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88자) · 태오 · 11월 14일

알고 앉는 것

빌린 재능 · 문가온

십일월 십사일 토요일. 장학이 끝난 지 이 주였다.

이 주 동안 나는 오 층에 안 갔다. 평일에는 야자실, 주말에는 도서관. 야자실은 이제 명단이 없다. 담임이 지정석표를 다시 만들었다. 이번 학기만, 이라고 적어서. 표 한가운데 14번이 있고 그 둘레로 우리 반 서른이 앉는다. 표를 만든 사람이 담임인데 표대로 앉으라고 한 적은 없다. 다들 그냥 앉았다. 담임은 야자실을 앞에서 뒤로 걸으면서 아무것도 안 보는 걸 이 주 동안 연습했고, 이제 잘한다.

서른으로 나뉘면 눈 뒤가 어떤가 하면, 기지개 한 번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켜는 기지개. 나는 야자실에서 하루에 열두 쪽을 넘긴다. 필통은 아침에 열고 종례에 닫는다. 삼 년 동안 하던 대로.

주말에는 도서관 구석 자리. 윤재형 아저씨 옆. 그 옆에 서린. 아저씨는 이 주 동안 한 쪽에서 네 쪽이 됐다. 우리 둘로 나뉘어서. 아저씨는 그것을 세지 않았다. 세는 건 서린이 했다.

그런데 오 층에 열하나가 남아 있었다. 장학생. 고객 옆에 앉는 애들. 나는 그 애들 얼굴을 안다. 휴게실에서 컵밥을 같이 먹었다. 그 애들 중에 눈을 누르는 애가 셋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 주 전까지 안 봤다. 남의 일이라서. 지금은 그 애들이 필통을 여닫는 게 보인다. 안 봐도.

토요일 열두 시에 나는 스터디 본 일 층 로비에 갔다. 회원 카드는 이달 말까지 살아 있다. 장학이 끝나도 이번 달 학원비는 면제라서. 실장이 나를 봤다. 카드를 봤다. 그 사람은 카드를 찍었다. 모니터에 내 이름이 안 떴다. 장학생 명단에서 빠져서. 그냥 회원. 실장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안 보는 사람이었다.

휴게실에 장학생 열하나가 있었다. 토요일 점심. 컵밥. 나를 보고 다들 잠깐 멈췄다.

“태오, 너 잘렸다며.”

“어.”

“근데 왜 왔어.”

나는 휴게실 문을 닫았다. 창밖으로 학원가. 회색 간판. 나는 서서 말했다. 서린이 나한테 말했던 순서대로. 골목. 가게. 계약서. 뒷면. 제8조. 삼 미터. 여덟 시간. 원장이 자리를 정하는 이유. 하준 옆에 내가 앉은 이유. 열하나가 고객 옆에 앉는 이유. 나는 순서대로 말했다. 하나도 안 빼고. 말하고 나서 열하나 얼굴을 봤다.

셋은 알고 있었다. 눈을 누르던 셋. 그 애들 얼굴이 그랬다. 알고도 앉는 얼굴. 원장 말이 맞았다. 다는 아니고.

나머지 여덟은 몰랐다. 그 애들 얼굴이 이 주 전 내 얼굴이었다.

“증거 있어?”

누가 물었다. 나는 없었다. 종이는 하준 문제집에 도로 넣었다. 그런데 그때 휴게실 문이 열렸다. 하준이었다. 고객. 점심 먹으러 온 거였다. 그 애는 열하나가 자기를 보는 걸 봤다.

“왜?”

“하준아, 네 문제집에 종이 있잖아. A4. 반으로 접은 거.”

하준이 나를 봤다.

“그걸 어떻게 알아.”

“지난달에 네가 두고 간 문제집 실장한테 맡겼어. 그때 봤어. 뒷면 읽어 봤어?”

하준이 가방을 열었다. 문제집. 종이. 그 애는 그것을 휴게실 한가운데서 폈다. 앞면. 뒤집었다. 뒷면. 두 줄. 그 애가 읽는 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하준이 다 읽고 고개를 들었다. 나를 봤다.

“가장 가까운 사람.”

“어.”

“너잖아. 삼십 센티.”

“어.”

“나 이거 몰랐어.” 하준 목소리가 이상해졌다. “원장님이 너를 내 옆에 앉히셨어. 십월 오일에. 나 계약은 팔일에 했어. 그럼.”

