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93자) · 서린 · 10월 28일
오늘만
빌린 재능 · 문가온
화요일 아침에 담임이 나를 불렀다. 교무실. 담임 책상 옆에 태오가 서 있었다. 태오는 나를 안 봤다.
“태오가 자리 바꿔 달래.”
담임 박정훈은 삼십 대 후반이고 규정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 규정이 있으면 자기가 안 정해도 되니까 편해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을 삼 년 중 두 해 담임으로 겪었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저 사람한테 규정 밖의 말을 하면 저 사람은 곤란한 얼굴이 된다. 곤란한 얼굴을 만드는 게 나는 싫었다. 그래서 삼 년 동안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다.
“짝 바꾸기는 한쪽이 원하면 바꿔 줘. 규정이야. 이유는 안 물어. 물으면 서로 곤란하니까.”
“저는 싫은데요.”
담임이 나를 봤다. 태오도 봤다. 나는 내가 그 말을 할 줄 몰랐다.
“서린이가 싫어도 태오가 원하면 바꿔.”
“그럼 저도 원하는 게 있어요.”
“뭔데.”
“야자실 지정석이요. 태오 옆자리 둘. 바꿔 주세요.”
“누구로.”
“민지랑 현수요.”
담임이 안경을 올렸다. 구본혁이 안경 올리던 것과 다르게 올렸다. 구본혁은 계산할 때 올리고 담임은 곤란할 때 올린다.
“지정석은 학기 초에 정해. 한 번 바꿔 주면 다 바꿔 달라고 해. 그래서 안 바꿔. 그것도 규정이야.”
“규정이 아니라 선생님이 정하신 거잖아요.”
“내가 정한 게 규정이야, 야자실에서는.”
“도와주세요.”
그 말이 나왔다. 교무실 한가운데서. 옆 책상 선생님이 고개를 들 만큼 크게. 나는 그 말을 열일곱 해 동안 해 본 적이 없다. 엄마한테도. 하고 나니까 목이 아팠다. 말이 목을 긁고 나온 것처럼.
담임이 잠깐 가만히 있었다.
“뭘 도와줘. 이유를 말해야 도와주지.”
나는 이유가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다. 학원가 골목 간판 없는 가게에서 석 달을 빌렸고 그 이자를 짝이 내고 있는데 곁에 스스로 앉는 사람이 있으면 나뉜대요. 그 말을 교무실에서 할 수는 없었다. 하면 담임 얼굴이 곤란한 얼굴을 지나 다른 얼굴이 된다.
“태오가 아파요.”
“그럼 병원을 가야지.”
“병원에서 안 고쳐져요.”
담임이 태오를 봤다. 태오 눈가에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 담임은 그것을 봤다. 보고도 규정을 골랐다.
“짝은 바꿔. 야자실은 안 바꿔.”
태오가 뒷줄로 갔다. 두 줄 뒤. 창가. 내 옆에는 현수가 왔다. 현수 짝이었던 애가 태오 자리로 갔고 그 애는 기뻐했다. 창가라서. 현수가 앉자마자 내 지우개를 썼다.
“나 지우개 없어. 서린이 지우개 훔쳐 갈게.”
“써.”
“근데 서린아, 태오가 왜 간 거야?”
나는 대답을 안 했다. 현수가 내 얼굴을 봤다. 오 초쯤. 현수는 오 초 이상 남을 못 본다. 그런데 오 초 안에 웬만한 건 본다.
“싸운 게 아니네.”
“……”
“뭔가 있네.”
점심시간에 나는 민지와 현수를 옥상 계단으로 데려갔다. 거기가 학교에서 제일 조용하다. 계단 난간이 차가웠다. 나는 그 난간을 잡고 말했다. 두 번째로 말하는 거라 처음보다 짧았다. 가게. 석 달. 뒷면. 삼 미터. 태오. 이백칠십육 분. 곁에 스스로 앉는 자.
민지가 먼저 말했다. 반장은 먼저 말하는 게 일이다.
“그걸 믿으라고?”
“안 믿어도 돼. 앉아만 주면 돼.”
