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53자)

장강 위의 술 시합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한수 나루 도축장 열한 집과 불탄 한 집의 터가 이날 아침 한꺼번에 문을 닫았다⁠. 저잣거리가 생긴 뒤로 처음이었다⁠. 소 장수들이 나루에 소를 끌고 왔다가 문 닫힌 도축장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백정들은 다 국밥집 골목에 모여 있었다⁠.

쇠전 영감이 덕순의 국밥집 평상 위에 올라섰다⁠. 굽은 등을 펴려고 애를 썼는데⁠, 반쯤만 펴졌다⁠.

“⁠맹회가 열흘 남았다더라⁠. 그날 총단 정문 앞에 저잣거리가 다 올라간다⁠. 도축장 열둘⁠, 짐꾼 조합⁠, 국밥집 골목⁠, 생선 좌판⁠. 손에 아무것도 안 든다⁠. 칼도 안 들고 국자도 안 든다⁠. 그냥 서 있는다⁠.⁠”

“⁠서 있기만 하면 뭐가 되는데요⁠?⁠” 생선 좌판 아낙이 물었다⁠.

“⁠총단 사람들이 계단 아래를 처음으로 내려다보게 되지⁠.⁠” 쇠전 영감이 지팡이로 평상을 쳤다⁠. “⁠내가 스무 해 전에 저 나루 시장 어귀에서 백정 하나가 맞아 죽는 걸 봤다⁠. 저 녀석 애비다⁠. 그날 아무도 안 서 있었어⁠. 이번엔 서 있는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갑돌은 평상 옆에 서 있다가 영감을 보았다⁠. 영감은 갑돌을 보지 않았다⁠.

국밥집 뒷문 쪽에서 개방 분타주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분타주는 덕순이 내미는 그릇을 받아 들고 평상 끝에 앉았다⁠.

“⁠개방 방주가 맹회에 손 들러 무한 근처까지 와 있다⁠. 맹회 전에는 들어온다⁠.⁠” 분타주가 국밥을 한 숟갈 떴다⁠. “⁠근데 방주는 이 집 국밥을 안 먹어 봤어⁠.⁠”

“⁠국밥으로 손을 살 수는 없소⁠.⁠” 갑돌이 말했다⁠.

“⁠다른 데 손은 은으로 사지⁠. 개방 손은 밥으로 산다⁠.⁠” 분타주가 숟가락으로 갑돌을 가리켰다⁠. “⁠개방이 왜 개방인 줄 아냐⁠? 얻어먹는 집이라서야⁠. 얻어먹은 집은 안 잊는다⁠. 은 준 집은 잊어⁠. 은은 다 똑같이 생겼거든⁠.⁠”

덕순이 국자를 들어 분타주의 그릇에 고기를 한 국자 더 얹었다⁠. “⁠방주 오면 데려와⁠. 사흘 우린 거 줄게⁠.⁠”

*

해가 지자 장강 위에 누선 한 척이 떴다⁠. 이 층 누각을 올린 큰 배였다⁠. 처마마다 등롱이 달렸고⁠, 이 불빛이 검은 강물 위에 길게 흔들렸다⁠. 배 위에서 비파 소리가 났다⁠. 강바람이 이 소리를 무한 성벽까지 실어 갔다⁠.

갑돌과 소교는 작은 거룻배를 타고 누선으로 갔다⁠. 다홍이 술 단지 하나를 안고 따라왔다⁠. 검은 유약을 바른 독이었다⁠. 소교가 아침에 이것을 꺼내 보자기에 쌀 때⁠, 다홍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거룻배가 강 한가운데로 나가자 다홍의 얼굴이 하얘졌다⁠. 배가 한 번 출렁일 때마다 다홍은 술독을 더 꼭 끌어안았다⁠.

“⁠아가씨⁠, 저 배 멀미해요⁠.⁠”

“⁠알아⁠. 그래서 독을 너한테 맡겼어⁠. 멀미하는 사람은 뭘 꼭 붙잡거든⁠.⁠” 소교가 사공 쪽을 보며 말했다⁠. “⁠놓치면 너 강에 뛰어들어서 건져 와⁠.⁠”

다홍이 울상을 지었다⁠. 갑돌은 뱃전에 손을 얹고 강물이 배 밑을 미는 무게를 느꼈다⁠. 물살이 세었다⁠. 누선의 등롱 불빛이 가까워졌다⁠.

