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66자)

국밥 영감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총단 정문을 지키는 무사 둘은 이날 아침 돌계단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을 처음에는 솥으로 알았다⁠. 지게에 얹힌 무쇠솥이 혼자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솥 아래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솥이 계단 이백 몇 번째쯤에서 멈추고 거기서 욕이 들려왔을 때였다⁠.

“⁠어떤 놈이 계단을 이렇게 많이 만들었어⁠! 올라오라고 만든 거야⁠, 오지 말라고 만든 거야⁠?⁠”

박덕순이었다⁠. 무쇠솥에 국물을 반쯤 채워 지게에 묶고⁠, 이 위에 뚜껑을 새끼줄로 동여맨 채였다⁠. 뒤에서 춘길이 장작 한 짐을 지고 헐떡였다⁠. 덕순의 장딴지가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떨렸는데⁠, 걸음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정문 앞에 이르자 무사 하나가 창을 비스듬히 내밀었다⁠.

“⁠총단이오⁠. 저잣거리 사람은 들어올 수 없소⁠.⁠”

“⁠우리 아들이 여기 사는데⁠?⁠”

“⁠아드님이 누구시오⁠?⁠”

“⁠여기 사위⁠.⁠”

무사 둘이 서로를 보았다⁠. 덕순은 이 틈에 지게를 고쳐 메고 창대 아래로 고개를 숙여 지나갔다⁠. 솥이 창대를 밀어 올렸다⁠. 무사가 창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이에 솥과 덕순은 이미 정문 안 마당에 들어서 있었다⁠.

“⁠어머니⁠, 총단 사람은 내려오지 않고 저잣거리 사람은 올라가지 않는다는데요⁠.⁠” 춘길이 숨 사이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올라왔지⁠. 저 사람들이 안 내려오니까⁠.⁠” 덕순이 마당 한가운데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우리 아들 칼 맞았다며⁠. 손바닥에⁠. 그것도 혼례상 앞에서⁠. 거기다 지붕까지 무너졌다며⁠. 저잣거리에 소문이 쫙 났어⁠. 지붕 무너진 집에서 밥이나 제대로 먹겠어⁠? 연무장이 어디야⁠?⁠”

*

연무장은 총단 서쪽⁠, 장강이 내려다보이는 돌마당이었다⁠. 바닥에 깐 돌은 백 년 동안 발에 밟혀 반들거렸고⁠, 가장자리에 장로들의 의자가 놓였다⁠. 뒤로 세가 사람들과 맹의 무사들이 빙 둘러섰다⁠. 비무까지는 아직 한 시간쯤 남아 있었다⁠.

덕순은 연무장 한쪽 구석⁠, 무기 걸이 옆에 솥을 내려놓았다⁠. 춘길이 돌을 괴고 장작을 넣었다⁠. 불이 붙자 돼지 뼈 우린 국물 냄새가 연무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장로 몇이 코를 쳐들었다⁠. 무사들 몇이 침을 삼켰다⁠.

갑돌은 오른쪽 기둥 옆에 서서 손바닥의 천을 고쳐 감다가 이 냄새에 고개를 돌렸고⁠, 그대로 굳었다⁠.

“⁠어머니⁠.⁠”

“⁠밥은⁠?⁠”

“⁠먹었소⁠.⁠”

“⁠거짓말⁠. 입술이 허옇네⁠.⁠” 덕순이 국자로 솥을 저었다⁠. “⁠칼 맞은 손 내놔 봐⁠. 아니⁠, 됐다⁠. 내놔 봤자 내가 뭘 해⁠. 국밥이나 먹어⁠.⁠”

이때 연무장 입구에서 사람들이 길을 텄다⁠. 맹주 위장천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었고⁠, 양옆에서 총관과 소교가 팔을 받쳤다⁠. 걸음은 느렸는데 장로들이 하나씩 일어섰다⁠. 위장천은 장로석 가운데 의자로 가다가 냄새를 맡고 멈춰 섰다⁠. 그리고 무기 걸이 쪽 구석을 보았다⁠.

