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45자)

물 먹은 고기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화산의 장로는 사흘째 저녁 밥상 앞에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상 위에는 데친 미나리⁠, 무친 고사리⁠, 두부 한 모⁠, 그리고 또 미나리가 있었다⁠. 미나리를 두 번 낸 것은 주방이 미안해서였다⁠. 장로는 이 두 접시를 번갈아 보더니 맞은편의 무당 장로에게 말했다⁠.

“⁠도사님은 평소에도 이렇게 드시오⁠?⁠”

“⁠평소에는 고기도 먹소⁠. 수행은 마음으로 하는 거요⁠.⁠” 무당 장로가 고사리를 씹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근데 사흘을 이렇게 먹으니 마음이 수행을 안 하려 하는구려⁠.⁠”

주방 숙수는 문간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흘 전부터 총단 주방에 고기가 한 근도 올라오지 않았다⁠. 진가의 수레가 오지 않았고⁠, 저잣거리에서 직접 사 오려던 주방 사람들은 계단 아래에서 진가 칼잡이들에게 돌려보내졌다⁠. 백정 사위 때문이라는 말이 숙수의 입에서 장로들의 귀까지 가는 데는 반나절이면 됐다⁠.

장로들의 밥상 아래에서는 더했다⁠. 총단 문지기 무사들과 순찰 무사들은 원래도 고기를 장로들이 먹고 남긴 것만 받았다⁠. 사흘째 이들의 밥은 보리밥에 소금 뿌린 무였다⁠. 정문 무사 하나가 순찰을 돌다가 저잣거리 쪽에서 국밥 냄새가 올라오자 계단 끝에 서서 한참 코를 쳐들고 있었다는 말도 돌았다⁠.

*

나흘째 아침⁠, 진가의 수레가 계단 옆 짐길로 올라왔다⁠. 소 반 마리 넷과 돼지 여덟 마리를 실은 수레 셋이었다⁠. 앞에서 진무상이 걸어 올라왔다⁠. 흰 장포 자락에 흙 한 점 안 묻었다⁠.

장로들이 주방 마당까지 나와 수레를 맞았다⁠. 화산 장로는 거의 수레를 껴안을 뻔했다⁠. 진무상이 장로들에게 예를 올렸다⁠.

“⁠장로님들께 송구합니다⁠. 저잣거리에 소란이 일어 고기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진가가 멀리 북쪽 고을 목장에서 끌어왔습니다⁠. 길이 멀어 값은 세 배를 받아야겠습니다만⁠, 맹을 굶길 수는 없지요⁠.⁠”

“⁠세 배⁠?⁠” 소교가 주방 마당 문간에서 말했다⁠. 아무도 소교가 거기 서 있는 줄 몰랐다⁠.

“⁠맹의 셈은 이제 소교 아가씨가 하신다지요⁠.⁠” 진무상이 고개를 숙였다⁠. “⁠세 배면 많긴 합니다⁠. 그런데 저잣거리 소란을 누가 일으켰는지 생각하면⁠, 그 값은 맹이 아니라 소란 일으킨 사람이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로들의 눈이 모두 소교 뒤에 선 사람에게 갔다⁠. 갑돌이었다⁠. 어깨는 아직 천으로 묶었고⁠, 손바닥 천은 새로 갈았다⁠.

갑돌은 장로들의 눈을 받지 않고 수레로 걸어갔다⁠. 소 반 마리 하나의 뒷다리 쪽을 잡고 들어 올렸다⁠. 꿰맨 어깨가 당겼다⁠. 이 무게를 손목으로 한참 받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수레의 돼지 한 마리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세 번째 수레에서도 하나를 들었다⁠.

“⁠뭘 하는 건가⁠?⁠” 화산 장로가 물었다⁠.