“그럼 원장이 알고 앉힌 거지.”

문이 다시 열렸다. 원장이었다. 토요일 두 시 순찰이 오늘은 열두 시 반이었다. 실장이 올린 모양이었다. 태오 왔다고. 안 보는 사람도 올릴 건 올린다.

“태오. 회원 아니야. 나가.”

“이달 말까지 회원이에요.”

“휴게실은 장학생 공간이야.”

“고객도 있는데요.” 내가 하준을 봤다.

원장이 휴게실을 둘러봤다. 열하나. 하준. 나. 그 사람은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빠른 얼굴. 그러고는 소파에 앉았다. 앉으니까 더 위험해 보였다. 서 있는 사람은 나가라고 하고, 앉은 사람은 설명한다.

“얘들아. 태오가 뭐라고 했는지 나는 안 들어도 알아. 맞아. 다 맞아. 너희는 고객 옆에 앉아. 그게 장학 조건이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한 달 이백. 너희 부모님이 그 돈 낼 수 있으면 여기 장학생으로 안 왔지.” 원장이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나가면 그 돈 내야 돼. 앉으면 안 내. 그리고 앉아서 잃는 게 뭐야. 눈 뒤가 조이는 거. 그게 다야. 죽지 않아. 십일 년 된 사람도 살아 있어.”

그 사람이 십일 년을 말했다. 자기 입으로.

“골라. 나는 너희를 안 잡아.”

그게 그 사람 방식이었다. 잡지 않는다. 고르게 한다. 그러면 고른 사람이 책임을 진다. 가게 주인이 계약자한테서 안 받는 것과 반대였다. 이 사람은 고른 사람한테서만 받는 게 아니라 고르게 만들어서 받았다.

“원장님.” 내가 말했다. “앉히는 건 되는 거 알아요. 규칙에 그렇게 돼 있어요. 근데 알고 앉게 하세요. 그것도 규칙이잖아요. 고른 사람한테서만 받는다고. 얘네 여덟은 몰랐어요. 하준이도 몰랐고요.”

“지금 알잖아.”

“그러니까 지금 고르라고요. 원장님 말대로.”

원장이 나를 봤다. 그 사람은 내가 자기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걸 처음 당하는 것 같았다. 설명하는 사람은 설명을 돌려받는 데 약하다. 서린이 그렇게 말했다. 맞는 데가 있는 말은 틀린 말보다 오래 남는다고.

열하나가 서로를 봤다. 셋은 안 움직였다. 알고 앉던 셋. 그 애들은 이백이 어떤 돈인지 나보다 잘 알았다. 나는 그 애들을 나쁘게 볼 수 없었다. 나도 지난주까지 앉았다.

여덟 중에 하나가 일어났다. 컵밥을 두고. 그러고는 둘. 셋. 넷은 앉아서 울었다. 우는 채로 일어났다. 여덟이 다 일어났다. 그리고 셋 중에 하나가 일어났다. 눈을 누르던 애. 그 애가 말했다.

“나 이백 내야 되는데.”

“응.”

“근데 나갈래. 알고 앉는 거 이 주 했는데, 알고 앉는 게 모르고 앉는 거보다 더 아파.”

아홉이었다. 둘이 남았다. 남은 둘한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둘도 아무 말도 안 했다.

하준이 종이를 접었다. 접힌 자리 그대로. 그러고는 원장한테 말했다.

“대표님, 저는 고객인데요. 저 반환일 일월 팔일이에요. 그때까지 태오한테서 나가는 거 맞죠.”

“맞아.”

“저 이거 알고 빌린 거 아니에요. 뒷면 안 읽었어요. 근데 지금 읽었으니까.” 하준이 가방을 멨다. “저도 갈게요. 학원비는 낸 거니까 환불은 안 받고요.”

“어디 가는데.”

“태오 옆에요. 나뉜다면서요. 내가 앉아도 되잖아요. 나 때문에 나가는 거니까.”

원장이 웃었다. 지는 자리에서 웃는 사람. 그런데 오늘 그 웃음은 조금 늦게 나왔다.

“내일 다시 올 거다. 이백이 얼마인지 알면.”

“그럴 수도 있고요.”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이 나한테 한 말이었다. 알아도 그래.

