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63자)

첫날밤의 술 시합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소교는 술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지붕 위에 사람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얼굴이 아니었다⁠. 누런 독에서 술을 떠 갑돌의 잔에 채우고⁠, 자기 잔에도 채웠다⁠. 술이 잔 가장자리까지 차올라 둥글게 부풀었는데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진가 사람이겠죠⁠.⁠”

“⁠아마⁠.⁠”

“⁠그럼 들어오기 전에 한 잔은 마셔요⁠. 들어오고 나면 못 마시니까⁠.⁠”

갑돌은 천장을 한 번 보고⁠, 아내를 한 번 보고⁠, 잔을 비웠다⁠. 술은 독했다⁠. 혀끝이 아니라 목 안쪽에서 불이 붙는 술이었다⁠. 저잣거리 도축장 사람들이 새벽 일 끝나고 돌려 마시는 막소주와 비슷했는데 뒷맛이 달랐다⁠. 쌀이 좋았다⁠.

“⁠무서운 줄 모르시오⁠?⁠”

“⁠무서워요⁠.⁠” 소교가 자기 잔을 비웠다⁠. 목이 한 번 움직였을 뿐이었다⁠. “⁠근데 제가 무섭다고 저 사람이 안 들어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마시는 게 남는 거죠⁠.⁠”

지붕 위의 무게는 움직이지 않았다⁠. 용마루 한가운데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다리는 무게였다⁠. 갑돌은 이 무게가 소를 잡기 전 도축장 문밖에서 서성이는 소 장수의 무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값이 맞을 때까지 안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

소교는 탁자 위에 산가지 한 줌을 쏟았다⁠. 대나무를 손가락 길이로 깎은 셈막대였다⁠. 술잔 옆에 이것을 줄지어 놓기 시작했다⁠.

“⁠아까 물었죠⁠. 당신은 뭘 받기로 했느냐고⁠.⁠”

“⁠저잣거리 도축장⁠.⁠”

“⁠도축장이요⁠?⁠”

“⁠한수 나루에 도축장이 열둘 있소⁠. 진가 칼잡이들이 거기 소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은 두 푼을 떼어 가오⁠. 안 내면 그 집 소가 밤에 다리가 부러져 있소⁠.⁠” 갑돌이 빈 잔을 내밀었다⁠. 소교가 채웠다⁠. “⁠맹주가 총관을 보내 그랬소⁠. 사위가 되면 그 칼잡이들을 저잣거리에서 걷어 주겠다고⁠.⁠”

소교의 손이 산가지를 빠르게 옮겼다⁠. 두 개⁠, 열둘⁠, 서른⁠, 다시 묶고 옆으로 밀었다⁠. 손가락이 주판알처럼 오갔다⁠.

“⁠하루 서른 마리 잡는다 치면 은 예순 푼⁠. 한 달이면 은 열여덟 냥⁠. 한 해면⁠…⁠…⁠.⁠” 소교가 산가지 묶음 하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이백열여섯 냥이네요⁠. 진가가 저잣거리 고기만으로 그만큼 먹어요⁠. 시장 자릿세랑 수레 값은 따로고요⁠.⁠”

“⁠그걸 지금 셈했소⁠?⁠”

“⁠술 한 잔 마시는 동안이요⁠.⁠” 소교가 잔을 비웠다⁠. “⁠그럼 당신 값은 한 해 이백열여섯 냥이에요⁠. 아버지가 싸게 샀네요⁠.⁠”

“⁠당신 값은 얼마요⁠?⁠”

소교의 손이 멈췄다⁠. 소교는 산가지 하나를 집어 손가락 사이로 굴렸다⁠.

“⁠맹의 돈줄 전부요⁠. 총단으로 들어오는 은과 나가는 은⁠, 문파마다 내는 몫⁠, 세가마다 받아 가는 몫⁠. 아버지는 그걸 여자한테 못 맡긴다는 장로들 때문에 서른 해를 혼자 쥐었어요⁠. 이제 손이 떨려서 못 쥐고요⁠.⁠” 소교가 산가지를 탁자에 꽂듯 세웠다⁠. “⁠그래서 저는 칼집을 받았어요⁠. 칼집이 있어야 제가 그 자리에 앉아도 장로들이 남편이 시킨 일로 알거든요⁠.⁠”

“⁠칼집이 칼을 품으면 어쩌려고 그러오⁠?⁠”

“⁠그럼 그때 셈을 다시 하죠⁠.⁠”

둘은 잔을 들었다⁠. 네 번째 잔이었다⁠. 갑돌의 귀가 조금 뜨거워졌다⁠. 소교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촛불이 소교의 눈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

여덟 번째 잔에서 지붕의 무게가 움직였다⁠.

