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62자) · 서린 · 10월 31일

저는 갚아요

빌린 재능 · 문가온

금요일 야자에서 나는 처음으로 남한테 문제를 풀어 줬다.

16번이 쉬는 시간에 문제집을 들고 왔다. 확률. 현수가 「서린이한테 물어봐, 쟤 요새 잘해」라고 한 모양이었다. 나는 봤다. 보는 순간 풀렸다. 그 풀리는 것이 누구 것인지 알면서 나는 설명했다. 이십 초. 16번이 알아들었다. 그 애 얼굴이 밝아졌다. 그 밝아지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건 태오 것이다. 태오 것으로 내가 16번을 밝게 했다. 그러면 이 두 시간은 태오 곁에 앉은 사람한테 돌아가야 한다. 그게 셈이 맞는다. 나는 그날부터 두 시간을 그렇게 쓰기로 했다. 내 문제집이 아니라 태오 옆에 앉은 사람들 문제집에.

교환이다. 나는 그 말을 나한테 여러 번 했다. 빼앗기는 게 아니라 바꾸는 것. 태오 것을 쓰는 대신 그 값을 태오 곁으로 돌려보내는 것. 셈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 가게 셈은 내가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내가 고른 셈이었다.

금요일에는 열둘이 태오 주위에 앉았다. 담임이 명단을 안 폈다. 안 펴는 것이 「오늘만」 다음 단계였다.

토요일 아침 여덟 시에 나는 스터디 본 일 층 로비에 있었다.

관리형 독서실은 회원만 들어간다. 나는 회원이 아니다. 데스크 실장이 나를 봤다. 교복. 토요일에 교복. 실장은 그것만으로 내가 누군지 반쯤 안 것 같았다.

“회원 등록하려고요.”

“학원비 결제하셔야 되는데.”

“얼마예요.”

실장이 액수를 말했다. 엄마 마트 마감조 한 달 치의 절반이었다. 나는 그 액수를 듣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실장은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봤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태오 말대로. 숫자를 말하는 사람이지 숫자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생, 잠깐 기다려 봐요.”

실장이 전화를 했다. 오 분 뒤에 구본혁이 내려왔다. 토요일이라 넥타이가 없었다. 넥타이가 없으니까 더 젊어 보였고 더 빨라 보였다.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웃었다. 지는 자리에서 웃는 사람이 이기는 자리에서 웃으면 어떤지 나는 그날 봤다. 같았다.

“서담고.”

“……”

“회원 등록. 학원비 없이. 그렇지?”

“네.”

“태오 옆에 앉으려고.”

“네.”

구본혁이 로비 소파를 가리켰다. 나는 앉지 않았다. 그 사람도 앉지 않았다. 유리문 밖으로 학원가가 보였다. 토요일 아침의 학원가는 간판이 다 꺼져 있었다. 회색.

“학생, 내가 왜 장학생을 고객 옆에 앉히는지 알아?”

“이자 출처로 만들려고요.”

“그렇게 말하면 나쁘게 들리지. 다르게 말해 줄게. 장학생은 학원비를 안 내. 한 달 이백. 대신 앉아. 여덟 시간. 그게 값이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그 애들도 알아. 다는 아니고. 태오는 몰랐지.”

“이제 알아요.”

“알고도 앉잖아. 어제도 세 시간 채웠어. 엄마 야간 여드레치니까.” 구본혁이 태블릿을 봤다. 안 봐도 아는 숫자를 보는 척했다. “그리고 학생. 학생도 빌렸어. 뒷면 안 읽고. 그 값을 태오가 내는 거 알고도 그 머리 썼어. 나는 앉히고 학생은 앉아 있었고. 내가 지난주에 물었지. 나랑 뭐가 다르냐고.”

“저는 갚아요.”

내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정류장에서 버스 두 대가 지나가는 동안 못 찾았고, 그 뒤 일주일 동안 찾았다.

“뭘로.”

“제 두 시간요. 태오 곁에 앉는 애들한테 문제 풀어 줘요. 매일. 그 두 시간 다.”

구본혁이 웃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재미있어서 웃는 것 같았다.

