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12자)

불탄 도축장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춘길의 왼팔은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소매가 타서 살에 눌어붙었고⁠, 춘길은 이 팔을 가슴에 붙인 채 돌계단 꼭대기에서 무릎을 꿇었다⁠. 숨이 목에 걸려 말이 한 마디씩 끊겨 나왔다⁠.

“⁠형님 도축장만⁠, 탔습니다⁠. 열둘 가운데⁠, 형님 거 하나만요⁠.⁠”

“⁠사람은⁠?⁠”

“⁠저만 데었습니다⁠. 불 끄다가요⁠.⁠” 춘길이 침을 삼켰다⁠. “⁠진가 칼잡이들이 횃불 들고 왔습니다⁠. 넷이요⁠. 불 붙이고 가면서 그랬습니다⁠. 사위네 도축장은 사위가 지키라고⁠.⁠”

갑돌은 춘길의 팔을 들어 보았다⁠. 데인 팔은 성한 팔보다 무거웠다⁠. 살 속에 물이 고였다⁠. 제 옷자락을 찢어 춘길의 팔에 헐겁게 감았다⁠. 어깨의 꿰맨 자리가 당겼다⁠.

소교가 회랑 끝에서 걸어왔다⁠. 겉옷을 걸쳤는데 신발은 짝이 안 맞았다⁠.

“⁠내려가요⁠?⁠”

“⁠내려가오⁠.⁠”

“⁠어깨 일곱 바늘이에요⁠. 계단 삼백 개고요⁠.⁠” 소교가 산가지를 굴리지도 않고 말했다⁠. “⁠내려가면 진가가 바라는 대로 되는 거예요⁠. 저 불은 당신을 내려오게 하려고 지른 거니까⁠.⁠”

“⁠알고 있소⁠.⁠”

“⁠알면서 가요⁠?⁠”

“⁠거기 내 칼 갈던 숫돌이 있소⁠.⁠” 갑돌은 춘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열한 집이 지금 자기 도축장 지붕을 올려다보고 있을 거요⁠. 다음은 누구 차례냐고⁠.⁠”

*

불은 새벽녘에야 꺼졌다⁠. 도축장은 기둥 넷만 남았다⁠. 서까래가 내려앉은 자리에 잿더미가 무릎 높이로 쌓였고⁠, 이 속에서 아직 연기가 가늘게 올라왔다⁠. 갈고리에 걸려 있던 고깃덩이들은 검은 숯이 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탄 고기 냄새와 젖은 재 냄새가 섞여 목 안이 텁텁했다⁠.

갑돌은 잿더미에 손을 넣었다⁠. 뜨거웠다⁠. 손바닥의 천이 금세 검게 물들었다⁠. 이 사람은 도마가 있던 자리를 더듬어 찾았다⁠. 도마는 반쯤 숯이 되어 있었다⁠. 이 옆에 숫돌이 있었다⁠. 아버지가 쓰던 숫돌이었다⁠. 불에 달아 한가운데가 갈라져 있었다⁠.

갑돌은 갈라진 숫돌 두 쪽을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원래보다 가벼웠다⁠. 스무 해 동안 숫돌 속에 밴 물기가 밤사이에 다 빠져나간 무게였다⁠.

뒤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수 나루의 다른 도축장 주인들⁠, 백정들⁠, 짐꾼 몇⁠. 열한 집에서 다 나와 있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맨 앞에서 등이 굽은 늙은 백정이 침을 뱉었다⁠. 나루에서 제일 오래 소를 잡은 사람이라 다들 쇠전 영감이라 불렀다⁠.

