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42자)

후보의 밥상

백정의 칼로 무림맹주의 사위가 되었다 · 류청산

소교는 침상 위에 산가지를 열다섯 개 세웠다⁠. 아침 햇빛이 창호지를 지나 이 위로 비스듬히 떨어졌다⁠. 산가지 그림자가 이불 위에 열다섯 줄로 누웠다⁠.

“⁠맹회에서 손을 드는 사람이 열다섯이에요⁠. 구파 장문인 아홉⁠, 개방 방주 하나⁠, 그리고 세가 가주 가운데 다섯⁠.⁠” 소교가 산가지를 셋⁠, 다섯⁠, 일곱으로 나눴다⁠. “⁠맹주를 정하려면 여덟 손이 필요해요⁠. 하나라도 모자라면 맹주가 안 나와요⁠.⁠”

갑돌은 침상 끝에 걸터앉아 이 산가지들을 내려다보았다⁠. 허벅지는 아직 동여맸다⁠. 등 딱지가 속적삼에 들러붙어 있었다⁠.

“⁠이걸 다 외워야 하오⁠?⁠”

“⁠다 외워야 해요⁠. 누가 누구랑 혼인으로 엮였고⁠, 누가 누구한테 빚졌고⁠, 누가 누구를 싫어하는지까지요⁠.⁠” 소교가 술 단지를 침상 옆에 내려놓고 잔 둘을 채웠다⁠. “⁠규칙을 하나 정하죠⁠. 당신이 하나 맞히면 제가 한 잔 마시고⁠, 하나 틀리면 당신이 한 잔 마셔요⁠.⁠”

“⁠그럼 당신만 손해 아니오⁠?⁠”

“⁠제가 마시는 건 손해가 아니에요⁠.⁠”

갑돌은 산가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 보았다⁠. 대나무 한 토막이 무게랄 것도 없었다⁠. 이것을 내려놓고⁠, 열다섯 개를 다시 보았다⁠. 그러더니 손으로 산가지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셋을 위로⁠, 둘을 가운데로⁠, 하나를 맨 끝으로⁠.

“⁠뭐 해요⁠?⁠”

“⁠소 한 마리를 나누오⁠.⁠” 갑돌이 맨 위의 산가지 하나를 가리켰다⁠. “⁠소림은 머리요⁠. 제일 크고⁠, 제일 무겁고⁠, 제일 오래 고와야 맛이 나오⁠. 그리고 머리가 움직이면 몸이 다 따라가오⁠.⁠”

소교의 입이 벌어졌다⁠.

“⁠무당은 등심⁠. 기름이 적고 점잖소⁠. 화산은 앞다리⁠. 힘이 세고 질기오⁠. 아미는 안심⁠. 적게 나오는데 비싸오⁠. 공동하고 청성은 갈비 양쪽⁠. 늘 붙어 다니는데 서로 자기가 더 크다고 싸우오⁠.⁠” 갑돌이 산가지 하나를 맨 끝으로 밀었다⁠. “⁠개방은 꼬리요⁠. 다들 안 쳐주는데⁠, 사흘 고면 제일 진하오⁠.⁠”

“⁠진가는요⁠?⁠”

“⁠진가는 우둔살⁠. 살이 많고 단단한데⁠, 물을 먹이면 무게가 부풀지⁠.⁠”

소교가 웃음을 터뜨렸다⁠. 술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또 한 잔 마셨다⁠.

“⁠왜 두 잔이오⁠?⁠”

“⁠하나는 맞혀서⁠, 하나는 웃겨서요⁠.⁠”

이후로 두 시간 동안 산가지는 소 한 마리가 되었다⁠. 소교가 묻고 갑돌이 부위로 대답했다⁠. 아미 장문인과 강가 세가의 사돈 관계는 안심과 사태살이 한 근으로 엮인 것이 되었다⁠. 공동과 청성이 서로를 싫어하는 이유는 갈비 양쪽이 서로 자기 뼈가 더 길다고 우기는 것이 되었다⁠. 소교는 열한 잔을 마셨고⁠, 갑돌은 네 잔을 마셨다⁠. 소교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갑돌의 귀가 붉었다⁠.