덕순의 국자가 솥 안에서 멈췄다⁠.

“⁠…⁠…국밥 영감⁠?⁠”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무사 하나가 들고 있던 창을 떨어뜨릴 뻔하다가 붙잡았다⁠.

덕순이 국자를 든 채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춘길이 덕순의 앞치마 끈을 잡았다가 놓쳤다⁠.

“⁠영감⁠! 영감 맞지⁠? 열 해를 우리 집 구석 자리에 앉아서 소금 덜 넣어 달라⁠, 파 빼 달라⁠, 고기는 비계 없는 데로 달라 별 주문을 다 하고⁠, 값은 꼭 다섯 푼씩 덜 내고 다음에 준다던 그 영감⁠! 석 달 전부터 발길 끊어서 죽은 줄 알았더니 여기 앉아 있어⁠?⁠”

총관의 얼굴이 하얘졌다⁠. 장로들 가운데 누군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위장천은 덕순을 한참 보더니⁠,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기침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웃음이 다시 기침으로 바뀌었다⁠. 소교가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덕순을 보았다⁠. 셈하는 눈이었다⁠.

“⁠어머님⁠, 우리 아버지가 다섯 푼씩 덜 낸 게 몇 번이에요⁠?⁠”

“⁠몇 번이긴⁠. 열 해 동안 한 달에 서너 번씩 왔으니까⁠…⁠…⁠.⁠” 덕순이 손가락을 꼽다가 말았다⁠. “⁠많이⁠!⁠”

소교가 소매에서 산가지 다섯 개를 꺼내 손바닥 위에 놓고 두 번 굴렸다⁠.

“⁠한 달 세 번 반이면 한 해 마흔두 번⁠. 열 해면 사백스무 번⁠. 다섯 푼씩이면 은 스물한 냥이에요⁠.⁠” 소교가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 맹의 돈줄을 저한테 넘기기 전에 이것부터 갚으세요⁠. 사위 집 외상이에요⁠.⁠”

위장천은 대답 대신 지팡이를 짚고 덕순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국자 든 손을 내려다보았다⁠.

“⁠석 달 전부터는 의원이 고기를 못 먹게 했네⁠. 그래서 못 갔네⁠.⁠” 위장천의 목소리는 갈라졌는데 또렷했다⁠. “⁠한 그릇 주겠나⁠? 오늘은 값을 다 내지⁠.⁠”

덕순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돌아가서 그릇에 국밥을 펐다⁠. 소금을 덜 넣고⁠, 파를 빼고⁠, 비계 없는 데로⁠.

*

위장천은 장로석에 앉아 이 국밥을 천천히 먹었다⁠. 장로들이 기다렸다⁠. 진무상도 연무장 건너편에서 검을 무릎에 놓고 기다렸다⁠. 맹주가 수저를 드는 동안 아무도 비무를 시작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갑돌이 장인 곁에 섰다⁠. 위장천은 그릇을 비우고 수저를 내려놓은 뒤에야 사위를 올려다보았다⁠.

“⁠자네⁠, 그 집에 고기를 나르면서 늘 근수를 외쳤지⁠. 고깃덩이를 어깨에 메고 문으로 들어오면서⁠. 열여덟 근이오⁠, 스물 근이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네⁠.⁠”

“⁠장인어른이 그걸 다 들었소⁠?⁠”

“⁠열 해 동안 내가 겁 없이 먹은 밥은 그 집 국밥뿐이었네⁠. 총단에서는 내 밥상에 누가 무엇을 넣었는지 세 사람이 먼저 먹어 봐야 내가 먹었어⁠.⁠” 위장천이 빈 그릇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 집에는 아무도 무엇을 넣지 않았지⁠. 맹주인 줄 몰랐으니까⁠.⁠”

갑돌은 이 빈 그릇을 보았다⁠. 어머니가 저잣거리 그릇장에서 가져온 이 빠진 사기그릇이었다⁠. 그릇을 들어 보았다⁠. 비어 있어서 가벼웠다⁠.