열하나였다. 아홉에 하준에 나. 우리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오 층에서 일 층. 실장이 데스크에서 우리를 봤다. 이번에는 봤다. 그 사람은 카드를 열 장 받았다. 반납. 안 보는 사람이 보면서 받았다.

도서관까지 걸어갔다. 버스 두 정거장. 열하나가 학원가를 걸었다. 토요일 오후 학원가에 교복 열한 벌이 한 방향으로 가는 걸 학원 버스 기사가 봤다.

하준이 내 옆에서 걸었다. 삼십 센티. 칸막이 없이.

“태오, 나 지난달에 너한테 등차수열 설명해 주려고 했잖아.”

“어.”

“그거 네 거였어. 네 머리로 내가 너한테 설명한 거야.”

“어.”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 건지 고맙다고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

“둘 다 하지 마. 옆에 앉기로 했잖아.”

하준이 잠깐 걷다가 웃었다. 그 애 웃음은 잘 잔 얼굴의 웃음이 아니었다. 뒷면을 읽은 사람의 웃음이었다. 나는 그게 더 나았다.

“근데 일월 팔일까지는 나가는 거지. 너한테서.”

“어.”

“그럼 그때까지 내가 제일 가까이 앉을게. 나뉘는 거, 제일 많이 나한테 오게.”

“그런 계산은 없어. 가게 셈은 그렇게 안 돼.”

“그래도.”

가게 셈은 그렇게 안 된다. 그런데 하준이 그렇게 말하는 걸 막을 셈도 없었다.

열람실 구석에 아저씨와 서린이 있었다. 서린이 우리를 봤다. 열하나를 셌다. 서린은 세는 걸 못 참는다. 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아저씨한테 말했다.

“본 입시 장학생이었어요. 오늘까지.”

아저씨가 열한 명을 봤다. 오래. 그 사람 눈은 정확하지 않은 대신 오래 본다. 그러고는 자기 옆 의자를 뺐다. 아무 말 없이. 앉으라고 안 하고. 빼기만 했다. 열하나가 앉았다. 긴 책상 두 개. 아저씨를 가운데 두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열람실은 오후 세 시 빛이었다. 창으로 낮은 해가 들어와 긴 책상 끝을 비췄고 그 빛 속에 먼지가 떠 있었다. 형광등은 켜져 있었지만 그 시간에는 해가 더 셌다. 열한 명이 가방 지퍼를 열고 문제집을 꺼내는 소리가 났다. 지익. 지익.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 주 전 내 필통 소리를 생각했다. 같은 소리인데 다른 소리였다. 여는 소리와 여닫는 소리는 다르다.

민지 이모가 데스크에서 일어났다. 열람실 자리를 셌다. 열람실은 마흔 자리고 마흔하나가 됐다. 이모가 사무실에서 의자를 하나 꺼내 왔다. 접이식. 그 의자를 마지막에 온 애한테 줬다. 눈을 누르던 애. 그 애가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았다. 소리가 났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열람실이라서.

밤 열한 시에 나는 편의점에 갔다. 엄마 근무. 카운터 안. 바랜 고무 매트. 엄마가 온장고 앞 그 사람한테 캔 커피를 하나 줬다. 돈 안 받고. 폐기라고 하면서. 폐기가 아니었다. 유통기한이 내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봤다.

“엄마.”

“어.”

“나 장학 끝났어. 이 주 전에.”

엄마가 정산기를 봤다. 숫자. 그러고는 나를 봤다.

“학원비 어떡해.”

“안 다녀.”

“그럼 어디서 공부해.”

“도서관. 옆에 사람 있어.”

엄마가 그 말을 들었다. 옆에 사람 있어. 엄마는 열 시간 동안 저기요로 불리는 사람이다. 옆에 사람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 밥은 먹었대?”

“몰라.”

엄마가 폐기 상자에서 삼각김밥을 두 개 꺼냈다. 참치. 봉지에 넣었다.

“내일 갖다 줘. 유통기한 내일 낮까지야.”

나는 봉지를 받았다. 온장고 앞 그 사람이 캔 커피를 들고 나갔다. 나가면서 나를 봤다. 그 사람 눈가 자국이 오늘은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디서 뭘 빌렸는지 모른다. 물어본 적이 없다. 다만 오늘은 없었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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