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50자)

혼례상의 비도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한수 나루 도축장의 새벽은 김부터 올라왔다⁠. 갓 잡은 소의 몸에서 나는 김이 도마 위로 피어올라 천장 서까래에 닿았다가 흩어졌고⁠, 석갑돌은 이 김 속에서 칼을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스무 해를 쥔 발골칼은 버들잎처럼 휘어 있었고⁠, 칼날이 뼈와 힘줄 사이의 길을 찾아 들어가면 고기는 제 무게로 저절로 내려앉았다⁠. 이 무게가 손목에 실리는 순간을 좋아했다⁠.

“⁠형님⁠, 해 떴습니다⁠.⁠”

아우 춘길이 문간에서 발을 굴렀다⁠. 스물하나⁠, 도축장에 들어온 지 세 해째인데 아직도 피 냄새보다 갑돌의 혼례가 더 무서운 얼굴이었다⁠.

“⁠앞다리만 떼고⁠.⁠”

“⁠오늘 장가가시는 날이라니까요⁠. 무림맹주 사위요⁠. 맹주⁠.⁠”

갑돌은 떼어 낸 앞다리를 한 손으로 들어 갈고리에 걸었다⁠. 갈고리 끈이 팽팽해지면서 서까래가 한 번 삐걱였다⁠.

“⁠스물두 근 반⁠.⁠”

춘길이 저울추를 밀어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스물두 근 반이었다⁠.

이때 도축장 문짝이 벽에 부딪쳐 튕겨 나왔다⁠. 박덕순이었다⁠. 쉰 살⁠, 저잣거리 돼지국밥집 주인⁠, 두 팔이 팔꿈치까지 밀가루투성이였고 목소리는 한수 건너 나루터 뱃사공들까지 고개를 돌리게 했다⁠.

“⁠이놈아⁠! 신랑이 소 배 속에 들어가 있으면 신부는 소랑 절하냐⁠?⁠”

“⁠어머니⁠, 이 소는 오늘 아침 국밥집 거요⁠.⁠”

“⁠국밥은 내가 알아서 해⁠! 너는 장가나 알아서 가⁠!⁠”

덕순은 아들의 피 묻은 앞치마를 벗겨 춘길에게 던지고⁠, 벽에 걸어 둔 붉은 혼례복을 끌어 내렸다⁠. 갑돌이 팔을 넣자 소매가 팔뚝에서 걸렸다⁠. 맹에서 보내온 옷이었는데⁠, 그쪽 재봉사는 소를 들어 올리는 팔뚝을 본 적이 없었다⁠.

덕순은 밀가루 묻은 손으로 아들의 고름을 맸다⁠. 한 번 맸다가 풀고 다시 맸다⁠. 손가락이 두 번 미끄러졌다⁠. 고름을 다 매고 나서 앞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들의 발골칼이었다⁠. 손잡이에 새로 감은 끈이 보였다⁠. 덕순의 낡은 앞치마와 같은 감빛이었다⁠.

“⁠소매에 넣어 가⁠.⁠”

“⁠혼례에 칼을요⁠?⁠”

“⁠거기 사람들은 칼 없는 놈을 사람 취급을 안 해⁠. 스무 해 가까이 국밥 팔면서 다 봤다⁠.⁠” 덕순이 아들의 소매 안쪽 솔기에 칼을 밀어 넣고 이 위를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쓰지는 말고⁠. 있다는 것만 알아⁠.⁠”

*

무림맹 총단은 강가 언덕 위에 있었고⁠, 저잣거리에서 거기까지는 돌계단 삼백 개였다⁠. 저잣거리 사람은 올라가지 않았고 총단 사람은 내려오지 않았다⁠. 갑돌은 이 계단을 혼례복 차림으로 두 칸씩 올랐다⁠. 등 뒤에서 덕순이 숨을 몰아쉬며 떠들었다⁠.

“⁠사흘 전에 그 총관이란 양반이 국밥집에 왔을 때 내가 뭐랬냐⁠? 사기꾼이라고 했지⁠. 비단옷 입은 사기꾼이 제일 무섭다고⁠. 그래서 국밥을 공짜로 줬잖아⁠. 사기꾼한테 돈 받으면 엮이니까⁠.⁠”

“⁠그 사람이 혼서를 두고 갔소⁠.⁠”

“⁠혼서는 무슨⁠, 종이는 아무나 써⁠. 근데 그 양반이 국밥을 두 그릇이나 먹더라⁠. 사기꾼은 한 그릇만 먹어⁠. 그래서 믿었지⁠.⁠”

계단 위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늦었다는 소리였다⁠.

