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457자)

맹주가 쓰러진 밤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위장천은 돌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아 있었다⁠. 등을 계단에 기대고⁠, 두 다리를 저잣거리 골목 쪽으로 뻗은 채였다⁠. 지팡이가 옆에 굴러 있었다⁠. 덕순이 이 앞에 쪼그려 앉아 맹주의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손에 국밥 그릇이 들려 있었는데⁠, 반쯤 비어 있었다⁠.

갑돌이 거룻배에서 내려 나루를 달려왔을 때⁠, 덕순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이 영감이 해 질 녘에 혼자 내려왔어⁠. 지팡이 짚고 삼백 개를⁠. 맹주가 혼자⁠. 국밥 한 그릇 달라길래 줬지⁠. 소금 덜 넣고 파 빼고⁠.⁠” 덕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반 그릇 먹고 일어서서 계단 올라가겠다더니⁠, 여기서 이러고 앉았어⁠.⁠”

위장천의 눈이 떠 있었다⁠. 사위를 올려다보는 입술이 하얬다⁠.

“⁠외상을 갚으러 왔네⁠.⁠” 위장천이 말했다⁠. 목소리가 바람 소리 같았다⁠. “⁠스물한 냥⁠. 딸이 셈한 거⁠.⁠”

“⁠그걸 왜 지금 갚으오⁠?⁠”

“⁠의원이 죽었으니 이제 약에 아무것도 안 들어가겠지⁠. 근데 이 몸은 벌써 석 달 치를 마셨어⁠. 남은 날이 며칠인지 나도 모르네⁠. 모르면 미리 갚아야지⁠.⁠”

갑돌은 장인 앞에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았다⁠.

“⁠업히시오⁠.⁠”

“⁠계단이 삼백 개야⁠.⁠”

“⁠소 앞다리 들고 하루에 열 번도 올랐소⁠.⁠”

위장천이 웃었다⁠. 웃음이 기침이 되었다⁠. 소교가 뒤따라 달려와 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었다⁠. 술기운은 얼굴에서 다 빠져나가 있었다⁠. 아버지의 팔을 들어 갑돌의 어깨에 걸었다⁠.

*

갑돌은 장인을 업고 일어섰다⁠.

가벼울 줄은 알고 있었다⁠. 지난밤 손을 들어 봤을 때 한 팔이 일곱 근이 안 되었다⁠. 그런데 등에 업고 나서야 몸 전체의 무게가 왔다⁠. 일흔 근이 안 되었다⁠. 무명옷과 뼈와 마른 숨⁠. 열한 살 때 국밥집으로 메고 들어가던 돼지 반 마리보다 가벼웠다⁠.

첫 계단을 밟았다⁠. 허벅지의 찔린 자리가 당겼다⁠. 등 딱지가 장인의 가슴에 눌렸다⁠.

덕순이 등롱을 들고 앞에 섰다⁠. 소교가 뒤에서 아버지의 등을 받쳤다⁠. 다홍과 춘길이 뒤를 따랐다⁠. 계단 위 총단은 깜깜했다⁠. 저잣거리 쪽에서 국밥집 아낙들이 하나둘 골목 어귀에 나와 이 행렬을 올려다보았다⁠.

쉰 번째 계단쯤에서 위장천이 사위의 귀에 대고 말했다⁠.

“⁠스무 해 전 그날⁠, 나도 그 시장에 있었네⁠.⁠”

갑돌의 발은 멈추지 않고 쉰한 번째 계단을 밟았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맹의 무리 맨 뒤에 내가 있었지⁠. 맨 앞에 진가 가주가 있었고⁠. 그 사람은 열흘 전 마지막 싸움에서 왼팔을 잃었어⁠. 진가 사람 마흔한 명을 서쪽 골짜기에 묻고 오는 길이었네⁠. 술을 마시지 않고는 말을 탈 수가 없었다더군⁠.⁠” 위장천의 숨이 갑돌의 목덜미에 닿았다⁠. 뜨거웠다가 식었다⁠. “⁠고기 수레 하나가 길을 막았어⁠. 진가 가주가 손바닥을 내렸지⁠. 나는 말 위에서 그걸 봤네⁠.⁠”

갑돌은 여든 번째와 아흔 번째 계단을 지나며 수를 세었다⁠. 수를 세는 동안은 발이 멈추지 않았다⁠.