“⁠지금 셈으로 열다섯 손 가운데 당신 손은 몇 개인지 알아요⁠?⁠”

“⁠몇 개요⁠?⁠”

소교가 산가지 하나를 집어 갑돌의 손바닥에 놓았다⁠. 하나 더 놓았다⁠.

“⁠둘이요⁠. 강가 세가가 하나⁠, 그리고 개방이 하나⁠. 강가는 안주인이 술자리에서 제 잔을 채워 준 덕이고⁠, 개방은 아직 반쯤이에요⁠. 분타주가 아니라 방주가 손을 드니까요⁠.⁠” 소교가 나머지 열셋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았다⁠. “⁠진무상은 진가에 세가 셋⁠, 사절들 고개 끄덕인 걸로 치면 구파 가운데 다섯은 벌써 기울었어요⁠. 아홉이에요⁠.⁠”

갑돌은 손바닥의 산가지 둘을 보았다⁠. 무게가 없었다⁠.

*

갑돌은 이 산가지를 쥔 채 어젯밤 연회의 약 단지 이야기를 했다⁠. 날마다 반 냥씩 무거워지는 단지⁠, 따라지지 않고 바닥에 가라앉는 것⁠, 그리고 장인이 한 말⁠. 석 달 됐다고⁠. 알고 마셨다고⁠.

소교의 손에서 산가지가 떨어졌다⁠. 소교는 이것을 줍지 않았다⁠.

“⁠알고 마셨다고요⁠?⁠”

“⁠모르는 데서 오는 것보다 아는 데서 오는 걸 마시는 게 낫다 하셨소⁠.⁠”

소교는 한참 말이 없었다⁠. 손이 소매 속에서 산가지를 찾았다⁠. 찾아서 쥐었다가 놓았다⁠. 다시 쥐었다⁠. 셈을 할 수 없을 때 하는 버릇이라는 것을 갑돌은 이제 알았다⁠.

“⁠어머니가 술독 옆에서 차가워졌을 때⁠, 아버지는 열흘 뒤에 왔어요⁠. 그때 아버지가 그랬어요⁠. 알았으면 왔을 거라고⁠.⁠” 소교가 창밖을 보았다⁠. 장강이 햇빛에 하얗게 빛났다⁠. “⁠그때는 몰라서 못 왔다고 하셨죠⁠. 이번엔 다 알면서 저한테 한마디도 안 하셨네요⁠.⁠”

“⁠지금부터는 셈 안에 계시게 하겠소⁠.⁠”

“⁠어떻게요⁠?⁠”

“⁠날마다 내가 들겠소⁠. 반 냥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누구 손이 단지에 닿는지⁠.⁠” 갑돌이 소교가 떨어뜨린 산가지를 주워 소교 손에 쥐여 주었다⁠. “⁠소 잡을 때 피가 어디서 새는지 모르면⁠, 새는 자리까지 손으로 더듬어 가오⁠. 거기까지 가면 막을 수 있소⁠.⁠”

소교는 산가지를 쥐었다⁠. 이번에는 놓지 않았다⁠.

“⁠아버지 손 들어 봤어요⁠? 요즘⁠.⁠”

“⁠어젯밤에⁠.⁠”

“⁠몇 근이에요⁠?⁠”

갑돌은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소교가 갑돌을 보았다⁠.

“⁠한 팔이 일곱 근이 안 되오⁠. 내가 처음 국밥집에 고기 나르던 열한 살 때⁠, 내 팔이 그쯤이었소⁠.⁠”

소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은 술을 혼자 다 마셨다⁠. 이번에는 갑돌이 잔을 세지 않았다⁠.

*

밤이 깊어 갑돌은 형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총단 동쪽 긴 회랑을 지났다⁠. 회랑 기둥마다 등롱이 걸려 있었는데⁠, 셋에 하나꼴로 꺼져 있었다⁠. 강바람이 등롱을 흔들 때마다 그림자가 회랑 바닥을 쓸었다⁠.

회랑 한가운데에 진무상이 서 있었다⁠. 혼자였다⁠. 매서한도 없었다⁠. 흰 장포가 어둠 속에서 등롱보다 밝았다⁠.