갑돌은 이것을 발바닥으로 먼저 느꼈다⁠. 용마루의 무게가 오른쪽으로 쏠렸다가⁠, 한 번에 기와 서너 장 위로 실렸다⁠. 디딤발이었다⁠. 다음은 뛰어내리는 무게였다⁠. 탁자를 왼손으로 밀어 소교 쪽으로 넘겼다⁠. 다친 손바닥이 탁자 모서리에 짓눌려 천 아래가 축축해졌다⁠.

천장이 터졌다⁠.

기와와 흙과 서까래 조각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이 한가운데로 검은 옷의 사내가 내려왔다⁠. 혼례 대청에서 진무상 뒤에 서 있던 마른 사내였다⁠.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검이 먼저 빠져 있었다⁠.

촛불 하나가 꺼졌다⁠. 남은 하나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갑돌은 칼을 쥐었다⁠. 술이 머리를 무겁게 했는데⁠, 이상하게 이 무게 덕에 몸이 바닥에 더 단단히 붙었다⁠. 사내의 검이 왼쪽에서 왔다⁠. 빨랐다⁠. 눈으로는 못 따라갔다⁠. 대신 사내의 발이 보였다⁠. 왼발 앞꿈치에 무게가 실리고⁠, 오른발 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졌다⁠. 검은 이 무게가 옮겨 가는 쪽으로만 올 수 있었다⁠.

갑돌은 오른쪽으로 비켜서지 않고 앞으로 들어갔다⁠.

검날이 갑돌의 어깨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다⁠. 혼례복 비단이 길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갑돌의 칼은 사내의 몸을 노리지 않았다⁠. 사내의 허리⁠, 검집을 단 띠와 바지를 묶은 끈이 겹쳐 지나가는 자리를 칼등 쪽으로 걸어 당겼다⁠. 소 배 아래 힘줄을 걷어 낼 때와 같은 각도였다⁠. 끈 두 가닥이 툭 끊어졌다⁠.

사내의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갔다⁠.

방 안이 한순간 조용했다⁠. 남은 촛불 하나가 이 광경을 아주 공평하게 비추었다⁠.

사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검을 든 손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손으로 바지춤을 움켜쥐었다⁠. 두 사람 사이에 석 자가 남았다⁠. 사내가 한쪽 손만으로 검을 겨누자 검끝이 처음으로 떨렸다⁠. 바지가 무거웠다⁠.

“⁠이름이 뭐요⁠?⁠” 갑돌이 물었다⁠.

“⁠…⁠…매서한⁠.⁠”

“⁠매 호위⁠, 바지를 붙드는 데 손이 하나 들고 검에 손이 하나 드니⁠, 오늘은 손이 하나 모자라오⁠.⁠” 갑돌이 칼을 아래로 내렸다⁠. “⁠다음에 올 때는 끈을 두 겹 매고 오시오⁠.⁠”

매서한의 눈이 갑돌의 칼끝에서 얼굴로⁠, 다시 칼끝으로 갔다⁠. 이 눈에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셈하는 눈이었다⁠. 이 거리에서 바지를 놓고 검을 두 손으로 쥐면 몇 번 안에 끝낼 수 있는지 재는 눈이었다⁠.

이때 뒤에서 소교의 목소리가 났다⁠.

“⁠지금 바지 놓으면 그 꼴로 총단 순찰 무사들 앞을 지나가야 할 텐데요⁠. 문밖에 넷이 오고 있어요⁠. 발소리로 보면 셋은 술을 마셨고요⁠.⁠”

매서한이 처음으로 숨을 내쉬었다⁠. 검을 거두지 않은 채 뒷걸음으로 무너진 천장 아래까지 갔다⁠. 그리고 바지춤을 쥔 손 그대로 서까래 끝을 잡고 몸을 끌어 올렸다⁠. 한 손이었는데도 가벼웠다⁠. 지붕 위에서 기와 몇 장이 밀리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낮은 목소리가 내려왔다⁠.