“⁠말을 세우고 내려가려 했네⁠. 근데 내려가면 진가 가주를 그 자리에서 잡아야 했어⁠. 마흔한 명을 묻고 온 사람을⁠, 백정 하나 때문에⁠. 그날 진가가 맹을 떠났으면 맹은 반으로 갈라졌을 거야⁠. 서쪽의 적은 강 건너에 아직 있었고⁠.⁠” 위장천이 숨을 골랐다⁠. “⁠그래서 나는 말을 세우지 않았네⁠. 해 질 녘에 관아 사람 하나를 보내 시신을 보게 하고⁠, 그것으로 끝냈지⁠. 덮었어⁠.⁠”

백오십 번째 계단에서 갑돌은 처음으로 발을 멈췄다⁠. 숨이 찬 것은 장인의 무게 탓이 아니었다⁠.

뒤에서 소교가 아버지의 등을 받친 손에 힘을 주었다⁠. 앞에서 덕순이 등롱을 든 채 돌아보지 않았다⁠. 등롱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열 해 전에 그 국밥집을 찾아갔네⁠. 백정 과부가 국밥집을 한다길래⁠. 들어가니 열여덟 살짜리 백정이 돼지 반 마리를 메고 들어오면서 근수를 외치더군⁠. 스무 근이오⁠. 그 목소리를 듣고 구석 자리에 앉았어⁠. 그 뒤로 열 해⁠.⁠” 위장천이 웃었다⁠. 웃음이 등 위에서 떨렸다⁠. “⁠값을 다섯 푼씩 덜 낸 건⁠, 외상이 있어야 다시 갈 핑계가 생겨서였네⁠. 다 내면 다시 갈 이유가 없잖나⁠.⁠”

덕순의 등롱이 멈췄다⁠. 덕순이 계단 위에서 돌아섰다⁠. 등롱 불빛이 아래에서 덕순의 얼굴을 비췄다⁠. 덕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 맹주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계단을 올랐다⁠. 걸음이 아까보다 빨랐다⁠.

“⁠나를 원망하게⁠.⁠” 위장천이 말했다⁠. “⁠진가를 원망하는 건⁠, 맹회가 끝나고 하게⁠. 그 전에 하면 진무상이 그걸로 자네를 칠 거야⁠. 원수를 갚으러 맹을 쥐려는 백정이라고⁠.⁠”

갑돌은 다시 백오십한 번째 계단을 밟았다⁠.

이백 번째 계단 근처에서 장인의 고개가 갑돌의 어깨에 툭 떨어졌다⁠. 무게가 달라졌다⁠. 잠든 사람은 깬 사람보다 무거웠다⁠. 몸이 버티기를 그만두고 업은 사람에게 다 맡겼다⁠. 갑돌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이 무게가 반가웠다⁠. 숨을 쉬는 무게였다⁠. 이백서른 번째쯤에서 장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장인어른⁠.⁠”

“⁠말하게⁠.⁠”

“⁠다음에 국밥집 가시면 다섯 푼 더 내시오⁠. 우리 어머니는 외상 핑계 없어도 영감을 들일 거요⁠.⁠”

등 위에서 대답이 없었다⁠. 숨소리만 들렸다⁠. 이 숨이 고르게 이어지는 것을 갑돌은 삼백 번째 계단까지 세었다⁠.

*

맹주의 침소에 의원이 없었다⁠. 맹의 의원은 죽었고⁠, 장로회가 성 안에서 새 의원을 부르러 보냈다⁠. 이때까지 소교가 아버지 머리맡을 지켰다⁠. 덕순은 부엌에 내려가 미음을 쑤었다⁠. 갑돌은 침소 문 앞에 섰다⁠.

위장천은 잠들기 전에 사위를 불러 손바닥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손바닥만 한 검은 쇳조각이었다⁠. 한쪽 면에 맹 자 한 글자가 돋을새김으로 박혀 있었다⁠. 무거웠다⁠. 크기에 비해 이상하게 무거웠다⁠. 서른 해 동안 맹주의 품에 있던 무게였다⁠.