“⁠후보가 된 걸 축하하네⁠, 아우⁠.⁠”

“⁠축하는 맹회 끝나고 받겠소⁠.⁠”

“⁠그때는 받을 사람이 하나뿐일 텐데⁠.⁠” 진무상이 난간에 등을 기댔다⁠. “⁠잠깐 이야기하지⁠. 처음으로 둘이서⁠.⁠”

갑돌은 걸음을 멈췄다⁠. 둘 사이가 다섯 걸음이었다⁠.

“⁠스무 해 전에 맹의 전쟁이 있었지⁠. 서쪽에서 맹을 치고 들어온 자들과 세 해를 싸웠어⁠. 진가는 거기서 마흔한 사람을 잃었네⁠. 내 숙부 둘⁠, 사촌 다섯⁠, 진가 검을 배운 사람 서른넷⁠. 아버지는 왼팔을 잃었고⁠.⁠” 진무상의 목소리는 고르고 낮았다⁠. “⁠그리고 위장천이 적과 화친을 했어⁠. 강 하나를 경계로 서로 넘지 않기로⁠. 진가가 피 흘려 빼앗은 땅을 돌려주고⁠.⁠”

“⁠그래서 진가가 맹을 맡아야 한다는 거요⁠?⁠”

“⁠진가가 그 피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거지⁠. 진가 땅 뒷산에 비석이 마흔한 개 서 있어⁠. 해마다 그 앞에 술을 따르는 게 내 일이었네⁠. 열두 살 때부터⁠.⁠”

진무상이 난간 너머 강을 보았다⁠. 강물 소리가 회랑까지 올라왔다⁠.

“⁠전쟁 뒤로 진가가 저잣거리 고기 시장을 쥔 건⁠, 그 값의 백에 하나도 안 돼⁠.⁠” 진무상이 처음으로 웃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위장천은 그 맹을 백정한테 주겠다고 하네⁠. 피 한 방울 안 흘린 손에⁠.⁠”

갑돌은 손을 소매 속에 넣었다⁠. 칼자루가 손가락에 닿았다⁠.

“⁠피는 나도 흘렸소⁠. 손바닥에⁠, 어깨에⁠, 등에⁠, 허벅지에⁠. 다 진가 칼에⁠.⁠”

“⁠그건 아우가 고른 피지⁠. 진가 사람들은 고르지 않았어⁠.⁠”

“⁠그럼 묻겠소⁠.⁠” 갑돌이 한 걸음 다가갔다⁠. 네 번째 걸음 자리였다⁠. “⁠스무 해 전 그 전쟁에서 돌아오던 날⁠, 저잣거리에서 흘린 피는 누가 대가를 받았소⁠?⁠”

등롱 하나가 바람에 꺼졌다⁠. 진무상의 얼굴 반이 어둠에 잠겼다⁠. 남은 반쪽이 아주 잠깐 굳었다⁠. 웃음이 돌아오기까지 숨 한 번이 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모르면 됐소⁠.⁠”

진무상의 손이 칼자루에 얹혔다⁠. 갑돌의 손도 소매 속에서 칼자루를 쥐었다⁠. 둘 다 뽑지 않았다⁠. 회랑 끝에서 순찰 무사의 발소리가 들렸다가 멀어졌다⁠.

“⁠아우⁠, 후보는 둘이고 맹회는 하나야⁠. 하나는 떨어지지⁠. 떨어진 쪽이 어디로 가는지 아나⁠?⁠” 진무상이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갑돌 곁을 지나가며 어깨 너머로 말했다⁠. “⁠그런데 장인 약 단지는 요즘 무겁지 않던가⁠? 의원이 걱정하더군⁠. 맹주께서 무엇을 드시고 탈이 나셨는지⁠.⁠”

갑돌이 돌아섰다⁠. 진무상은 이미 꺼진 등롱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흰 장포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

새벽에 형당 문을 두드린 사람은 춘길이었다⁠. 데인 팔은 이제 천을 풀었는데⁠, 성한 팔로 문을 너무 세게 두드려 손등이 까져 있었다⁠.

“⁠형님⁠! 어머니가요⁠! 어머니가 잡혀갔어요⁠!⁠”

갑돌은 침상에서 일어나다 등 딱지가 뜯겼다⁠. 아픈 줄도 몰랐다⁠.