“⁠들어 보는 거요⁠.⁠” 갑돌이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피가 아니었다⁠. “⁠이 돼지는 크기로 보면 아흔 근이어야 하오⁠. 근데 백 근이 넘소⁠.⁠”

“⁠무거우면 좋은 거 아닌가⁠?⁠”

“⁠고기가 무거운 거면 좋소⁠. 이건 물이 무거운 거요⁠.⁠”

진무상의 웃음이 그대로 있었다⁠. “⁠아우⁠, 장로님들 앞이네⁠. 무게를 손으로 다는 재주는 저잣거리에서나 통하지⁠. 증거가 있나⁠?⁠”

“⁠갈고리 하나하고 대야 하나만 주시오⁠.⁠”

숙수가 망설이다 주방에서 고기 거는 쇠갈고리와 놋대야를 들고 나왔다⁠. 갑돌은 마당 처마 끝 들보에 갈고리를 걸고⁠, 소 반 마리에서 뒷다리 하나를 떼어 내 걸었다⁠. 칼은 쓰지 않았다⁠. 이미 반으로 갈라 온 고기였고⁠, 관절이 맞물린 자리를 손으로 비틀자 힘줄이 길을 내주며 다리가 떨어졌다⁠. 이것을 갈고리에 걸고 아래에 대야를 놓았다⁠.

“⁠일각만 기다리시오⁠.⁠”

장로들이 서로를 보았다⁠. 일각이면 짧았다⁠. 그런데 기다려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길었다⁠. 화산 장로가 헛기침을 했다⁠. 무당 장로가 수염을 쓸었다⁠. 진무상은 팔짱을 끼고 하늘을 보았다⁠.

첫 방울은 숨 열 번쯤 지나서 떨어졌다⁠. 놋대야 바닥에 똑 소리가 났다⁠. 붉지 않았다⁠. 묽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방울이 줄이 되었다⁠. 고기 겉면에서 땀처럼 물이 배어 나와 아래로 모였고⁠, 다리 끝에서 가는 물줄기가 되어 대야로 떨어졌다⁠. 고기 냄새보다 물 냄새가 더 났다⁠. 우물물 냄새였다⁠.

일각이 지났을 때 대야 바닥은 손가락 두 마디 깊이로 차 있었다⁠. 분홍빛이 아주 엷게 도는 물이었다⁠. 갑돌은 갈고리에서 다리를 내려 손으로 들었다⁠.

“⁠아까보다 세 근 가볍소⁠.⁠”

마당이 조용했다⁠. 소교가 대야 옆에 쪼그려 앉아 물을 들여다보더니⁠, 산가지를 꺼내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빨랐다⁠. 장로들이 이 손을 보았다⁠.

“⁠다리 하나에서 일각에 세 근이에요⁠. 소 반 마리는 다리가 둘에 몸통이 있으니 넉넉잡아 열다섯 근이 물이고요⁠. 오늘 올라온 고기가 다 이렇다면⁠, 세 배 값으로 우물물을 백 근 넘게 사는 셈이에요⁠.⁠” 소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진가가 총단 주방에 고기를 댔죠⁠. 그 고기도 이랬는지는 숙수님이 아시겠네요⁠.⁠”

숙수가 하얘진 얼굴로 땅을 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이 대답이었다⁠.

화산 장로가 진무상을 돌아보았다⁠. “⁠진 공자⁠, 이게 무슨 일인가⁠?⁠”

진무상은 대야의 물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놀란 얼굴을 했다⁠. 정말 놀란 것처럼 보였다⁠.

“⁠이건 진가가 모르는 일입니다⁠. 고기 시장 행수에게 목장 일을 맡겼는데⁠, 그자가 장난을 친 모양입니다⁠. 오늘 안으로 그자를 잡아 장로님들 앞에 꿇리겠습니다⁠.⁠” 진무상이 갑돌을 보았다⁠. “⁠아우 덕에 진가 안의 썩은 살을 도려내게 됐군⁠. 고맙네⁠.⁠”

“⁠행수가 혼자 한 거요⁠?⁠”

“⁠그렇다면 그런 거지⁠.⁠”