“⁠맹주령이네⁠. 맹회가 열리기 전까지 맹주가 쥐고 있어야 해⁠. 맹주가 못 쥐면 장로회가 쥐고⁠, 장로회가 쥐면 맹회도 장로회가 열어⁠. 그럼 진가가 열지⁠.⁠” 위장천이 눈을 감았다⁠. “⁠맹회 날 단상에 올려놓게⁠. 그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주지 말고⁠.⁠”

*

밤이 이슥해서 회랑에 발소리가 몰려왔다⁠. 장로 넷이었다⁠. 공동⁠, 청성⁠, 그리고 둘⁠. 이 앞에 진무상이 섰다⁠. 진가 무사 여섯이 뒤에 섰다⁠. 이 맨 뒤에 매서한이 있었다⁠.

“⁠맹주께서 쓰러지셨다 들었네⁠.⁠” 진무상이 침소 문 앞에 선 갑돌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걱정스러웠다⁠. “⁠맹주께서 정사를 보지 못하시면 맹주령은 장로회가 맡는 게 맹의 법이야⁠. 장로님들이 받으러 오셨네⁠.⁠”

“⁠맹주께서 주무시오⁠.⁠”

“⁠그러니까 깨우지 않고 받아 가겠다는 거지⁠.⁠”

“⁠맹주령은 맹주 품에 있소⁠.⁠” 갑돌이 문틀에 손을 짚었다⁠. 소매 속에 맹주령이 있었다⁠. 이 무게가 팔뚝을 눌렀다⁠. “⁠깨어나시면 맹주가 직접 주실 거요⁠. 그 전에는 이 문을 아무도 못 넘소⁠.⁠”

공동 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형당주⁠, 장로회에 맞서겠다는 건가⁠?⁠”

“⁠오늘 밤은 형당주가 아니라 사위로 여기 서 있소⁠.⁠”

진무상이 웃었다⁠. 그리고 갑돌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둘 사이가 두 걸음이 되었다⁠. 아주 작게⁠, 갑돌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계단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 등에 업힌 늙은이가 무슨 이야기를 해 줬길래 얼굴이 그런가⁠?⁠”

갑돌은 진무상의 얼굴을 보았다⁠. 흰 장포⁠, 웃는 입⁠, 웃지 않는 눈⁠. 스무 해 전 이 말 위의 사내는 왼쪽 소매가 비어 있었다⁠. 진무상은 이 사내의 아들이었다⁠. 이날 진무상은 열두 살이었다⁠. 진가 땅 뒷산에 비석 마흔한 개가 서던 해였다⁠.

“⁠한수 나루 고기 시장⁠, 스무 해 전 여름⁠. 왼쪽 소매가 피에 젖어 비어 있던 사람⁠.⁠” 갑돌이 말했다⁠. 높지 않은 목소리였다⁠. 장로들은 듣지 못했다⁠. 진무상은 들었다⁠. “⁠그 사람이 손바닥을 내린 고기 수레 옆에⁠, 여덟 살짜리가 하나 서 있었소⁠.⁠”

진무상의 웃음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날 일을 기억 못 하시네⁠.⁠” 진무상이 말했다⁠. “⁠술에 취해 계셨어⁠. 마흔한 사람을 묻고 오던 길이었고⁠.⁠”

“⁠나는 기억하오⁠.⁠”

진무상이 칼자루를 쥐었다⁠. 갑돌의 손이 소매 속에서 칼자루를 쥐었다⁠. 진가 무사 여섯이 일제히 칼을 반쯤 뽑았다⁠. 회랑 등롱 불빛이 여섯 개의 칼날에 하나씩 걸렸다⁠.

갑돌 뒤에서 문이 열렸다⁠. 소교가 나왔다⁠. 손에 산가지 한 줌을 쥐고 있었다⁠. 갑돌 옆에 섰다⁠. 뒤이어 부엌에서 올라온 덕순이 미음 그릇과 국자를 들고 섰다⁠.

