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666자)
어머니의 솥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형당 옥에 솥이 걸린 것은 덕순이 갇힌 지 반나절 만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솥을 들여 주지 않았다. 덕순은 쇠창살 앞에 앉아 옥졸 노릇을 맡은 형당 무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냐, 고향이 어디냐, 밥은 먹었냐. 형당 무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당주가 죄인과 말을 섞지 말라고 했다. 덕순은 상관하지 않고 혼자 떠들었다. 저잣거리 돼지 뼈는 어느 집 것이 제일 좋은지, 파는 언제 넣어야 하는지, 국밥에 밥을 말 때 왜 밥을 먼저 데워야 하는지.
저녁 무렵 형당 무사 하나가 옥 계단을 내려와 쇠창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곤장 날 팔이 느려졌던 이 무사였다. 무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밥을 먼저 데우는 건 왜입니까?”
“찬밥을 뜨거운 국물에 넣으면 국물이 식잖아. 식은 국물은 고기 냄새가 비려져.” 덕순이 쇠창살 사이로 손가락을 내밀어 무사의 이마를 톡 쳤다. “너, 고향에서 돼지 키웠지? 손가락 마디 보니까 알겠다.”
무사가 이마를 문질렀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갔다. 두 시간 뒤에 다시 내려왔을 때는 형당 부엌의 작은 솥과 장작 한 단과 돼지 뼈 한 보따리를 지고 있었다. 뒤에 다른 무사 둘이 파와 소금과 쌀을 들고 따라왔다. 부당주는 이 시각 장로회에 불려 가 있었다.
이 밤 형당 옥에서는 연기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무사들이 번갈아 내려와 덕순이 시키는 대로 불을 보고 뼈를 건지고 국물을 저었다. 덕순은 쇠창살 안에 앉아 국자로 쇠창살을 두드리며 박자를 셌다. 아니, 거기서 저으면 안 돼, 바닥을 긁어. 너는 파를 그렇게 썰면 장가 못 간다.
새벽에 옥 바깥문을 지키던 객경이 내려왔다. 왼손에 그릇을 들고 있었다. 무사들이 그에게도 한 그릇을 퍼 주었다. 덕순 앞에 앉아 이 국밥을 먹었다. 덕순은 먹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처진 어깨. 너구나. 내 아들이 목 안 친 사람이.”
“예.”
“국밥 어때?”
객경은 그릇을 비우고 한참 생각했다. 지난번에 소금이 세다고 했다가 형당주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딱 맞습니다.”
“거짓말. 옥에서 끓인 거라 소금이 모자라.” 덕순이 국자로 쇠창살을 탁 쳤다. “다음엔 바른말 해. 바른말 하다가 목 날아갈 뻔한 사람이 거짓말 하면 쓰나.”
*
장로회 대청에는 맹의 의원이 서 있었다. 쉰 남짓, 손이 희고 손톱이 깨끗했다. 맹주의 맥에서 서서히 사람을 말리는 독의 기운을 찾았다고 했다. 이 독은 오래 먹은 음식에서 왔고, 맹주가 열 해 동안 몰래 드신 음식은 저잣거리 국밥 하나뿐이라고 했다. 연회 날에도 이 국밥이 올라왔다고.
갑돌은 대청 가운데로 나섰다. 장로들이 웅성거렸다. 형당주는 손을 떼라 하지 않았느냐는 소리가 났다.
“형당주로 선 게 아니오. 아들로 섰소.” 갑돌이 장로석을 보았다. “의원께 묻겠소. 석 달 전에 맹주께 고기를 끊으라 한 사람이 누구요?”
의원의 흰 손가락이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랬소.”
“그 뒤로 석 달 동안 맹주는 국밥집에 안 가셨소. 국밥이 다시 올라온 건 열흘 전부터요. 근데 내가 맹주의 약 단지를 나르기 시작한 뒤로, 단지는 날마다 반 냥씩 무거워졌소. 따라지지 않는 것이 바닥에 쌓이오.”
“손으로 잰 무게를 장로회가 믿으란 말이오?” 청성 장로가 말했다.
“그럼 손 말고 저울로 재시오.”
소교가 대청 옆문으로 들어왔다. 두 손으로 작은 나무 상자를 들고 있었다. 상자를 열자 은으로 만든 저울이 나왔다. 맹의 금고에서 은덩이를 다는 저울이었다. 눈금이 털끝처럼 가늘었다.
“맹의 은 저울이에요. 한 푼의 열에 하나까지 달아요.” 소교가 이것을 장로석 앞 탁자에 놓았다. “어머님은 지금 형당 옥에 계세요. 이제 국밥은 한 그릇도 안 올라가요. 사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장로님들 앞에서 맹주님 약 단지를 이 저울에 다는 거예요. 국밥이 없는데도 단지가 무거워지면, 국밥에서 온 게 아니죠.”
