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12자)

형당의 큰 칼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스무 해 전 같은 해 여름⁠, 한수 나루 고기 시장에는 파리가 유난히 많았다⁠. 맹의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어온 지 이레째였다⁠. 서쪽에서 돌아오는 무림인들이 무한을 지나갔고⁠, 저잣거리 사람들은 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길가로 비켜섰다⁠. 피 냄새는 백정들에게 익숙했는데⁠, 이 사람들에게서 나는 피 냄새는 달랐다⁠. 짐승의 피가 아니었다⁠.

여덟 살 갑돌은 아버지의 고기 수레 뒤를 밀고 있었다⁠. 수레에는 돼지 두 마리가 실려 있었고⁠, 수레를 끄는 아버지의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아버지는 키가 크지 않았는데 어깨가 넓었다⁠. 소 앞다리를 한 손으로 들었다⁠. 갑돌은 이 손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을 든다고 믿었다⁠.

시장 어귀에서 수레가 멈췄다⁠. 앞에 말 탄 무리가 있었다⁠. 맨 앞의 사내는 왼쪽 소매가 피에 젖어 있었다⁠. 소매 안이 비어 있는 것처럼 펄럭였다⁠. 이 사내가 무어라 소리쳤다⁠. 수레를 치우라는 말이었는데⁠, 술 냄새가 섞여 갑돌은 끝까지 알아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수레를 비키려고 손잡이를 돌렸다⁠. 바퀴 하나가 돌부리에 걸렸다⁠. 아버지가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다음은 갑돌이 오래도록 순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말 위에서 손바닥 하나가 내려왔다⁠. 아버지의 몸이 수레와 함께 옆으로 날아갔다⁠. 돼지 두 마리가 땅에 쏟아졌고⁠, 아버지는 이 사이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말 탄 무리는 서지 않고 지나갔다⁠. 누군가 뒤에서 웃었다⁠.

시장 사람들은 아무도 이들을 막지 않았다⁠. 아무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해 질 녘 관아에서 사람이 하나 와서 아버지를 보고 갔는데⁠, 이것으로 끝이었다⁠. 무림인끼리의 일도 아니고⁠, 백정 하나였다⁠.

엎어진 수레 밑에 아버지의 발골칼이 떨어져 있었다⁠. 갑돌은 이것을 주웠다⁠. 손잡이가 여덟 살 손에 너무 굵어서 두 손으로 쥐어야 했다⁠. 이 밤 덕순은 남편의 몸을 닦다 말고 아들 손에 쥐인 칼을 보았다⁠. 한참 보다가⁠, 자기 앞치마 끈을 이로 끊어 이 칼자루에 칭칭 감았다⁠. 칼자루가 손에 맞을 만큼 가늘어질 때까지 감았다⁠.

이 이듬해 덕순은 수레를 팔아 국밥집을 열었다⁠. 갑돌은 아홉 살에 도축장에 들어갔다⁠.

*

장로회 대청의 열 자리가 이번에는 다 차 있었다⁠. 위장천이 맹주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침 인사를 받고 나서 기침도 하지 않고 말했다⁠.

“⁠형당주 자리가 반년째 비었네⁠. 사위 석갑돌에게 주겠네⁠.⁠”

대청이 술렁였다⁠. 공동파의 장로가 맨 먼저 일어섰다⁠. 사위라 해도 맹 안에서 공을 세운 적이 없다고 했다⁠. 청성파 장로가 받았다⁠. 형당은 맹의 법을 쥐는 자리인데 백정이 법을 아느냐고⁠. 갑돌은 대청 가운데 서서 이 말들을 다 들었다⁠. 법은 몰랐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맹의 법은 모르오⁠.⁠” 갑돌이 청성 장로에게 말했다⁠. “⁠도축장에도 법은 있소⁠. 새끼 밴 소는 안 잡고⁠, 병든 소는 안 팔고⁠, 한 번에 못 넘길 칼로는 안 잡소⁠. 그 셋은 지켜 왔소⁠.⁠”

청성 장로가 무어라 받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장로석 어디선가 누가 코웃음을 쳤는데⁠, 끝이 흐렸다⁠.