“⁠높은 데 장가가더니 불을 달고 내려왔구먼⁠.⁠”

“⁠영감님⁠.⁠”

“⁠진가가 그 은 두 푼 떼어 갈 때 우리는 그냥 냈어⁠. 소 다리 부러지는 것보다 은 두 푼이 싸니까⁠. 그게 장사야⁠.⁠” 쇠전 영감이 지팡이로 잿더미를 쿡 찔렀다⁠. “⁠근데 네가 맹주 사위가 됐다니까 진가가 이제 은 두 푼으로 안 끝나겠지⁠. 다음 불은 누구네 지붕이냐⁠?⁠”

뒤에서 누가 맞장구쳤다⁠. 또 누가 다른 말을 했다⁠. 맹주 사위니까 맹이 지켜 주겠지⁠. 지켜 주긴 뭘 지켜⁠, 총단 사람들은 계단을 안 내려와⁠. 목소리들이 겹치고 높아졌다⁠. 갑돌은 숫돌 두 쪽을 든 채 이 목소리들을 다 들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영감님 말이 맞소⁠.⁠” 갑돌이 말했다⁠.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나는 저 위에서 은 두 푼을 걷어 주겠다는 말을 듣고 장가갔소⁠. 근데 저 위 사람들은 계단을 안 내려오오⁠. 그래서 내가 내려왔소⁠.⁠”

“⁠내려와서 뭘 할 건데⁠?⁠”

“⁠아침에 시장에 나가겠소⁠. 오늘 시장에서 진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앞에 내가 서겠소⁠. 뒤에 안 서도 되오⁠. 보기만 하시오⁠.⁠”

쇠전 영감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갔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춘길이 데인 팔을 가슴에 붙인 채 갑돌 옆에 섰다⁠.

“⁠보기만 하라니요⁠. 형님⁠, 그 사람들 진짜 보기만 할 겁니다⁠.⁠”

“⁠그럼 보는 거지⁠.⁠”

*

동틀 무렵 덕순의 국밥집 부엌에서 춘길은 데인 팔을 찬물 동이에 담그고 이를 악물었다⁠. 덕순이 이 옆에서 아들의 어깨 천을 갈았다⁠. 피가 배어 나온 천을 떼어 내며 덕순이 물었다⁠.

“⁠지붕은 왜 뚫었냐⁠?⁠”

“⁠내가 안 뚫었다니까요⁠.⁠”

“⁠저잣거리에서는 네가 뚫었다더라⁠. 힘이 남아돌아서⁠.⁠” 덕순이 새 천을 꽉 당겼다⁠. 갑돌이 숨을 들이켰다⁠. “⁠장가간 첫날밤에 신부는 침상에서 자고 신랑은 바닥에서 잤다는 말도 있던데⁠, 그건 무슨 소리냐⁠?⁠”

“⁠술 시합에서 졌소⁠.⁠”

덕순의 손이 멈췄다⁠. “⁠여자한테⁠?⁠”

“⁠열넷째 잔에서⁠.⁠”

덕순은 한참 아들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다가⁠,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철썩 쳤다⁠.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냐⁠! 백정 아들이 술로 지면 어디 가서 고기를 팔아⁠!⁠”

부엌 문간에서 누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 셋이 돌아보았다⁠. 소교가 서 있었다⁠. 뒤에 다홍이 약 상자를 안고 숨을 몰아쉬었다⁠. 둘 다 치맛단이 흙투성이였다⁠. 소교가 계단 삼백 개를 내려온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맹 의원한테 받은 화상약이에요⁠. 춘길 씨 팔에 쓰세요⁠.⁠” 소교가 약 상자를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덕순을 보았다⁠. “⁠어머님⁠, 열다섯 잔이었어요⁠. 저는 열다섯째도 마셨어요⁠.⁠”

덕순은 며느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더니 솥뚜껑을 열고 국밥을 한 그릇 펐다⁠. 소교는 이 자리에 선 채로 이것을 다 먹었다⁠. 덕순이 말없이 한 그릇을 더 펐다⁠. 소교가 이것도 다 먹었다⁠. 세 번째 그릇을 받을 때 다홍이 아가씨의 소매를 잡아당겼지만 소교는 뿌리쳤다⁠.

덕순이 아들을 돌아보았다⁠. “⁠너는 이런 사람한테 술로 덤볐냐⁠?⁠”

*

한수 나루 고기 시장은 해 뜨기 전부터 붐볐다⁠. 갈고리에 걸린 고깃덩이들이 장대 아래로 줄지어 흔들렸고⁠, 파리를 쫓는 부채 소리와 흥정 소리와 수레바퀴 소리가 한데 엉켰다⁠. 이날 아침에는 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시장 한가운데 큰 저울 앞에서 징이 울렸다⁠.