“⁠다음엔 끈이 아니다⁠.⁠”

“⁠다음엔 바지를 두 겹 입고 오시오⁠.⁠”

대답은 없었다⁠. 기와 위의 무게가 담장 쪽으로 멀어졌고⁠, 곧 없어졌다⁠.

*

소교는 방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두 팔로 검은 유약의 술독을 끌어안고 있었다⁠. 천장 흙이 소교의 머리와 어깨에 하얗게 쌓였는데 독 뚜껑 위에는 한 톨도 없었다⁠. 소매로 덮고 있었다⁠.

갑돌은 소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칼이 날아오는데 술독을 안았소⁠?⁠”

“⁠이게 더 먼저 깨질 것 같아서요⁠.⁠” 소교가 독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독의 어깨를 한 번 쓸었다⁠. “⁠어머니 거예요⁠.⁠”

소교는 더 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무명천이 다 젖은 갑돌의 왼손을 보더니 혀를 차고 일어나 장 서랍에서 새 천과 약병을 꺼냈다⁠. 그리고 갑돌의 손을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 천을 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맹 일로 멀리 나가 있는 밤이면 혼자 이 독을 열었어요⁠. 저는 어려서 그게 무슨 맛인지 몰랐고요⁠. 한겨울 밤이었는데⁠, 아침에 보니 이 독 옆에 앉은 채로 차가웠어요⁠. 아버지는 열흘 뒤에 오셨고요⁠.⁠” 소교는 약병 마개를 이로 물어 뽑았다⁠. 손바닥 상처에 가루를 뿌리는 손이 빨랐다⁠. “⁠그 뒤로 이 독은 큰 시합 때만 열어요⁠. 혼자서는 안 열어요⁠.⁠”

“⁠오늘은 안 열었소⁠.⁠”

“⁠오늘은 큰 시합이 아니니까요⁠.⁠” 소교가 천을 꽉 당겨 묶었다⁠. 갑돌의 손바닥이 쿵 울렸다⁠. “⁠당신 아직 여덟 잔이잖아요⁠. 저는 아홉 잔이고요⁠.⁠”

“⁠매서한이 왔을 때 당신은 몇 잔째였소⁠?⁠”

“⁠아홉 잔째 따르고 있었어요⁠.⁠” 소교가 탁자를 세워 놓고 누런 독을 들어 보았다⁠. 반쯤 남아 있었다⁠. “⁠지붕은 내일 고치고⁠, 시합은 지금 마저 해요⁠.⁠”

창 밖에서 순찰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무너진 천장을 올려다보고⁠, 누구 하나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웅성거리다 흩어졌다⁠. 맹주 딸의 신방이었다⁠.

이 밤 시합은 열네 번째 잔에서 끝났다⁠. 갑돌이 먼저 탁자에 이마를 댔다⁠. 소교는 열다섯 번째 잔을 혼자 마시고⁠, 남편의 어깨에 이불 한 채를 던져 준 뒤 침상에 올라갔다⁠. 바닥에 누운 갑돌의 얼굴 위로⁠, 뚫린 천장 너머 여름 별이 몇 개 보였다⁠.

*

아침에 신방 문을 연 사람은 소교의 시녀 다홍이었다⁠. 스물셋⁠, 총단 안에서 소문이 제일 빠른 입이었다⁠. 다홍은 천장의 구멍을 보고⁠, 바닥에 이불을 덮고 누운 신랑을 보고⁠, 침상 위에서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자는 아가씨를 보고⁠, 그대로 문을 닫았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도 전에 총단 안에는 소문이 돌았다⁠. 백정 사위가 첫날밤에 힘을 못 이겨 지붕을 뚫었다는 소문이었다⁠. 다홍은 자기는 본 대로만 말했다고 했다⁠.

갑돌이 세숫물을 받으러 나갔을 때 다홍이 우물가에서 대야를 내밀며 이 소문을 갑돌의 얼굴에 대고 물었다⁠. 아가씨를 모시는 몸으로 사실을 알아야겠다고 했다⁠.