이때 세가 사람들 맨 앞에서 진무상이 앞으로 나왔다⁠.

“⁠저는 찬성합니다⁠.⁠”

대청이 조용해졌다⁠. 장로들이 진무상을 보았다⁠. 갑돌도 보았다⁠.

“⁠형당은 칼로 법을 세우는 곳입니다⁠. 지난겨울부터 아무도 그 칼을 들지 않았지요⁠. 다들 손에 피 묻히기를 싫어해서입니다⁠.⁠” 진무상이 갑돌을 돌아보며 웃었다⁠. “⁠아우는 스무 해 동안 피를 묻혀 온 손입니다⁠. 칼 쓰는 사람이 칼 쓰는 자리에 가는 겁니다⁠. 이보다 맞는 인선이 있겠습니까⁠?⁠”

갑돌은 이 웃음의 무게를 들어 보았다⁠. 이번에는 무게를 알 수 없었다⁠. 너무 매끄러워서 손에 걸리는 데가 없었다⁠.

*

형당은 총단 북쪽 끝⁠, 바위를 깎아 반쯤 땅속으로 들어간 건물이었다⁠. 돌계단 열두 개를 내려가야 문이 나왔다⁠. 여름인데 문 앞 공기가 차가웠다⁠. 쇠 냄새가 났다⁠. 오래 닦지 않은 쇠에 밴 냄새였다⁠.

문 앞에 형당 무사 열둘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맨 앞에 형당 부당주가 있었다⁠. 마흔 남짓⁠, 얼굴이 길고 입술이 얇았다⁠. 허리에 형당 열쇠 꾸러미를 찼다⁠. 갑돌이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말했다⁠.

“⁠형당주라 하시니 형당의 법부터 아셔야겠소⁠.⁠”

“⁠말해 보시오⁠.⁠”

부당주가 손짓하자 무사 둘이 안에서 칼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둘이 들었다⁠. 칼날 길이가 사람 팔 하나 반⁠, 날 폭이 손바닥 둘이었다⁠. 손잡이는 두 손으로 쥐게 길었다⁠. 칼날 등이 거무죽죽했다⁠.

“⁠형당의 큰 칼이오⁠. 맹이 선 뒤로 형당에서 목을 친 칼은 이것 하나요⁠. 형당주는 이걸 한 손으로 들 줄 알아야 하오⁠. 못 들면 형당주가 아니오⁠.⁠” 부당주가 웃지 않고 말했다⁠. “⁠지난 형당주는 들었소⁠.⁠”

형당 무사들이 서로 눈짓했다⁠. 누가 작게 말했다⁠. 형당주 나리라 불러야 하나⁠, 사위 나리라 불러야 하나⁠. 다른 누가 받았다⁠. 백정 나리⁠. 몇이 웃음을 참았다⁠.

갑돌은 오른팔이 아직 천에 걸려 있었다⁠. 왼손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손바닥의 상처가 칼자루에 눌렸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들어 올렸다⁠.

무거웠다⁠. 그런데 무게보다 먼저 손목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칼끝 쪽이 이상하게 가벼웠고⁠, 날 한가운데가 무거웠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갑돌은 칼을 수평으로 든 채 숨 다섯 번을 버텼다⁠. 팔뚝 힘줄이 줄처럼 섰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칼끝이 돌바닥에 닿아 둔하게 울렸다⁠.

“⁠마흔 근이오⁠.⁠”

부당주의 얇은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맞았다⁠.

“⁠근데 이 칼은 날 한가운데만 숫돌에 갈렸소⁠. 끝 쪽은 안 갈렸고⁠.⁠” 갑돌이 칼날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날 한가운데가 움푹 패어 있었다⁠. “⁠칼을 이렇게 갈면 무게가 가운데로 몰리오⁠. 휘두르면 끝이 늦게 오고⁠. 소를 이런 칼로 잡으면 한 번에 안 넘어가오⁠. 두 번⁠, 세 번 쳐야 하오⁠.⁠”

형당 무사들의 웃음이 멎었다⁠.