“⁠그래서 날 고르셨소⁠?⁠”

“⁠그것도 있지⁠.⁠” 위장천이 눈을 감았다⁠. “⁠나머지는 나중에 셈하세⁠. 지금은 저 사람이 기다리네⁠.⁠”

*

진무상이 연무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흰 장포 소매를 걷어 묶었고⁠, 검집에서 검을 빼 땅에 한 번 그었다⁠. 돌바닥에 가는 금이 생겼다⁠.

총관이 갑돌에게 맹의 무기고에서 꺼낸 장검을 내밀었다⁠. 갑돌은 고개를 저었다⁠.

“⁠남의 칼은 무게를 모르오⁠.⁠”

갑돌은 소매에서 발골칼을 꺼냈다⁠. 손바닥 길이에 손가락 셋 너비⁠, 버들잎처럼 휜 칼이었다⁠. 장로석 어딘가에서 누가 웃었다⁠. 진무상의 검은 이 칼보다 세 배 길었다⁠.

“⁠시작하시오⁠!⁠”

진무상이 먼저 왔다⁠. 검이 빛으로 보였다⁠. 갑돌은 눈으로 이것을 쫓지 않았다⁠. 진무상의 발을 보았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며 무게를 실었고⁠, 검이 이 무게를 따라 왼쪽 위에서 떨어졌다⁠. 갑돌은 몸을 낮춰 이 아래로 빠졌다⁠.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 날렸다⁠.

두 번째 검은 아래에서 올라왔다⁠. 갑돌은 칼등으로 검의 옆면을 쳤다⁠. 손목이 저렸다⁠. 검이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검에 실린 힘이 무거웠다⁠. 소 한 마리가 뒷발로 걷어차는 것과 같은 무게가 칼등을 타고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내공이었다⁠. 갑돌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세 번째⁠, 네 번째⁠. 갑돌은 물러났다⁠. 연무장 가장자리까지 밀렸다⁠. 구경하던 무사들이 뒤로 물러서며 길을 터 주었다⁠. 덕순이 솥 옆에서 국자를 쥐고 서 있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국자 쥔 손 마디가 하얬다⁠.

다섯 번째 검이 오기 직전⁠, 갑돌은 무언가를 느꼈다⁠.

진무상이 오른발에서 왼발로 무게를 옮길 때마다⁠, 이 무게가 아주 조금 늦게 왼발에 앉았다⁠. 반 박자였다⁠. 소가 오래전에 다친 다리로 설 때 그렇게 섰다⁠. 무게가 다리에 실리기 전에 몸이 한 번 망설였다⁠.

갑돌은 이 반 박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데까지는 맞았다⁠. 진무상의 왼쪽 오금 앞까지 칼끝이 갔다⁠. 그런데 진무상의 검이 그보다 빨랐다⁠. 진무상은 왼발에 무게를 싣지 않고 오른발 하나로 몸을 틀었고⁠, 검이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왔다⁠. 갑돌의 오른 어깨에서 뜨거운 줄이 그어졌다⁠. 살이 갈라지는 소리를 처음으로 제 몸에서 들었다⁠.

무릎이 돌바닥에 닿았다⁠. 칼은 손에서 놓치지 않았다⁠. 검끝이 갑돌의 목 앞에 멈췄다⁠. 차가운 쇠의 냄새가 났다⁠.

“⁠졌다고 말하게⁠, 아우⁠.⁠”

진무상은 숨이 하나도 가쁘지 않았다⁠.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연무장을 둘러싼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어깨에서 흐른 피가 갑돌의 팔꿈치를 타고 돌바닥에 떨어졌다⁠.

“⁠졌소⁠.⁠”

진무상이 검을 거두려 했다⁠. 이때 갑돌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고⁠, 그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왼쪽 오금이 비 오는 날 쑤시지 않소⁠?⁠”

검이 멈췄다⁠. 진무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것은 숨 한 번 쉴 동안이었다⁠. 다시 웃음이 돌아왔을 때는 아까와 모양이 조금 달랐다⁠.