“⁠서른 해 동안⁠?⁠”

진무상이 웃었다⁠. 이번 웃음은 짧았다⁠. “⁠아우⁠, 백정은 썩은 부위만 잘라 내면 나머지 고기는 판다지⁠. 진가도 그렇게 하겠네⁠.⁠”

갑돌은 이 말의 무게를 들어 보았다⁠. 무거웠다⁠. 시장에서 징을 치던 배 나온 행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사내는 오늘 밤 장로들 앞에 꿇리지 않을 것 같았다⁠. 꿇릴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행수를 산 채로 데려오시오⁠.⁠” 갑돌이 말했다⁠. “⁠썩은 살은 도려내기 전에 어디서부터 썩었는지 봐야 하오⁠.⁠”

“⁠그건 형당이 할 일이지⁠. 사위가 할 일은 아니고⁠.⁠” 진무상이 장로들에게 예를 올리고 돌아섰다⁠. “⁠고기는 두고 가겠습니다⁠. 값은 안 받겠습니다⁠. 물 값은 진가가 내지요⁠.⁠”

*

정오가 조금 지나서 계단 아래에서 노랫소리가 올라왔다⁠. 박자가 안 맞는 노래였다⁠. 백정들이 소 잡을 때 박자 맞추려고 부르는 소리였다⁠.

정문 무사들이 계단 끝으로 몰려갔다⁠. 계단에 사람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맨 앞에 덕순이 지게에 솥을 지고 있었고⁠, 뒤로 쇠전 영감이 지팡이 대신 갈고리를 짚고⁠, 열한 도축장의 백정들이 어깨마다 고깃덩이를 메고 있었다⁠. 돼지 반 마리⁠, 소 앞다리⁠, 갈비 한 짝⁠. 짐꾼들이 뒤에 장작과 파 단과 소금 자루를 졌다⁠. 춘길은 데인 팔을 목에 걸고 성한 팔로 무 한 자루를 끌었다⁠.

삼백 개 계단이었다⁠. 아무도 쉬지 않았다⁠. 쉬면 다시 못 일어설 것 같아서였다⁠.

덕순이 정문 앞에 섰다⁠. 이번에는 무사들이 창을 내밀지 않았다⁠. 내밀어야 하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우리 아들이 여기 사는데⁠.⁠” 덕순이 말했다⁠.

정문 무사 하나가 침을 삼키고 옆으로 비켜섰다⁠. 사흘 동안 소금 뿌린 무를 먹은 무사였다⁠.

주방 마당에 솥이 걸리고 불이 붙었다⁠. 백정들이 고기를 내려놓자 숙수가 달려와 하나씩 들어 보았다⁠. 들어 볼 때마다 숙수의 얼굴이 펴졌다⁠. 물이 없었다⁠. 덕순이 국자로 숙수를 가리켰다⁠.

“⁠거기⁠, 칼 좀 잡을 줄 알아⁠? 편육 썰기 틀렸던데⁠. 혼례 날 봤어⁠.⁠”

국밥이 끓자 덕순은 첫 그릇을 들고 장로들이 서 있는 처마 쪽이 아니라 정문 쪽으로 갔다⁠. 아까 비켜선 무사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너부터 먹어⁠. 계단 맨 아래 지키는 사람부터 먹어야 위 사람들이 체를 안 해⁠.⁠”

무사는 그릇을 받아 들고 한참 서 있었다⁠. 김이 무사의 얼굴로 올라갔다⁠. 무사는 정문 기둥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아 먹었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을 긁을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 먹고 나서 빈 그릇을 두 손으로 덕순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이 무사의 아버지도 어느 시골 장터에서 돼지를 잡았다는 것을⁠, 갑돌은 나중에야 들었다⁠. 총단에 들어온 뒤로 이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로들은 다음이었다⁠. 화산 장로가 덕순 앞에 그릇을 내밀며 헛기침을 했다⁠. 덕순이 국자를 든 채 장로를 올려다보았다⁠.