“그게 교환이야? 학생, 그 두 시간도 태오 거잖아.”

나는 그 말이 들어오는 자리를 알았다. 정확히 그 자리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사람 말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설명하면 이해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태오 걸로 태오한테 돌아가게 쓰는 거예요. 제 걸로는 못 하니까요. 제 건 사십 분밖에 없어서.”

구본혁이 잠깐 웃음을 멈췄다. 아주 잠깐. 그러고는 다시 웃었다.

“학생은 못 들어와. 우리 고객 옆에 누가 앉는지는 우리가 정해. 학생이 앉으면 하준이한테 나뉘는 게 줄어. 그건 내 영업이야.”

“태오한테 나뉘는 거예요. 하준이가 아니라.”

“같은 말이야. 태오한테서 하준이한테 가는 게 줄면 하준이 성적이 떨어져. 하준이 어머니가 나한테 뭐라고 하겠어.” 구본혁이 태블릿을 껐다. “그리고 태오, 이번 달 장학 끝이야. 십팔 분. 실장이 올렸어. 내가 정했어. 학생이 여기 와서 뭘 해도 그건 안 바뀌어.”

“태오한테 말했어요?”

“오늘 할 거야. 학생이 먼저 알았네.”

그 사람이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올라갔다. 오 층으로. 태오가 있는 곳으로. 나는 로비에 서 있었다. 실장이 데스크에서 나를 안 봤다. 안 보는 사람이 여기도 있었다.

열두 시에 태오가 내려왔다. 점심. 편의점 삼각김밥을 들고. 로비에서 나를 봤다. 태오 얼굴은 어제보다 나았다. 열둘로 나뉜 얼굴. 그런데 오늘은 오 층에서 여덟 시간이다. 옆에 하준. 나뉠 사람 없이.

“여기서 뭐 해.”

“회원 등록하려고 했어.”

“돈 없잖아.”

“응.”

태오가 삼각김밥 포장을 뜯었다. 참치. 한 입 먹고 나를 봤다.

“원장이 방금 말했어. 장학 끝이래.”

“들었어.”

“다음 달부터 학원비 내야 돼.”

“그럼 여기 왜 앉아 있어.”

“오늘까지는 장학이니까.” 태오가 김밥을 마저 먹었다. “여덟 시간 채우면 이번 달은 안 내.”

“태오, 도서관 가자. 지금.”

“못 가.”

“장학 끝났다며.”

“오늘까지 있어. 이번 달 이백.”

나는 고집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주인이 말한 것. 학생한테 남아 있는 건 고집입니다. 그건 빌려 드려도 이자 낼 사람이 없어요. 나는 그 고집 곁에 앉을 수 없었다. 회원이 아니니까.

“그럼 나 도서관 가 있을게. 열 시까지. 끝나면 와.”

“열두 시야, 여기.”

“그럼 정류장.”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오 층.

도서관 열람실 구석에 그 사람이 있었다. 낡은 점퍼. 강사용 교재. 나는 이번에는 세 자리 건너에 앉지 않았다. 옆에 앉았다. 바로 옆. 의자를 끌 때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이 나를 봤다. 십일 년 동안 아무도 안 앉은 자리에 교복이 앉았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책으로 돌아갔다.

나는 내 문제집을 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풀었다. 내 것이 아닌 머리로. 옆에서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줄을 짚었다. 놓았다. 짚었다. 나는 그 손가락 소리를 들으면서 풀었다. 이상하게 그 소리가 방해가 안 됐다. 태오 필통 소리처럼.

세 시쯤에 그 사람이 손가락을 멈췄다.

“학생.”

“네.”

“여기 앉으라고 누가 시켰나.”

“아니요.”

“그럼 왜.”

“앉고 싶어서요.”

그 사람이 나를 오래 봤다. 그 사람 눈은 주인 눈과 달랐다. 정확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 봤다.

“나 아는 사람이야?”

“본 입시 수학 윤재형. 교재 표지에요.”

그 사람이 교재를 덮었다. 표지를 손으로 가렸다. 그러고는 손을 뗐다. 가릴 게 아니라는 것처럼.