대청은 넓었다⁠. 기둥마다 붉은 비단이 감겨 있었고⁠, 좌우로 늘어선 하객석에는 강호의 아홉 큰 문파⁠, 구파의 장로들과 대대로 무공을 이어 온 가문인 세가의 가주들이 앉아 있었다⁠. 도포 차림의 도사가 코를 막았고⁠, 비단 부채를 든 세가 사람이 옆 사람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갑돌은 이 속삭임을 듣지 않아도 알았다⁠. 피 냄새였다⁠. 새벽 내내 밴 냄새는 혼례복 한 겹으로 덮이지 않았다⁠.

덕순은 문간 맨 끝자리로 안내받았다⁠. 예관이 그쪽이 신랑 측 자리라고 하자 덕순은 텅 빈 좌우를 둘러보고 말했다⁠.

“⁠신랑 측이 나 하나야⁠? 그럼 상도 하나만 차렸겠네⁠. 저 빈 상 음식은 버릴 거면 이리 줘⁠.⁠”

예관이 대꾸할 말을 찾는 사이에 덕순은 옆 빈 상의 떡 접시와 편육 접시를 끌어다 제 앞에 놓고⁠, 편육 한 점을 집어 불빛에 비춰 보더니 혀를 찼다⁠. 썰기가 틀렸다는 얼굴이었다⁠. 갑돌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리면 웃을 것 같았다⁠.

맨 위 자리에 늙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무림맹주 위장천⁠, 일흔⁠. 몸이 의자보다 작아 보였고⁠, 손등의 핏줄이 마른 덩굴처럼 불거져 있었다⁠. 위장천은 들어오는 사위를 한참 보다가 기침을 두 번 했다⁠.

예관이 목청을 높였다⁠.

“⁠신랑은 포권하시오⁠!⁠”

갑돌은 멈춰 섰다⁠. 포권이 무엇인지는 들었는데⁠, 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는 못 들었다⁠. 옆에서 붉은 면사포를 쓴 신부가 아주 작게 말했다⁠.

“⁠오른손 주먹⁠, 왼손으로 덮어요⁠.⁠”

“⁠아⁠, 고삐 쥔 손을 덮는 거구먼⁠.⁠”

“⁠…⁠…뭐라고요⁠?⁠”

“⁠소가 날뛸 때 고삐 쥔 손 위에 다른 손을 덮으면 안 놓치오⁠.⁠”

갑돌이 그렇게 손을 모으자 하객석 몇 군데서 웃음이 터졌다가 꺼졌다⁠. 면사포 안쪽에서도 짧게 숨이 샜다⁠. 웃음인지 한숨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신랑 신부는 마주 서시오⁠!⁠”

신부가 몸을 돌렸다⁠. 맹주의 외동딸 위소교⁠, 스물여섯⁠. 면사포 아래로 턱 끝과 입술만 보였는데⁠, 입술 한쪽이 올라가 있었다⁠.

“⁠일각 늦었어요⁠. 향 한 토막 다 타는 동안이요⁠.⁠”

“⁠소 한 마리 값이오⁠.⁠”

“⁠그 소는 얼마인데요⁠?⁠”

“⁠국밥 이백 그릇⁠.⁠”

소교가 입속으로 무언가를 셈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그럼 싸게 오셨네요⁠.⁠”

*

“⁠맞절⁠!⁠”

갑돌은 허리를 숙였다⁠. 머리가 내려가는 이 짧은 사이에 왼쪽 귀 옆으로 바람이 갈렸다⁠. 소리가 아니었다⁠. 무게였다⁠. 공기 속을 무언가 무거운 것이 곧게 밀고 오는 느낌이 왼쪽 뺨 살갗에 먼저 닿았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소매 안쪽 솔기에서 칼이 빠져나왔고⁠, 버들잎 같은 칼등이 날아오는 쇠를 옆에서 쳤다⁠. 쨍 소리가 대청 천장을 울렸다⁠. 튕겨 나간 쇠는 손바닥만 한 던지는 칼⁠, 비도였다⁠. 이것이 혼례상 위 삶은 돼지머리 정수리에 꽂혀 부르르 떨었다⁠.