“나는 믿어.” 현수가 말했다. 현수는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김치가 재수생이라고 할 때와 같은 목소리로. “나 원래 집중력 없어서 떼어 갈 게 없어. 그러니까 내가 앉으면 이자가 나한테 와도 손해가 없지. 영에서 뭘 빼. 이게 수학이지.”
“그런 수학이 어딨어.” 민지가 말했다.
“여기 있잖아. 나.”
민지가 나를 봤다.
“태오 눈, 나도 봤어.” 민지가 말했다. “지난주부터 이상했어. 반장이니까 봐. 근데 서린아, 너 지금 우리한테 부탁하는 거야?”
“응.”
“네가 부탁하는 거 처음 봐.”
“오늘 두 번째야.”
수요일 야자. 여섯 시. 야자실은 번호순이고 태오는 14번이다. 13번은 우리 반 애고 15번은 옆 반 애다. 민지가 13번한테 가서 뭐라고 했다. 13번이 짐을 싸서 민지 자리로 갔다. 현수가 15번한테 갔다. 15번은 옆 반이라 현수를 몰랐는데, 현수는 아는 사람처럼 말을 걸었다. 「너 창가 자리 좋아하지. 내 자리 창가야.」 15번이 짐을 쌌다. 현수는 창가가 아니었다. 현수 자리는 복도 쪽이었다. 15번은 나중에 그걸 알았고, 그때는 이미 거기 앉아 있었다.
민지가 13번에 앉았다. 현수가 15번에 앉았다. 태오가 가운데. 태오는 두 사람이 앉는 걸 봤다. 문제집에서 고개를 들고. 아무 말도 안 했다. 필통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고는 문제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22번에서 봤다. 두 줄 뒤. 삼 미터 밖.
일곱 시에 담임이 순찰을 돌았다. 담임은 야자실을 앞에서 뒤로 걷는다. 14번 앞에서 멈췄다. 13번 민지. 15번 현수. 담임이 명단을 봤다. 명단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담임이 안경을 올렸다.
“지정석.”
“네.” 민지가 말했다.
“네 자리 아니잖아.”
“오늘만요.”
담임이 태오를 봤다. 태오는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눈가 자국. 담임이 그 자국을 다시 봤다. 그러고는 명단을 접었다.
“오늘만.”
담임이 지나갔다. 뒤로. 나를 지나갈 때 나를 안 봤다. 안 보는 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였다. 규정을 좋아하는 사람이 규정을 안 지키려면 안 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도움으로 받았다.
여덟 시 반에 태오가 기지개를 켰다. 야자실에서. 두 팔을 위로. 나는 그것을 봤다. 삼 년 동안 태오가 야자실에서 기지개 켜는 걸 본 적이 없다. 태오는 그럴 시간에 한 문제를 더 푼다. 태오가 팔을 내리고 목을 돌렸다. 그러고는 한 쪽을 넘겼다. 사락. 필통을 안 열고.
민지는 그날 눈을 두 번 비볐다. 현수는 한 번도 안 비볐다. 현수는 문제집을 펴 놓고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떼어 갈 게 없다는 말이 맞았다.
아홉 시에 야자가 끝났다. 휴대폰이 울렸다. 태오였다. 삼 년 동안 태오한테 문자가 온 적이 다섯 번쯤 된다. 다 「숙제 뭐야」였다.
오늘 한 쪽 넘겼어.
나는 그 여섯 글자를 오래 봤다. 답을 못 했다. 뭐라고 해도 내 말이 될 것 같아서. 나는 휴대폰을 껐다.
목요일 야자에는 사람이 더 있었다. 현수가 소문을 냈다. 현수가 낸 소문은 이랬다. 「태오 옆에 앉으면 성적 오른다.」 정반대였다. 태오 옆에 앉으면 태오 것이 조금 나뉘어 온다. 오르는 건 태오다. 그런데 현수는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온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거꾸로 말했다. 12번과 16번, 그리고 앞줄 두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우리 반 넷. 제 발로. 담임이 명단을 접었다. 오늘만, 이라고 두 번째로 말하면서. 담임의 「오늘만」은 규정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일곱이었다. 태오를 빼고. 태오는 그날 세 쪽을 넘겼다. 나는 22번에서 셌다. 사락. 사락. 사락. 그 소리가 야자실에서 제일 큰 소리였다.