“⁠지붕은 내가 안 뚫었소⁠. 매 호위가 뚫었소⁠.⁠”

다홍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가 매 호위가요⁠? 그분이 왜 신방 지붕에 올라가 계셨어요⁠?⁠”

“⁠칼 들고 왔소⁠.⁠”

“⁠칼을 들고요⁠.⁠” 다홍이 대야를 꼭 쥐었다⁠. “⁠그럼 매 호위님 바지는 왜 담장 밑에 끈이 끊어진 채 떨어져 있었어요⁠? 새벽에 빨래하는 아주머니가 주웠다던데요⁠.⁠”

갑돌은 대답하지 않고 세수를 했다⁠. 다홍은 이 침묵을 대답으로 들었다⁠. 점심때가 되자 총단 안의 소문은 둘로 늘어 있었다⁠. 백정 사위가 지붕을 뚫었다는 소문과⁠, 진가 호위가 바지를 벗고 신방 지붕에 올라갔다는 소문이었다⁠. 둘을 이어 붙인 세 번째 소문은 차마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갑돌은 이 소문들을 끝까지 들을 겨를이 없었다⁠. 총관이 찾아와 장로회가 열렸다고 전했다⁠.

장로회 대청에는 의자가 열 놓여 있었다⁠. 구파에서 하나씩⁠, 그리고 맹주 자리⁠. 맹주 자리는 비어 있었다⁠. 위장천이 아침 기침이 심해 못 나왔다고 했다⁠. 장로들 아래 자리에 세가 사람들이 서 있었고⁠, 이 맨 앞에 진무상이 있었다⁠. 흰 장포가 아침 빛을 받아 눈부셨다⁠.

진무상이 갑돌을 보고 반가운 얼굴로 손을 들었다⁠.

“⁠아우⁠, 지난밤 신방에 지붕이 무너졌다지⁠? 총단 기와가 오래되긴 했어⁠.⁠” 진무상이 장로들 쪽으로 돌아섰다⁠. “⁠장로님들께 청이 있습니다⁠. 맹주의 사위는 맹의 얼굴입니다⁠. 혼례 날 칼이 날아오고⁠, 첫날밤에 지붕이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그 칼이 맹의 얼굴을 지킬 만한지⁠, 연무장에서 한번 보았으면 합니다⁠.⁠”

장로석이 술렁였다⁠. 왼쪽 끝에 앉은 무당의 장로가 수염을 쓸며 혀를 찼다⁠.

“⁠진가 장남과 저잣거리 백정이 칼을 맞대고 겨루는 비무라니⁠. 강호가 들으면 맹을 두고 웃을 걸세⁠.⁠”

“⁠웃음거리가 싫으시면 사위가 물러나면 됩니다⁠.⁠” 진무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물러나는 것도 용기지요⁠. 아우는 내일이라도 저잣거리로 돌아가 소를 잡으면 되고⁠, 맹은 맹의 일을 하면 됩니다⁠.⁠”

모든 눈이 갑돌에게 왔다⁠. 갑돌은 장로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았다⁠. 열 자리 가운데 아홉이 차 있었고⁠, 아홉 사람 모두 물러나기를 바라는 얼굴이었다⁠. 물러나면 저잣거리 도축장의 은 두 푼은 내일부터 다시 진가 칼잡이들 주머니로 갈 터였다⁠.

“⁠묻겠소⁠. 비무에서 지면 어떻게 되오⁠?⁠”

“⁠지면 지는 거지⁠.⁠” 진무상이 대답했다⁠. “⁠맹의 얼굴이 못 되는 걸 장로님들이 보시는 거고⁠.⁠”

“⁠이기면⁠?⁠”

진무상의 웃음이 아주 잠깐 굳었다가 다시 풀렸다⁠. 장로 몇이 헛기침을 했다⁠.

“⁠이기면⁠, 아무도 아우를 지붕 뚫은 신랑이라고 부르지 못하겠지⁠.⁠”

“⁠그거면 됐소⁠.⁠” 갑돌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랑 하오⁠?⁠”

진무상이 웃었다⁠. “⁠나와⁠.⁠”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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