진가의 고기 시장 행수가 거기 서 있었다⁠. 쉰 남짓⁠, 배가 나왔고 비단 조끼 단추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양옆에 진가 칼잡이 여섯이 섰다⁠. 그리고 뒤에 매서한이 있었다⁠. 허리에 띠를 두 겹으로 매고 있었다⁠. 매듭이 앞에 하나⁠, 옆에 하나였다⁠.

“⁠오늘부터 한수 나루 고기는 진가 수레에 실어야만 시장에 나간다⁠!⁠” 행수가 외쳤다⁠. “⁠진가 저울에 달고⁠, 진가 수레 값은 한 근에 한 푼⁠! 도축장에서 바로 내다 파는 고기는 누가 먹고 탈이 나도 진가가 모른다⁠!⁠”

시장이 조용해졌다⁠. 열한 도축장 사람들이 고깃덩이 뒤에서 서로를 보았다⁠.

갑돌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저울 앞으로 나갔다⁠. 오른팔은 천으로 목에 걸었고⁠, 왼손은 천에 감겨 있었다⁠. 행수가 갑돌을 보고 일부러 크게 웃었다⁠.

“⁠아이고⁠, 사위 나리⁠. 총단에서 내려오셨소⁠? 계단이 높던데⁠.⁠”

“⁠그 저울로 고기를 다오⁠?⁠”

“⁠진가 저울이오⁠. 맹이 인정한 저울이지⁠.⁠”

갑돌은 근처 장대에 걸린 돼지 뒷다리 하나를 왼손으로 내렸다⁠. 손바닥이 아팠다⁠. 들어 올린 순간 손목에 실리는 무게로 알았다⁠.

“⁠서른 근⁠.⁠”

갑돌은 이것을 진가 저울에 올렸다⁠. 저울대가 기울다가 섰다⁠. 진가 칼잡이 하나가 추를 밀고 외쳤다⁠. “⁠스물다섯 근⁠!⁠”

갑돌은 아무 말 없이 고기를 내려 옆 국밥집 골목 입구⁠, 덕순의 가게에 늘 쓰던 낡은 대저울에 걸었다⁠. 덕순이 앞치마를 두른 채 가게에서 나와 팔짱을 끼고 섰다⁠. 춘길이 성한 손으로 추를 밀었다⁠. 저울대가 서른에서 멈췄다⁠.

“⁠서른 근⁠.⁠”

시장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가 말했다⁠. 진가 저울이 다섯 근을 먹는다⁠. 누가 받았다⁠. 서른 근에 다섯 근이면 여섯에 하나다⁠. 이 말이 시장을 한 바퀴 돌아 저울 앞으로 돌아오는 데 숨 열 번이 안 걸렸다⁠.

행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위 나리⁠, 이건 맹 일이 아니라 장사 일이오⁠. 장사는 진가가 하오⁠. 총단 사람은 총단 일이나 하시오⁠.⁠”

“⁠나는 총단 사람이 아니오⁠. 한수 나루 백정이오⁠.⁠” 갑돌이 고깃덩이를 갈고리에서 내렸다⁠. “⁠장사 일이면⁠, 저 저울로 여섯에 하나씩 떼어 간 고기 값을 오늘부터 돌려주시오⁠.⁠”

“⁠이놈이⁠!⁠”

행수가 손짓했다⁠. 칼잡이 여섯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들 사이를 지나 매서한이 맨 앞에 섰다⁠. 검집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바지를 붙잡을 손이 필요 없었다⁠.

“⁠끈을 두 겹 맸구먼⁠.⁠” 갑돌이 말했다⁠.

“⁠말했다⁠. 다음엔 끈이 아니라고⁠.⁠”

“⁠오늘은 내 팔이 하나요⁠. 그쪽은 둘이고⁠. 셈이 안 맞소⁠.⁠”

“⁠셈은 네 아내가 한다더군⁠.⁠” 매서한의 엄지가 검의 코등이를 밀었다⁠. 칼날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나왔다⁠. 아침 햇빛이 이 한 마디에 모였다⁠.