“야, 근데 성적 언제 올라.” 16번이 쉬는 시간에 현수한테 물었다.
“기말 때.”
“진짜?”
“내가 언제 거짓말했냐.”
“맨날.”
“그럼 왜 앉았어.”
16번은 대답을 못 했다. 앉은 이유가 소문이 아니라는 걸 그 애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태오가 엎드려 있는 걸 봤을 것이다. 지난주에. 삼 년 동안 안 엎드리던 애가.
목요일에 민지가 야자실에서 말했다. 13번에서 나한테 온 게 아니라 쉬는 시간 복도에서.
“우리 이모가 서담도서관 사서야. 이 층 열람실. 이모가 그러는데 십일 년째 매일 오는 아저씨가 있대. 하루에 한 쪽 읽고 간대. 같은 책. 십일 년 동안.”
“그게 왜.”
“태오가 읽으면 앞이 없어진다며. 그 아저씨도 그런 거 아니야? 한 쪽밖에 못 읽는 거.”
나는 그날 야자를 마치고 도서관에 갔다. 구립 서담도서관은 학교에서 버스 두 정거장이다. 열람실은 열 시까지다. 이 층. 형광등. 가게와 같은 흰빛. 나는 그 빛이 이제 싫었다.
열람실은 넓고 사람이 적었다. 긴 책상 여덟 개. 책상마다 초록색 갓을 씌운 스탠드가 두 개씩. 형광등이 위에서 흰빛을 깔고 스탠드가 아래에서 노란빛을 올려서 사람 얼굴이 두 색으로 나뉘어 보였다. 종이 냄새와 난방 냄새. 누가 책장을 넘기면 그 소리가 끝까지 갔다. 나는 그 방에서 삼 미터가 몇 자리인지 셌다. 책상 하나 반.
구석 자리에 남자가 있었다. 사십 대 후반. 낡은 점퍼. 책 한 권. 그 사람은 책을 펴고 한 쪽을 읽고 있었다. 읽는 게 아니라 보고 있었다. 눈이 줄을 따라가다가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태오가 필통을 여닫는 자리에서 그 사람은 손가락으로 줄을 짚었다. 짚고, 놓고, 다시 첫 줄을 짚었다.
나는 세 자리 건너에 앉았다. 곁에 앉을 수 없었다. 삼 미터. 나는 그 거리를 이제 눈으로 잰다.
아홉 시 오십 분에 그 사람이 책을 덮었다. 덮은 책 표지가 보였다. 수학. 강사용 교재. 표지 아래에 이름이 있었다. 본 입시 수학 윤재형. 십일 년 전 판. 그 사람은 책을 도서관 서가에 안 꽂았다. 점퍼 안에 넣었다. 자기 책이었다. 그 사람이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한 층을 다 내려갈 때까지 들렸다. 천천히.
민지 이모가 데스크에서 나를 봤다.
“학생, 저분 아는 사람이야?”
“아니요.”
“저분 옆에는 아무도 안 앉아. 십일 년 동안. 우리가 자리 배정을 안 하거든. 자유석이야. 그런데 아무도 안 앉아. 저분이 앉지 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는 열람실을 나왔다. 버스 정류장. 학원가 쪽 큰길 끝에 본 입시 광고판이 있었다. 삼 층 높이 얼굴. 설명하면 이해되고 이해되면 오른다. 그 얼굴이 십일 년 전에 뭘 빌렸는지 나는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도.
평생치는 반환일이 없다. 있어도 매일이다. 나는 주인이 눈을 누르던 것을 생각했다. 그 사람 곁에도 아무도 안 앉는다. 앉히지 않으니까.
집에 오니 엄마가 먼저 와 있었다. 열한 시 십 분. 오늘은 마감조가 아니었다. 엄마가 부엌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니까 엄마가 물었다.
“어디 갔다 와.”
삼 년 만에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도서관.”
“공부하러?”
“아니. 사람 보러.”
엄마가 더 안 물었다. 그런데 안 묻는 게 삼 년 동안의 안 묻는 것과 달랐다. 나는 그 차이를 알았다. 알게 하는 것은 아직 옆에서 오고 있었다. 오늘은 셋으로 나뉘어서 조금 가볍게.