두 번째가 바로 뒤에 왔다⁠. 이번 것은 신부 쪽이었다⁠.

칼을 다시 돌릴 틈이 없었다⁠. 갑돌은 왼손을 폈다⁠. 손바닥 한가운데로 쇠가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고⁠, 손가락 뼈 사이에서 칼날이 멈췄다⁠. 뜨거운 것이 손목을 타고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소교의 면사포 끝에서 한 치 앞이었다⁠.

대청이 조용해졌다⁠. 하객 누구도 일어서지 않았다⁠. 구파의 장로들은 앉은 그대로 갑돌의 손을 보고 있었다⁠.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열은 넘게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막지 않았다⁠.

그리고 왼쪽 하객석 세 번째 줄에서 한 사내가 일어섰다⁠. 서른 남짓⁠, 흰 장포에 허리에는 검을 찼고⁠, 웃고 있었다⁠.

“⁠이런⁠, 아우⁠. 놀랐겠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 호위가 축하 검무를 준비했는데 손이 미끄러졌어⁠. 진가의 진무상일세⁠. 미안하이⁠.⁠”

갑돌은 손바닥에서 비도를 뽑았다⁠. 피가 바닥 돌에 몇 방울 떨어졌다⁠. 돼지머리에 꽂힌 첫째 칼도 뽑아 들고⁠, 하객석 사이로 걸어갔다⁠. 대청 바닥에 혼례화 밑창이 끌리는 소리만 났다⁠. 진무상 앞 상에 비도 두 자루를 나란히 내려놓았다⁠.

“⁠두 냥 석 돈짜리요⁠. 둘 다⁠.⁠”

“⁠무게를 아는군⁠.⁠”

“⁠미끄러진 칼은 발등으로 떨어지오⁠. 도축장에서 스무 해 봤소⁠. 열두 걸음을 이렇게 곧게 날지는 않소⁠.⁠” 갑돌이 피 묻은 손을 펴서 상 위에 짚었다⁠. 상이 갑돌의 무게에 조금 기울었다⁠. “⁠다음에는 미끄러지지 않게 손에 송진을 바르라 하시오⁠.⁠”

진무상의 웃음이 그대로였다⁠. 눈만 웃지 않았다⁠. 진무상은 상 위의 비도 하나를 집어 손가락 사이에서 한 바퀴 돌렸다⁠.

“⁠백정이 칼 무게를 아는 건 알겠네⁠. 사람 무게도 아는가⁠?⁠”

“⁠들어 봐야 아오⁠.⁠”

“⁠들어 볼 생각인가⁠?⁠”

“⁠혼례 중이오⁠. 오늘은 신부만 들겠소⁠.⁠”

하객석에서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 진무상이 그쪽을 한 번 돌아보자 웃음이 끊겼다⁠. 진무상 뒤에 선 호위 하나가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서른쯤⁠, 마른 얼굴에 말이 없는 사내였다⁠. 이 사내의 오른쪽 소매만 유난히 헐렁했다⁠. 무언가를 넣어 두기 좋은 소매였다⁠.

윗자리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길게⁠, 세 번⁠. 위장천이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다가 내리며 말했다⁠.

“⁠혼례를 마저 하게⁠.⁠”

이것뿐이었다⁠. 맹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대청 끝까지 갔다⁠. 진무상이 비도를 상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갑돌은 혼례상 앞으로 돌아갔다⁠. 왼손을 소매 속에 넣어 감추고⁠, 소교 앞에 다시 섰다⁠.

“⁠맞절⁠!⁠”

이번에는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갑돌은 허리를 숙이면서 손바닥이 쿵쿵 뛰는 것을 셌다⁠. 셀 수 있는 동안은 괜찮았다⁠.

*

해가 기울 무렵 진무상은 총단 서쪽 회랑 끝에서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강은 붉은 흙물을 싣고 느리게 흘렀고⁠, 이 아래 저잣거리 지붕들 사이로 국밥집 굴뚝 연기가 몇 가닥 올라왔다⁠. 바람이 그쪽에서 불어 올 때마다 돼지 뼈 고는 냄새가 회랑 난간까지 닿았다⁠. 진무상은 소맷자락으로 코를 한 번 쓸었다⁠.