“⁠백정은 진 다음에도 말이 많군⁠.⁠”

“⁠소도 다친 다리로 설 때는 한 번 망설이오⁠.⁠” 갑돌이 칼을 소매에 넣고 일어섰다⁠. 다리가 휘청였는데⁠, 서는 데는 섰다⁠. “⁠다음에는 그 망설임보다 먼저 들어가겠소⁠.⁠”

진무상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장로석을 향해 예를 올리고⁠, 검을 칼집에 넣었다⁠. 칼집에 들어가는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

어깨는 일곱 바늘을 꿰맸다⁠. 맹의 의원이 바늘을 놓는 동안 덕순은 옆에서 국밥 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의원이 그릇을 치워 달라고 하자 덕순이 의원을 보았다⁠. 의원은 더 말하지 않았다⁠.

소교는 문틀에 기대 있었다⁠.

“⁠졌는데 왜 웃어요⁠?⁠”

“⁠그 사람 왼발을 들어 봤소⁠.⁠”

“⁠들어 봤다고요⁠?⁠”

“⁠무게를⁠.⁠” 갑돌이 국밥을 한 숟갈 떴다⁠. 오른팔이 안 올라가 왼손으로 떴다⁠. 손바닥이 아팠다⁠. “⁠소 잡을 때 다친 다리가 있는 소는 그쪽부터 넘어지오⁠.⁠”

소교가 산가지 하나를 꺼내 이로 물었다⁠. 셈을 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

해 질 녘 덕순과 춘길이 빈 솥을 지고 계단을 내려간 뒤⁠, 소교는 아버지의 침소로 갔다⁠. 위장천은 창가 의자에 앉아 강을 보고 있었다⁠. 약 사발이 손도 안 댄 채 식어 있었다⁠. 쓴 약재 냄새가 방 안에 고여 있었는데⁠, 이 위로 아직 국밥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국밥 한 그릇으로 사위를 고르셨어요⁠?⁠”

“⁠한 그릇은 아니지⁠. 사백스무 그릇이라며⁠.⁠” 위장천이 기침을 참았다⁠. “⁠네 셈이다⁠.⁠”

“⁠아버지가 저한테 말한 건 칼집이었어요⁠. 아무 칼도 안 든 빈 칼집⁠. 그래서 제가 받았고요⁠.⁠” 소교가 약 사발을 들어 아버지 손에 쥐여 주었다⁠. “⁠오늘 저 사람이 진무상 앞에서 무릎 꿇고 한 말 들으셨어요⁠? 저건 빈 칼집이 하는 말이 아니에요⁠.⁠”

위장천은 약을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빈 칼집을 사위로 들이면⁠, 진가는 칼집째 들고 가 제 칼을 꽂는다⁠. 그럼 너는 진가의 칼을 남편으로 모시게 되지⁠.⁠” 위장천이 사발을 딸에게 돌려주었다⁠. “⁠이미 칼이 든 칼집은 남이 못 들고 간다⁠. 무겁거든⁠.⁠”

“⁠그 칼이 우리를 찌르면요⁠?⁠”

“⁠그럼 네가 셈을 다시 해라⁠. 셈은 네가 나보다 빠르지 않으냐⁠?⁠”

소교는 대답하지 못했다⁠. 소매 속에서 쥔 산가지가 손가락 사이에서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밤 늦게⁠, 총단 서쪽 회랑에서 순찰 무사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갑돌이 어깨를 싸맨 채 회랑으로 나갔다⁠. 무사가 손가락으로 강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잣거리 쪽 하늘이 붉었다⁠. 한수 나루 언저리⁠, 도축장들이 늘어선 자리였다⁠. 불길이 지붕 위로 혀를 내밀 때마다 강물에 붉은 것이 길게 비쳤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었다⁠. 고기가 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돌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미친 듯이 뛰어 올라오는 발소리가 났다⁠. 가벼웠다⁠. 춘길이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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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귤까는중2026.10.26· 3화

    국밥 영감이 그냥 국밥집 할아버지는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 류청산작가2026.10.26

      무협에서 국밥집 영감이 그냥 영감인 적이 있던가요? 다만 짐작하시는 그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