거 아니에요.” 다홍이 문을 닫았다. 빗장을 지르는 소리가 났다. “바르라고 가져온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