“십일 년 전 책이야.”

“알아요.”

“구본혁이 보내서 왔나.”

“아니요. 구본혁이 못 들어오게 해서 왔어요.”

그 사람이 웃었다. 웃는 소리가 열람실에 갔다. 데스크에서 민지 이모가 고개를 들었다. 십일 년 만에 처음 듣는 소리였을 것이다.

열 시에 열람실이 닫혔다. 우리는 도서관 계단에 앉았다. 밖은 어두웠고 계단 위 등이 노랬다. 그 사람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했다. 짧게 짧게. 한 문장 하고 쉬고.

“짝강사였어. 본 입시. 열한 해 전. 사무실 책상이 붙어 있었어. 하루 여덟 시간. 그 사람이 뭘 빌렸는지 나는 몰랐어. 알게 된 건 석 달 뒤. 수업 중에 한 쪽을 설명하는데 입에서 안 나왔어. 머리에는 있는데. 그게 그 사람한테 있더라고. 삼 층짜리 얼굴로.”

“평생요.”

“평생. 그래서 반환일이 없어. 여 사장 말이 매일이라는 건 그거야. 그 사람은 자기가 빌린 걸 매일 하루치 돌려주고 매일 하루치 다시 빌려. 그래서 장부가 틀리면 안 돼. 하루 틀리면 하루가 안 돌아와.”

“그럼 아저씨 건요.”

“내 건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나가. 십분의 일. 그 사람이 설명을 많이 하는 날은 내가 한 쪽도 못 읽고, 적게 하는 날은 두 쪽쯤.” 그 사람이 계단을 봤다. “설명회 날은 아무것도 못 읽어.”

“왜 아무도 옆에 안 앉게 했어요. 다섯 번째 조항.”

“알아. 알아도 그래.” 그 사람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이 비어 있었다. “내 것이니까. 내가 잃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어. 남한테 나눠 달라고 하는 게 안 됐어. 앉으라고 하면 그건 앉힌 거고. 앉히면 안 나뉘고. 그래서 안 했어. 십일 년.”

나는 그 말이 어디로 들어오는지 알았다. 도와 달라고 하지 못하는 사람. 교무실에서 목을 긁고 나온 말. 이 사람은 그 말을 십일 년 동안 안 했다.

“오늘 몇 쪽 읽었어요.”

“두 쪽.”

“……”

“아니, 그게 아니고.” 그 사람이 교재를 꺼냈다. 계단 등 밑에서 폈다. 아무 쪽이나. “학생, 이거 봐. 이 문제.”

수열이었다. 나는 봤다. 풀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공차를, 먼저.” 한 마디 하고 쉬었다. 목에 뭐가 걸린 사람처럼. “공차를 먼저 빼. 그러면. 남는 게. 첫째 항.”

그 사람이 거기서 멈췄다. 더 안 나왔다. 그런데 나온 데까지가 설명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들었다. 공차를 먼저 빼면 남는 게 첫째 항. 십일 년 만에 그 사람 입에서 나온 한 줄이었다. 그 사람은 교재를 덮고 계단 등을 올려다봤다. 눈이 젖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등이 노래서.

“고맙다, 학생.”

정류장에 태오가 있었다. 열두 시 십 분. 플라스틱 의자. 나는 옆에 앉았다. 한 뼘.

“여덟 시간 채웠어?”

“응. 마지막이야.”

“나 오늘 도서관에서 설명 들었어.”

“누구한테.”

“십일 년 동안 한 쪽밖에 못 읽는 사람한테.”

태오가 나를 봤다. 나는 그 사람 이야기를 했다. 짝강사. 책상. 삼 층 얼굴. 매일. 태오가 다 듣고 나서 필통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 아저씨 옆에 나도 앉을게.”

“왜?”

“나 이제 오 층 안 가니까. 앉을 데가 없어.”

버스가 왔다. 우리는 탔다. 같이 탄 건 처음이었다. 삼 년 동안 집 방향이 달라서. 오늘은 방향이 같았다. 태오네 편의점이 우리 집 가는 길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삼 년 만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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