“⁠나물 사흘 드셨다며⁠?⁠”

“⁠…⁠…그렇소⁠.⁠”

“⁠그럼 두 그릇⁠.⁠”

*

해 질 녘 매서한은 한수 나루 아래쪽 갈대밭 둑에 서 있었다⁠. 노을이 내려앉아 강물이 붉었다⁠. 둑 아래에서 사공 둘이 장대로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물에 불은 비단 조끼가 먼저 보였다⁠. 단추 하나가 떨어진 조끼였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누가 진가 시장 행수라고 했다⁠. 누가 술에 취해 발을 헛디뎠을 거라고 했다⁠. 행수가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을 매서한은 알았다⁠. 진가 연회에서 늘 찻잔에 물을 따라 마시던 사람이었다⁠.

오후에 진무상은 매서한을 부르지 않았다⁠. 진가가 녹을 주고 들인 손님 무사⁠, 객경 둘을 불렀다⁠. 매서한은 이 둘이 해 질 무렵 나루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회랑에서 보았고⁠, 보고만 있었다⁠. 진무상이 매서한을 부르지 않은 까닭을 알았다⁠. 이날 아침 시장에서 칼을 칼집에 도로 넣었다⁠.

썩은 살은 도려내기 전에 어디서부터 썩었는지 봐야 한다고⁠, 이 백정이 말했다고 했다⁠. 매서한은 물에서 끌려 나오는 행수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스무 해 동안 진가 저울추를 밀던 손이었다⁠.

매서한은 둑에서 돌아섰다⁠. 허리에 두 겹으로 맨 띠가 오늘따라 갑갑했다⁠.

*

이날 밤 위장천의 침소에 갑돌과 소교가 불려 갔다⁠. 맹주는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낮보다 얼굴이 맑았다⁠. 장로들과 함께 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고 소교가 귀띔했다⁠. 의원이 말렸는데 맹주가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고⁠.

“⁠진가의 시장 행수가 해 질 녘에 한수에 떠올랐다더군⁠.⁠” 위장천이 말했다⁠. “⁠발을 헛디뎠다고 하네⁠.⁠”

갑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교가 아버지를 보았다⁠.

“⁠형당이 할 일이라고 진무상이 말했지⁠. 맞는 말이야⁠. 맹 안의 죄는 형당이 다스려⁠. 근데 지난겨울 형당주가 죽은 뒤로 그 자리에 앉겠다는 사람이 없었네⁠. 죄인을 다스리고⁠, 벌을 내리고⁠, 때로 목을 쳐야 하는 자리거든⁠. 고수들은 피를 묻히기 싫어해⁠.⁠” 위장천이 기침을 했다⁠. “⁠그래서 부당주가 반년째 형당을 쥐고 있지⁠. 진가에 줄을 댄 사람이야⁠.⁠”

“⁠무슨 말씀이오⁠?⁠”

“⁠내일 아침 장로회에서 말하겠네⁠. 형당주 자리가 비었으니⁠, 사위에게 주겠다고⁠.⁠”

소교의 손에서 산가지가 하나 떨어졌다⁠. 바닥에 굴러 갑돌의 발끝에 멈췄다⁠.

“⁠아버지⁠, 그 자리는 녹봉도 맹에서 제일 적어요⁠. 지난 형당주는 한 해 은 열두 냥 받다가 죽었어요⁠.⁠”

“⁠그러니 아무도 안 앉았지⁠. 진가 칼잡이들이 저잣거리에서 한 해 떼어 가는 은보다 적으니⁠, 사위가 웃겠구먼⁠.⁠” 위장천이 마른기침 끝에 웃었다⁠. “⁠맹에서 제일 더러운 자리야⁠. 녹봉까지 더럽게 적고⁠.⁠” 위장천이 사위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웃지 않았다⁠. “⁠사람을 벌하는 칼일세⁠. 소 잡는 칼과는 무게가 다를 걸세⁠. 들어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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