장로들이 서로를 보았다. 의원이 입을 열려 했다. 이때 맹주 자리 옆에 앉은 화산 장로가 먼저 말했다.
“좋소. 내가 날마다 보겠소.” 장로가 헛기침을 했다. “그 국밥집 국밥을 두 그릇 얻어먹은 사람이오. 독이 들었으면 나도 맥이 이상해야 할 텐데, 요즘 소화가 아주 잘되오.”
장로석 몇 군데서 웃음이 샜다. 진무상은 이 자리에 없었다. 매서한도 없었다.
*
사흘 동안 약 단지는 아침저녁으로 은 저울에 올랐다. 첫날 저녁에 반 냥이 늘었다. 두 번째 날 저녁에 또 반 냥. 화산 장로가 저울 눈금을 들여다보며 수염을 쥐었다. 덕순은 형당 옥에서 세 번째 솥을 끓이고 있었다.
세 번째 날 밤, 갑돌과 소교는 맹 의원의 약방 약장 뒤에 숨어 있었다.
약방은 총단 남쪽 회랑 끝에 있었다. 벽 세 면이 서랍 수백 개 달린 약장이었고, 서랍마다 말린 뿌리와 껍질과 열매가 들어 있었다. 쓴 냄새, 단 냄새, 흙 냄새가 한데 섞여 공기가 무거웠다. 맹주의 약 단지는 약방 한가운데 화로 위에서 밤새 달여졌다. 의원은 날마다 밤 열 시 무렵 약방 문을 잠그고 나갔다. 단지에 손이 닿는 것은 이 앞이었다.
소교는 약장과 벽 사이 좁은 틈에 갑돌과 어깨를 붙이고 서 있었다. 숨을 아껴 쉬었다. 그러다 갑돌의 귀에 대고 아주 작게 말했다.
“코가 간지러워요.”
“참으시오.”
“감초 서랍 바로 옆이에요. 단내가 코로 들어와서…….”
갑돌은 손바닥으로 소교의 코와 입을 덮었다. 손바닥 상처가 소교의 숨에 젖었다. 소교의 눈이 갑돌을 노려보았다. 눈가가 웃고 있었다.
약방 문이 열렸다.
의원이 들어왔다. 등잔을 들었다.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른 뒤 화로 앞에 섰다. 소매에서 작은 종이 꾸러미를 꺼냈다. 꾸러미를 풀었다. 손이 단지 쪽으로 기울었다. 이 손이 하얬다. 손톱이 깨끗했다.
갑돌이 약장 뒤에서 나섰다.
의원이 꾸러미를 떨어뜨렸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의원의 얼굴이 종이처럼 하얘졌다. 소교가 뒤따라 나와 빗장 걸린 문 앞을 막아섰다.
“의원, 그 손에 든 걸 장로님들 앞에 가지고 가겠소.”
의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원의 눈이 갑돌 너머 천장으로 갔다.
천장 들보 위의 무게가 움직였다. 갑돌은 이 무게를 알았다. 고기 창고의 돼지들 사이에서 맞섰던 무게였다.
매서한이 들보에서 내려왔다. 새 검이었다. 칼집에 흠집 하나 없는 검이 이번에는 뽑혀 있었다.
*
“주먹밥 값을 이렇게 갚소?” 갑돌이 말했다.
“진가 밥을 서른 해 먹었다.” 매서한의 검끝이 의원 쪽을 향했다. 갑돌 쪽이 아니었다. “비켜라. 이자는 진가가 정리한다.”
“정리가 무엇이오? 한수에 띄우는 거요? 시장 행수처럼?”
매서한의 검끝이 흔들렸다. 아주 조금이었다. 의원이 이 틈에 뒤로 물러나 약장에 등을 붙였다. 서랍 몇 개가 밀려 열리며 말린 뿌리가 바닥에 쏟아졌다.
갑돌은 칼을 뽑았다. 허벅지가 당겼다. 둘 사이가 세 걸음이었다. 좁은 약방에서는 검이 길면 불리했다. 매서한도 알았다. 검을 짧게 쥐었다.
첫 검이 왔다. 갑돌은 막지 않고 약장 서랍을 하나 뽑아 이 앞에 댔다. 검이 서랍을 갈랐다. 마른 대추가 쏟아져 둘의 발밑을 굴렀다. 매서한의 발이 대추를 밟고 미끄러졌다. 무게가 반 박자 흔들렸다. 갑돌은 이 반 박자에 들어가 칼등으로 매서한의 검을 쥔 손등을 쳤다. 검이 내려갔다. 떨어지지는 않았다.
둘은 서로의 숨이 닿을 거리에서 멈췄다.
“지금 손목 힘줄을 끊을 수 있소. 창고에서처럼.” 갑돌이 말했다. “근데 당신은 지금 나를 안 보고 있소. 저 의원을 보고 있소.”