“⁠이 칼로 목을 친 사람들은 한 번에 안 갔을 거요⁠.⁠” 갑돌이 부당주를 보았다⁠. “⁠누가 이렇게 갈았소⁠?⁠”

부당주의 얼굴이 굳었다⁠. 대답 대신 부당주는 허리의 열쇠 꾸러미에 손을 얹었다⁠.

“⁠열쇠는 못 드리겠소⁠. 형당주의 인장도⁠, 맹주의 친필도 아직 형당에 안 내려왔소⁠.⁠”

“⁠그럼 언제 주겠소⁠?⁠”

“⁠내려오면⁠.⁠”

“⁠그럼 그때까지 나는 문 밖에서 기다리겠소⁠.⁠” 갑돌이 형당 문 앞 돌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았다⁠. “⁠그 사이에 이 칼을 갈아도 되겠소⁠? 내 숫돌이 불에 갈라져서 그러는데⁠.⁠”

부당주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품에서 갈라진 숫돌 반쪽을 꺼냈다⁠. 아버지의 숫돌이었다⁠. 형당 무사 하나에게 물 한 동이를 청했다⁠. 무사가 부당주를 보았다가⁠, 다음 갑돌을 보았다가⁠, 물을 길으러 갔다⁠.

*

해가 기울 때까지 갑돌은 형당 문 앞에서 큰 칼을 갈았다⁠. 숫돌 반쪽으로는 칼날 한 뼘씩밖에 못 갈았다⁠. 칼 끝에서 시작해 한 뼘씩⁠, 물을 끼얹고 숫돌을 밀었다⁠. 쓱⁠, 쓱⁠. 이 소리가 형당 돌벽에 부딪혀 안까지 울렸다⁠.

형당 무사들은 처음에는 문 안에서 보기만 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하나가 나와 물을 갈아 주었다⁠. 두 시간이 지나자 또 하나가 나와 칼날을 붙잡아 주었다⁠. 이 무사가 물었다⁠.

“⁠형당주 나리⁠, 아니⁠, 사위 나리⁠, 아니⁠…⁠…⁠.⁠”

“⁠그냥 형님이라 하시오⁠. 도축장에서는 다 그랬소⁠.⁠”

“⁠형님⁠.⁠” 무사가 칼날을 붙잡은 채 침을 삼켰다⁠. “⁠지난겨울 형당주님이 이 칼을 마지막으로 쓴 게 진가 사람 하나 목을 칠 때였습니다⁠. 그 사람⁠, 세 번 맞았습니다⁠. 형당주님이 그날 밤 술을 드시고 안 깨셨습니다⁠.⁠”

갑돌의 숫돌이 멈췄다⁠.

“⁠그 칼을 누가 갈았소⁠?⁠”

무사가 부당주 쪽을 흘끗 보고 입을 다물었다⁠. 부당주는 문간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 얇은 입술이 한일자로 닫혀 있었다⁠.

갑돌은 다시 숫돌을 밀었다⁠. 쓱⁠, 쓱⁠. 이제 날 끝에서 한가운데까지 고르게 갈려 있었다⁠. 칼자루를 잡고 다시 들어 보았다⁠. 무게가 끝까지 고르게 퍼져 있었다⁠. 칼끝이 손목보다 먼저 가는 무게였다⁠.

해가 담장 위에 걸릴 무렵 소교가 형당 계단을 내려왔다⁠. 뒤에 다홍이 이불 한 채를 안고 따라왔다⁠. 소교가 남편을 보고⁠, 갈린 칼을 보고⁠, 문간의 부당주를 보았다⁠.