“⁠맹주 병실 앞에서 칼 뽑는 분이 몇인지 세고 있어요⁠.⁠” 소교가 말했다⁠. “⁠여섯이에요⁠. 장로님들은 보셨죠⁠?⁠”

회랑 끝에서 또 발소리가 났다⁠. 화산 장로였다⁠. 잠옷 위에 겉옷만 걸치고 검을 들고 있었다⁠. 장로가 숨을 몰아쉬며 진가 무사들 뒤에 섰다⁠.

“⁠맹주 병실 앞에서 칼 뽑는 자는 내가 친다⁠. 화산 검이 녹슬었는지 시험해 보려면 해 봐라⁠.⁠” 장로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국밥집 아주머니⁠, 그 미음에 고기 좀 넣어 주시오⁠. 나는 그 국밥을 두 그릇 먹고 소화가 잘되는 사람이오⁠.⁠”

진무상은 칼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숨 다섯 번이 지나갔다⁠. 그리고 뗐다⁠. 진가 무사들이 칼을 넣었다⁠. 매서한의 칼은 처음부터 뽑혀 있지 않았다⁠.

공동 장로가 헛기침을 했다⁠. “⁠맹주령은 맹주가 깨어나실 때까지 맹주께 둔다⁠. 대신 맹회를 미룰 수 없다⁠. 장로회가 정하겠다⁠. 사흘 뒤다⁠.⁠”

진무상이 돌아섰다⁠. 걸어가다 멈추고⁠, 어깨 너머로 말했다⁠.

“⁠아우⁠, 맹회에서 장로님들께 그 이야기를 꼭 하게⁠. 스무 해 전 고기 수레 이야기⁠. 원수 갚으러 맹을 쥐려는 사람이 누군지 다들 알게⁠.⁠”

*

회랑이 비자 소교가 문턱에 주저앉았다⁠. 산가지를 쥔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갑돌이 이 옆에 앉았다⁠. 허벅지가 접히지 않아 한쪽 다리를 뻗었다⁠.

“⁠계단에서 다 들었어요⁠.⁠” 소교가 말했다⁠. 침소 안 아버지의 숨소리를 듣느라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 아버지를 그 자리에 두고 간 사람이 우리 아버지예요⁠. 저는 그 사람 딸이고요⁠.⁠”

“⁠알고 있소⁠.⁠”

“⁠맹회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 진무상 말대로 돼요⁠. 원수 갚으러 맹을 쥐려는 백정⁠. 구파 장문인들은 그 말을 좋아할 거예요⁠.⁠” 소교가 산가지 하나를 손가락으로 꺾었다⁠. 대나무가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안 하면 당신 아버지 일은 또 덮여요⁠. 스무 해 전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덮는 거고요⁠. 셈이 안 서요⁠. 어느 쪽으로 해도⁠.⁠”

갑돌은 소교의 손에서 반으로 꺾인 산가지를 빼냈다⁠. 두 쪽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무게가 없었다⁠.

“⁠덮지는 않겠소⁠.⁠” 갑돌이 말했다⁠. “⁠소 잡을 때 칼 넣을 자리를 고르는 거지⁠, 칼을 안 넣는 건 아니오⁠. 언제 꺼낼지만 고르겠소⁠.⁠”

소교가 갑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침소 안에서 위장천이 기침을 한 번 했다⁠. 둘 다 숨을 멈추고 다음 숨소리를 기다렸다⁠. 숨소리가 이어졌다⁠. 소교가 그제야 눈을 감았다⁠.

*

새벽녘 총단 정문 쪽에서 북이 울렸다⁠. 손님을 맞는 북이었다⁠.

갑돌은 침소 문 앞에서 밤을 새운 채 회랑으로 나갔다⁠. 정문 아래 돌계단으로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곱 무리였다⁠. 무리마다 깃발이 달랐다⁠. 소림의 누런 깃발⁠, 무당의 검은 깃발⁠, 화산의 붉은 매화 깃발⁠. 이 맨 앞에서 일곱 장문인이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정문 앞에 진무상이 혼자 서 있었다⁠. 흰 장포를 새로 갈아입었다⁠. 장문인들 앞에 깊이 허리를 숙였다⁠. 장문인들이 차례로 진무상의 인사를 받았다⁠.

갑돌의 소매 속에서 맹주령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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