“⁠그 독을 오늘 여는 거요⁠?⁠” 갑돌이 물었다⁠.

“⁠열지 안 열지는 저 배에 올라가서 셈해요⁠.⁠” 소교가 보자기 매듭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근데 안 열 거면 안 가지고 왔겠죠⁠.⁠”

누선 이 층에 세가 가주 다섯이 앉아 있었다⁠. 강가 세가⁠, 서쪽 세가⁠, 남쪽 세가⁠, 그리고 둘이 더⁠. 맹회에서 손을 드는 세가 다섯이었다⁠. 화산과 공동의 사절도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상석에 진무상이 있었다⁠. 흰 장포 위에 얇은 비단 겉옷을 걸쳤다⁠.

매서한은 배 꼬리 쪽 난간에 혼자 서 있었다⁠. 진무상 뒤가 아니었다⁠. 강을 보고 있었다⁠. 갑돌이 올라왔을 때 한 번 돌아보았다가 다시 강을 보았다⁠.

“⁠아우⁠, 왔군⁠. 부인도⁠.⁠” 진무상이 일어나 맞았다⁠. “⁠술은 아우 몫까지 부인이 드시겠지⁠?⁠”

“⁠그럴 거요⁠.⁠”

가주들이 웃었다⁠. 상 위에 장강 잉어찜과 오리구이와 연근 무침이 올랐다⁠. 비파 타는 여자가 곡을 바꿨다⁠. 술이 한 순배 돌았다⁠. 소교는 그동안 검은 독을 다홍 무릎 위에 둔 채 열지 않았다⁠.

*

세 순배째에 진무상이 손뼉을 쳤다⁠. 진가 하인 둘이 상자 하나를 들고 올라왔다⁠. 옻칠한 나무 상자였다⁠. 둘이 들었는데 걸음이 무거웠다⁠. 상자가 갑돌 앞에 놓였다⁠. 진무상이 손수 뚜껑을 열었다⁠.

은이었다⁠. 은덩이가 상자 가장자리까지 빼곡했다⁠. 등롱 불빛이 이 위에서 하얗게 튀었다⁠. 가주들이 숨을 삼켰다⁠.

“⁠천 냥일세⁠.⁠” 진무상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하나 더⁠. 진가가 쥔 저잣거리 고기 시장을 통째로 아우에게 넘기겠네⁠. 저울도⁠, 수레도⁠, 자릿세도⁠. 아우가 처음 장가간 이유가 저잣거리 도축장 아니었나⁠? 은 두 푼씩 떼어 가는 칼잡이들 걷어 내는 것⁠. 그걸 진가가 직접 걷어 주지⁠.⁠”

누선 위가 조용해졌다⁠. 비파 소리가 멈췄다⁠.

“⁠대신 맹회 날 후보에서 내려오게⁠. 장로들 앞에서 아우 입으로⁠. 백정은 맹을 맡을 그릇이 아니라고⁠.⁠” 진무상이 찻잔을 들었다⁠. “⁠셈해 보게⁠. 부인이 셈을 잘하시니 더 좋겠군⁠.⁠”

갑돌은 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손을 뻗어 상자 옆 손잡이를 잡았다⁠. 들어 올렸다⁠. 상자가 상 위에서 손바닥 하나 높이로 떴다⁠. 손목이 이 무게를 받았다⁠. 팔뚝 힘줄이 섰다⁠. 숨 다섯 번 동안 그대로 들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상자가 상에 닿자 술잔들이 흔들렸다⁠.

“⁠천 냥 맞소⁠. 위에만 은이고 밑에 돌을 깐 것도 아니고⁠.⁠”

“⁠진가는 물 먹인 고기는 팔아도 돌 먹인 은은 안 주지⁠.⁠” 진무상이 웃었다⁠.