“⁠문 밖에서 밤샐 생각이었어요⁠?⁠”

“⁠열쇠가 내려올 때까지⁠.⁠”

“⁠그래서 이불 가져왔어요⁠. 다홍이 말이 신랑이 형당 문 앞에서 쫓겨났다고 총단에 벌써 돌았대요⁠.⁠” 소교가 소매에서 접은 비단 한 장과 작은 옥 인장을 꺼냈다⁠. 인장에 붉은 인주가 아직 덜 말라 있었다⁠. “⁠아버지 친필이에요⁠. 낮잠 주무시는 걸 깨워서 받았어요⁠. 손이 떨려서 글씨가 좀 삐뚤어요⁠.⁠”

소교는 이것을 갑돌에게 주지 않고 부당주에게 곧장 내밀었다⁠. 부당주가 비단을 펼쳐 보았다⁠. 얇은 입술이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허리에서 열쇠 꾸러미를 풀었다⁠. 쇠고리 열세 개가 달린 꾸러미였다⁠. 이것을 갑돌의 손이 아니라 발 앞 돌바닥에 내려놓았다⁠. 짤랑 소리가 형당 돌벽에 길게 울렸다⁠.

갑돌은 허리를 굽혀 이것을 주웠다⁠.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부당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내일부터 칼 가는 건 같이 합시다⁠.⁠”

부당주는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사라진 뒤에야 다홍이 이불을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아가씨⁠, 이불은 다시 가져가요⁠?⁠”

“⁠두고 가⁠. 저 사람 오늘 밤 여기서 잘 거야⁠. 열쇠 받았다고 들어가서 잘 사람이 아니거든⁠.⁠”

*

계단 위에서 여럿의 발소리가 내려왔다⁠. 진무상이었다⁠. 뒤에 진가 무사 넷이 사내 하나를 끌고 왔다⁠. 사내의 두 손이 등 뒤로 묶여 있었다⁠. 마흔쯤⁠, 마른 몸에 오른쪽 어깨가 처져 있었다⁠. 얼굴에 맞은 자국은 없었다⁠. 눈만 바닥을 보고 있었다⁠.

“⁠아우⁠, 형당주 첫날부터 일거리를 가져왔네⁠.⁠” 진무상이 사내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사내가 형당 문 앞 돌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진가의 객경일세⁠. 혼례 날 비도를 던진 게 자기라고⁠, 오늘 아침 내 앞에 와서 자수했어⁠. 혼자 한 일이라고 하더군⁠. 진가의 수치니⁠, 진가가 감싸지 않겠네⁠.⁠”

갑돌은 칼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사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맹의 법을 아는가⁠, 아우⁠? 맹주의 피붙이를 해치려 한 자는 목을 친다⁠.⁠” 진무상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혼례 날 둘째 칼은 신부 쪽으로 갔다지⁠. 맹주의 딸이야⁠. 법대로라면 형당주가 직접 쳐야 하네⁠. 그 칼로⁠.⁠”

진무상이 갑돌이 방금 다 갈아 놓은 큰 칼을 턱으로 가리켰다⁠.

“⁠장로회도 그렇게 정했어⁠. 사흘 뒤 해 뜰 때⁠, 형당 마당에서⁠.⁠”

갑돌은 꿇어앉은 객경의 어깨를 보았다⁠. 오른쪽이 처져 있었다⁠. 처진 어깨 쪽 팔이 등 뒤에서 묶인 채 조금 떨렸다⁠. 이 떨림의 무게가 갑돌의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이 던졌소⁠?⁠”

“⁠본인이 그렇다잖나⁠.⁠”

“⁠내 손바닥은 그날 두 냥 석 돈짜리 쇠를 받았소⁠. 열두 걸음 밖에서 곧게 온 쇠였소⁠.⁠” 갑돌이 진무상을 보았다⁠. “⁠이 어깨로는 열두 걸음 못 던지오⁠.⁠”

진무상의 웃음이 깊어졌다⁠.

“⁠그럼 형당주가 장로회에 가서 그렇게 말하게⁠. 자수한 죄인을 풀어 주자고⁠. 백정 형당주가 첫날부터 맹주 딸을 노린 자를 감싼다고 하면⁠, 장로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진무상이 돌아서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칼은 잘 갈았더군⁠. 이번에는 한 번에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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