등 뒤에 호위가 서 있었다⁠. 혼례 대청에서 칼자루에 손을 얹었던 이 마른 사내⁠, 매서한이었다⁠. 매서한은 회랑에 올라온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칼은 왜 신부 쪽으로 보냈느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군⁠.⁠”

매서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첫째 칼은 막을 줄 알았다⁠. 소 잡는 놈이 칼을 막는 거야 놀랄 일이 아니지⁠.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둘째였다⁠.⁠” 진무상이 난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제 손바닥을 내주더군⁠. 오늘 처음 본 여자한테⁠.⁠”

“⁠그래서 무엇을 알았습니까⁠?⁠”

“⁠저놈을 직접 칠 필요가 없다는 걸⁠.⁠” 진무상이 돌아섰다⁠. 웃는 얼굴이 노을을 등져 반쯤 검었다⁠. “⁠오늘 밤 지붕에 올라가 봐⁠. 무게를 잰다니 재 보라지⁠. 너는 몇 근이냐⁠?⁠”

“⁠재 본 적 없습니다⁠.⁠”

“⁠그럼 오늘 알겠군⁠.⁠”

*

신방은 총단 안채 동쪽 끝에 있었다⁠. 초 두 자루가 타고⁠, 창호지 너머로 한여름 밤 벌레 소리가 들렸다⁠. 갑돌은 왼손을 무명천으로 칭칭 감은 채 침상 끝에 앉아 있었다⁠. 덕순이 감아 준 천이었다⁠. 감으면서 한마디도 안 했는데⁠, 다 감고 나서 아들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내려갔다⁠.

문이 열렸다⁠. 소교가 들어왔다⁠. 면사포는 벗었고⁠, 붉은 혼례복 위에 겉옷 하나를 걸쳤다⁠. 눈매가 가늘고 길었다⁠. 웃을 때 한쪽 입꼬리만 먼저 올라가는 얼굴이었다⁠. 양손에 술독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나는 흔한 누런 독이었고⁠, 하나는 검은 유약을 바른 오래된 독이었다⁠.

소교가 술독 둘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두 독이 탁자를 누르는 소리가 달랐다⁠. 검은 독이 반 근쯤 더 무거웠다⁠.

“⁠손은 어때요⁠?⁠”

“⁠움직이오⁠.⁠”

“⁠그럼 잔은 들겠네요⁠.⁠” 소교가 의자를 끌어 앉았다⁠. “⁠첫날밤은 술로 정해요⁠. 먼저 눕는 사람이 바닥에서 자요⁠.⁠”

“⁠무엇을 정하는 거요⁠?⁠”

“⁠이 혼인이 무엇인지요⁠.⁠” 소교가 누런 독의 봉을 뜯었다⁠. 탁한 술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아버지는 당신을 칼집으로 골랐어요⁠. 아무 칼도 안 들어간 칼집⁠. 저는 그 칼집을 쥐는 값으로 맹의 돈줄을 받기로 했고요⁠. 당신은 뭘 받기로 했죠⁠?⁠”

갑돌은 대답하기 전에 잔을 들었다⁠. 왼손이 욱신거렸다⁠. 이때였다⁠.

머리 위 서까래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소리는 없었다⁠. 기와 한 장이 다른 기와 위로 손톱만큼 밀리는 무게⁠, 사람 하나가 지붕 용마루에 발을 디디고 숨을 고르는 무게가 서까래를 타고 내려와 갑돌의 어깨에 닿았다⁠.

갑돌은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른손 소매 안에서 칼자루를 쥐었다⁠.

“⁠한 사람이오⁠.⁠” 갑돌이 낮게 말했다⁠. “⁠백십 근이 조금 넘소⁠.⁠”

1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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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0.26· 1화

    백정이 무림맹주 사위가 되는 게 그 시대에 가능했어요? 신분 때문에 난리 났을 것 같은데요?

    • 류청산작가2026.10.27

      난리 났죠. 혼례상에 비도가 날아든 게 그 난리의 첫 장면이에요.

혼례상의 비도 ·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