이때 갑돌의 등 뒤에서 무언가가 도마 위에 꽂히는 소리가 났다⁠. 쿵⁠. 갑돌은 돌아보지 않았다⁠. 무게로 알았다⁠. 소 잡는 큰 칼이 나무에 박히는 무게였다⁠.

쇠전 영감이었다⁠. 굽은 등으로 갑돌 뒤 세 걸음 자리에 서서⁠, 제 도축장에서 들고 온 도마에 큰 칼을 꽂아 놓고 있었다⁠.

“⁠나는 보기만 하는 거여⁠.⁠” 영감이 말했다⁠. “⁠칼 놓을 데가 없어서 여기 놨어⁠.⁠”

또 하나 꽂혔다⁠. 또 하나⁠. 세 번째 도축장 주인⁠, 다섯 번째 도축장의 형제 둘⁠, 짐꾼 셋이 어깨에 멘 갈고리를 땅에 내리꽂았다⁠. 국밥집 골목에서 덕순이 국자를 들고 나왔다⁠. 뒤이어 국밥집 아낙 넷이 각자 국자와 주걱을 들었다⁠. 어떤 아낙은 국자가 없어서 냄비 뚜껑을 들었다⁠.

열한 도축장이 다 나왔다⁠. 갑돌 뒤에 칼 꽂힌 도마가 반원으로 늘어섰다⁠.

매서한의 눈이 이 반원을 한 번 훑었다⁠. 셈하는 눈이었다⁠. 매서한은 엄지를 거두었다⁠. 칼날이 칼집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행수님⁠. 여기서 피를 보면 맹이 계단을 내려옵니다⁠.⁠”

“⁠그게 무슨⁠…⁠…⁠.⁠”

“⁠저 사람 장인이 맹주입니다⁠.⁠” 매서한은 이 말만 하고 돌아섰다⁠.

행수는 얼굴이 붉었다가 하얘졌다가 다시 붉어졌다⁠. 징채를 칼잡이에게 던지고⁠, 갑돌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좋소⁠. 저잣거리는 사위 나리 마음대로 하시오⁠. 근데 잊지 마시오⁠. 저 위 총단 주방에 들어가는 고기는 서른 해 동안 진가가 댔소⁠. 오늘부터 한 근도 안 올라가오⁠. 장로님들이 나물만 씹으면서 누구 탓을 할지 보시오⁠.⁠”

행수와 칼잡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진가 저울만 덩그러니 남았다⁠. 누가 이 저울을 걷어찼다⁠. 저울추가 굴러가 하수구에 빠졌다⁠. 시장 사람들이 웃었다⁠.

갑돌은 웃지 않았다⁠. 반원으로 선 도마들 사이를 걸어 쇠전 영감 앞에 섰다⁠.

“⁠보기만 한다더니⁠.⁠”

“⁠보기만 했지⁠. 칼은 놓을 데가 없어서 놨다니까⁠.⁠” 영감이 도마에서 큰 칼을 뽑아 어깨에 메었다⁠. “⁠근데 총단이 굶으면 네 장인이 너를 내려보낸 셈이 된다⁠. 위에서는 네가 저잣거리 편 들다 맹을 굶겼다고 할 거여⁠. 그건 알고 서 있었냐⁠?⁠”

갑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장 가장자리 생선 좌판 옆에 서 있던 소교가 다가왔다⁠. 아까부터 거기서 산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저울 앞의 일을 다 보고 있었다⁠.

“⁠여섯에 하나씩⁠, 스무 해예요⁠. 진가가 이 시장 저울로 먹은 고기를 소로 치면 몇 마리인지 셈해 봤어요⁠.⁠”

“⁠몇 마리요⁠?⁠”

“⁠총단 장로들이 앞으로 석 달을 나물만 먹어도 남는 만큼이요⁠.⁠” 소교가 산가지를 소매에 넣었다⁠. “⁠근데 장로들은 그 셈을 안 들을 거예요⁠. 배고픈 사람은 셈을 안 들어요⁠.⁠”

갑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돌계단 삼백 개 위에 총단 지붕이 아침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거기서 오늘 점심에 장로들이 받을 밥상을 생각했다⁠. 고기 한 점 없는 밥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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