“⁠이건 사람 하나 값으로는 무겁소⁠.⁠” 갑돌이 상자 뚜껑을 닫았다⁠. “⁠근데 맹 하나 값으로는 가볍소⁠.⁠”

진무상은 웃는 입을 그대로 둔 채 눈만 가늘게 떴다⁠.

“⁠저잣거리 고기 시장은⁠? 그것도 가벼운가⁠?⁠”

갑돌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질문은 무거웠다⁠. 쇠전 영감의 굽은 등이 떠올랐다⁠. 춘길의 데인 팔⁠, 불탄 도축장 기둥 넷⁠, 은 두 푼을 내던 열한 집⁠. 이 상자를 받으면 내일 아침부터 저잣거리에는 진가 칼잡이가 없었다⁠. 받지 않으면 맹회가 끝날 때까지⁠, 아니 맹회에서 지면 이후로도 영영 있었다⁠.

“⁠무겁소⁠.⁠” 갑돌이 말했다⁠. “⁠그래서 안 받소⁠. 진가가 걷어 주는 칼잡이는 진가가 다시 보낼 수 있소⁠. 내가 걷어 내야 안 돌아오오⁠.⁠”

진무상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잔이 상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갑돌은 일어나 배 꼬리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을 쐬겠다고 했다⁠. 누선 이 층의 눈들이 이 등을 따라왔다⁠. 매서한이 난간에 기댄 채 옆에 서는 것을 보지 않았다⁠.

“⁠약방 화살 쏜 사람을 아오⁠?⁠” 갑돌이 강을 보며 물었다⁠.

“⁠안다⁠.⁠”

“⁠말할 거요⁠?⁠”

“⁠아직은 못 한다⁠.⁠” 매서한의 손이 난간을 쥐었다⁠. 손목 안쪽에 칼날이 눌렀던 자리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아직 진가 밥을 먹고 있다⁠. 어머니 무덤도 진가 땅에 있다⁠.⁠”

“⁠그럼 맹회 날은 어디 서오⁠?⁠”

매서한은 한참 강물을 보았다⁠. 누선 아래로 검은 물이 소리 없이 지나갔다⁠.

“⁠진 공자 뒤에 선다⁠. 늘 서던 자리에⁠.⁠” 매서한이 처음으로 갑돌을 보았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지는 그날 정한다⁠.⁠”

*

“⁠그럼 이제 제 차례죠⁠.⁠”

소교가 다홍 무릎 위의 검은 독을 끌어왔다⁠. 상 한가운데 놓았다⁠. 보자기를 풀었다⁠. 그리고 봉을 뜯었다⁠. 오래 묵은 술 냄새가 누선 이 층에 퍼졌다⁠. 쌀 냄새가 아니었다⁠. 꽃 냄새 같기도 하고 나무 냄새 같기도 했다⁠. 강가 세가 가주가 코를 벌름거렸다⁠.

“⁠어머니가 쓰던 독이에요⁠. 큰 시합 때만 열어요⁠.⁠” 소교가 잔을 다섯 개 채웠다⁠. 가주 다섯 앞에 하나씩 밀었다⁠. 자기 잔도 채웠다⁠. “⁠가주님들⁠, 저하고 한 잔씩 해요⁠. 저보다 먼저 잔을 놓으시는 분은 제 셈 하나만 들어 주세요⁠. 손은 안 사요⁠. 듣기만 하세요⁠.⁠”

가주들이 서로를 보았다⁠. 남쪽 세가 가주가 먼저 웃으며 잔을 들었다⁠. 맹주 딸이 술을 잘 마신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여자가 사내 다섯을 상대로 하겠다니 들어 보자는 얼굴이었다⁠.

화산 사절이 자기도 끼겠다며 잔을 내밀었다⁠. 화산 검은 술에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 소교가 웃으며 이 잔도 채웠다⁠. 화산 사절은 세 번째 잔에서 얼굴이 대추처럼 붉어졌고⁠, 네 번째 잔을 들다가 그대로 옆으로 누워 코를 골았다⁠. 공동 사절이 화산 사절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손을 드는 사람도 아니면서 왜 끼었느냐고⁠.