매서한의 눈이 처음으로 갑돌에게 왔다. 이 눈에 무언가가 있었다. 창고 문턱에서 강을 보던 눈이었다. 매서한이 아주 작게 말했다.
“나는 입을 막으러 온 거다. 목을 끊으러 온 게 아니라.”
이때 약방 창호지가 터졌다.
바람 소리가 먼저였다. 다음이 무게였다. 무언가 가늘고 빠른 것이 창 밖 어둠에서 곧게 날아와 등잔불 옆을 지나갔다. 의원이 약장에 등을 댄 채 목을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화살대가 비죽 나와 있었다. 무어라 말하려 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흰 손이 약장 서랍 손잡이를 하나 붙잡았다가 놓쳤다. 서랍이 열리며 의원의 몸과 함께 바닥으로 쏟아졌다.
매서한이 창으로 몸을 날렸다. 터진 창호지 너머 어둠을 보았다. 담장 위로 그림자 하나가 넘어가고 있었다. 쫓지 않았다. 창틀을 쥔 손이 하얗게 굳었다.
소교가 의원에게 달려가 쪼그려 앉았다. 손을 목에 댔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매서한이 돌아서서 의원의 목에 박힌 화살을 보았다. 깃털을 보았다. 검은 깃 둘에 흰 깃 하나. 이 깃을 아는 얼굴이었다. 갑돌은 이 얼굴의 무게를 보았다. 무엇이 무너지는 무게였다.
“진가 화살이오?”
매서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검을 칼집에 넣었다. 그리고 의원의 감기지 않은 눈을 손바닥으로 덮어 감겼다.
“나를 보내 놓고, 나를 못 믿어서 하나를 더 보냈군.” 매서한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리고 약방 빗장을 풀고 나갔다. 아무도 매서한을 막지 않았다.
갑돌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 꾸러미를 주워 손바닥에 올렸다. 반쯤 쏟아지고 남은 것이었다. 반 냥이 조금 안 되었다. 날마다 단지에 더해지던 바로 이 무게였다.
소교가 의원 곁에서 일어섰다. 무릎에 쏟아진 대추와 말린 뿌리가 붙어 있었다. 이것을 털지 않았다.
“입 하나가 닫혔어요.” 소교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누가 시켰는지 말할 수 있는 입이 이제 진가 안에만 남았네요.”
“하나 더 있소.” 갑돌이 열린 문을 보았다. 매서한이 나간 어둠이었다. “방금 나간 사람.”
*
이튿날 아침 장로회는 덕순을 풀었다. 의원의 품에서 나온 종이 꾸러미가 장로석 탁자에 놓였고, 화산 장로가 사흘 동안 은 저울로 단 것을 말했다. 국밥이 한 그릇도 안 올라간 사흘 동안 약 단지는 한 냥 반이 늘었다.
진무상이 이 자리에 왔다.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맹의 의원이 그런 짓을 했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누가 시켰는지는 이제 죽은 자의 입에 묻혔군요.” 진무상이 고개를 들었다. 웃음이 그대로였다. “진가 화살이라는 말이 돈다던데, 진가 화살은 무한 화살 가게 어디서나 팝니다. 장로님들은 아시겠지요.”
장로들은 알았다. 아무도 더 묻지 않았다.
덕순은 형당 옥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 옥졸 노릇을 하던 형당 무사 셋이 솥을 들고 뒤따랐다. 계단 꼭대기에 아들이 서 있었다. 덕순은 아들 앞에 섰다.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물었다.
“밥은?”
“어머니 끓인 거 먹으려고 안 먹었소.”
덕순이 아들의 뒤통수를 쳤다. 이번에는 세게 치지 않았다. 손바닥이 뒤통수에 오래 머물렀다. 고개를 돌려 형당 무사 셋을 보았다.
“너희들, 국밥집으로 와. 오늘부터 사흘 공짜다. 옥에서 배운 거 제대로 가르쳐 줄게.”
형당 무사들이 웃으며 솥을 고쳐 메는데, 마당 저쪽에서 흰 장포가 걸어왔다. 진무상이었다. 장로회를 나와 곧장 형당으로 온 걸음이었다. 진무상은 덕순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덕순은 국자 대신 빈손을 허리에 얹고 진무상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옥졸들이 했지. 국 젓느라.”
진무상은 웃고, 갑돌에게 몸을 돌렸다. 둘 사이가 세 걸음이었다. 갑돌은 소매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사흘 뒤 밤, 장강 위 누선에서 세가 가주들이 모이네. 맹회에서 손 드는 다섯 집이지. 후보 둘이 다 와서 얼굴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진무상이 소교 쪽을 흘끗 보았다. 소교는 형당 계단 아래 마당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우는 술을 못 한다지. 부인을 꼭 데려오게.”
“우리 집은 술은 아내가, 칼은 내가 하오.”
“그럼 둘 다 가져오게.” 진무상이 돌아섰다. “나는 은을 가져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