“⁠누가⁠?⁠”

“⁠진가 무사들하고⁠, 장로회 무사들하고 같이 왔어요⁠. 맹 의원이 맹주님 맥을 짚었더니 독이 들었는데⁠, 그 독이 맹주님이 드신 국밥에서 왔대요⁠. 연회 날 사절들 국밥이랑 맹주님 국밥을 어머니가 끓였잖아요⁠. 열 해 동안 국밥 영감한테 끓여 준 국밥에도 다 그게 들어 있었을 거래요⁠.⁠” 춘길이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니가 국자 들고 막 소리 지르시는데⁠, 진가 무사가 국자를 뺏어서 솥에 던졌어요⁠. 솥이 엎어졌어요⁠.⁠”

갑돌은 형당 계단을 뛰어 올라가 정문까지 달렸다⁠.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았다⁠. 정문 앞 돌계단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돌계단 삼백 개 아래 저잣거리 골목에서⁠, 횃불 여러 개가 줄지어 계단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 횃불 한가운데에 덕순이 있었다⁠. 두 팔을 뒤로 묶인 채였다⁠. 앞치마는 그대로 두르고 있었다⁠. 계단 한 칸도 쉬어 가지 않았다⁠.

*

횃불이 계단 꼭대기에 닿았다⁠. 진가 무사 여섯과 장로회 무사 넷이 덕순을 가운데 두고 섰다⁠. 앞에 선 진가 무사 우두머리가 갑돌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갑돌은 계단 마지막 칸 위에 서서 길을 막고 있었다⁠. 오른손이 소매 속에 들어가 있었다⁠.

“⁠형당주⁠, 비키시오⁠. 장로회의 명이오⁠.⁠”

“⁠맹 안의 죄는 형당이 다스리오⁠. 내 어머니를 묶은 손은 형당 손이 아니오⁠.⁠”

장로회 무사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공동 장로 밑의 사람이었다⁠. “⁠죄인이 형당주의 어머니요⁠. 형당주는 손을 뗀다⁠. 장로회가 정했소⁠. 형당 옥은 부당주가 맡는다고⁠.⁠”

갑돌의 소매 속에서 칼자루가 손바닥 상처를 눌렀다⁠. 진가 무사들이 일제히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횃불이 바람에 눕다가 일어섰다⁠.

“⁠칼 넣어⁠.⁠”

덕순이었다⁠. 두 팔이 뒤로 묶인 채 아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국밥집에서 손님 그릇 치울 때 쓰는 목소리였다⁠.

“⁠여기서 칼 뽑으면 너는 후보도 아니고 죄인 아들도 아니고 그냥 죄인이야⁠. 그럼 내가 옥에서 나와도 국밥집 문 못 열어⁠. 죄인 어미 국밥을 누가 사 먹어⁠?⁠”

“⁠어머니⁠.⁠”

“⁠칼 넣으라니까⁠. 그리고 비켜⁠. 계단 삼백 개 올라와서 다리 아파 죽겠다⁠.⁠” 덕순이 진가 무사 우두머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너⁠, 내 국자 솥에 던진 놈⁠. 그 국물 사흘 우린 거야⁠. 옥에서 나오면 사흘 치 값 받을 거니까 얼굴 기억해 둔다⁠.⁠”

진가 무사 우두머리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장로회 무사 둘이 웃음을 삼켰다⁠.

갑돌은 소매에서 손을 뺐다⁠. 빈손이었다⁠. 계단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덕순이 이 앞을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묶인 팔꿈치로 아들의 옆구리를 한 번 쳤다⁠.

“⁠밥 먹어⁠. 입술이 또 허옇다⁠.⁠”

횃불이 형당 쪽으로 멀어졌다⁠. 갑돌은 계단 꼭대기에 선 채 이 불빛을 보았다⁠. 형당 문 앞에서 부당주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와 섰다⁠. 갑돌이 옥 바깥문 열쇠를 떼어 준 객경은 문 옆에 서 있다가⁠, 부당주가 손을 내밀자 왼손에 쥔 이 열쇠를 한참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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