첫 잔⁠. 두 번째 잔⁠. 다섯 번째 잔에서 서쪽 세가 가주가 잔을 놓았다⁠. 소교가 산가지를 하나 꺼내 상 위에 놓았다⁠.

“⁠진가가 서른 해 동안 맹 주방에 댄 고기에서 물 값으로 받은 은이 얼마인지 셈해 드릴게요⁠.⁠”

소교는 숫자를 말했다⁠. 서쪽 세가 가주의 얼굴이 굳었다⁠.

여덟 번째 잔에서 남쪽 세가 가주가 무너졌다⁠. 소교가 산가지를 하나 더 놓았다⁠.

“⁠그 은이 지난봄에 어디로 갔는지요⁠? 은 상자 셋이 세가 세 집으로 갔어요⁠. 맹이 물 값으로 낸 은이⁠, 맹회에서 손 들어 달라는 값으로 돌아간 거예요⁠. 가주님들이 받은 은은 원래 맹의 은이에요⁠.⁠”

남쪽 세가 가주가 난간에 기대 눈을 감은 채 손을 내저었다⁠. 아니라고 하는 것인지 그만하라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열한 번째 잔에서 둘이 한꺼번에 잔을 놓았다⁠. 소교의 손이 산가지를 놓을 때 처음으로 떨렸다⁠. 얼굴은 그대로였다⁠.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갑돌은 소교의 무게가 상 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았다⁠. 한쪽 팔꿈치가 상에 실렸다⁠.

남은 것은 강가 세가 가주였다⁠. 정자 술자리의 강가 안주인의 남편이었다⁠. 가주는 열네 번째 잔을 들고 소교를 한참 보았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았다⁠. 마시지 않았다⁠.

“⁠아가씨⁠, 그만합시다⁠. 내가 졌다 치지요⁠.⁠” 가주가 진무상을 흘끗 보았다⁠. “⁠셈은 다 들었소⁠. 맹회 날 내 손은 내 셈으로 들겠소⁠.⁠”

진무상이 일어섰다⁠. 웃음은 남아 있었는데⁠, 모양이 혼례 날과 달랐다⁠.

“⁠좋은 술자리였네⁠.⁠” 진무상이 갑돌에게 말했다⁠. “⁠은은 두고 가겠네⁠. 맹회 날까지 생각이 바뀌면 들고 오게⁠. 그날 저녁까지는 받아 주지⁠.⁠”

*

연회가 파할 무렵 소교는 일어서다가 휘청였다⁠. 갑돌이 팔을 잡았다⁠. 웃으며 이 팔을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휘청였다⁠. 이번에는 밀어내지 않았다⁠.

갑돌은 소교를 안아 들었다⁠. 무거웠다⁠. 소교가 들고 있던 산가지들과⁠, 열네 잔의 술과⁠, 아직 손에서 놓지 않은 검은 독의 뚜껑까지⁠. 이 무게를 다 셀 수 있었다⁠. 아흔 근이 조금 안 되었다⁠.

소교가 갑돌의 목에 이마를 대고 웅얼거렸다⁠.

“⁠어머니 독⁠, 처음으로 남이랑 열었어요⁠.⁠”

“⁠남이 아니오⁠.⁠”

“⁠그러니까요⁠.⁠” 소교가 눈을 감았다⁠. “⁠혼자 안 열었어요⁠.⁠”

누선 계단을 내려가는데 배 꼬리 쪽 난간에서 매서한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갑돌이 매서한과 눈을 맞췄다⁠. 매서한은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그리고 다시 강을 보았다⁠.

거룻배에 오를 때였다⁠. 강 아래쪽 어둠에서 노 젓는 소리가 급하게 다가왔다⁠. 조각배 하나가 누선 옆구리에 부딪혔다⁠. 개방 분타주가 노를 쥐고 있었다⁠. 이 빠진 입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구파 장문인들이 무한으로 온다⁠! 일곱이 한꺼번에⁠! 내일 새벽이면 성문에 닿는다⁠!⁠” 분타주가 노를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총단에서 거지 애들이 내려왔다⁠. 맹주가 쓰러졌다⁠.⁠”

갑돌의 품 안에서 소교가 눈을 떴다⁠. 술기운이 이 눈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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